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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사인의 노벨상이라는 "자랑스런 3사인 상"을 수상한 김종인 총장의 모습
3사 총동문회에서는 매년 3사인의 위상을 높인분들 중에서 각 동기회에서
추천을 받아서 수여를 하는데 각 기수에서 3인 이내로 제한하기에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는데 금년 9월 23일날 충구회 임관 50주년 행사의 일환
으로 미국 오이코스 대학교 김종인 총장은 18년간 미국 센프란시스코의
오이코스 대학교 총장을 18년간 하면서 충구회와 3사의 위상을 높였으며
더 나가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떨쳤기에 임원회의에서 "자랑스런 3사인 상"을
추천하였고 총 동문회 심의를 거처 선발되여서 당일 모교 충성관에서 충구회
600여명의 동기생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총 동문회 박주왕 회장님 (19기)이
상장과 상패를 수여 했다,
충구회에서는 3사모 회장인 이철성님(24 중대)이 3사모 창설과 현역 지원과
예비역의 단합의 공로를 인정 받아서 제 5회인 2010년도에 수상을 했다,
그리고 강성룡 회장(21 중대)은 3사 총 동문 회장을 역임하면서 총 동문
회원들의 숙원사업인 회관 건립을 이룩하기 위하여 총동문 회장을 연임하여
4년간에 기여한 공로로 8회인 2013년도에 수상을 헸으며 이번에 김종인
총장(목사) 이 수상을 하여 총 세분의 수상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최초 1, 2회시에 수상자들은 김진옥 총 동문회장님이 사비로 금 한냥을
부상으로 수여했으나 그이후 에는 상장과 상패만 드리고 부상은 없슴니다
임관 50주년 행사시 모교 충성관에서 3사 총 동문회 박주왕 회장(19기) 님이
김종인 총장(22 중대) 에게 자랑스런 3사인상의 표창장을 수여하는 모습
상장과 상패를 받은후에 기념 인증 샷 모습
표장을 받고나서 이상은 동기님들 덕분에 받았다고 겸손하게 수상 소감을 하는 모습
지난 9월 23일 모교에서 개최된 임관 50주년 행사후에 미국의 집에서
자랑스런 3사인 상패와 상장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였다
3사 총동문회에서 수여하는 자랑스런 3사인 상패입니다
김종인 총장이 오이코스 대학교 도서관에서 기념촬영 모습
3사관 학교 충구회 (9기) 재학중인 2학년때 모습(1973년도)
2022년 4월에 미국 뉴저지에 본부를 둔 ‘예수교 장로회 국제연합총회 (The
General Assembly of 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이하 UPCA) 총 회장 으로 선임되여 임기 1년을 23년 4월 30일자로
퇴임을 하였다 / # 현직 목사님 이며 오이코스 대학교 총장 입니다
사진 왼쪽이 김종인 총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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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동기생인 미국 오이코스(OIKOS) 대학교 김종인 총장님
김종인 총장은 의지의 3사인이고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우리의 자랑스런 동기생인 김종인 총장님(3사 9기 포병,22중대, 대위 예편)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인데 아주 옛날에 학창시절에 지독한 가난으로 학업을 포기후에 신문배달 까지 하면서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처서 한양공고 기계과를 졸업하고 청운의 푸른 꿈을 가슴에 가지고
3사 9기로 입학하여 임관후에 군생활 도중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감으로 늘 술을 가까이 하고
자살을 수없이 생각 했지만 5년간의방황을 접고 내모습과 교차되는 또하나의 모습이 예수님
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잡고 전역하여 성서 신학대학과 합동 신학대학원을 거처 목사님이 되였다
그후에 보다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 거의 무일푼이였지만 주변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미국 센프란
시스코로 비행기를 올라탄후에 영어도 시원찮은 그는 원점에서 출발 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공부를
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후에 목사 생활을 하면서 각고에 노력끝에 2004년에 미국 오이코스 대학교
2대 총장으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단과대학에서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고 음대와,
신학대등을 설립하였으며 재미교포와 기업체와 같이 산학협동단체를 발족하여 대한민국의
명예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사무부총장으로 3사 15기 후배교수를 채용하고 센프란시스코의 모교
동문들과 유기적인 협조관계를 유지하는등 우리의 위상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미국에서 대학총장은 대단한 사건이다
아마도 내생각에 사관학교는 물론 일반인을 통털어서 미국에서 근 15년동안 대학교 총장을 하시는분은
김 총장이 유일할 것으로 생각하며 크게는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적게는 3사관학교 전체의 영광으로
생각하는데 이런분이 우리 동기생이라는데 대하여 더할수 없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리고 김총장은 야심
