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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19일,일요일.
불태산은 몇달전에 산행계획을 세웠다가 취소했던, 한번 외면당했던 산행지다.
그리고,그곳은 7년전인가 8년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거릴 정도로 오래전에 러쎌에서도
등반을 한 경험이 있었던 결코 낯선 산행지는 아니다.그런데 오랫만에 세운 계획이
참가를 희망하는 인원이 부족해서 물거품이 되었으니 재차 산행계획을 시도한 걸 보면
그것이 고집인지 오기인지 모를 일이다.불태산은 산세의 수려함과 등반성을 놓고
본다면 다른 유수의 명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진산이다. 그런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도
전국의 한다하는 산꾼들의 발길이 뜸하다면 홍보를 위한 노력이나 지역적인 취약성에
원인이 있었는지 모른다.
등산로가 입산객들로 번잡스러운 것을 좋아해서 하는 얘기는 물론아니다. 다만 이렇게
훌륭한 산행지를 산을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불현 듯 솟아났기
때문이다.혹시 불태산같은 부류의 산군(山群)들이 여타의 산꾼들 취향에 반하고,山客의
개인적인 취향의 결과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싶다.하기야,산행계획을 짜는데 대다수
인원의 취향을 고려해서 수립을 해야 시장성에서 경쟁력이 생기는 법인데 시장성에서
뒤쳐지는 대상지를 선택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룰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댓가를 치룰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면 등산을 영리의 수단으로 폄하시키는
행위로 비판받을 수 도 있는 자가당착에 빠져들 수 도 있다. 우정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친구를 버려야하는 진퇴유곡에 빠질 수 도 있는 것이다.
좌우지간 안내산악회의 애환이 산행의 순수성을 자꾸만 훼손시키지나 않을까
내심 우려의 마음만 들 뿐이지 별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산행도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소박한 인원을 꾸릴 수밖에 없다.다행스러운 것은 오랫만에 참석한 반가운
산우(山友)가 있고, 산행지 불태산의 변함없는 아름다운 산세가 허전함을 채워주는 산행이
될 것이다. 집안에 고집이 센 아들이 있으면 패가(敗家) 걱정이 없고, 나라에 오기가 있는
신하가 있으면 망국(亡國)의 우려가 없다고 하는 옛말이나 위안삼으며 불태산이 기다리고
있는 전라남도 장성을 향해 길을 떠난다.
광주에 닿기전 장성I,C를 벗어나서 들머리인 서동마을 까지는 얼추 두어마장거리밖에
안되니 버스로 가는 길 반시간도 채 안 걸릴 것이다.최근에 개통된 고창-담양간 고속국도아래를
지나면 좌측으로 저수율이 바닥을 보이는 유탕저수지가 안쓰럽다. 구불구불하긴해도 아스콘포장이
산뜻하게 깔려있는 마을 진입로 차도가 다하는 곳, 노선버스가 회차를 하는 종점, 불태산 초입의
산아래에 위치한 약사암의 스님 서넛이 사월초파일 불탄기념일을 위해 연등을 다느라 여념이 없다.
서동마을에서 큰재를 향하는 산길들머리 길섶에는 방금 돋아난 이파리들의 연두색 빛깔이 햇살에
파릇파릇 생기가 넘쳐난다.
본격적인 숲길로 접어들자 검붉은 녹이 슬은 철조망 안으로 길은 이어지고 좌측의 허름한
작은 축사는 가축들이 문을 나선 지 어지간한 세월이 흘렀는 모양이다. 을씨년 스럽게
변해버린 축사옆을 지나면 산길은 계류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계곡으로 꼬리를 늘이며
주말산꾼들을 손짓한다.잠시 계곡옆을 따르던 산길은 삼거리를 내놓고 선택을 묻는다.
우측 산길은 귀바위나 이재산성방향이 예상되니 좌측 길로 짐짓 접어든다.
잠시 자락을 끌고 이어가던 산길은 너덜지역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만다.
귀찮더라도 잠시 후진을 해서 조금전의 우측길을 따르면 큰재로 향하는 점잖은 산길이
뚫려있을텐데 잠깐의 후진이 귀찮아 거추장스럽게 잡목이 발목을 잡아당기는
쟝글(?)같은 숲길로 미련스럽게 들어선다. 빤이 올려다 보이는 안부가 눈길을 잡아끌고
유혹한 것도 이유겠고 그런 유혹에 대책없이 빠져든 山客의 내공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식경이 지난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180도 빙 돌아온 점잖은 산길을 만나고,
잠시후 층층나무와 보리수나무 아래 벤치 두개가 기다리는 큰재에 도착한다.
