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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 Li 원문
지난 이야기: 저항의 횃불
찬드라 날라르는 바랄에 의해 플레인즈워커의 등불이 점화했을 때, 처음으로 고향 칼라데시 차원을 떠나 레가사 차원의 불의 수도원으로 이동했다. 지금 그녀는 처음 보는 발명가를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것이 먼 과거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뜻밖의 재회로 이어졌다. 바로――어머니, 피아 날라르와.
“피아, 오늘 네 딸을 죽였다.” 낮은 톤의 목소리가 무거운 눈꺼풀과 깨질 것 같은 두통 위를 떠다녔다.
그녀는 눈꺼풀을 떼려 했지만 거기 존재하는 것은 암흑뿐이었다. 가는 목소리가 메마른 목구멍을 찌르며 나왔다.
“무슨――”
“조그만 했지.” 그 말이 기묘할 정도로 느긋하면서 숨소리는 화로의 풀무처럼 무거웠다. “내 검보다 조금 더 키가 큰 정도였던가.” 하지만 그 웃음 소리에 장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두 사람 사이의 문을 통해 피아가 낮은 울림소리를 느꼈다.
어둠이 서서히 희미해지더니 오물 같은 빛이 내리쬐었다. 긴장한 손을 뻗자, 금줄로 치장된 차가운 벽이 닿았다. 일어나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물론, 난 너도 잊고 있지 않았지. 그……흥분되는 사이에 한 순간도. 널 여기로 끌고 온 것도 바로 나다.”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 금속 파편이 전방 어딘가에서 소리를 냈다.
“손을 뻗어봐라. 네가 잃은 것의 잔해다.”
그녀가 주저하며 그 물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평평한 파편. 한 쪽은 완전히 녹아서 반대편까지 일그러져 있었다. 차갑고 가벼운 감촉. 그리고 상처가 없는 쪽에는 깊으면서 정확한 새김질. 그 안정성과 내열성을 미루어볼 때 혁명파의 비행선 엔진에 빼놓을 수 없는 티탄 합금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파편 한 쪽은 쇠 부스러기나 다름없었다.
“그게 뭔지 알겠나?” 열기를 띤 목소리가 물었다.
시점이 돌아오자 그녀는 몇 가지 심볼을 확인하며 어루만졌다. 하늘을 향하는 첨탑 밑에 짓밟혀진 소용돌이의 움직임. 피아는 그 심볼을 알고 있었다――기라푸르를 떠날 때 키란과 함께 이것을 만든 것이 마치 엊그제 일 같았다. 돌아가고 싶었던 기라푸르에 남기고 온 혁명파의 심볼. 에테르가 새는 첨탑. 이 파편은 대체? 새김질된 선의 표면을 따라가다 손가락이 갑작스레 멈추었다.
그 인장 밑에는 흐트러졌으면서도 신중한 장인의 손놀림으로 ‘K.N.’ 이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애용하는 도구로 쓰여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했다――키란 날라르의 마지막 작품의 파편.
찬드라의 증기 지게.
갈비뼈 사이의 근육이 긴장하자 갑자기 혈류가 열을 동반하며 가슴을 메웠다. 손에서 힘이 빠져 인장을 떨어뜨렸다.
“호오, 알아챘나.” 목소리가 독방 문을 뚫었다. “그렇겠지.”
“그 사건에 대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많지 않다만.”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아이의 시선은 기억하고 있지. 공포에 질려 반항적으로 군중 속을 헤치면서도 날 바로 보지는 못하더군.”
감각이 거의 돌아왔다. 창살의 문, 텅 빈 독방 천장을 달리는 에테르관의 뿌연 빛. 기라푸르에서 떨어진 마을에서 영사관의 기습을 당해 잡힌 게 틀림없었다. 눈 뜨자마자 직시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돌아가야 해, 이건 꿈이야. 하지만 저 목소리는――익숙히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눈치를 챘지.” 그 목소리가 참을 수 없는 열광과 함께 발산되었다. “그 애는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게 뭐라고 생각하나?”
그래. 이 목소리다. 우리 가족을 궁지로 몬 남자의 목소리. 바랄 대장.
“피아, 그 애는 널 찾고 있었던 거다.”
폐 안의 공기가 격노의 요동침과 함께 빠져 나왔다. 하지만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녀가 창살을 타고 올라가 바랄을 잡으려 했지만 그는 손쉽게 그걸 피했다. 어깨와 주먹이 독방 문에 닿았다. 바랄이 그녀를 돌아보았지만 가면 속 얼굴에 감정은 없었다.
“그 죄값을 받아야 하는 게 정말 나라고 생각하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어야 하는 건 네가 아니었던가? 마지막으로 위로의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었나?”
맞아. 내가 왜 거기 없었던 거지? 마음 속에서 누군가가 질문했다.
바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이미 몇 번이고 찾아 왔던 것이겠지.
발소리가 사라지자 갑자기 깊고 깊은 고독이 몰려왔다. 키란과 찬드라. 그렇게나 강하게 묶여 있던 유대감은 물론, 인생의 모든 것이 시간과 공간에서 영원히 떨어져나갔다. 한 때는 그렇게나 생명으로 넘쳐났던 세계가 지금은 이 독방이 전부였다.
