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익스플로러 시리즈 IV/ 스메타나 '나의 조국'
(2010.7.22/서울 예술의 전당)
지휘: 야쿠프 흐루샤
오랫만에 서울시향 연주회를 다녀왔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전곡 연주가 흔치 않은 스메타나 '나의 조국'이 체코 본토 지휘자의 지휘로 공연되지 않던가. 서울시향의 기획력에 우선 감탄을 하면서 어찌보면 익스플로러 시리즈지만 마스터피스 시리즈 못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예당으로 가니, 아니나 다를까 마스터피스 시리즈 만큼이나 관객들이 많이 왔었다.
'나의 조국'이라는 제목에서 바로 느낄 수 있듯이 이 곡을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체코 특유의 '향토색'을 얼마만큼이나(그것도 정서가 다른 외국악단이) 잘 드러내냐는 것인데, 지휘자인 야쿠프 흐루샤가 81년생(!!!)이라는 점을 감안해서도 이번 연주는 그런 점이 좀 아쉬웠다. 물론 젊은 지휘자이니만큼 열정적으로 지휘를 했고(포디엄에서 연주 내내 얼굴이 빨갛게 불타오른 채로 방방 뛰며 큰 제스츄어로 활기차게 지휘한 모습에 여러 관객들-특히 여성분들^^-이 반한 것은 사실인듯!), 시향도 나름 열심히 연주했지만 향토색이 물씬 느껴진다던지 하다못해 지휘자 나름의 해석력도 그닥 돋보이지 않았고 시향의 연주도 그렇게 썩 뛰어났다고는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곡은 각 악장마다 기승전결의 형식이 갖춰져 있으며 각 악장의 마지막에서는 일반적인 교향곡 4악장의 피날레만큼이나 소위 '빵빵한' 음량을 뽑아줘야 관객들도 풍성한 음의 향연에 파묻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만족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목관 2편성임에도 불구하고 음량은 생각 외로 작은 편이었었다. 또한 연주 전반에 걸쳐 특히 바이올린 파트의 트레몰로시 깨끗하고 투명한 소리가 뽑히지 않았고, 베이스 파트의 음량이 잘 느껴지지 않았으며, 목관 파트도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악장 내내 연주하는 부분이 많다보니 군데군데 자잘한 미스를 냈다. 그래도 의외로 호른파트가 연주 전반에 걸쳐 담담하면서도 정갈하게 뒤를 받쳤고, 트럼펫과 트럼본&튜바 파트도 나쁘진 않았었다.
1악장은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음유시인의 수금(手琴) 소리를 묘사하는 하프 소리로 시작되었는데, 하프 소리가 처음에 좀 경직 되어서 그냥 그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이 풀린 듯 괜찮은 소리를 들려주었다(오히려 세컨 하프가 더 괜찮았던 듯?). 멘델스존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를 연상케 하는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였고 2악장은 그 유명한 일명 '몰다우'(블타바)였는데, 이 곡은 워낙 독립적으로도 자주 연주되다보니 1악장보다 훨씬 나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이하게 2악장은 시작부터 플룻과 클라리넷의 연주가 얽히면서 일반적인 교향곡 형식처럼 현 파트가 전체적인 틀을 짜면서 그 위에 목관의 연주가 얹히는 것이 아니라, 목관 파트의 연주(+호른 파트)가 악장의 판석이 되고 그 위에 현 파트의 연주가 얹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중간중간 목관 파트의 자잘한 실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안정감 있고 노련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아무래도 실수할 때 마다 현에 좀 묻힌 덕도 보았던 듯 싶다. ^^; 2악장에서 분명 강을 보긴 본 것 같은데, 다만 한강 처럼 큰 강이 아닌 생각보다 작은 강을 보았으니 그 점이 아쉽다면 아쉽달까. ^^;;
제 3악장은 '샤르카'로서 남자에게 버림받고 복수하는 체코의 전설에 등장하는 아마존 여전사의 이름이자 프라하 근교의 지명이기도 한다는데, 이 샤르카라는 여전사가 마치 유딧처럼 남자들을 유혹해서 술에 취하게 하고 그들이 깊이 잠들었을 때 뿔피리를 불어 여전사들을 불러 몰살하는 내용을 곡으로 썼다고 한다. 그런데 솔직히 이 악장에서 든 생각은 스메타나가 곡을 좀 못썼다라는 점이었다. ^^;;; 차라리 '샤르카의 테마'를 하나의 선율로 잡고 그것을 다양하게 변형시켜 '아~ 언제 샤르카가 등장하고 언제 퇴장하고 언제 남자들을 유혹하는구나~'를 좀 알게 해주지, 곡을 들으면서 '샤르카는 언제 나오나?' '언제 남자들을 유혹하나?'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초반에 뭐 정경 묘사 비슷하게 나가다가 어영부영 전개하다가 갑자기 죽음의 랜틀러(하지만 말러의 그것보다는 훨씬 세련되지 못한!)가 좀 나오나 싶더니 뜬금없이 클라리넷이 묘사한 여전사들을 불러 모으는 뿔피리 소리 두어번 들리더니, 마지막의 막사에서 술에 취해 골아 떨어진 남자들을 대학살하는 장면에서는 누가 들어도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야 하는데 걍 현악기들의 질주 몇 번으로 끝나니 그저 허탈 할 수 밖에... -0-;;;
