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와룡산 臥龍山 801.4m》
와룡산.은 하늘에서 이 산을 내려다보면 좌청룡과 우백룡의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놓고 다투다 지쳐서 누워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한다.와룡산은 좋은 정기가 많이 나는 산인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와룡산은 와룡사와 백천사, 백룡사 등의 유서 깊은 많은 암자와 절을 품고 있다, 등산로 곳곳에 높게 쌓여 있는 돌탑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 철쭉이 만개하는 시기가 되면 온 산이 물든다.,
와룡산의 철쭉은 '사천 8경' 이다. 철쭉은 정상인 민재봉을 중심으로 새섬바위, 민재봉 삼거리, 기차바위로 향하는 세 갈래로 뻗은 능선과 좌우 사면을 온통 물들인다. 산의 남쪽 와룡골에는 고려 현종의 등극과 관련이 있다는 와룡사와 백천사, 백룡사, 적선사 등의 사찰 터가 남아있다.
<와룡산 이야기>섣달 그믐날 밤이면 되면 와룡산이 서럽게 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산경표(山徑表)에 와룡산이 누락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와룡산에서 기도하려 했으나, 山神에게 거절 당하고, 남해 금산(보광산)에서 기도를 한 후에 조선을 건국하고,그에대한 보답으로 보광산을 錦山으로 개명하고, 자신을 거절한 와룡산은 지도에서 지워버렸다고.
와룡산이 아흔아홉골로 한 골짜기가 모자라서 백개의 골의 못되는 산이 되어서 운다는 설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 고장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민재봉을 깎아 내렸기 때문이라는 설 <사천시홈피에서>
<와룡산 이름>은 높고 낮은 봉우리가 아흔 아홉개로 형성되어 있어 구구연화봉 이라고도 불리며,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와룡산이라 이름이 불린다.
와룡산 지명의 유래로 와룡은 안종(安宗) 욱(郁)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사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여덟째 아들 욱은 문장에도 밝았지만 지리에도 정통하여 유배지 사수현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와룡산 지기(地氣)의 영험(靈驗)함에 부합하고자 아들에게 당부하였다. 욱은 일찍이 현종에게 금(金) 한 주머니를 몰래 주면서 "내가 죽거든 이 금을 지관에게 주고, 나를 고을 성황당 남쪽 귀룡동(歸龍洞)에 장사하여라. 그리고 반드시 엎어서 묻도록 하라."라고 유언하였다. 안종 욱 자신이 와룡산의 엎드린 용이 된 것이다. 그는 용두가 아니라 용꼬리에 묻혀서 용으로 승천하였던 것이다. 아들 현종이 왕위에 올라 아버지 안종 욱을 효목대왕으로 추존하였던 것이니 승천하여, 곧 죽어서 임금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백천재>백천사에서 백천골로 능선에 오르면 백천재이다. 민재봉→헬기장→새섬봉으로 이어진다. 새섬봉은 주봉인 민재봉보다 높다,<민재봉旻岾峰>민재봉은 ‘하늘재봉’라는 의미다. 와룡산의 주봉을 민재봉 또는 새섬봉으로 표시하고 있다. 민재봉 좌측은 용두봉, 우측은 상사바위와 새섬봉 이다.정상 표지석에 ‘민재봉’을 한자로 ‘旻岾峰’이라 병기하고 있다. ‘旻’자는 하늘을 뜻하는 ‘민’자이지만, ‘岾’자는 고개나 재 또는 땅 이름, 절 이름을 뜻하는 ‘점’자이다.
주봉인 민재봉은 남해를 바라보는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과 푸른바다 조망이 일품이다. 민재봉 남동릉, 가운데가 기차바위, 아래 절은 청룡사이다.
<새섬봉 鳥島峰>푸근하고 넉넉한 인상을 주는 민재봉과 달리 새섬봉은 강한 남성의 형상이다. 사내다움이 물씬 느껴진다. 꼭대기에는 새심봉 정상석이 아담하다.
용의 등비늘에 선 느낌. 남해 바다를 향해 꼬리를 쭉 뻗은 와룡이 등비늘을 세우고 막 잠을 깨려 하고 있다. 철계단 내리고 암사면을 돌고 가파른 슬랩을 올라 새섬봉이다.
<새섬바위> “먼 옛날 와룡산이 바닷물에 잠겼을 때 새 한 마리만 앉을 수 있었다 하여 새섬봉이라 한다.” 정상 표지석 옆면에 새긴 설명이다. 한자로는‘조도봉(鳥島峰)’이다.
새섬바위 1.0km 가는 길. 울퉁불퉁한 돌길을 오르다가 너덜지대 돌탑을 지나고 잠깐 고정
밧줄 잡고 가파른 슬랩을 오른다.
뒤돌아보면 상사바위, 천왕봉이 오롯하다. 등로 옆의 왕관바위를 지나 새섬바위 암릉에 다가간다. 직등은 아무래도 어렵겠다.