차게 음악대를 미국 최대의 음대인 줄리어드 음악대학교 (juilliard school of musis) 이상으로 키울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이란 나라가 어디 그리 만만한 나라인가? 거기에서 미국정부가 학력을 인증
하는 정규대학교로 육성하기 까지 오직 피와 땀으로 이룩한데 대하여 경의를 표합니다
미주 중앙일보에 3년간 칼럼을 써온 자서전을 보면서 느낀점은
미주 중앙일보에 3년간 연재한 칼럼집에 이런말이 나온다, 나는 본래 일중독자 였고 일자체가
좋아서 혼자 신이나서 휴일날도 나왔고 평일도 항상 야근을 하니 주위사람들이 질투하고 모함도
받았지만 자기는 일을 하고난후에 만족감과 성취감으로 일했다고 담담하게 술회했다, 그리고 돈도
없고 아는사람도 없지만 속된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일했다" 하면서 다른사람들은 수완이
좋다, 럭키하다고 했지만 내자신을 위해서 짜장면 하나 사먹은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런 글을
읽으면서 성공하는사람들은 생각을 하는 것이 다르고 남모르게 피나는 고생을 했으며 원만한
대인관계가 오늘날에 그분을 큰 거목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분이 우리 동기생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같은 동기생이지만 나는 그분을 솔직히 정신적인면에서 존경 하고 싶습니다,,,,
2020년 8월 25일 유래영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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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존재케 해준 소중한 자산들
김호식 박사님
글을 쓰는 오늘은 2021년 11월 19일이다.
어제 오후 6시에 스승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그 분의 연세가 88세이시니 나보다 18살이 더 많으신 분이고,
그 분과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내 나이가 서른 이었으니 그 분과의 인연이 40년이 된다.
군에서 막 전역을 하고 신학대학에 3학년에 편입을 해서 정신을 못차리고 어리버리
하던 때에 미국에서 방문 교수로 오신 그분으로부터 배운 과목은 난해하기 짝이 없는
현대신학이었다. 신학에 대해서 기초가 전혀 없던 나에게 이 과목을 듣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였다. 강의가 끝나고 시험을 봤는데 간신히 60점을 받았다.
신학의 정규과정을 다 마치고 목사가 된 직후에 그 분의 수업을 다시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에 나는 그 분의 강의 통해서 신학의 학문성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난해한 과목이었던 철학을 비롯해서 정치학 법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이해와
소양을 쌓아 갈 수 있었다. 그 분으로부터 배운 학문의 방법론은 후일 교회와
신학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던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마흔이 넘어 미국에 유학을 와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교회를 방문하신 그 분이 설교를 하시던 중에 나에 관한 이야기를 교인들에게
잠간 언급하셨다. “10여년을 김종인 목사를 지켜보았는데 김목사를 볼 때 마다
늘 안타깝습니다. 재능과 열정은 뛰어난 사람인데 뒷받침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늘 좌절을 많이 겪는다.
마치 조그만 웅덩이에 살고 있는 잉어가 용트림을 하면 웅덩이가 너무 적어서 물 밖으로
튀어나와 땅에 내동댕이 처지는 것처럼... 그래서 다시 작은 웅덩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여러분은 지금 큰 사람을 만났는데 큰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큰 웅덩이가
되어주면 좋겠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중에 몇 분이 나의 후원자가 되기로 의논을 하였는데
그 분들이 학교를 세우고 유지하는데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들을 지금까지도 감당해
주고 계신다. 그 분은 나에게 학문을 할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주셨을 뿐 아니라
내 주위를 돌아보며 세밀한 배려를 해주셔서 오늘의 내가 있도록 버팀목이 돼주셨다.
육군3사관학교 생각해 보면 나는 교관이 더 체질에 맞는 사람인 것 같다.
소위로 임관을 해서 30사단이 첫 근무지였는데 당시 그 부대는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의
예비군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포병사령부는 종로와 중구를 관할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예비군들을 대상으로 교관을 하게 되었는데 교관들 연구 강의를 선배들을
제치고 1등을 했다. 그 덕분에 직장에 편성된 예비군을 전담하는 특혜를 누렸었다.
종로와 중구의 직장은 관공서 신문사 학교 방송국 재벌회사 등 까다로운 사람들이 많은
조심스러운 대상들이여서 좀 우수한(?) 교관을 편성한 것 같다. 포대장으로 재임시에
정훈 교관 경연대회가 있었는데 사단에서 먼저 실시한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해서
군단 경연대회에 사단 대표로 나갔던 적이 있다. 아마도 이 방면으로 좀 재질이 있었던 것 같다.
