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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신년감사예배로 우리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올해 우리 교단총회에서는 영적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 되게 하소서 이 주제를 붙잡고 나아갑니다. 영적부흥이란 우리가 섬기는 영적부흥으로 거룩한 교회가 되어야하고 외적으로는 민족을 위한 교회, 민족의 소망이 되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민족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먼저 한국교회에 영적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영적부흥을 일으켜 주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합니다. 교회의 침체현상이 너무나 급속하게, 그리고 다음세대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교회를 다시 살리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에 빠진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세속주의적인 문화의 확산이 교회를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TV와 인터넷 등 대중매체를 통해서 물질주의와 향락주의의 문화가 한국백성들과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들 중의 일부는 반 기독교적인 대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단들도 교회를 공격합니다......... 어떤 언론들은 반기독교적인 기조에서 기사를 내 놓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가 교회 외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위기는 우리 그리스도인 자체입니다. 우리를 보세요 영적생활이 너무나 침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예배생활, 기도생활, 전도생활, 봉사생활이 모두 약화되고 있습니다....... 영적생활이 약해지니, 전도의 동력이 상실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교회 영적부흥은 점점 쇠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찍이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합3: 2......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그렇습니다. 하박국선지자의 기도제목처럼 부흥은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야만 가능합니다...... 부흥은 우리의 어떤 계획이나 캠페인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부흥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언제든지 부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며, 합심해서 기도할 때, 우리의 제단에도 영적인 불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마치 암울했던 엘리야시대 때 갈멜산에서 바알신과 싸워 이겼던 불의 응답이 이루어져 져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예수님이 천사보다 우월하시고, 모세보다 우월하시고, 위대한 대제사장 멜기세덱보다 우월하신 것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것은 양이나 소를 죽이고, 그 피를 제단에 뿌려서, 그들의 죄가 가려지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새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영적부흥은 영원한 지도자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예수님의 영성을 따라가는데서 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수님의 고난을 짊어져야 합니다.
12절..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예수님은 두 가지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성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둘째는.....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성문 밖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까? 그곳에는 이방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문 안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성문 밖에는 나병환자들, 부정한 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병에 걸렸을 때, 부정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접근해 올 때, 물러서시오. 부정합니다-하고 외쳐야 했습니다.
성문 밖에서는 법을 어긴 자들을 처형하는 처형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문 밖에는 쓰레기 더미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희생제물의 잔해물들을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성문 밖에는 죄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죄인들에게 가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그런 치욕을 각오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 한국교회가 영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에 한국교회는 폭발적인 교회성장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동안 영적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도 처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풍부해진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은 교만하고 안일하였습니다. 교회와 교단이 분열하였고, 성장제일주의, 기복주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일부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비윤리적인 행태는 기독교의 이미지를 실추시켰습니다.
이제는 잔치가 끝났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치욕을 각오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TV 드라마나 예능을 보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는 때입니다.......이제는 놀고 즐기고 여행가는 것보다, 주님 때문에 고난 받고, 주님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생각할 때입니다......... 이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치욕을 짊어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2. 영문 밖으로 나아가야합니다.
13절...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형식적인 종교생활, 형식적인 종교제도 밖으로 나가라는 말입니다. 또는 교회울타리 밖으로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을로 나가고, 거리로 나가고, 일터로 나가야 합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이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가 선교사를 보내고, 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동안,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되, 영적무장을 단단히 하고 나가야 합니다.
스4:6하반절 .....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고후10:4....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린다고 말씀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할지 모릅니다...... “나는 몸이 약해. 나는 마음이 약해. 나는 너무 어려. 나는 너무 나이가 많아.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육신의 힘으로 나가 싸운다면, 우리는 다 실패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몸이 약하면 기도로 싸울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로 도울 수 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위한 사역에서 면제되지 않습니다.
마16:18....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우리는 교회가 우리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를 세운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고, 주님이 교회를 세우십니다.
인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만 가지고는 절대 교회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조금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전투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면, 그 사람이 영적인 전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꽃향기를 맡으며 봄바람을 즐기는 것 같지만, 그 곳에는 사방에 지뢰가 깔려있고, 적들의 총이 그를 겨누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허리띠를 단단히 조이고, 영적인 무장을 하고, 영문 밖으로 나아갑시다. 우리끼리 교회 안에만 있지 말고, 함께 손을 잡고, 세상을 향해 나아갑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면, 주님이 부족한 우리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치욕을 짊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3. 영구한 도성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4절......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우리가 이 땅에서는 영구한 도성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니요, 단지 지나가는 장소입니다. 장차 우리에게 올 도성이 있는데 그 나라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치욕을 지고 가야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 아닙니다.
배가 항구에 있으면 안전이야 하겠지만, 배는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배는 물에 떠있기 위해 만듭니다. 배는 물 위에 뜨고, 물위에서 빨리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배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 위에 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배 안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 배는 더 이상 물 위에 떠 있지 못하고, 물속으로 가라앉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도록 보내졌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 세상이 우리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때는 위험해지는 때입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 세상을 영구한 도성으로 보지 말고, 장차 올 도성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면서, 날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십시오.
4. 찬송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15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영적부흥의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제사”라는 말을 예배로 바꾸어도 됩니다. 항상 찬송의 제사를 드리라는 말은, 우리의 삶이 찬송이 되고 감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찬송은 우리가 항상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의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것을 말로 표현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의 감사가 찬송으로 계속해서 흘러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찬송은 항상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배가 주일 한번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예배는 매일 계속되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 항상 계속되어야 합니다.
솔직히 어떤 때는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기분이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가 감사하고 찬송할 때, 그 찬송은 찬송의 제사가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보시고, 우리에게 보상을 내려주십니다.
히11:6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한 가지의 상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자기를 찾는 자에게는 언제나 상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우리의 찬송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이름을 선포하는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은혜로우신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우리의 찬송은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선포가 되어야 합니다.
5. 선행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16절..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찬송의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입술의 열매이지만 선을 행하는 제사도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행함 자체가 예배라고 해도 틀리지를 않습니다.
약2:14....네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능력이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요일3: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그동안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사실 말로만 사랑합니다. 말로만 구제하고, 말로만 사랑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고, 공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내가 가진 것을 그것이 더욱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나누어 주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됩니다.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우리가 가난한 자,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도와주면, 그것이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은 「내가 갚아 주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진실한 사람인지, 우리가 얼마나 이타적인 사람인지를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 우리가 행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어떤 신앙인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영적부흥은 오직 예수님께서 친히 행하셨던 1. 예수님의 고난을 짊어지고 2. 영문 밖으로 나아가 3. 영구한 도성을 바라보며 4. 찬송의 제사를 드리고 5. 세상을 향하여 선행의 제사를 드리는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우리 그리스도인이 갈 때 진정한 영적부흥입니다.
영적 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 되게 하소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이 땅에 성령님의 불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