다음 날, 바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순식간에 일주일이 지나갔다.
“피아, 그 애는 널 찾고 있었던 거다.”
그녀는 그 말이 이해는 되도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도록 생각하려 하고 있었다. 그에게 말을 걸기 위해 처음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슬픔에 잠긴 미망인을 찾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어? 나한테서 뺏을 건 더 이상 없잖아. 네 승리야――날 좀 그냥 내버려두지 그래?”
“날라르, 우리의 도시는 언제까지고 발전한다. 번영을 위해 우리 모두가 한 몸을 바치지 않으면 안돼.” 바랄이 말했다.
“우리 모두가.” 그 목소리가 예리한 칼날처럼 계속되었다. “하지만 건방지게도 도시보다 자신들의 흥미를 우선하는 제멋대로인 놈들이 약간이지만 존재한다. 너 같은 존재에게 정의를 집행하는 건……즐거운 일이지. 그 실체 없는 반항심을 마지막 한 조각까지 후회로 점칠 시켜 주는 것도.”
피아가 얼굴을 들어 차가우면서 애처롭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당신은 내가 잘못되었다고 증명했어. 하지만 내게도 남아 있는 것이 있지. 네가 절대 빼앗을 수 없는 것이.”
그가 웃음 소리를 드높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그때까지는 없었던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그가 독방 문이 즐비한 복도를 내려갔다.
그가 이곳을 다시 찾을 때까지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피아, 그 애는 널 찾고 있었던 거다.” 바랄이 말했다. 몇 번이고 되 뇌이듯이.
피아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천천히 대답했다. “난 언젠간 돌아갈 거야. 그 아이와 밖에 있는 모두를 위해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릴 거라고.”
현재 그녀의 손은 날쌔고 정확했다. 작은 금속 에테르 램프가 바랄의 얼굴을 향해 독방에서 창살 사이로 정확한 궤도로 던져졌다.
램프가 얼굴에 부딪치자 그 반동으로 가면이 떨어졌다. 그가 신음소리를 내며 한쪽 눈살을 치켜세웠다. 선명한 푸른 빛이 각성한 듯 발산되어 그의 주변을 감싸더니 던드 지하에 충만했다. 그것이 형태를 몇 초간 만들고는 사라지며 일대에 춤추는 빛의 점을 피아의 시야에 남겼다. 에테르의 어떠한 형상 치고는 너무도 눈부셨다. 아냐――이건 완전히 다른 무언가다.
“설마 네가……마법사?” 피아가 경악했다. 그녀는 딸 외에 다른 마법사를 본 적이 없었다. 마법과 그것을 사용하는 자는 극히 드물 뿐만 아니라 에테르보다도 더한 통제 안에서 감시 당한다.
길고 낮은 숨소리가 문 저편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가 가면 밑에 감추어져 있던 때 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피아가 독방의 창살로 급히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가면이 떨어져 나간 바랄이 얼굴을 재빨리 들자 시선이 교차했다. 그 얼굴에는 굵은 상처로 보이는 덩어리가 물결쳤고, 일부는 지금도 치유되지 않아 새빨간 채였다. 한때, 그를 ‘미남’ 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지만 그 얼굴은 무참히 사라져 있었다.
“대체……무슨 일이?”
《음흉한 의지》 아트 : Anthony Palumbo
바랄이 가면의 물림쇠를 끼우던 손을 멈추었다. “운명이란 것은 참으로 불평등하지 않나, 날라르.” 그녀가 그의 일그러진 얼굴의 근육과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모습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에 정해진다. 운 좋은 자는 영웅으로써 태어나겠지만 대부분이 추하고 위험한 괴물로 태어나지. 그것들은 그림자 속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괴물의 모습, 그 자체로 행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가 가면을 쓰고 주의 깊게 후드를 내렸다. “나는 나 자신의 천성을 받아들였다――난 숨지 않는다. 그리고 남에게도 숨기지 않지.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을 근절시키고 폭로하며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 내 숙명이다.”
조금씩 싹트던 그녀의 동정심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린아이를 사냥하면서 너 자신이라는 악마와 싸운다는 숙명?”
“어린아이?” 그가 냉혹한 웃음소리를 냈다. “당연하지 않나. 철 없거나 잘못된 목적을 위해 힘이 악용되는 것보다 훨씬 낫지. 그걸 제외해도 범죄 발생률은 오랫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다. 네 자신이 증명하고 있듯이.”
그의 목소리가 조용해지더니 창살로 다가와 비난을 속삭였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지? 네 딸 때문이다 날라르. 네 딸이 한 짓이란 말이다. 이것이――” 그가 가면을 쓴 얼굴을 창살에 붙이고는 손가락으로 그 옆을 어루만졌다. “네 딸이 한 짓이다.”
피아가 창살로 있는 힘껏 다가갔다. “어머니로선 이 이상의 명예가 없겠는걸.”
