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 岩壁에
뿌리를 내린 落落長松 보게나
꼭 이몸의 신세 같구나
극히 寒微한 집안에 태어나서
제대로 자라지도 못할 것 같던
이몸도 어느덧 一家를 이룬 늠름한 畵家
2
서라벌은 新羅라는 국호를 확립하고,
삼국통일의 영광을 꿈꾸는
旭日昇天의 기운을 타고 있다
그 축적된 나라힘을 기울여서
일찍이 없었던,거창한 佛事,
皇龍寺 대가람이 조성중에 있음이여
그런데 어찌 사양할 수 있겠는가?
벽화를 그리라는
대임이 이몸에게 주어진 것을
무엇을 그릴까나?
하자 그 순간에 靈感처럼
떠오른 게 소나무다 늘 푸른 소나무다
3
바닷가 언덕 위의
老松을 그릴까나
서라벌 역사 함께 한 오백년 누려 온
아니 앞으로도 천년 만년 누려 갈
왕성한 생명력의 巨松을 그릴까나
뿌리가 땅 속에 깊숙히 이리저리
뻗어내린 모양이 肉眼엔 뵐 리 없지,
하지만 天眼 지닌 인간에겐 보인다네
뿌리가 실해야 줄기는 굵어지고
가지는 사방으로 힘차게 뻗으며
잎들은 늘 푸르고 낏낏하리
4
벌써 며칠이 지나간 것일까?
아니 두 달이 지나갔다고요?
먹고 잔 일 빼면
가끔 묵상하고 그림 그린 일,
그리고,그리고,그린 일밖엔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는데,
많아야 보름쯤 지난 줄 알았는데……
5
용틀임하며 하늘로 솟아오른
줄기는 굵기가 세 아름이 넘을 듯
가장 높은 우듬지는 뵈지도 않는구나
붉으스럼 줄기에는 용의 비늘들이
무늬도 선명하게 켜켜이 돋아 있어
만지면 손바닥에 비늘 물기 묻을라
地氣와 天氣를 받을대로 받아서
칠칠하기 그지없는 낏낏한 솔잎들은
사방팔방으로 솔향을 뿜고 있네
보랏빛 神韻이 감도는 솔그늘
그 안에선 호랑이도 유순해져서
山神을 편안히 모시고 싶어지리
이 운치있는 老松을 기리다가
말을 잃은 듯,碧空엔 반쯤
넋 나간 반달이 핼쑥하게 질려 있다
6
그 뒤 이몸은 계속 바빴거니,
芬皇寺의 관음보살,
이어서 지금은
진주 斷俗寺의 유마상 그리는데,
간간이 들려오는 희한한 소식……
까마귀,솔개,제비,참새 등이
皇龍寺 벽화의 노송에 홀려
무심코 후루룩 날아 들어와선
어쩔 줄 모르다가
떨어져버린다나
첫댓글 시인도 나도 벽화를 못보았을진데, 시인은 그리고 나는 못그리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