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 작가는 ‘순정’을 이야기한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 세대를 향해 순정은 아직 유효하다고 말한다. 구수하고 담백한 콩국수와 입맛 돋우는 골뱅이무침, 닭가슴살 초무침으로 차려진 그녀의 밥상은 투박하기에 오히려 더 정감이 갔다. 그녀는 음식에도 진심을 담을 줄 알았다.
기자는 은미희 작가와는 대략 1년 전 인연을 맺었다. 그녀가 신간 <나비야, 나비야>를 막 출간했을 때였다. 당시 그녀에게 에세이를 한 편 부탁했다. 원고를 청탁하고 받는 과정에서 몇 통의 전화가 오갔고,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눴지만 꽤 다정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이나 그녀가 보내온 에세이 ‘사랑 너는 무어냐’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만난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손님을 초대하고 음식을 마련하는 일이 꽤 귀찮은 일이건만, 그녀는 기자를 위해 무려 세 가지 요리를 준비했다. 쥐눈이콩 콩국수와 골뱅이무침, 그리고 닭가슴살 초무침이었다.
“건강에 좋은 쥐눈이콩으로 콩국수를 만들었어요. 오시느라 배고팠죠? 콩을 갈고 국수를 삶을 동안 골뱅이무침하고 닭가슴살 초무침 먼저 드시고 계세요.”
그렇다고 먼저 먹을 수는 없었다. 준비한 메뉴와 진행 상황을 보니, 아침부터 꽤 분주했던 모양이다. 슬며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주방을 바쁘게 오가는 그녀를 졸졸 따르며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고기를 먹지 않았어요. 떡국에 고기가 들어 있다고 안 먹을 정도였죠. 언제였나, 그보다 더 어렸을 때 소를 잡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어린 기억에 그 장면이 너무 끔찍했어요. 그 이후에는 고기를 먹지 않게 됐죠. 지금은 고기를 먹고 있긴 하지만 즐기지는 않아요. 그래서 오늘은 모두 채식에 가까운 메뉴로 준비했어요.”
육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 콩국수는 유용한 단백질 공급원일 것이다. 쥐눈이콩으로 만든 콩국수는 진하고 구수한 맛이 났다. 골뱅이무침과 닭가슴살 초무침 역시 톡 쏘면서도 상큼한 맛이 일품이었다.
“맛이 있나요? 평소 제가 먹을 음식을 만들 때는 살아가기 위한 영양 공급원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면 기분이 아주 좋아지거든요. 요즘은 주방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생겼어요. 제가 결혼할 때가 되었나 봐요. 참 늦됐죠.”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순정’
은미희 작가는 전남일보 신춘문예와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2001년 장편소설 <비둘기집 사람들>로 삼성 문학상을 받았으며, 동성애자의 사랑을 그린 <소수의 사랑>과 떠돌이 엿장수 공연단의 삶을 그린 <바람의 노래> 등을 펴냈다. 지난해 조선 최고의 여류 시인 이옥봉에 관한 장편소설 <나비야, 나비야>를 발표했다.
“어느 지인이 제게 이옥봉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라고 했어요. 그 이야기는 저만이 쓸 수 있다고 부추겼죠. 이옥봉의 청승은 곧 저라면서요. 별로 유쾌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소설을 쓰면서 이옥봉에게 몰입하게 됐어요. 저도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목숨을 거는 스타일인데, 그런 면에서는 정말 공감이 많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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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조선시대 여류 시인?’ 하고 의아해할 수 있겠다. 이옥봉은 허난설현, 신사임당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힐 만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의 삶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녀가 이 시대에 다시 이옥봉을 불러낸 이유는 우리에게 ‘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이옥봉은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 남자가 자신을 버린 후에도 언제나 그 남자가 자신을 다시 불러주지 않을까 기다리면서 한평생 살았어요. 요즘에는 순정이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죠. 깨끗하게 ‘안녕’ 하고 헤어지는 것을 쿨하다고 여기죠. 저는 사랑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 역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2001년 <비둘기집 사람들>로 삼성문학상을 받았다. 상금이 5천만원이었는데, 당시 소설 공모전 중 가장 큰 고료였다. 그 돈으로 광주에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삼성문학상은 작가로서 그녀를 세상에 알린 상이었고, 동시에 이후 편안한 집필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기반이 되었다. 그녀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은 <바람의 노래>다. 현대판 남사당패에 해당하는 엿장수 공연단에 관한 이야기로,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예사롭지 않은 솜씨로 언론의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당시 그녀는 실제로 품바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3박 4일 동안 따라다니기도 했다.
“소설에 나오는 파격적인 인물들은 모두 실제 존재하는 인물들이에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여자 둘에 남자 하나, 그들은 셋이 함께 방을 써요. 원래 부부는 다른 여자가 공연단에 들어오면서 그 자리를 빼앗고, 결국은 셋이 살게 되는 거죠. 물론 결말은 작가적인 상상력을 이용해 썼고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하다
<소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동성애자나, <18세 첫 경험>에 등장하는 해체된 가정에서 사는 소녀, 모두 엿장수 공연단만큼이나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도스토예프스키나 카뮈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했어요. 음울하고 우울한 인간 내면을 다룬 소설들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인간 내면의 어두운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것 같아요. 저도 좀 밝고 행복한 이야기를 썼으면 좋을 텐데.”