바랄이 창살을 세차게 때렸다. 그 위세에 그녀가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차가운 결의가 그녀의 분노를 달랬다. 그녀는 던드 독방의 두터운 어둠 속에서 홀로 눈을 감고 심장의 고동이 진정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피아 날라르》 아트 : Tyler Jacobson
몇 년 후, 피아 날라르는 던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눈을 떴다. 그러곤 마모된 장갑 등으로 고글의 더러운 부분을 닦았다.
그 후 피아는 칼라데시 전역에서 발명가와 수선가, 예술가들을 불러모았다. 그 규모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해갔다――도시 생활에 필요한 에테르 통제를 점점 더 강화하는 영사관의 행패를 폭로하고 저항하는 사람들. 영사관이 ‘혁명파’ 라고 부르는 그들은 함께 만들어온 고향을 지키고 발전시키고 싶다는 강한 열정에서부터 태어났다.
오늘, 혁명파에서도 특별히 뽑힌 자들이 화려한 소용돌이로 장식된 높은 한 지붕 위에 모여 있었다. 살아서 바쁘게 움직이는 눈 밑의 도시가 건축물에서 빛나는 황동이 만든 번뜩임으로 가득했다. 광고용 깃발을 든 직원들이 발명박람회를 시끄러울 정도로 높은 목소리로 선전하고 있었고, 현기증이 날 정도의 가지각색의 이벤트가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혁명파도 이제 곧, 허락 받지 않은 이벤트를 회장에 선보일 예정이었다.
거대한 파열음, 그리고 탁한 연기 냄새가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피아가 등 뒤를 바라본 순간, 젊은 견습생 발명가 탑리가 비명을 지르며 송수관 위에서 자빠질 뻔 했다.
피아가 탑리의 팔을 잡아 그녀가 쓰러지는 걸 막고는 시선을 내렸다――그 견습생의 완성 직전의 비행기계가 오렌지 색 화염에 휩싸여 놋쇠가 휘어 있었다.
피아가 재빨리 그 불을 장갑으로 덮고 송수관 끝자락으로 던져 불을 껐다. “불이 좀 붙었을 뿐이야. 도와주는 편이 좋겠어?” 그녀가 한쪽 눈살을 올리며 탑리에게 물었다.
탑리가 급하게 설계도를 펼치고는 눈 앞에 측정기구 한 벌을 늘어놓았다. “전부 맞게 들어가 있죠? 오기 전에 빠짐 없이 확인했어요. 정말이에요! 시간이 없는 건 알지만……그래도 해보겠습니다!” 그녀가 아랫입술을 씹으며 초조한 얼굴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좋지 않아. 그 말대로――벌써 시간이 됐는데! 피아가 마음 속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곧 그 생각을 뿌리치고 탑리를 안심시키듯 한쪽 팔로 감쌌다. “괜찮아――다들 네가 참가해주길 바랬으니까. 백 번도 더 해왔잖아, 그렇지?”
“……아, 정말로 백 번은 아니잖아요? 그게, 하는 방법을 안다는 뜻이라……”
피아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할 수 있어요! 아마도.” 탑리가 어색하다는 듯 다리를 움직였다. “제가……여길 오려고 경력을 너무 부풀려서 말한 것 같아요.”
《발명가 견습생》 아트 : Ryan Pancoast
피아가 마음 속으로 이마에 손을 댔다.
“……혁명파 지도자가 지휘한다고 들어서요! 꼭 한번 보고 싶었거든요!”
주위의 동지들이 성급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피아가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신호를 보냈다――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줘.
피아가 탑리의 턱을 들고는 기억 속의 아버지의 가장 엄격했던 시선을 떠올렸다. “우리가 알고 있어야만 하는 한가지를 알려줄게.” 그녀가 탑리에게 손을 대고 말을 이었다. “경험과 직관으로 기계의 여러 가지 구조를 알 수 있잖아? 압력, 열, 그리고 움직임을. 그 전부를 한번에 느끼는 거야. 한번 해봐. 내가 도와줄게.”
탑리가 신경질적으로 몇 가지 에테르를 기계에 적용시켰다――허리의 프로펠러가 회전을 시작했지만 뒤쪽의 회전 날개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귀를 기울여봐. 들려?” 피아가 말했다.
그 회전 날개 소리는 귀에 익숙한 윙윙거리는 소리와 규칙적인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였다. 탑리가 귀를 본체 가까이에 댔다. 정상적인 소리 밑에 이질적인 저음이 숨어 있었다. “뭔가가 떨어져 나갔어요. 맞물려지질 않았나 봐요.”
탑리가 손을 후부 배기구에 대자 맞물림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천천히 때려대는 진동이 느껴졌다. 떨어진 에테르관이 기어박스 안을 막아 고장이 나면서, 휘발성 에테르가 스며 나와 회전 날개가 타버린 것이었다.
“자, 우선은 금속을 고쳐.” 그녀가 탑리를 격려했다. “움직임에 조심해. 젊은 에테르에서 금줄을 만들 때는 복잡하면서 약간 변덕스러운 반응을 보이니까.” 피아가 에테르 장갑을 끼고 배기구를 열고는 탑리의 손을 그 안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걸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아도 너라면 그 움직임을 알 수 있을 거야.” 피아가 말을 이었다. “움직임에 귀를 기울여. 그게 다가오면 너도 다가가. 모든 일에는 항상 네가 바라는 대로, 필요로 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 그래도 계속 노력하고 최선을 다 해야 해. 그렇게 하면 최상의 결과로 이어질 테니까.”
