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 出 行 記
나는 영감이 되었다. 아침운동이 습관이 되다보니 새벽 붐이 트기전에 집을 나선다. 아내로부터 아침잠 방해한다고 매번 혼나지만, 예민한 아내 몰래 문열 방법이 없다. 늙으면 아침잠이 없어 그런다고 언젠가 아내로부터 영감이란 칭호를 얻었다. 옛날 고관대작을 높여 부르던 그 명예스런 영감이 아니라,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영감탱이다.
오늘 가출했다. 아침운동 후에 오는 나른함으로 졸음을 참다 10시쯤 먹는 아침밥은 영락없는 수면제다. 식후 다시 한숨 때리고 나면 남들과는 달리 먹은 밥이 소화가 안되고 오히려 뱃속의 쌀알이 되살아난다. 그러니 오후 3시 가까이 되어 먹으라는 점심이 맛날 리가 없다. 밥을 깨작거리다 마누라에게 혼나고 홧김에 집나온 게 가출 사유다.
쫓겨난 건지 가출인지 내겐 연중행사라 동네 한두 바퀴 돌면 되지만, 오늘은 그 코스를 이탈하기로 맘먹었다. 버스를 탔다. 남산바람이나 쐬고 올까 생각했는데 버스가 엉뚱한 코스로 빠졌다. 얼마전 노선이 바뀌었단다. 계획을 바꿨다. 버스에 타고 있는 동안 전화 오는 사람 있으면 붙들고 늘어져 오늘 남은 오후를 때워야겠다. 그런데 전화하는 친구도 없다.
요즘 내가 안팎으로 인심을 잃었나보다.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버스는 서울 역 쪽을 돌아 회현로에 들어섰다. 갑자기 버스가 거북이다. 회현고가를 철거한다고 도로의 반을 막아 놓았다. 에라, 목적지 없는 놈이 목 뺄 것 없이 이쯤에서 내리자. 내리고 보니 건너편이 명동이다.
그래, 오랜만에 명동이나 한번 둘러보자. 지하도를 건너 명동으로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사람 난리가 났다. 인산인해로 수시로 길이 막혀 눈치보고 간다.
명동바닥 곳곳이 호객 상들의 박수소리, 고함소리, 근래 부쩍 늘어난 거리악사들의 한껏 공들인 연주음도 가출한 내겐 호객소리 버금가는 소음일 뿐이다. 사람에 부대끼며 간신이 명동을 반 바퀴쯤 돌자 맥이 빠진다. 늙탱인지 영감탱인지 맞나보다. 나무그늘이나 찾아 조금 쉬었다 가고 싶은데 이미 나무 밑 벤치는 주인이 찼다. 늦점심을 깨작여서인지 배도 고프다.
오늘따라 더위는 올여름 최고란다. 고픈 배라도 채울 생각을 해 본다. 아내가 싫어해 수년째 먹어보지 못한 자장면이 갑자기 먹어보고 싶다. 개똥도 약하려면 찾기 힘들 듯 중국집이 눈에 띄질 않는다.
근처를 샅샅이 뒤져 녹초가 된 몸으로 간신히 자장면 한 그릇을 받아 앞에 놓고,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연인 아니면 가족들이라, 아! 이게 집나온 설움인가보다. 시장이 반찬이라 맛은 좋다.
자장면 집을 나서니 또 객이다. 갈 곳 없는 발걸음으로 다시 명동거리를 가로 지른다. 소음통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속빈 놈은 없나보다. 속에든 자장면 삭힐 틈도 없이 ‘어디 시원한 그늘에서 맥주나 한잔’하는 생각에 남대문로 쪽으로 맥 빠진 발걸음을 다시 떼어놔 본다. 어느새 해거름이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내 변덕이 “맥주보단 어느 포장마차에서 소주한잔”으로 바뀌었다. 저만치 서울역이 보인다. 염천교쪽으로 즐비했던 포장마차가 생각난다. 그래 역전포장마차가 좋겠다.
