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갈 겁니다. 10시 50분에 차를 타면 12시에 도착한다는군요.”
아차, 며칠 전 누군가 전화하셔서 황골농장에 방문하신다고 하셨는데 깜빡 잊고 있었군. 요즘은 아차라는 말이 꽤 자주 나온다. 뭣 때문에 바쁜지 농사일이 없는 농한기인데도 바쁘다. 3일전인가, 님의 전화를 받고 화요일 정도로 약속을 했었는데 바쁜 생활에 묻혀 그냥 잊고 있었다.
“예. 터미널에 도착하시면 전화하세요.”
직장에서 3시간의 외출허락을 받았다. 12시쯤에 터미널에 차를 대려고 출발했는데 10분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다. 하도 궁금해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니 이 또한 착신이 되지 않는다. ‘혹시 내일 오신다는 이야길 잘못 들었나?’ 하도 정신이 산만하다 보니 잘못 들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다시 직장에 들어와 점심을 먹고 님의 휴대폰에 문자를 넣었다.
‘내일 약속인 걸 오늘로 착각했는지요? 전화부탁드립니다.’
문자넣고 일 분도 되지 않아 님의 전화가 왔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택시타는 곳 옆에 공중전화부스 옆에 있다고. 고속버스 터미널 외부에는 공중전화부스가 없는데...
“5분 정도 기다리십시오. 빨간색 티코입니다.” 님은 브라운색 점퍼에 지팡이를 드셨다고 한다. 싸게 달려서 원주고속 터미널에 도착하니 택시타는 곳은 있으나 역시 공중전화 부스들은 없다. 님이 시외버스터미널에 계시는 게로군.
차를 돌려 우산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연세가 육십이 넘으신 분이 필자의 차를 알아보시고 손을 흔드신다. 반가운 마음에 차에 태우고 점심으로 버섯칼국수를 접대했다. 용인 사시면서 모 카페에 감자바위를 닉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신다고 한다.
“닉을 감자바위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은 사정상 용인에 살고 있지만 강원도에 대한 그리움에 감자바위라고 정했지요.”
“요즘 버스비가 많이 올랐을 텐데 그냥 주문하시지 않고 직접 오셨습니까?”
“황골농장님의 농사모습을 한번 보고 시골에 빈집이 있으면 전세살면서 조그만 텃밭농사를 하고 싶어서 일부러 왔지요.”
“아이구 그런데 감자바위님께 보여드릴 게 없어서 어쩌지요?”
내심 당황스럽다.
작물이 서 있는 여름이나 가을이면 콩들이 풀들과 함께 자라는 모습들을 보여드릴 수 있으련만 추수가 끝난 황량한 밭을 보여드리기엔 다소 멋쩍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집에서 귀족서리태 12kg와 샘플로 흑청콩과 작두콩 한 줌을 드리고 가현동 밭으로 모시고 갔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반질반질하게 깔린 산길로 올라가는데 감자바위님이 적잖이 무서워하신다. 시골에 살다보면 얼음길로 차를 몰고 가는 것이 별일도 아니지만 도회지에 계시던 분들께는 또 하나의 공포일 게다.
가현동 밭에 도착하니 황량하기 그지없다.
미처 녹지 않은 잔설들이 있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밭 한가득 몰아친다. 그래도 지난 가을에 뿌려놓은 호밀싹들이 발아하여 불그죽죽하게 다른 풀들과 함께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생명들이 겨우내 엎드려 있다가 꽃피는 3월에 다시 소생하려 봄을 기다리는 모습들이다.
감자바위님은 사모님과 함께 정년퇴직하신 후 소일거리를 찾고 계신다고 한다. 시골인심 좋은 강원도로 내려오고 싶다고 하신다. 그런데 강원도 인심이 감자바위님의 기대만큼 좋을지는 모르겠다.
필자가 내가 농사하는 가현동만 해도 그렇다.
밭 아래에 과수원 농사를 하시는 할아버지 내외가 두릅나무를 길 양옆에 곱게 잘 길러 놓았는데 이른 봄 두릅철만 되면 도씨들이 두릅순을 몰래 잘라간다. 과수원 옆에 밤나무 단지가 있는데 외지인들이 들어와 밤을 주워가는 것이 아니고 밤을 털어간다. 그것도 모자라 돗자리 피고 삼겹살 구워 술한잔 먹고 놀다 그 쓰레기를 그냥 내버리고 간다. 흉물스런 쓰레기 짐들을 인심좋은 시골분들에게 떠맡기는 얌체짓을 곧잘 한다. 어느날 갑자기 과수원 들어가는 길목에 쇠말뚝을 박고 쇠사슬을 묶고 자물통을 채웠다. 외지인 단속용인 것이다.
감자바위님이 강원도 어느 골에 안착하신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외지인 대접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처음 귀촌하셔서 동네분들과 얼마나 빨리 동화되어 가느냐가 관건이겠지. 감자바위님을 시외버스 터미널에 모시고 돌아서는데 님의 부탁이 뇌리를 다시 때린다.
“시골에 텃밭 딸린 빈집이 있으면 소개해 주오.”
이골저골 동네 이장님에게 수소문하면 텃밭 딸린 집이야 구할 수야 있지만 좋은 시골 인심까지 세트로 소개해 드릴 수는 없겠지. 도시얌체가 사라지면 각박한 시골인심도 예전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처럼 오신 감자바위님께 황량한 밭과 각박해져 가는 시골인심을 보여드린 것 같아 씁쓸한 하루였다.
어유 추워!
첫댓글 쥔장께서 손님대접 잘해드렸네요 감자바우님께서는 평생 잊지않으실겁니다 이제는 연고지가없으면 귀촌.귀농하기 어렵습니다 혹.연고지가있어도 체면때문에 결정하기어렵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공부도 많이해야합니다 참으로 좋은일하셨습니다 제가 찿아뵈도 부담이없을것같습니다 늘건강하십시요.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전 강원도 원주 초상집에 한번, 설악산 한번 요렇게 가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