∎140만 그릇의 밥 나눔의 기적
이 책은 어려운 이웃들과 140만 그릇의 밥을 함께 나눈 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 동네의사 곽병은의 25년 동안의 일기다. 22년 동안 하루 200여 그릇, 하루도 빠짐없는 밥 나눔은 한 개인의 소박한 꿈에서 비롯되었다. 부부는 서민의사로 살기로 작정하고 무료진료와 동네 사랑방 같은 병원을 꾸려가며 지역 봉사를 시작해 가족공동체 시설인 갈거리사랑촌, 무료급식소인 십시일반, 원주노숙인센터, 갈거리협동조합을 잇달아 설립했다. 이 책은 1989년 부부의원을 열어 2013년 부부의원을 닫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될 때까지 동네의사 곽병은이 겪었던 두려움과 희망을 드러내는 성장의 기록이다.
∎지방 소도시에서의 조화로운 삶
곽병은의 삶을 보면 조건을 다 갖춰야 꿈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병원 부도로 막대한 빚으로 시작한 병원 개원이었건만, 꿈을 실천하기 위해 무모하게도 다시 빚을 내어 복지시설을 설립했다는 책 첫 부분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그의 병원은 이웃과 정을 나누는 사랑방이었다. 또 그가 운영하는 복지시설은 원주에서도 가장 내실 있게 운영되고 있다. 사회복지학과 동양학, 서예와 사군자, 검도, 궁도, 사진 등의 공부는 평생에 걸쳐 계속되고 있다. 또 마을회관 방을 걸레질하는 등 지역과 시골의 일원으로 어울려 살고 있다. 인간과 사회를 볼 줄 아는 의사, 갈 곳 없는 이들의 벗, 시골을 사랑하는 자연인, 평생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는 학생의 모습, 그 모두를 어우르는 그는 지방 소도시에서 조화로운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롤모델이다.
∎사회복지의 롤모델, 곽병은은 누구인가
그는 의사다.
1977년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군원주병원에서 군 복무를 계기로 원주에 정착했다. 그는 동네의사로 불리는 걸 좋아한다. 1989년 원주에 부부의원을 개원하여 지역의 사랑방 같은 병원을 25년 동안 운영했다. 1991년부터 2006년까지 원주교도소 의무과장을 역임했다. 2013년 2월 15일 자신의 환갑날 병원을 정리하고, 현재는 원주의료생협 밝음의원 원장으로 있다.
그는 사회복지가다.
어려서부터 봉사하는 삶을 꿈꾸어온 그는 1991년 원주 외곽 시골 마을에 가족공동체시설인 ‘갈거리사랑촌’을 설립했다. 이어 무료급식소 ‘십시일반’과 노숙인들을 위한 ‘원주노숙인센터’를 설립했다. 무주택 독거 할머니를 위한 ‘봉산동할머니집’, 복지형 신용협동조합인 ‘갈거리협동조합’, ‘갈거리장학회’를 설립하여 운영해오고 있다.
그는 평생학생이다.
상지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를, 가톨릭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양학과 고전에 관심이 많아 현재도 방송통신대학 중국어과에 재학 중이다. 서예와 사군자에 탐닉해 공모전에 여러 번 수상했다. 평생에 걸쳐 일기와 시를 썼다. 검도, 활쏘기, 사진 등의 장르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는 원주에 사는 시골 사람이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노인잔치를 열고 마을회보를 만들어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논의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향토문화역사학교와 사회봉사학교를 열고 있다.
2000년 대구가톨릭사회봉사대상, 2001년 원주시민대상, 2006년 보령의료봉사대상, 2006년 대한민국 인권상, 2012년 동곡상, 2013년 아산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부부의원을 폐원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제 그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봉사에 전념하는 삶, 유유자적한 삶의 꿈에 부풀어 있다.
