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서 만나는 침묵
― 마크 로스코, 《로스코 채플 벽화들》
마크 로스코, 《로스코 채플 벽화들(Rothko Chapel Murals)》, 1964~1967, 캔버스에 유채, 로스코 채플 소장.
① 어떤 슬픔은 형태를 가지지 않는다
슬픔이 너무 깊어지면 인간은 끝내 말문을 잃는다. 터져 나오려던 통곡은 목울대 뒤로 가라앉고, 세상의 소음은 아득히 멀어진다. 깊은 정적만이 마음을 감싸는 순간이 있다. 그때는 누군가의 슬픈 표정도, 극적인 서사도 오히려 마음을 어지럽힌다. 설명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하고, 이야기는 상처를 대신 말해 줄 수 없다.
그럴 때 사람은 비로소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화면 앞에 오래 머물게 된다. 말보다 침묵이, 형상보다 여백이 더 깊은 울림을 전하는 순간이다.
마크 로스코가 남긴 로스코 채플은 바로 그러한 침묵을 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그림은 무엇을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오래 머물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
② 어둠이 품은 다채로운 색, 로스코 채플의 비밀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로스코는 거대한 화면 위에 겹겹이 쌓인 색면만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단순한 추상화로 이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림은 어떤 경험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로스코에게 회화는 감상을 위한 대상이 아니라 관람자가 직접 들어가 마주하는 하나의 공간이었다.
1964년, 그는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세워질 초교파 명상 공간을 위해 대형 벽화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모두 열네 점으로 이루어진 이 벽화들은 그의 생애 마지막 작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지만, 그는 1970년 세상을 떠났고 1971년에 문을 연 로스코 채플을 끝내 보지 못했다.
이 공간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대개 화면을 뒤덮은 짙은 자주색과 갈색, 검은빛에 가까운 색조 앞에서 당혹감을 느낀다. 그러나 한동안 시선을 머물고 있으면 단조롭게 보였던 화면 안에서 미세한 색의 떨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수많은 색이 겹겹이 스며든 깊은 층위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로스코가 세상을 떠난 이후, 이 벽화들을 그의 말년의 절망과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은 이 작품을 단순히 절망의 표상으로만 읽는 데에는 신중하다. 로스코 채플은 죽음을 향한 공간이라기보다,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고독과 침묵, 그리고 명상을 위한 공간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③ 말할 수 없는 것을 품는 침묵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 문장은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라는 선언인 동시에, 인간의 삶에는 말로 끝내 다 담아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깊은 통찰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그렇다. 그리움도, 후회도, 사랑도 결국 몇 마디 말로는 다 전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로스코의 그림은 비트겐슈타인의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화면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그저 침묵 속에 머물며, 관람자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마주하도록 기다린다.
그 침묵은 공허가 아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슬픔을 있는 그대로 머물게 하는 가장 깊은 환대이다. 위로를 서두르지 않고, 눈물을 재촉하지도 않으며, 고통을 해석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 이 마음이어도 괜찮다'고 말없이 곁을 내어 주는 공간이다.
④ 침묵은 사랑이 머무는 또 하나의 자리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를 안고 살아가는 집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공간이 된다. 익숙했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함께 나누던 일상의 소리가 멎은 자리에 적막이 천천히 내려앉는다.
처음에는 그 침묵이 견디기 어려운 공허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그 고요함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 오래 머물고 있는 자리라는 사실을.
로스코 채플에서 짙은 어둠이 오래 바라볼수록 새로운 색을 드러내듯, 애도의 침묵 또한 오래 견딜수록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그 안에는 함께했던 시간의 온기가 있고,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으며, 오늘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조용한 힘이 스며 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하나의 로스코 채플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방, 눈물을 애써 감추지 않아도 되는 시간, 떠난 이를 가만히 기억하며 자신 또한 조용히 살아 있음을 느끼는 내면의 공간이다.
언어는 어느 순간 멈추지만, 사랑은 침묵 속에서도 오래도록 말을 건넨다. 어쩌면 인간은 그 말 없는 사랑을 가슴에 품으며, 오늘도 삶이라는 긴 여정을 다시 걸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 작품 캡션
초교파 명상 공간인 로스코 채플을 위해 제작된 14점의 대형 벽화 연작이다. 구체적인 형상과 서사를 모두 덜어낸 깊은 색면을 통해 인간의 고독과 명상, 침묵의 깊이를 탐색한 로스코 예술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첫댓글 “그림은 어떤 경험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다.”
언어도단 심행처멸, 말길과 마음길이 끊긴 자리에서 만나다.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마크 로스크의 그림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고맙습니다.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