제 4악장인 '보헤미아의 숲과 들에서'도 원래 곡이 그런건지, 아님 지휘자의 해석이 특출나지 않아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딱 들으면 눈 앞에 '가보진 않았어도 마치 그 햇살을 본 것 같고, 나무의 냄새를 맡은 것 같고, 손으로 흙을 쥔 것처럼' 그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져야 하는데 아직 체코의 ㅊ자도 못 밟아본 한국촌아가씨로서는 도통 풍경이 떠오르지 않아 들으면서 상상하느라 애를 쓰곤 했다(들으면서 걍 우리나라의 시골 풍경 생각했다. -_-;;;). 마지막에 아가씨들이 랄랄라~♪하고 노래 부르는 정경을 묘사한 것은 그래도 그럴 듯 했는데, 아마도 나쁜 날씨(소나기?) 때문에 잠시 긴박한 순간을 맞이했다가 다시 모여 랄랄라~ 노래 부르며 끝나는 피날레 묘사는 좋았다. 다만 4악장의 서두를 시작하는 팀파니는 독주 부분은 너무 힘이 넘쳐서 튀고, 총주 부분에서는 오히려 묻히는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팀파니 연주라는 것도 다른 악기 연주와 마찬가지겠지만,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며 고른 힘의 분배와 정확한 타이밍을 요구하는 건데 그 점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수석인 아드리앙 페뤼숑의 부재가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
5악장 '타보르'와 6악장 '블라니크'는 체코 역사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후스 전쟁'(이것에 관해서는 http://blog.naver.com/chotoy?Redirect=Log&logNo=60024599482 와 http://blog.naver.com/eelhs?Redirect=Log&logNo=120005766547 더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http://blog.naver.com/weddingkgm?Redirect=Log&logNo=140018051873 참조)을 묘사한 것인데, 사실 전쟁을 묘사했다라기 보다는 환란이 닥치면 후스파의 전사들이 블라니크 산 밑에 잠들어 있다가 다시 깨어나 조국을 구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내용의 전설(유사한 내용으로는 아더왕이 요정의 나라 '아발론'에 잠들어 있다가 위기가 닥치면 깨어나 다시 잉글랜드를 통치하러 올 것이라는 전설이 있음)을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4번(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같은 전쟁이라도 500년 이상 차이나는..즉 한 쪽은 그야말로 창과 몽둥이 들고 맨 몸으로 싸우는 고전적인(!) 전쟁이고, 다른 한 쪽은 폭격기가 날아다니고 총알이 빗발치는 신식(!) 전쟁이라는 점에서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라는 생각은 지금 이 글 쓰고 있는 사람도 하고 있는 생각이긴 함 -0-;;;)만큼 박력 넘치고 스케일 큰 묘사는 아니지만, 소박하더라도 나름 격렬한 전투씬도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었고, 더군다가 쇼교4번에서야 2/4박자의 씩씩한(씩씩하다 못해 무식해 보이는?) 행진곡으로 대체되긴 했지만 현대 교향곡(?)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그대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전사들(이니 승리할 것이다)'이라는 내용의 찬송가 선율이 깔리는 것은 또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그러고 물론 승리의 피날레로 끝을 맺었다~ 패배했으면 아마 스메타나가 이 곡을 아예 안 썼거나, 아니면 쓰더라도 이런 내용은 아예 입도 뻥긋 안했을걸? ^^;
어쨌든 무사히 완주를 한 젊은 지휘자는 감격에 넘쳐서 여러 차례 커튼콜을 받았고, 앵콜로 스메타나 '팔려간 신부'의 일부분을 짧게 다시 연주하고 끝냈다(사실 긴 곡이라 앵콜은 기대도 안했건만 그래도 성실하게 앵콜에 응하다니..^^;). 오늘의 연주를 들으면서 느낀 점은 물론 '나의 조국'이 워낙 실황연주가 잘 안되는 곡이라 실황으로 들은 것도 물론 의의가 있겠지마는, 이제 서울시향이 가진 뛰어난 역량으로는 단지 '실황'에 의의를 두는 정도가 아닌 체코에 가지 않아도 체코를 가 본 듯한 기분이 들게 해주는 연주 혹은 그것이 아니더라도 서울시향만이 들려 줄 수 있는 시향만의 장점이 잘 드러난 연주를 앞으로도 들려주어야 할 의무를 다시 한 번 상기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마리솔님, 아주 수준 높은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러 측면에서 어제 연주회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군요. 저는 '아드리앙 페뤼숑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한편으로는 '본토 지휘자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더군요. 아무튼,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열정적이고 성실한 젊은 지휘자를 알게 된 것도 참 좋았구요.
마리솔님의 평을 읽어보면서 내가 느꼈던 점과 좀 비슷한면이 있어 내가 보는 것도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난 월요일 미리공부하기에 집사람과 같이가서 연주실황을 비디오로 보면서 그리고 진화숙님의 해설을 들었었는데 그때 듣고 본 연주 소리랑 많이 차이가 나길래 우리도 집에 가면서 왜 차이가 나는가 하고 이야기 했답니다. 나는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비디오로 보고 들은 연주음악이 스테레오로 들었다면 오늘의 연주는 모노로 들은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연주였나 봐요. 이 곡을 자주 연주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애국심의 정서와 달리 각 곡이 갖는 스토리에 맞춰 작곡을 하다보니 너무 잦은 템포 변화로 인해 내용을 알지 못하면 산만하게 느껴지기 쉽지요. 지휘자는 이 곡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서 꽤 열심히 곡의 성격을 나타내려고 애를 썻었습니다. 지휘자는 열성적이고 테크닉이 좋은 훌륭한 지휘자라고 생각됩니다. 담 달에 마에스트로와 함께하는 말러 2번 교향곡을 기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