전역 후, 신학대학에 재학 중일 때도 설교(Preaching)를 잘한다고 인정을 받았고,
교수님들에게 좀 똘똘 하게 보였는지 파격적으로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강의를 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선생 노릇을 하고 있다. 강의에 재능이 있기 때문이였을까?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거러나 그 재능을 일깨워주고 훈련 시켜준 3사관 학교 덕분이다.
나는 3사관학교를 교수법에 관하여 세계최고의 명문대학이라고 감히 추천한다.
그 이유는 내가 그 때 배운 교수법 내용을 백퍼센트 활용해서 밥을 먹고 살고 있으니까.....
교수법 시간에 배운 강의안 작성 용령, 시간 계획(POI) 작성 요령, 강의 요령, 학생들을
집중시키는 법, 강의자의 자세, 교보재 사용 요령 등, 이런 내용들을 어떤 신학대학에서도
가르치지 않고 있다. 교관 경연대회에서도 제일 점수를 많이 받은 분야가 강의안 작성이다.
지금도 내 파일캐비넷에는 60과목이 넘는 강의안이 작성되어 있어서 신학 분야에서
강의 되는 과목의 절반을 나는 언제든지 강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3사관학교의 교육을 통해 체득한 가장 큰 자산은
위기관리 능력과 기획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위기관리
내가 총장 노릇을 하고 있는 오이코스 대학교는 규모가 아주 작은 학교이지만 이 학교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학교이다. 명문 대학으로 알려졌으면 좋았겠지만
씁스레 하지만 큰 사고가 난 학교로 유명해진 학교이다. 2012년 4월 2일 학내에서
총격 사건으로 학생 6명과 직원 1명이 사망하는 사고로...... 한국에서는 새벽 6시 뉴스의
첫 꼭지가 우리 학교의 사고 소식이였다.
이 정도 사고는 학교가 그냥 폐쇄해야 하는 것이 통례이다.
나는 그 엄청난 충격 속에서 학교를 두 주 만에 정상화 시켰고 이후 약 5년 동안에 걸쳐서
법률적인 어려움과 재정적인 극심한 어려움을 깔끔하게 다 정리를 하였고 그 와중에 학교를
정규대학으로 승격시켰다. 격렬한 위기 가운데서 냉정을 잃지 않고 나와 학교를 지켜 낼 수
있었던 힘은 장교로서 교육받는 과정을 통해서 체득한 위기 관리 능력이라고 생각된다.
둘째 기획 능력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학교 행정도 배운 적도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 정규대학으로
승격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의 운영은 학문적인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행정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행정 능력은 단순히 일하는 법만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 인력의 충원, 예산 확보, 등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야 하는
일들이다. 맨땅에 해딩 하듯 아무 것도 없이 믿음 하나만 갖고 학교를 시작했다.
학교는 행정적으로 빠르게 성장해 갈 수 있었다. 통계를 내보지 않아서 정확이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빨리 정규대학으로
성장한 학교로 전설처럼 회자되는 학교이다. 이런 일들이 가능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삼사관 학교에서 배운 참모학 덕분이다. 일하는 법을 참모학을 통하여 배웠다.
3사출신은 정통이라는 인너서클에 들어갈 수 없는 주변인들을 일컽는 말처럼 들린다.
나는 우리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이 싫다. 우리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주변인으로 머무르는 들러리 인생으로 사는 것으로
만족해한다면 너무 초라해진다. 생각해보면 기득권 안에 들어가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가치있는 존재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무한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거칠고 험한 인생의 노정을 선택할 수 도 있다.
우리 3사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은 무엇일까?
금수저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우리만의 거대한 힘, 그것은 야성이다.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이야말로 우리 삼사인들의 가장 큰
존재감일 것이다. 3사관학교에서 받은 교육은 한사람을 존재케 하는데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 인생을 살만큼 살아 온 지금 내 삶의 뒤를 돌아보면서 가장
소중한 자산인 3사관학교를 잠시 돌아본다.
김종인은 9기생으로 포병장교로 임관했다.
한양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육군대위로 전역을 하였고 한국성서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목사가 되었으며 영종도에서 섬목회를 몇 년간 하였고
청담동에서 잠시 목회를 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그 전에는 워싱턴 침례대학교에서 학사과정과 석사과정을
공부하기도 했다. 지금은 오이코스대학교에서 총장직무를 감당하고 있는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이다. ]
미국 센프란시스코 오이코스대학교 총장 3사 9기 김종인
2021년 12월 5일 김종인 총장이 충성문학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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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안부를 전합니다 선배님
21기 익산 박중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