탑리가 열의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물론――그걸 공방에서 가르쳐줬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그것은 세월이 알려준, 배우기 어려운 교훈이었다. 피아가 속으로 웃었다.
선명하게 빛나는 에테르를 감싸듯, 먹색의 산화한 금속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비꼬아졌다. 그러곤 빛나는 파란색 촉수처럼 가지를 뻗더니, 생물처럼 맥동하며 냉각되면서 새로운 표면으로 변했다.
탑리가 황동 파편이 자연스레 둥그레지는 것을 보고 에테르 성냥을 가볍게 대 그것을 올바른 장소로 인도했다. 회전날개가 윙윙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다. 그것은 새로 얻은 날개로 몸통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젊은 발명가가 긴 한숨을 쉬었다.
다음은 피아의 차례였다.
고글을 내리고 밸브를 열자 에테르의 차가운 냉기가 숙련기술용 장갑 끝으로 들어왔다. 지붕 저편에서 놋쇠 통 하나가 날아와 그녀의 장갑으로 소리를 내며 착지했다. 폐기 엔진에서 주워온 회전 통이지만 이걸로 어떻게든 되겠지.
에테르가 장갑의 손가락 끝으로 뿌려지는 사이, 그녀의 교묘한 손이 압력과 함께 표면을 달렸다. 황동 외부가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를 만들며 에테르를 감쌌다. 소용돌이치는 에테르 안에서의 금속의 움직임이 빨라 예측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술은 거친 에테르의 움직임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녀는 재빨리 중심에 구멍을 내고 회전 날개를 움직이는 에테르 유리와 투명한 금줄 날개와 지느러미, 그리고 물건을 잡는 부속 다리를 만들어냈다. 완성시키자 그것은 마치 성충이 되려 하는 곤충의 날개마냥 팽창되더니 내부에서부터 굳어졌다. 어느새 새로운 비행기계의 날개소리가 대기에 소란스레 반향을 일으켰다.
아트 : Svetlin Velinov
탑의 시계가 시간을 알리자, 주위의 첨탑 지붕이 소리 없이 회전하며 늦은 오후의 보행자 통행에 최적인 노폭으로 변형했다.
예정된 시간 대로다.
단단한 손이 피아의 팔을 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화려하게 손질된 황동과 금으로 된 제복을 두른 우람한 노인이 있었다. 영사관 사관,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사람.
“벤카트!” 그녀가 탄성을 지르며 한 손을 그의 오른쪽 어깨에 올렸다. “당신――그걸 입고 있으면 숨어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확실히. 이걸 입고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하지.” 벤카트가 팔이 저리는 걸 풀면서 짓궂은 웃음을 감추지 않고 대답했다. 한때 그는 영사관의 수비대를 지휘하는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지키기 위한 시민들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면서 그의 복종은 한계에 달했다. 일년쯤 전, 그는 돌연히 피아의 공방 현관 앞에 나타났다. 오랫동안 영사관에서 일하면서도 계속 비밀리에 부쳤던 장소였다.
“뭐, 난 자네를 신뢰하는 현명한 사람 중 하나일 뿐이야.” 벤카트가 그리 말하고는 지붕 위의 사람들에게 얼굴을 돌렸다.
“저도 똑같이 신뢰하고 있어요. 당신 같은 무뢰한을.” 피아가 웃음과 함께 말했다. 익숙한 동료들의 얼굴을 보자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그녀 자신과 마찬가지로, 여기 있는 전원이 존경 받는 장인이자 선견자이며, 창조자였다. 전 세계의 공방에 틀어박혀 이야기와 뜨거운 차 한잔의 냄새로 가득 찬 공기 속에서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 그들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영사관의 공급 규제로 인해, 공방과 부엌, 지역 의료시설을 유지시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에테르를 공유하고 저장해왔다.
동지들이 그녀에게 양 손을 들어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시간이 되었다.
“친구들, 그리고 이웃 여러분.” 피아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우리가 보고 온 것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당한 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앞에 있던 그들이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모두가 에테르 부족으로 인한 괴로움과 피아의 가족들이 ‘당한 것’ 의 분노를 공유하고 있었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축하해야 할 날입니다.” 그녀가 그리 말하고 눈 앞의 도시를 가리켰다. “발명 박람회는 그 출발 이래, 도시의 발명 정신을 비춰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듯, 올 해의 행사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올 해의 박람회는 영사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과다의 에테르 분배, 경비, 그리고 무기로 가득합니다!” 무리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린 그 정부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그들에게!” 그리고 동의하는 무리 중 한 여성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드야와 카리, 당신들은 에테르를 모아왔음에도 하늘에서 추방당했습니다!” 두 명의 비행사가 서로 마주보더니 동시에 주먹을 치켜 올렸다.
