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조용헌 (동양학자)
언젠가 요가 수행자인 화경 선생과 제주의 어느 요가학원 집에 갖춰진 아늑한 다실에서
숙성된 보이차 7542를 마시다가 나눴던 이야기이다.
"인도의 토착 요기들은 죽음을 어떻게 봅니까?"
"카일라스(수미산)의 위 허공에 거대한 우주의 자궁이 있다고 믿어요.
카일라스 산을 하나의 거대한 남근으로 보는 겁니다.
우리의 생명이 여기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죠.
지금도 힌두교에서는 남근과 여근이 합해진 심볼이나 멧돌을 만들어 놓고
남근 위에 우유나 성수를 바가지로 붓는 의식이 있습니다.
생명의 창조와 탄생을 경외롭게 리마인드 시키는 것이죠.
이 세상에 남근이 있으면 여근도 있기 마련이죠.
카일라스 산 바로 위의 허공에 여근이 있다고 믿죠.
이때의 여근이란 거대한 우주의 자궁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죽으면 이 우주의 자궁, 즉 카일라스 위의 허공으로 들어간다고 봅니다.
우주의 자궁으로 들어가면 생전에 이승에서 그 사람이 쌓았던 카르마, 업장이 있습니다.
이 업장을 풀어내는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인간의 카르마에는 7단계가 있습니다.
7개 차원마다 업장이 쌓여 있습니다.
인체의 차크라가 7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개의 차크라에 쌓인 업장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일곱 바퀴를 돌아야 한다고 봅니다.
인간이 살면서 쌓은 업장은 마치 시계 태엽처럼 감겨 있습니다.
바짝 쪼여 있는 것이죠.
이 감겨 있는 태엽을 반대 위치로 돌려서 풀어내는 작업이
이 우주의 자궁에 들어가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풀어내려면 각 차크라마다 7바퀴를 돌려야 합니다."
나는 화경의 이러한 우주적 스케일의 생사관을 듣고 감동이 왔다.
죽음을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구나!
이는 대략 7천 년의 역사를 가진 인도의 생사관이라고 한다.
7천년 전부터 인도의 요기들은
현생의 죽음을 카일라스 위의 우주적 자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믿었다.
그 자궁에 들어가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 업장을 풀어내는 일이다.
원한, 미움, 필생의 목표, 애욕, 이런 것들이 칭칭 감겨 있다. 이걸 풀어내야 한다.
어떻게 푼단 말이냐?
카르마를 푸는데 7바퀴를 돌려야 한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한국 불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지내는 천도재도 49일이 걸린다.
7주를 지내는 것이다.
불교의 49일 천도재도 카일라스의 요기들이 생각했던 주기와 일치한다.
7이라는 숫자는 요가에서는 인체의
7개 차크라에서 왔지만
한국 토종 도사들이 생각했던 근거는 북두칠성이었다.
모든 생명은 북두칠성에서 왔으므로
죽어서 돌아갈때도 칠성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군대에서도 병사들이 사고로 죽으면 시체를 칠성판에 얹어 놓는다.
이때의 칠성판은 죽음의 판이다.
생명이 왔던 곳, 북두칠성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7개 차크라와 칠성의 숫자가 공교롭게도 모두 7개라는 점이다.
카일라스 위의 우주 자궁에서 태엽을 다 풀면 다시 인간계로 태어난다.
여성의 자궁으로 탁태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우주의 자궁으로 갔다가,
우주의 자궁에서 고장난 부분을 수리해서
다시 인간계로 돌려보낼 때는 인간의 자궁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그러니까 생과 사는 우주적 자궁과 인간의 자궁을 왕복 셔틀로 왔다 갔다하는 셈이다.
죽음과 생사를 이런 각도에서 생각하고 믿는다면
죽음을 너무 충격으로 받아들일 일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생사관을 믿기가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