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교수의 깨달음의 과정을 진솔하게 표현한 자서전 성격의 글이다.
송광사에서 미국 롱 아일랜드까지 그리고 홍천 봉화 부산 안국선원 까지 자신이 화두를 들고 마음의 깨달음을 위해 매진했던 경험을 글로써 표현함으로 우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했던 진심을 느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설파한다.
그는 도를 득하고 중생에게 어떤 책임감을 느끼는것은 이타심이고 세상을 고통에 살아가는 이를 위한 설파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부처의 마음과 동일하다. 그가 진여를 보게됨으로써 얻는 것은 중생을 위한 길이였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마음의 불안을 극복하지못해 방황하다가 진리를 보고자 했던 그는, 마치 석가가 출가할때 느꼈던 고통과 번민을 생각하게 된다.
처음 송광사에서 수련을 하던 날, 출가 4박5일 참 나를 찿아서 , '밖에서 찿지 말라' 는 플래카드가 나를 맞이했다고 한다. 그 플래카드가 사살은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알파요, 오메가 였던 것이다.우리는 밖에서 진리를 구하려고 온 천지를 찿아다니지만 결국은 안에서 구해야 되고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을 책을 다 읽어 갈 때면 우리는 마음으로 느낀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깊은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참 나를 아는 것이 최상의 일이다. 지금까지 입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는 뜻에서 나는 묵언 하겠습니다.
소음조차 자기가 어떤 자세로 어떻게 듣는가에 따라 들리기도 하고 들리지 않기도 한다 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러나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달랐고, 느끼는 것과 깨다는 것은 또 달랐다. 내가 대상에 대해 초연해졌다고 의식하는 것과 스스로 초연해지는 것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분별적 감각으로부터진정으로 해방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우며 또 쉬운가 ?
성성적적
아 나는 지금 죽어도 좋다. 속으로 되뇌었다. 이 맑고 밝은 세상의 소생을 지켜보았고,세상 만물이 강벗이 축복다는 소리를 듣고 그 모습을 보았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은 없다.
아무리 사소한 대상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내가 부여하는 의미가 커질수록 그 대상에 얽매이는 정도도 심해지는 것이 아닌가?
이 통증은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닏. 이 통증을 느끼는 주인은 실체가 없다. 통증은 내 지각이 만들어 낸 것이고 내 지각은 내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은 이성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깨달음의 차원이라는 것은 분명해졌다. 깨달음의 출발이 불법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믿음을 발판으로 하여 정견을 획들하고 수행하여 깨달음으로 나아가야 하리니,나는 그때를 맞이하기 위해 한순간 치열하게 오랜 세월 오롯이, 아니 이생이 그냥 끝나면 다음 생에서도 더욱 정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예감은 참 편안하고 뿌듯한 것이었다.
인연을 만나면 마음에 작용이 일어나고 , 인연이 사라지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만약 이 마음이 부처라는 것을 믿지 않고 마음이 따로 있다고 집착하여 수행하고 추구한다면, 이것은 허망한 일이며, 도와는 어긋날 것이다. 이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중생이다. 다른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요, 다른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중생이 될때 이 마음이 덜어지는 것이 아니고, 부처가 될때 다른 마음이 덧붙여지는 것도 아니다.
화두로서 사용되는 말들이 있다.
'부처는 똥 막대기'
'조사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 뜰 앞의 잣나무 '
' 이 송장 끌고 다니는 이것이 뭐꼬?'
저자가 화두를 통해서 얻은 결론적인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부터 물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라' ' 집착하지 마라' ' 얘써 공부할 필요도 없다.' '경전도 보지 마라'
그는 도를 득하기 위해서 그리고 견성을 보기위해서 돈오점수 돈오돈수를 배우고 익히며 송광사에서 홍천 그리고 봉화 금봉암까지 몇년간을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화두를 들고 수양에 들어간다. 그 목차를 보는 것 만으로도 포스를 느낄 수 있다.
흐르는 물의 가르침 - 송광사 2001
파도가 된 나- 거금도 송광암 2003
유리창의 줄탁동시- 롱아일랜드 2010
고향 땅 포구나무 화사한 빈방- 부산 안국선원 2012
허공꽃- 송광사 대중공양 2016
벽암록 공부하러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봉화 금봉암2017
무문관- 홍천 행복공장 2018
우리는 진리를 찿기위해서 종교를 따라가고 철학을 배우고 윤리와 도덕과 덕성을 찿기위해서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을 가지고 진리에 근접하려고 인간은 노력한다. 어떤 이는 예수를 찿아서 구원을 얻어 기쁨으로 생활에서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성경을 인생의 진리라고 생각하고 가슴 기쁘게 살아간다.
어떤 이는 인간적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스스로 빛을 밝히고 자신을 등불삼아 진리를 보고자 부처에 귀의 한다. 사성제와 팔정도를 인생의 등불로 삼아 정진하고 수양한다. 어쩌면 기독교가 신이 우리에게 내려와서 구원을 안겨준 것이라면 불교는 인간 스스로 지혜를 찿아가는 어쩌면 철학인지도 모른다. 도교 유교 이슬람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조로아스터교,등 인간 세상의 수 많은 종교가 또한 진리를 찿기위한 지난한 몸짓이다.
저자는 이 많은 진리를 구하는 길 중에 스스로 체험하고 화두를 가지고 수양하고 정진한 실 체험을 우리에게 남겼다.
실로 대단한 가치를 지닌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마타니와 위사빠나 수양법을 가지고 실천하는 방법들 , 그리고 화두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기도하면서 참선에 들어가나 그리고 실 생활에서 어떻게 젹용하고 살아가는가 ? 하는 실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나는 이책을 24년 추석을 맞이하여 오사까성 교토 청수사 나라 청수사 춘일대사 보는 중에 탐독을 했다. 숙소가 좁고 시끄러운 중에서도 밤에 이책을 읽으면서 불교에 흠뻑 심취해던 기억이 새롭다. 종이가 가벼워 비록 두꺼운 책이라 느끼지만 손에 잡는 감촉이 좋고 가벼워 줄을 그어가면서 읽었다.
지금은 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부는 늦은 저녁무렵이다.
귀뚜라미 소리가 벌써 가을인가 하는 기분을 재촉하는 것 같다.
세상에는 책도 많고 읽을 꺼리도 많아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는 책의 선택은 신중히 하고 정독을 하면서 눈의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좋은 책을 천천히 읽고 다시 한번 더 읽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짧은 우리 인생을 알차게 보내는 독서습관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