거추장스러운 잡목과 싸우느라 목덜미며 겨드랑이가 땀에 젖었다. 장성뜰에서 불어 오는가,
무등산아래 광주시가에서 불어 오는가, 시원한 생수로 내열을 다스리는 사이에
살랑살랑거리며 산처녀 꼬시려는 봄바람은 흐른 땀을 식혀 준다.이정표가 산뜻하다.
들머리 유탕리 서동마을 방향의 이정표에 2Km라고 씌어있고 좌측의 깃대봉방향으로는
0,6Km라고 표시되어 있다. 우측은 귀바위를 경유해서 이재산성과 재봉산 그리고
장성읍내 장성초교 방향의 장거리 산길이 열려있다. 붉으디 붉은 빛깔과 연분홍의
진달래꽃이 연두색 나무이파리 사이사이를 네온싸인 밝혀 놓은듯 찬란하고,
길섶에는 키작은 소나무들이 방풍숲을 이루고 있다.나이깨나 먹은 듯 허리둘레는
굵직한데 키가 작은 걸 보면 이곳 능선에서는 키가 작아야 살아가기가 수월한 풍토인
모양이다. 솔가지 사이로 장성시가지와 장성과 담양뜰이 시원하고 무등산의 거구가
지역의 수장다운 면모로 듬직하다. 칼날능선을 방불하는 능선가에는 이렇게 허리굵은
솔나무와 발그레한 얼굴의 산처녀 진달래가 반기는 호젖한 느낌의 산길이다.
깃대봉과 불태봉,그리고 천봉등 불태산의 식솔들이 화려한 무대를 꾸미고, 드넓고
푸른 창공과 태양은 조명을 자임하는 불태의 드라마는 잠시라도 지루함을 주지않고
산중과객들의 영혼을 빨아들인다. 굵직한 허리둘레는 듬직한 내공을 나타내 보이고,
작은 키는 겸손함을 드러내는 솔나무가 협시하고 있는 성곽을 닮은 산길, 가파른 비알에
목재계단이 레드카펫을 펴놓고 스타를 안내하는 듯이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
시원한 생수가 마른 목을 축이며 식도를 탄다. 무등산을 넘어서 담양뜰을 훓고 불어오는
봄바람이 땀에 젖은 목덜미를 핥고 지나간다. 사방팔방 육합에 거칠 것없는 봉우리에
널찍한 헬기장이 닦여 있다. 지형도상에는 불태산이라고 표시가 되어있는 해발602,4m의
깃대봉이다. 산행시간내내 두눈을 시원하게 해줄 넓은 담양뜰과 무등산 그리고 앞으로
넘어야 할 올망졸망한 암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새파란 창공의 태양에서 짖궂은 장난꾸러기처럼 땡볕을 눈이 부시도록 쏟아 붓는다.
무더운 날씨는 아니더라도 산행으로 열기가 오른 체열때문에 그늘을 찿을 만하다.
그러나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스러운 담양뜰과 시골처녀 바람내키는 봄바람이
살랑살랑거리니 땡볕이라고 주저하고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정오(正午)도 지난 시간이니 요기를 때울 필요가 있지 않은가, 등산의 즐거움중에 둘째라면
서운하다 할 산상오찬은 그래서 오랫만에 함께 한 내명과 청아형 그리고 만고강산이
함께 하게 되었다.
행랑의 필수품(?)인 작은 술병이 남 볼새라 슬그머니 식판옆에 모습을 드러내고,
연배순으로 잔이 몇번 오가니 창공은 조금전보다 더욱 푸르러 보이고 봄바람은 좀전보다
춘정을 더욱 부채질 하는 듯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렇다. 여자들은 수다로 우정을 나누고
사내들은 술한잔으로 우정을 나누려 하는 경향이 있는가 보다.
헬기장을 지나면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불러오는 불태산의 진면목이 기다리고 있다.