왼쪽 사면의 대슬랩을 비스듬히 오르도록 잔도를 대역사로 설치해 놓았다. 잔도에서 삼천포 시내와 그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새섬봉에서 도암재→약불암→갑룡사→저수지주차장이 하산코스이다.
<천왕봉 상사봉, 625m>천왕봉 정상 인근에 있는 거북등 같아 보이는 바위가 있다.산행중에 용의 비닐인지 거북의 등껍질인지 모를 바위들이 간혹 보인다.
상사바위는 상사병에 걸린 사람을 이곳에서 떠밀어 죽였다 하여 상사바위라 부른다. 높이 60m쯤 되는 바위다. 중앙부에 1.8m의 굴이 있다. 굴바위라고도 부른다.
<도암재>새섬봉에서 도암재는 1km의 거리다. 새섬봉에서 도암재로 오는 길에 돌탑군 있다.
도암재→약불암→갑룡사→남양저수지로 하산 하는 길이다.
<사천 와룡산 백천사 白泉寺>
1300년 전 신라 문무대왕 시절 의선대사(의상대사의 속세 형제)가 백천사를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몸속법당 부처님을 모시게 된 백천사가 있는 와룡산에는 옛날의 절터가 많기로 유명하다.
구전(口傳)되는 전설로 와룡산에는 팔만구암자(八萬九菴子)가 있었다고 전한다. 진양지(晋陽誌) 등에 나오는 백천사(白泉寺)의 기록에는 '백천사는 와룡산의 서편에 있었다.
도솔암에서 흘러내리는 동쪽계곡은 양구택, 조황담, 백련폭이 그 중 아름다운 곳이요. 선정암에서 흘러 내리는 절의 서쪽 계곡은 세심정, 무금대 등의 좋은 경치가 있다.
동서계곡의 상하에 물레방아 16개소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뒤에는 12개만 남았다. 묵계암도 백천사 북쪽 10리에 있었다.'하는 것으로 보아 대충 백천사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가 있을 뿐 아니라 백천계곡의 경관마저 짐작이 된다. 이 절터 부근에는 축을 쌓은
돌담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석기(石器)등 기왓장이 부서진 채 널려있는 것을 새롭게 재건축하여 구국도량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백천사 와불>백천사 와불은 길이 13m, 높이 3m로 중국에서 들여온 2300 년 된 소나무를 부처님 형상으로 조각, 도금했으며 나무몸통을 깍아내 몸속 법당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셔놨다. 그래서 목와불(木臥佛) 와불몸속법당이라고 한다. 와불 몸에 8명 정도가 들어갈 법당이다.
♣ 버스 승차장소 및 시간 ♣
1호차 | 성환 읍사무소 앞 | 06시 10분 | 두정 중학교 버스 정류장 | 06시 38분 |
삼풍 아파트 건너편 | 06시 12분 | 극동아파트 정류장 | 06시 41분 |
시음세 육교 | 06시 16분 | 주공6단지 버스 정류장 | 06시 43분 |
직산 벽산아파트 | 06시 22분 | 전자랜드21 앞 | 06시 45분 |
직산 삼은리 육교 | 06시 29분 | 광혜당약국옆 오일뱅크주유소 | 06시 47분 |
농수산 시장 앞 | 06시 31분 | 천고 사거리 | 06시 49분 |
천안 공대 앞 | 06시 32분 | 서부역 입구 | 06시 50분 |
부대동 버스 정류장 | 06시 34분 | 봉정사거리 | 06시 54분 |
두정 육교(구 상고) 입구 | 06시 36분 | 터미널 농협 앞 | 07시 00분 |
2호차 | 송악 사거리 | 06시 00분 | 주공4단지 정문 앞 | 06시 35분 |
배방 농협 | 06시 08분 | 우미린A옆 양돈농협앞 | 06시 37분 |
매곡리 다리 | 06시 13분 | 세광 에치빌비 아파트 앞 | 06시 40분 |
신라 A 정류장 | 06시 15분 | 청수동 극동A 정문 앞 | 06시 48분 |
나사렛 대학교입구 BYC | 06시 25분 | 초록 마트 앞 | 06시 51분 |
나사렛 대학 | 06시 26분 | 구 한방병원 앞 | 06시 52분 |
주공7단지 건너편 버스 정류장 | 06시 28분 | B Y C 앞 | 06시 53분 |
충무 병원 앞 | 06시 30분 | 엘지 마트 건너편 | 06시 54분 |
일봉 예식장 앞 | 06시 32분 | 엘지 주유소 앞 | 06시 56분 |
청수동 현대A 정문 앞 | 06시 34분 | 터미널 농협 앞 | 07시 00분 |
※참고사항 | 1.점심 도시락, 음료제공 ( 수저, 반찬은 본인 지참 ) 2.안전은 각자의 책임이며, 불의의 사고에 대한 어떠한 법률적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3.회비 30,000원 ( 잡비 및 입장료 개인부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