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그릇에서 배운다.' / 법정 스님
물은 가을 물이 맑다.
사계절 중에서 가장 맑다.
개울가에 물을 길러 나갔다가
맑게 흐르는 물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는 이 개울물에서 세월을 읽는다.
가을 물이 맑다고 했는데 사람은 어느 때 가장 맑을까?
산에서 사는 사람들은 가을에 귀가 밝다.
이 말이 무슨 소리인가 하면
가을바람에 감성의 줄이 팽팽해져서
창밖에 곤충이 기어가는 소리까지도 다 잡힌다.
다람쥐가 겨우살이 준비를 하느라고 상수리나무에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온통 오관이 귀가 된다.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사람은 맑아진다.
너와 나의 간격이 사라져 하나가 될 때 사람은 투명해진다.
이 가을 드러나는 빈 그릇으로 명상을 하고 있다.
서쪽 창문 아래 조그만 항아리와
과반을 두고 벽에 기대어 이 만치서 바라본다.
항아리는 언젠가 보원요 지헌님한테서 얻어 온 것인데,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낸 그릇이라
그 연한 갈색이 아주 천연스럽다.
창호에 비껴드는 햇살에 따라
빛의 변화가 있어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며칠 전에 항아리에 들꽃을 꽂아 보았더니
항아리가 싫어하는 내색을 보였다.
빈 항아리라야 무한한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백자로 된 과반은 팔모 받침에 네모 판으로 된 것인데
가로 한자 두 치, 세로 한자의 크기.
과반치고는 크다.
이 역시 빈 채로 가 더 듬직하고 아름답다.
텅 빈 항아리와 아무것도 올려 있지 않는
빈 과반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라보는 내 마음도 어느새 텅 비게 된다.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엇인가를 채웠을 때보다 비웠을 때의
이 충만감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하던가.
텅 빈 충만의 경지다.
빈 그릇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