오르락 내리락 요철의 바위구간은 수많은 전망바위와 분재와 진배없는 노송의 그늘을
내놓으며 산꾼들을 유혹한다. 그때였다. 잠시 절경의 조망을 훑어가던 눈길이 한군데로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한다.
장성읍 시가지 너머로, 아마 행정구역이 동화면 근처가 되는 듯 한 근교의 야산에서
하늘높이 연기가 치솟는다. 한군데가 아니고 좀 떨어진 야산에서도 또 다른 커다란 연기가
치솟는 걸 보면 산불이 한군데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두군데서 동시에 발생한 모양이다.
엄동설한의 동절기에 움추렸다가 만물이 소생하는 포근한 계절이 왔으니 그동안
실내에 갇혀서 답답했던 심신을 달래기 위해 들로 산으로 쏟아져 나오니 당연히
입산객이 급증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가뭄으로 산불의 위험이 점증할 수 밖에 없으니 입산을 통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바람에 주말산꾼들은 입산을 통제하지 않는 곳을 따라 민족의 대이동(?)
처럼 이리저리 이동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좌우지간 호남고속도로의 장성,광주사이를 지나치다가 얼핏얼핏 마주친 불태산과
그 옆의 병풍산은 음과 양의 외모로 山客에게는 다가왔다. 아기자기한 요철의 능선이
아름다운 불태산은 여성의 아름다운 체위를 닮았고, 상대적으로 듬직듬직하고 기골이
장대한 병풍산은 사내 골격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엷은 운무에 살짝 몸을 숨긴 무등산이 그림자로나마 위세를 슬쩍 내 보인다.
광주비행장에서 떠오른 비행기가 써놓은 아라비아 숫자"1"자가 부서지지않고 오벨리스크
모양을 닮아가고 있다. 조금전 술잔의 숫자가 너무 잦았는지, 술잔의 내용물인 알콜이
돗수가 높았는지 발걸음들이 유유자적이다. 차가운 물한잔마시고 심기일전한 후에
주마가편을 서둘러야 할 판이다.
물통을 꺼내들고 생수를 마셔본다. 정수기 물을 그대로 뽑아왔으니 시원 할 리가 없다.
어느새 봄날의 산꾼들에게는 차거운 얼음물이 그리운 철이 되었다.
올망졸망한 암봉능선의 요철구간이 비록 잦다고 해도 이동시간이 너무 늘어진다.
물론 평이한 육산의 능선이라면 유유자적 길게 늘여 뺄 건더기도 없겠지만, 바위로
이루어진 올망졸망한 침봉능선은 오르고 내리는 굴곡이 심하므로 우려 낼 건더기가
상당하여 등산의 묘미를 한껏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오르는 암봉마다 눈을 사로 잡는 조망이 발길을 잡으니 모르쇠로 일관하기에는 산행이
너무 무미건조 할 것이고 그렇다고 오르는 곳마다 넋놓고 조망을 즐기자니 예정되어 있는
산행시간은 턱없이 부족할게 틀림없다. 어느 봉우리가 깃대봉이고 어느 것이 갓봉인지는
표시석이 없는 걸 보더라도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어느 쪽 봉우리가 더 아름다운
조망과 등반성을 내놓는지가 관심을 끌 뿐이다. 입산객들의 발길이 떨어질줄을 모르고
머무르고만 있으니 당연히 인기있는 봉우리가 틀림없다. 입산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것,
등산객들의 시선을 불러 모으는 곳, 그곳은 등산의 최고의 매력인 일망무제의 조망이다.
주위의 여타 봉우리보다 우위를 자랑하는 높이를 차지하고 있다면 당연히 주위조망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겠지만 꼭 그런 것 만도 아니다. 정상보다 수직의 높이는 작아도
그에 못지않은 풍광과 조망을 내놓는 봉우리는 부지기 수 인것이다.
불태봉! 해발710m, 높이로 따진다면 해발1,000m급도 안되는 작은 봉우리지만 주변지역이
주로 평야지대이므로 상대적인 고도감이 느껴지는 봉우리다.주위의 여타 봉우리를
압도 할 만한 조망이 높이만큼이나 두드러져 보인다.그렇다. 멧부리 정상대접을
해주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도 같다.