지하도로 내려서니 왠지 썰렁하다. 이상하게도 행인이 없다. 지하도 좌우로 노숙자들이 종이박스 등을 이용하여 칸을 치고 자신들의 영역인지를 만들어 놓았다.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죽은 듯 꼬꾸라져 자고 있다.
살아있는 증거는 머리맡에 소주병 하나씩 비어 뒹굴고 있는 것밖엔... 흐릿한 불빛에 나 혼자만이 살아 있는 듯 괴기마저 흐른다.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자들의 모습이리라. 그래 모두 얼마나 괴로우면 이곳에 남은 인생을 팽개쳐 버렸을까?
아~ 난 설움을 겪는 게 아니었구나.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놈이 무슨 설움이던가? 얼마 전 과학지 사이언스에 “타인의 불행은 나의 행복”을 일본과학자가 입증했단 기사가 실렸단다.
아 근처에 불행한자가 늘려선지 갑자기 빠졌던 맥이 살아난다. 얼른 역 광장으로 올라섰다. 광장귀퉁이 포장마차가 보인다. 그래 저기서 생각이나 추스르고 가자. 근데 가까이서 보니 음식이 조금 맘에 걸린다. 아침부터 미지근한 불 위에 종일 올려져 있었을 듯한 오뎅국물이 상하지나 않았을까?
다시 생각이 미친다. 아! 나는 저 오뎅국물이 싫을 정도로 호강스레 살고 있구나.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그중 누군가 싸움이 붙었다. 그 뒤로 줄선 사람들이 보이고 무심코 그 뒤를 따라 눈길을 돌렸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게 줄이 끝없다. 저기 줄선 수많은 사람들은 무엇인가? 의문도 잠시 줄 앞쪽에서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아! 노숙자 무료급식소인가 보다. 새치기 한다고 싸움이 붙은 거였다.
부끄러운 생각이 인다. 이들은 밥을 얻기 위해 싸우고, 나는 그 반대의 개념으로 짜증스런 마음을 가졌던 것인가? 프로이드는 감정은 마음의 표면에 있고, 사랑할수록 가까이 있으므로, 그래서 표면에 있는 감정이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 마음속 깊이 들어가 보면 평온한 마음을 만나게 된다고 했던가? 아! 그러고 보니 사랑의 감정을 나는 잘못 표현하며 사는가 보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정류장 쪽으로 옮긴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주변 광장 벤치와 잔디밭은 물론 길바닥에도 노숙자들이 주인이다. 어느 술 취한 노숙자, 광장바닥에서 옷 입은 채로 누워 실례를 했나보다. 바닥을 흘러내리는 물이 술은 아닐 것이고, 술 깨고 나면 어이 할 것인가?
주변광경이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를 연상케 한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이런 곳이 있었던가? 어느새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거나, 살면서 불행을 맞아 사지 중 일부를 잃어버리고도 열심히 살아가는 주변사람을 기억하고는 불쑥 이들에 대한 미운 감정이 인다.
사지가 온전하면서 왜 저리 인생을 내팽개치고 사는가! 돌아서면서 또 한 생각을 해본다. 마음이, 심한 상처를 입어 불구의 수준에 이르렀다면 어찌할 것인가? 저렇게 살다 생의 막다름에 이를 것인가?
만감의 교차로에서 인생의 교훈을 위한 가출행사를 늘일 것인지 고심 중 전화 진동에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듯 정신이 든다. “아빠, 어디세요?” 아들 목소리가 내 마음 고향이다.
“왜 물어? 나올래? 어디로요?”동네로 옮겨 앉아 아들과 둘이 한잔 기울이는 맥주 맛이 꿀맛이다. “아빠, 좀 유치한단 생각 안 드세요? 뭐가? 가출행위요. 이놈이 아부지한테... ”아들한테 한방 먹고 맥주 집 천장에 커다란 웃음으로 오늘 오후의 민망함을 날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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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상풍경 눈에 보이는 글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