“그리고 망치주먹무리는 어떠합니까? 영사관에게 에테르를 뺏기고, 지금은 노숙자나 다름없습니다!” 중장을 한 무법자 세 명이 손에 든 망치를 피아를 향해 들어올렸다.
“비프리크티, 신속땜질지구의 전 구역의 에테르가 차단되어 당신 가족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발이 긴 노인이 힘겹게 고글을 썼다.
“우리의 지도자는 시민에게 아무런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혁명파의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대답을 돌려줍시다. 여러분의 공헌에 의해 이 일을 실현시킬 수 있었습니다. 기라푸르는 표현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떳떳하게, 두려움 없이. 우리 마음 속의 불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들에게 굴복하지 맙시다!”
피아가 손을 흔들어 고글을 쓴 네 명의 동지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들은 금줄 송수관 위에서 몸을 낮게 하고 아래 있는 광장을 향해 비행기계를 날렸다.
그 기계들이 하늘에서 강하하자, 백 대 가까운 비행기가 한번에 광장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스스로 정렬 하더니 광장에 있는 천막 위에서 하나의 거대하게 빛나는 금속 기둥이 되었다. 마치 도시의 고층건물과 그 높이를 겨루고 있는 것 같았다.
기계 날개의 음악적 날개소리가 대기를 가득 메우자, 아래쪽 천막에 있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올려다보았다. 영사관의 자동기계와 병사들이 도로로 뛰쳐나오는 사이, 박람회 참가자들이 미소를 머금으며 그 웅장한 광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비행기계의 금속이 열을 받자, 색이 노랑에서 녹색으로, 그리고 보라색에서 파랑으로 변화했다. 색과 모양의 조화적인 변화가 마치 기계들의 오로라처럼 보였다. 기계 하나 하나가 나선을 그리며 기둥을 재구성했다. 끝부분을 향할수록 얇아지는 나선을――에테르가 새는 첨탑을.
발명가건 시민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그것을 찬미하며 탄성을 질렀다――발명품 심판도 주목할만한 숨이 멎을 정도의 이벤트였다. 비행기계 무리가 마치 무대에 오른 배우가 마지막 인사를 하듯, 천천히 지면을 향해 강하했다. 그 밑에서 영사관의 자동기계가 떼로 모여 손을 뻗고 있었다.
그 위쪽 지붕에서 탑리가 주먹이 하얘질 정도로 힘을 주며 철창 끝을 잡고 있었다.
“전부 계획대로야.” 피아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 안심시켰다. 벤카트를 향해 웃음지으며.
자동기계들 바로 위에서 비행기계의 무리가 파란 빛을 발산하며 광역의 에테르를 방출시켰다. 갑작스런 에너지 파동이 동일한 설계의 자동인형들 사이로 흘러 들어가 불꽃을 일으켰다. 그것들은 마치 대규모의 도미노가 쓰러지듯, 고리를 그리며 차례차례 쓰러졌다.
“대량생산의 비극이로군……” 벤카트가 미소를 지으며 피아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침착하면서도 쾌활한 목소리가 아래 확성기에서 울렸다. “안녕하세요, 시민 여러분! 지금부터 긴급 알림 장치의 정기점검이 있겠습니다. 회장 안의 해당구역을 폐쇄하겠습니다. 정비가 있는 사이, 길 위의 시민 여러분은 물론, 열차는 경로를 바꾸어주십시오. 협력 부탁 드리겠습니다. 계속해서 박람회를 즐겨주십시오!”
피아가 지붕 위의 동료들에게 끄덕였다.
“병사들이 오기 전에 신속땜질지구로 돌아갈 시간은 충분히 있을 겁니다. 안전한 곳으로 가주세요. 혹시 잡힐 것 같으면 교란 신호를 보내시구요. 벤카트가 도우러 갈 겁니다.”
그러자 혁명파 단원들이 미소로 피아에게 대답했다. 그러곤 포옹과 찬사를 보내며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탑 측면으로 내려오면서도 에테르가 새는 첨탑 표식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즉흥적인 예술가》 아트 : Viktor Titov
피아가 몸을 날려 지붕에서 점프하더니 그 민첩한 장인의 손으로 손쉽게 창틀을 잡았다. 이어서 건물 대들보를 넘어 이동하더니 정원의 격자울타리를 넘어 아래쪽 거리로 신중하게 착지했다.
도시 안을 뛰어가는 사이, 거칠면서 무모한 무언가가 피를 타고 흘러갔다. 녹색 띠와 회색이 섞인 머리카락이 그 뒤로 날리고 있었다.
광장에 걸린 첨탑의 그림자 속에서, 외투를 두른 키 큰 남성이 군중을 향해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그 뒤를 두 그림자가 따르고 있었다.
피아의 발걸음이 소리 없이 포장된 도로를 나아가 신속땜질지구 구석에 있는 에테르 거점 계단에 도착했다. 여기서 근처에 즐비한 샛길, 그리고 공공장소를 장식하는 높고 굽이진 조각들 사이로 사라져 버리면 아무도 모르겠지.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녀의 얼굴을 장식했다.
