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은 크고 아름다운 비자나무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 이야기를 전해드린 뒤, 숲이 아니라, 사람의 마을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몇 그루의 비자나무 노거수가 떠올랐습니다. 마침 한 쌍의 근사한 비자나무 곁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뒤라 더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사천 성내리 비자나무〉입니다. 오래 된 비자나무가 무리지어 서 있는 비자나무 숲이 자아내는 신비로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 나무입니다. 하긴 숲과 나무를 같은 시선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요. 숲은 숲대로, 독립노거수는 또 그것대로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니까요. 나무는 같은 비자나무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 궁궐 가구재에서 아이들의 간식거리, 혹은 구충제로 이용 ○
비자나무는 예로부터 쓰임새가 많은 나무입니다. 비자나무 목재를 궁궐 가구재와 같은 고급 건축재로 쓴다는 점에서도 그러했지만, 비자나무 열매의 효용도 무척 높았습니다. 비자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비자’라고 부르는데요, 이 비자의 쓰임새가 많았던 겁니다. 비자는 우선 먹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잘 열린 비자는 그냥 먹을 수 있지요. 밤과 맛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밤처럼 단맛이 깊은 건 아닙니다. 약간 떫은 맛을 갖고 있어서, 단맛에 길들어진 요즘 사람들에게는 결코 좋은 먹거리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옛날의 개구쟁이 어린 아이들은 비자를 간식거리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군것질 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출출해질 즈음에 하나씩 주워서 먹곤 했던 거죠. 하지만 그 때에도 비자를 아주 맛난 열매로 여기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어쩌다 한 두 알씩 주워 먹는 데에 불과했을 뿐, 본격적인 먹을거리로 쓰지는 않았던 거죠. 그러나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떨어진 때에는 비자를 구황식품으로 요긴하게 활용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 못지않게 아름다운 비자나무 숲인 〈고흥 금탑사 비자나무 숲〉이 절집의 승려들의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심은 나무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 특별한 이야기 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나무 ○
또다른 특별한 쓰임새도 있었습니다. 바로 구충제로 비자를 이용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역시 그 사례가 아직 남아있는데요. 전남 강진 병영면이 그런 곳입니다. 병영면은 옛날에 군사들의 병영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마을 이름이 병영면이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합니다. 이 병영면의 삼인리라는 작은 마을에 오래 된 비자나무가 한 그루 있거든요. 그 비자나무는 병영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의 구충제를 확보하기 위해 심었던 나무라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하긴 모든 나무가 그러하지만, 비자나무는 쓰임새가 참 많은 나무인 셈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사천 성내리 비자나무〉에 특별한 이야기가 전해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오래 된 비자나무 한 쌍이 근사한 자태로 서 있다는 게 눈에 뜨일 뿐입니다. 사천 곤양면 사무소 앞의 너른 터에 자리잡고 서 있는 두 그루의 나무는 삼백 년 쯤 이 자리에서 살아온 것으로 짐작하는 나무입니다. 지난 주에 보여드린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의 나무들에 비하면 비교적 젊은 나무에 속합니다. 두 그루 가운데에 비교적 키가 큰 나무가 높이 21미터까지 자랐고, 줄기둘레는 4미터 정도 됩니다. 비자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데, 이 키 큰 나무가 암나무이고,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나무이기도 합니다.
○ 오래 된 암나무에서 얼마 전부터 수꽃이 피어나 ○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비자나무 암나무에서 약간 떨어진 자리에 나란히 사이좋게 서 있는 나무는 마침 수나무여서, 암수 한 쌍이 사이좋게 어울려 삼백 년을 살아온 셈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나무들에서 신비로운 현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암나무였던 나무의 일부 가지에서 수꽃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흔치 않은 성전환 현상이 일어난 겁니다. 잠깐 살펴보는 것만으로 나무의 상태를 온전히 관찰하기는 어려운데, 천연기념물인 이 나무를 오래 관찰해온 문화재청에서 나무 앞에 세운 입간판에는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흔치 않은 일이어서, 오래 관찰하며, 수꽃의 실체를 살펴보고 싶지만, 그럴 짬을 찾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여러 생각이 떠오르지만, 무엇보다 진정한 사랑이란 사랑하는 대상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수 있는 느낌 아닐까 싶습니다. 나무는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지 싶습니다. 나무는 언제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나무 안에 담긴 사람살이의 향기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해도, 혹은 나무에 담긴 절절한 사연을 하나도 알 수 없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천 성내리 비자나무〉는 그게 천연기념물이든 아니든, 사람살이의 사연이 절절히 전해오든, 혹은 가뭇없이 사라졌든, 한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지고, 그 앞에서 눈을 감아도 또렷이 그의 융융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좋은 나무입니다.
이 땅의 모든 나무들이 그러하겠지만, 〈사천 성내리 비자나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나무입니다.
○ 오월에는 화성시 시민학당의 여덟차례 강연에 모십니다 ○
아, 참! 한 가지 알려드립니다. 5월 13일부터 화성시청이 주관하는 ‘행복화성시민학당’이 열립니다. 〈살아있는 생명, 나무와의 소통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나무인문학 강좌가 여덟 차례에 걸쳐 이어집니다. 오늘부터 참가 신청을 받는다고 합니다. 위의 그림에 담은 글씨가 잘아서 잘 안보이시지요. 아래에 참가신청 페이지를 클릭하시고 들어가시면 8강까지의 계획이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화성시에 거주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http://bit.ly/2W9m5On <== 행복화성시민대학 참가 신청 페이지
고맙습니다.
-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수 있는 나무를 떠올리며 4월 29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