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은 오해가 용납되지 않는다.(1)
왜냐하면 그에 따른 결과는 그야말로 암울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마7:23)
신구약 성경의 기록이 수천 년에 걸쳐 이루어졌고, 그 기록이 끝난 지도 어언 2천 년이 훌쩍 넘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 오랜 세월만큼이나 방대해진 양을 올바르게 이해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손 치더라도 기독교 신앙의 절대적 필요에 의한
“7일 일주일”제도의 운행 기준일은 천지창조라는 명확한 사실에 근거(cf 출20:8,11)함으로 인해 오해를 살만한
어떠한 부분도 없거니와 또한 그러한 사안(事案)이 발생할 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일은 천지창조를 명분으로 삼은 안식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는 전혀 근접할 수도 없거니와 또 근접한 적도 없는 날인 일요일에 반응하는 어처구니없는 짖을
매주(每週)마다 실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럴 거면 “7일 일주일”제도엔 왜 목을 매고 있는지, 그것도 매주(每週)마다에 말이다.
정말 “귀신이 곡(哭)할 노릇”이라 더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나님깨선 우리 사람들이 아무런 시간적인 지침도 없이
무료하게 일상을 보내도록 계획하지 않으셨다. 바로 천지창조를 명분으로 삼아 7일을 한 주(週)로 엮은 뒤,
안식일이라 명명(命名)하신 한 주(週)의 끝인 제 7일을 기준으로 순환(巡還)되도록 계획하신 것이다.(cf 출20:8,11) 이렇게 하여
“7일 일주일”제도는 생겨났던 것이었다. 이 제도는 창세 때로부터 성경의 기록이 마쳐질 때까지의 수천여 년이 지날 동안 안식일이 그 기준이 된
원형(原形)의 훼손 없이 완벽히 보전되어 왔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쉽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기 132년에서 135년 사이에 당시 로마의 제후(諸侯)였던 ’하드리안‘은
토라(모세 5경)의 낭독금지와 할례의 시술 금지 그리고 안식일 준수 금지 등, 어기면 사형(死刑)이라는 금령 등을 앞세워
유대를 이 지구상에서 아예 멸절시키려고 계획한 유대 말살 정책을 발효시켜 유대를 압박하던 때가 있었는데, 결국 이러한 로마의
금령(禁令)들에 굴복한 건 유대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카톨릭의 전신)이었다.
드디어 안식일로 인해 목숨이 경각에 처해 질 위기가 닥쳐온 것이었다.
교회사를 보더라도 이때까지만 해도 안식일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음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노출을 숨기기가 용의치 못했던 안식일로 인해 유대와의 차별을 꾀할 수가 없었던 순간이 찾아오고야 만 것이었다.
이윽고 위기를 모면할 대책이 시급해졌음은 불문가지 였으리라. 로마의 눈을 피할 최고의 피난처를 찾아야만 했다. 이에 떠오른 것이 일요일이었다.
안식일을 대신할 날로 일요일 만한 대안은 없다고 판단함에 따라 비야흐로 일요일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이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 한 건 양의 탈을 쓴 이리 그러니까 기독교를 가장(假裝)한 카톨릭이었고,
일국의 황제도 교황(敎皇) 앞에선 별다른 맥을 못 추던 중세기를 장악한 것도 카톨릭이었다. 이들에 의해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일은 일요일로
변형(變形)이 된 체, 수많은 개신교에 까지도 오염시킨 나머지 오늘날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cf 출20:8,11)을 철저히 외면한 “사람의 계명”(사29:13; 마15:9; 막7:7)으로서
명백한 “불법”(마7:23)이 아니고 무엇이랴!
- 김종성 -
첫댓글 작금의 전 세계의 모두가 “7일 일주일”제도에 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유대교와 극소수의
기독교 단체를 제외하곤 목숨이 경각에 처한 위기를 모면키 위해 카톨릭이 변형(變形)시킨
일요일을 기준으로 “7일 일주일” 제도에 따르고 있다. 천지창조를 명분으로 삼은 하나님의
방식(cf 출20:8,11)에는 따르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성경해석은 오해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해의 결과는 암울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cf 마7:23) 성경이 가르키는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일은 천지창조를 명분으로 삼은
안식일뿐이지(cf 출20:8,11) 일요일은 “7일 일주일” 제도의 기준일에 도무지 해당 되는 날이 아니며,
또 될 수도 없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