그 때, 뒤에서 무거운 손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것은 소매 건너편임에도 불구하고 얼음 같은 냉기로 피부의 온기를 빼앗아갔다.
“벤카트, 부탁했을 텐데요.”
하지만 뒤돌아보니 거기 있는 건 벤카트가 아니라 외투를 두른 한 장신의 남자였다. 얼굴에 그려진 오렌지색 문양이 그가 박람회 심판장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그녀의 팔을 붙잡은 손은 거대한 발톱이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어두운 금속이 남자의 소매 안까지 이어져 있었다. 남자가 두른 갑옷이 그를 양쪽에서 호위하는 영사관 자동기계의 모양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화려하게 손질된 황동과 금. 그 바로 옆에 베달켄 수석 검사관 도빈 반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빛나는 녹색 눈동자를 한 엘프가 혼란스럽다는 듯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만났군. 혁명파의 주동자.” 외투의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무기를 조준하듯 금속으로 된 손을 치켜들었다. “그 따위 같잖은 짓거리로 내 박람회를 방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내’ 박람회? 피아의 분노가 끓어올랐다. 여긴 우리 도시라고!
“네놈을 막겠어 심판관. 오늘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그녀가 적의를 담아 대답했다.
흐르는 듯한 검은 비단으로 몸을 감싸고 황금 머리장식에 피부가 창백한 여성이 심판관 등 뒤로 나타났다. “――테제렛.” 그 목소리에 빈정거림이 있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면서 이빨을 드러내었다. “베스.” 낮게 대답한 목소리에 증오가 가득했다.
그리고 중장비를 입고 숨을 헐떡이면서 또 다른 한 여성이 나타났다. 헝클어진 불꽃 머리카락을 얼굴에서 치우며――
기억의 큰 파도가 피아를 덮쳤다.
……찬드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 조그만 했던 딸이 지금은 키란 만큼 키가 커져 있었다. 가족이 모여 녹지대의 정원을 산책하며 그의 어깨에 원숭이처럼 매달려 익살스럽게 웃던 아이. 시장에서 피아의 손을 잡고 있다가도 어느새 모험을 하러 없어지곤 하던. 어떻게든 함께 하려 했었다. 아이는 알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위험 속에서도.
“……엄마?” 작고 사라져버릴 것 같은, 전혀 그녀답지 않은 목소리. 눈시울이 뜨거워져 넘쳤다.
독방. 떨어진 가면. 녹아버린 금속 인장. 냉소적인 웃음.
피아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마음에서 그 기억을 쫓아내듯이.
진작에 여기서 떨어졌어야 했다. 잘 아는 거리로 사라졌어야 했다.
하지만 찬드라는?
혹시 이 자들이 우리 인생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그 남자와 똑같이, 찬드라를 그 지옥 같은 투기장으로 돌려보내려 한다면?
영사관 병사들이 그녀들 사이에 나타나 금속의 벽을 만들었다. 피아, 도빈, 그리고 테제렛을 한 쪽에, 창백한 여성과 엘프, 그리고 찬드라를 다른 한 쪽으로 떨어뜨렸다.
찬드라가 무장한 병사들의 벽으로 돌진했다. 그 비명소리가 금속 발소리에 가려져 무슨 소리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동기계가 날린 강타를 가볍게 피하고는 침수될 것 같은 화염 파도를 발사해 기계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파도가 얼굴을 때리듯, 열기가 피아의 얼굴을 때렸다.
자랑스러운 딸의 모습을 보자, 눈 앞이 흐려졌다. 그녀가 기온이 올라간 눈가를 닦았다.
“그 화염술사로군요.” 반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 목소리가 빠르면서도 정확했다. 그리고 홀쭉한 손가락으로 좌우의 경비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격리해서 구속하는 겁니다. 기계거신을 앞으로――제 감시 밑에서 부상자를 내고 싶지 않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저 여자는 물불 가리지 않습니다!”
그만둬! 피아가 있는 힘껏 찬드라에게 울부짖었다. 도망쳐! 또 잡힐 거야! 부탁이야!
찬드라가 익숙하다는 듯 욕설을 내뱉으며 손을 내밀어 기계거신 한대를 화염으로 날려버렸다.
“아아, 그랬지요.” 반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해부학적 묘사를 좋아했지요.”
피아가 고개를 떨궜다. 키란도 똑 같은 소리를 했던 것 같은데……?
중장을 한 경비대 대열이 도빈 곁에서 떨어져 중앙으로 몰고 들어오는 찬드라를 포위하기 위해 접근했다. 갑자기 그 중 몇이 비틀거리더니 꽃을 피운 덩굴의 물결에 다리가 걸려 쓰러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들이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피아가 찬드라로부터 눈을 돌려 불타는 듯한 눈빛으로 테제렛을 향했다. “피아 날라르, 혁명파의 수장입니다. 영사관에 투항하겠습니다.”