곽병은
1953년 경기도 이천 출생
1977년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82년 마취과 전문의 취득
1984년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졸업
2001년 상지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졸업
2006년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졸업(사회복지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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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월 21일~2013년 2월 15일 부부의원
1991년~2006년 원주교도소 의무과장(3번 겸임)
1991년~현재 갈거리사랑촌 원장(가족공동체시설)
1997년~현재 십시일반(저소득층 노인, 장애인,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시설)
1998년~현재 원주노숙인센터(노숙인들의 보호를 위한 쉼터 및 종합복지센터)
2004년~현재 갈거리협동조합(노숙인 및 저소득 지역주민들의 긴급생활자금과 자활지원을 위한 복지형 신용협동조합)
현재 원주의료생협 밝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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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중앙의료인상(중앙대학교)
2000년 대구가톨릭사회봉사대상(천구교 대구교구)
2001년 원주시민대상(원주시)
2004년 원주시민운동가상(원주시민연대)
2005년 원주부부상(원주시)
2005년 자랑스러운 이달의 복지인(보건복지부)
2006년 보령의료봉사대상(대한의사협회, 보령제약)
2006년 대한민국 인권상(국가인권위원회)
2012년 동곡상(동곡사회복지재단)
2013년 아산상 대상(아산사회복지재단)
갈거리사랑촌 www.kalgury.kr 033-742-8981~2
원주의료생협 밝음의원 www.wjmedcoop.org 033-744-7573
<목차>
1장 1+1≠2 마음은 나눌수록 커진다
2장 행복 다이어리 1989~1995
뜻이 좋고 계획이 좋으면 뭐하나
3장 행복 다이어리 2002~2009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4장 행복 다이어리 2010~2013
동네의사 아저씨
<저자 곽병은>
1953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1977년 중앙대 의대를 졸업했다. 원주에서의 군복무를 계기로 1989년 원주에 부부의원을 개원하였고 2년 후인 1991년 갈거리사랑촌을 설립하였다. 이후 무료급식소 십시일반, 원주노숙인센터, 갈거리협동조합을 설립하며 22년째 봉사인의 삶을 이어오고 있다. 동네의사, 지역복지인 또한 평생학생으로 사회복지학, 동양학, 서예, 사군자, 검도, 사진 등을 공부하고 있는 그의 삶은 시골의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사는 조화롭고 여한 없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2001년 원주시민대상, 2006년 대한민국 인권상, 2013년 아산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원주의료생협 밝음의원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글 맛보기>
동네의사
집사람과 내가 연애할 때 집사람은 내가 앞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을 잘 이해해주었다. 우리는 보통 의사 수준 정도의 생활을 하자고 의견 일치를 보았다. 너무 화려한 생활이나 봉사한다고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들한테는 어려서부터 유산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교육은 원하는 대로 시켜주지만 물질적 유산은 없다고 했다. -13쪽
24년 전 오늘
25년 전 오늘 아침, 병원 출근길 내 기분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가톨릭병원에서 갑자기 나오게 되어 아무 준비 없이 개원하게 되었다. 강원은행 남부지점에서 6천만 원을 대출받았다. 이 돈으로 보증금 내고 인테리어 하고 의료기기 사고, 직원 월급과 우리 집 생활비 3개월분을 충당했다. 개원 자금도 전혀 없는데다 이곳 출신도 아닌지라, 쉽지 않은 조건에서 개원한 것이다. 개원하면서 얻은 빚과 서울 아버지 집을 구입하면서 얻은 빚 등이 있었다. 나는 원주 내 가족만이 아니라 서울 부모님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할 장남이었다. 내가 망하면 우리뿐만 아니라 부모님까지 어려워진다는 배수진을 치고 시작한 것이다. - 24쪽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어려운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냐고. 그것은 정의(正義), 선(善)과 같은 진리에 대한 단순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부족한 한 인간에게 용기와 힘을 준 것이다.
동네의사 아저씨
넥타이도 매지 않는다. 갑갑하고 귀찮다. 노인 환자분들은 이런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환자에게 의사로서의 권위는 나에게 없다. 더 낮아지려고 한다. 낮아짐으로써 겉으로가 아니라 마음에서 자연히 우러나는 존경받는 의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항상 웃는다. 나부터 벽을 허물어 가까워지려고 한다. 편하고 친절한 의사가 되고 싶은 것이다. -34쪽
청년시절의 꿈
길거리를 가다가 리어카를 끌고 고물을 줍는 분들이나 붕어빵을 파는 사람, 구두 닦는 사람, 좌판을 깔고 야채나 과일을 팔고 있는 할머니들이 나에게 아는 체하고 인사하는 것이 좋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병원에 환자로 오고 길거리에서 인사를 하는 것은 내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청년시절의 꿈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실천해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197쪽
십시일반 토요국수
십시일반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국수가 나온다. 사실 이곳의 토요일 잔치국수는 맛있기로 소문 나 있다. 토요 봉사자분들이 10년 넘게 국수만 삶아서 기술이 늘어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 보통 두 그릇씩 드시고 또 밥도 말아 드신다. 국수 삶는 일은 여성 봉사자에게 좀 힘든 일이다. 건축 목수 일을 하다가 지금은 치킨 집을 하는 황병환(남자 봉사자) 씨는 비가 오거나 일이 없는 날에는 십시일반에 와서 설거지나 힘든 일을 도맡아 한다. 지금은 토요일마다 국수를 삶으러 오는데 그의 옷은 항상 땀범벅이 된다. 그는 집에 밥이 없어 봉사하고 밥 먹으러 온다고 농담을 한다. -117쪽
시골생활
농사도 짓고 마당도 가꾸고, 봄에는 앞마당의 포도나무, 감나무, 장미, 철쭉 등을 전정해주고 퇴비도 주련다. 울타리 꽃 매화나무도 잘라 주리라. 뒷마당의 자두나무, 매실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등에도 퇴비를 주고 잘 가꾸리라. 여름에는 잔디 깎고 뒷마당의 풀 뽑고, 가을에는 밤, 감, 대추, 매실을 따서 먹거나 과실주를 담그고 뒷마당의 밤 껍질도 치우리라. 겨울에는 감나무 기둥을 짚으로 싸매 주리라. 그리고 앞, 뒷마당에 있는 강아지 집들도 깨끗이 치우고 고쳐주고 밥그릇도 닦아주리라. 물론 연못도 청소하고 물도 갈 것이다. -136쪽
조용히 왔다 조용히 가는 삶
너무 욕심을 낼 것도 아니고 선한 마음으로 남을 도와주다가 조용히 살다가 가는 것이다. 갈 때도 아무에게 알리지도 말고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