<소수의 사랑>은 홍석천이 커밍아웃했을 당시 집필됐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동성애에 대한 담론이 거의 닫혀 있는 상황이었다.
“순수하게 자기의 성정체성을 밝힌 홍석천은 방송에서 퇴출됐죠. 홍석천은 진실한 사람이었을 뿐인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파시즘이랄까.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트랜스젠더 하리수는 엄청난 관심과 인기를 얻었어요. 예쁘면 모든 것이 인정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죠. 사실 트랜스젠더 중 그녀만큼 예쁜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다들 인정받기 위해 수술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됐어요.”
그들의 삶을 소설화해서 책을 내기까지는 그리 녹록치 않았다. 일단 출판사에서 우려를 했다. 아직까지는 국내 정서상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어쩔 수 없이 몇몇 부분을 들어냈다.
“만일 지금이었다면 그보다 더 강하게 썼을 것 같아요. 지금에 와서는 후회하죠. 맞을 각오를 하고 좀 더 밀어 붙이고, 편견에 맞서 싸워야 했는데…. 그들에게 ‘미안하다’,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죠.”
은미희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꿈을 접었다. 아버지는 무명화가였다. 쉽지 않은 그 길을 딸이 되밟길 바라지 않았다. 작가에 대한 꿈 역시 어릴 때부터 시작됐다. 초등교 5학년 때 원고지 50매 단편소설을 썼을 정도.
“저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생활기록부마다 장래희망을 소설가라고 썼더군요. 소설에 대한 꿈은 꾸준히 있었던 것 같아요. 신춘문예 철만 되면 뭔가 쫓기는 기분이었죠. 큰언니가 국문과를 나와 집에 책이 많았고, 단테의 <신곡>이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를 읽고 자랐어요.”
성우와 일간지 기자의 이력, 작품 쓸 때 도움 돼
대학 때 전공도 문예창작이었다. 그런데 이때도 뚜렷하게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졸업 후 은미희는 4년간 방송국 성우로 일했다.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친구를 따라 방송국에 갔다가 얼결에 원서를 냈고, 시험에 합격해 성우가 됐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시작한 성우 생활이었어요.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라 굉장히 힘들었죠. 일단 성격이 안 맞았어요. 방송국은 굉장히 다이내믹한 곳이고, 자기를 내려놔야 하는 곳인데 저는 자의식이 굉장히 강했으니까요.”
4년간 CF 더빙도 했고, 라디오 방송도 진행했으며,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다. 연극은 회사에서 연기력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 때문에 시작했다. 누구에게는 선망의 직업이겠지만, 그녀에게는 맞지 않은 옷일 뿐이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그녀는 과감히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나서 일간지 기자 생활도 했다. 이 역시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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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쓰는 대로 그만큼 쌓이고 쌓이는데, 기사는 죽어라 써도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백지였어요. 열심히 취재해서 쓰고, 마감하고 나서 다음 날 또 다시 해야 하는 생활…. 나를 소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게다가 글이 나올 때가 있고, 안 나올 때가 있는데 글이 안 써지는데 마감 시간이 되면 몸부림을 쳤어요. 옹달샘에 물이 고이면 그걸 바득바득 긁어서 퍼내는 시간이었어요.”
결국 1년 만에 기자 생활을 그만뒀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적응이 되면 정말 그만두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었다. “더 적응되기 전에 그만두자” 하고 신문사를 나왔다.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우와 기자로 보낸 그 시간들은 지금 그녀의 소설 속에 살아 숨 쉰다.
“소설은 다양한 캐릭터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작가들은 일부러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든지 체험을 하기도 하죠. 그때의 경험들이 다 도움이 돼요. 글만 썼으면 몰랐을 세계죠. 그때 동기들이요? 지금은 모두 국장급에 있더군요.”
은미희 작가는 일본 고베로 떠날 준비 중이다. 그곳에 2년 정도 머무르면서 글을 쓸 예정. “그 전에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하고 질문을 던지자, “그럼 안 간다”라며 웃는다. 역시 그녀의 순정은 유효했다.
은미희의 골뱅이무침
재료 골뱅이(캔 골뱅이), 당근, 양파, 피망, 양배추, 오이,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설탕, 식초, 참기름, 깨
만드는 법 1 골뱅이를 캔에서 꺼내 씻어 적당히 썬다. 2 당근, 양파, 피망, 양배추, 오이를 각각 적당한 크기로 썬다. 3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설탕, 식초, 참기름으로 양념장을 만든다. 4 채소와 골뱅이를 넣고 양념장에 무친다. 5 깨소금을 뿌린다.
/ 여성조선 취재 두경아 기자 | 사진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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