도빈이 털 없는 매끄러운 눈썹을 찌푸림과 동시에 병사들 사이에서 놀라움의 동요가 일었다. “진심입니까?” 도빈이 말했다. 이 자가 자신들이 그렇게까지 두려워하던 혁명파의 수장이란 말인가? “당신들이……중죄인에게 걸 맞는 정당한 처우를 내릴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테제렛이 거리낄 것 없다는 듯 병사들에게 움직일 것을 무언으로 전했다. 그 계산적인 눈에 어울리지 않는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물론이다. 이 죄인을 걸 맞는 곳으로 인도하라.” 그가 말하자 피아의 손목에 금줄 수갑이 채워졌다.
“경비는 최대한으로?” 반이 물었다. 마치 그걸 희망한다는 듯.
“적절한 것으로.” 테제렛이 짜증을 섞어 말했다. “그럼, 다른 자들은……”
《영사관에게 체포되다》 아트 : Tyler Jacobson
“피아 날라르.” 병사 한 명이 억양을 붙여 말했다. “영사관의 권한으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죄목은 공적 재산의 탈취, 정부에 대한 음모적 선동, 치안 유지법 위반, 파괴 행위, 에테르 분배 법 위반의 죄로――”
찬드라의 목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녀는 갈수록 숫자가 늘어나는 병사들에게 둘러싸였다. 누군가가 그녀의 폭주를 막아야 했다.
“’폭행’을 잊었어!” 피아가 옆에 있는 병사에게 재빨리 발길질을 하면서 말했다. “그리고 에테르 분배 법이라니 참 멍청한 법이네!” 그러곤 수갑이 채워진 손을 망치 삼아 다른 병사에게 내리쳤다.
즉시 그녀의 양 손, 양 다리가 단단히 구속되어 병사들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벽 건너편에서 피부가 창백한 여성이 찬드라에게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은 잡혔어! 무모한 짓은 그만둬, 도망쳐야 해!”
피아가 몸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신속땜질지구의 첨탑과 새로운 가족이 된 혁명파, 그리고 잃었다고 믿었던 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아트 : Tyler Jacobson
도망이라는 선택지는 결코 릴리아나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영사관 경비병으로 넘쳐나는 거리에서 떨어져 기라푸르의 한 샛길에 있었다. 그곳에는 몇 명의 골동품 상인과 화려한 청록색 로브를 두른 노인 한 명이 살 물건을 구경하고 있었다. 난투의 혼란은 마치 흘러간 물처럼 없었던 일 같았다.
찬드라는 주택가의 먼지 쌓인 계단에 무릎을 감싸고 앉아, 허리에 두르고 있는 오래된 숄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조용했다.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 동안 조용한 그녀를 릴리아나는 처음 보았다――보통, 조용한 것은 그녀가 잠들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편 니사는 자기 나름 생각했다는 거리를 유지하고 서서, 입을 다문 채 가는 손으로 이마의 문신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릴리아나가 두 사람 사이로 다가갔다. 신경이 교살형 집행인의 줄보다도 더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금속 팔을 한 남자――놈이 누군지 알아. 녀석은――”
눌어붙은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제이스, 마나 칼날로 인해 생긴 하얀 상처가 남아 있는 등. 그것을 어루만지면 그가 어둠 속에서 양 눈을 불태우며 괴로워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보석 반지가 부딪쳐 불협화음을 울렸다. “녀석은……위험해.” 릴리아나가 중얼거리며 손에 쥔 주먹을 풀려고 했다. “여기 녀석이 있는 건……절대 우연이 아니야.”
니사의 시선이 사령술사에게 향했다. 녹색 눈동자가 차가운 비난에 가득 차 있었다. “왜 우리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 위험한 곳에 뛰어들어서――내가 운 좋게 찾아서 얼마나 다행인줄 알아!?”
릴리아나가 입술을 뒤틀며 니사를 향해 경멸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테제렛은 네가 아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인물이야.” 그리고 오만한 눈을 들어 니사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말을 골라서 하는 게 좋을 거야――난 허가라던가 허락은 딱 질색이니까.”
니사가 눈살을 찌푸리자 지팡이 끝에서 녹색 화염이 가느다랗게 나타났다. 그딴 협박이 통할 것 같아? 릴리아나가 불쾌하다는 듯 무관심의 가면을 썼다.
“애초에 여긴 뭐 하러 온 거야?” 릴리아나가 빛나는 칼라데시 차원 전체를 가리키듯, 뜨거운 오후의 공기에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없는 사이에 투표로 결정이라도 했어? ‘관문수호대 규칙 제 몇 조항. 허가 없이 집으로 돌아가지 말 것’ 이라던가.” 그녀가 기대를 담아 어깨너머로 찬드라를 보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니사가 말했다. “계속 그런 식으로 찬드라를 도발해 온 거야?” 그녀가 경악하며 말을 이었다. “그게 네 우정이라는 거야? 이……괴물. 그러면 찬드라가 기뻐할 줄 알았어?” 그러곤 릴리아나 눈 앞에서 등을 꼿꼿이 세워 지팡이 끝으로 보도를 내리 찍었다. 그 끝에 녹색 빛 화염이 일어났지만 릴리아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런 말투로 말한 사람은 근래 수 세기 중 처음이었다――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죽기 직전에 나오는 자의 단말마에 불과했다. 릴리아나에게는 계획이 있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강한 동료들이 필요했다. 현재 그녀 앞에는 화가 난 차원 괴물 사냥꾼 엘프와 신관이 빠진 채 걸어 다니는 화약이 전부였다.