지형도상으로는 602,4m의 깃대봉이 불태산의 주봉으로 표시해 놓았지만 높이만 놓고
본다면 이곳 불태봉이 정상인 멧부리임이 분명해 보인다. 다만 주봉으로서의 대접에는
이견(異見)을 보일 수는 있지싶다. 왜냐하면 여러사람이 머무르기에 한계가 있는
여유로움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불태산의 멧부리 불태봉을 지나면 산길은 또다시 내리막으로 고도를 낮추어 간다.
가파른 내리막 산길을 따르다보면 삼거리 산길이 나오는데 자칫 맞은편의
직진방향으로 무심코 진행을 할 수 있겠다.
직진방향의 산길은 우측 산아래 재막마을 방향의 하산길이다. 오늘 예정되어 있는
방향은 능선좌측의 서동마을이니 삼거리에서 좌측 길로 들어서야 한다.
급박하게 고도를 낮추어가던 산길이 잠시 고도 낮추기를 멈칫하는 듯 하더니 다시 고도를
높여 나가기 시작한다. 천봉을 솟구쳐놓고 산꾼들을 시험에 들게 하려는 모양이다.
기다란 베개를 뉘어 놓은 듯, 송아지 등줄기를 닮은 평이한 봉우리, 해발600m의
천봉이다. 삼각점만 땡볕에 외롭고 지나온 불태의 등줄기가 얼핏 공룡의 등줄기처럼
요철모양을 띄고 있다. 지나온 여타 봉우리에 비해 육산의 형태를 보이는 천봉을
뒤로하면 가파른 내리막 길이 기다린다. 노릇노릇한 새싹이 돋아난 활엽수의 이파리와
조금일찍 싹을 돋운 연두색 이파리로는 아직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 수 는 없을게다.
더욱 많은 햇볕과 비바람의 도움으로 짙푸른 초록의 성숙한 성엽으로 거듭나서야
더위와 피로에 지친 산꾼들에게 청량감이 가득한 그늘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육산의 가파른 내림 길은 커다란 참나무가 가득한 안부로 꼬리를 내린다. 삼거리 안부,
지도상의 마운데미 혹은 잿막재, 맞은편의 직진방향은 병장산과 한재에 이를 수 있는
산길이고, 우리의 이동방향인 서동마을 방향은 좌측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르면 된다.
어느사이 푸릇푸릇 연둣빛 새싹을 내민 기화요초들이 길섶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춘궁기에 민초들의 구황초 노릇을 하던 차전초(車前草),흔히 질경이라 부르는 잡초,
약초로도 이용되었던 질경이는 화농을 막고 독을 제거하며 고름을 뱉아내는 효능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잡초라고 천대만 할 일도 아니다.그리고 그것의 씨앗인 차전자는
망가진 간(肝)의 기능을 회복시키는데도 탁월한 효능이 있다하니 눈여겨 볼 일이다.
연둣빛 그늘아래 봄날의 햇살이 내려쬐는 서동계곡, 이름모를 산새들의 노랫소리와
엄동설한 삼동을 지나도록 상처하나 입지않은 물소리에 귀를 씻어보고, 봄처녀 치마자락
흔드는 봄바람에 번뇌를 실어 보낸다. 졸졸졸, 한겨울 얼었다가 춘풍을 못이기고
녹아 흐르는 도화수(桃花水)가 봄가뭄속에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갑다.
산아래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노부부의 모습이 정겹고, 논둑을 트고 흘러드는 논물을
바라보는 촌노의 얼굴위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산아래 첫동네 서동마을,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개울에는 졸졸졸 도화수가 흐르고, 올망졸망 농가들의
울타리주변으로는 봄꽃들이 화사한 자태를 보여주는 곳, 뜰앞 채마밭 둑에는 온갖
기화요초들이 난분분 만화방창을 이루고 있는 우리들의 영혼의 안식처 산아래 첫동네,
언제나 그자리 그곳에 말없이 자리하고 있는 불태산과 온갖 번뇌를 씻어 줄
푸른 하늘만을 바라보고있을 서동마을, 아직도 창공은 쪽물을 풀어놓은 듯 짙푸르고
태양도 중천에서 느긋한 채로 유유자적, 게다가 바람조차도 춘정을 못이겨
아지랑이를 닮아가려 하는데, 무엇이 그들을 그리 바쁘고 여유없이 몰아치는지
문명의 이기(利機)인 무표정한 모습의 버스등짝만 떠밀어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