사령술사가 니사의 비난으로 찬 시선에 어깨를 움츠렸다. “여긴 여자들뿐 이잖아. 찬드라가 하고 싶은 대로 두면 돼.”
내가 괴물이라고?
그 말이 마음 속에서 들끓었다. 가장 깊은 곳을 정확하게 찌르는 말.
“찬드라가 너한테서 도망쳤다며.” 그녀가 엘프에게 속삭였다. “네가 쫓아가지 않았으니까――나한테 온 거잖아.”
녹색 문신에 니사의 새빨개진 얼굴이 겹쳐졌다. 그녀가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릴리아나는 말싸움에선 항상 비장의 수가 있었다.
“할 말은 다 했어? 난 잠깐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 릴리아나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라벤더 냄새와 스커트의 나부낌을 남기며 두 사람 앞에서 사라졌다.
찬드라가 계단에서 가만히 손등으로 얼굴을 닦으려 했다. 그 손을 쥐고는 열고, 다시 쥐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말야――여기 있고 싶다고 생각했어……” 찬드라가 숄에서 얼굴을 들면서 말했다. 니사가 손을 내밀었지만 찬드라는 비틀거리며 자력으로 일어났다.
“잠깐 걷다 올게.” 그녀가 고개를 떨군 채 길거리의 상점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걸 니사가 급히 쫓았다.
가게를 보고 있던 로브의 여성이 볼일을 마치고 찬드라의 어깨에 안심시키듯 손을 얹었다.
“불쌍하기도 해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니?” 여성이 두 플레인즈워커를 향해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찬드라가 코를 크게 풀었다. 그리고 겨우 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여성의 손을 잡았다. 그 표정 어딘가에 편안하면서도 그리움이 동반되어 있었다.
로브를 입은 여성이 정성스레 자수가 된 손수건을 주머니에서 꺼내 화염술사의 손에 얹었다. 찬드라가 거기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닦았다. 장미차와 희미한 기계 오일 냄새가 났다……마치……우리 집에서 나는 냄새마냥.
“아아, 자, 이제 그만 울으렴……” 노파가 말하자 찬드라는 눈물을 다 닦고 손수건으로 코를 풀었다.
“강해져야 한단다.” 갑자기 단호하면서도 명확한 어조로 노파가 말을 이었다. “엄마를 영사관의 손에서 되찾아야지, 찬드라.”
찬드라가 얼굴을 들어 기억 속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파시리 부인?”
《현명한 생명체제작자 오비야 파시리》 아트 : Magali Villeneuve
“오랜만이에요, 아가씨.” 오비야 파시리가 찬드라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어깨를 지지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기라푸르의 굽고 굽은 거리를 지나 파시리 부인만이 아는 비밀 통로 깊은 곳으로 향했다.
(Tr. Mayuko Wakatsuki / TSV Yohei Mori)
<새로운 등장인물>
감시 대장 바랄/Baral, Chief of Compliance [인간, 마법사]
바랄은 칼라데시에서 희귀한 존재인 마도사입니다. 영사관은 마도사를 위험하고 불안정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바랄은 다른 마도사를 추적하여 체포할 때조차도 자신의 힘을 감춰왔습니다. 10년도 더 전에 화염술사 찬드라 날라르의 처형을 촉구했던 그는 그녀가 화염과 함께 사라질 때 심각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과거 미남이었던 바랄의 모습은 이쪽에서 확인하시길.
현명한 생명체제작자 오비야 파시리/Oviya Pashiri, Sage Lifecrafter [인간, 기능공]
오비야는 모든 발명의 중심에는 미적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명성 높은 생명제작자인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젊은 기능공들을 지도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를 잃은 후, 오비야는 비밀리에 자신만의 디자인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그녀는 날라르와 같은 밀수꾼들을 고용해 자신의 교묘한 발명품 제작에 쓸 에테르를 구했습니다.
첫댓글 저게 바랄의 진짜 얼굴이었군요.(카드는 백색인데?! 청색을 숨기고 있었던듯..?)
원래부터 편집증세가 좀 있었는데 찬드라의 플레인즈워커 스파크 각성과 더불어 잠재된 그 똘끼가 완전체가 되었나 봅니다.
얘도 플레인즈워커되서 잊을만하면 찬드라 생일때마다 찾아와서 생일빵 이벤트하면 되겠네요.
정신 오염도가 A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네요.
원래 바랄을 UW컬러로 내려고 했지만 청색 전설 생물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그대로 청색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언뜻 본 것 같습니다.
찬드라가 파시리 할머니와 무슨관계 일까요 ㅋ
과거 찬드라가 어렸을 시절, 불법 에테르를 날라르 부부에게서 얻어 발명을 계속 했습니다.
찬드라가 영사관에 쫓길 때는 숨겨주기도 했지요.
영사의 장교였군요...그영사가 그영사 맞나 했더니 역시
장교때의 칼을 잘 보니 지금처럼 팔에 달리는 디자인인 것 같네요. 악취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