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길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강 가에 스며든 가을빛이 한결 위안이 되어 줍니다.
구영리 지나 다운동쯤 올 때는 발목이 시큰거리고 다리도 결리고 했습니다.
삼호교 지나 국수집에 들러 국수 한 그릇 먹으리라는 마음을 희망으로 삼아 힘든 걸 참고 걸어 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태화강 언저리에 묻어나는 가을빛을 몇 컷 담아 보았습니다.
코스모스입니다. 가을빛이 가장 화사한 게 바로 이 코스모스지요.
강을 배경으로 서 있는 코스모스가 한결 예쁘군요.
코스모스는 그 이름으로 보아 우리나라 종이 아닌 듯한데,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꽃 중의 하나가 된 듯합니다.
이 꽃의 어떤 특성이 한국인들의 마음에 들었을까요? 그저 수수하기만 한 이 꽃이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봄꽃들을 정리해 본 적이 있군요.
한국인들은 봄꽃 중에 유난히 복숭아꽃, 살구꽃, 배꽃, 진달래꽃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한국 문학 작품에 나오는 꽃들이 대개 이런 꽃들입니다.
<복숭아꽃 살구꽃은 저녁 햇살 속에 피어 있고>,
<배꽃에 달빛이 하얗게 비친 밤에 은하수는 삼경으로 기울었는데>,
<배꽃에 봄비가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생각하면 한없이 나옵니다.
대개 이 꽃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기보다 다른 것들과 어울려 아름답습니다.(저녁 햇살, 달, 봄비 등)
그리고 이 꽃들은 한두 송이로 아름다운 게 아니라 수십 송이, 수백 송이가 어우러져 아름답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는 꽃이 아름다워 처연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고 보니 코스모스가 이런 한국 봄꽃들의 속성과 다소간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혼자서는 수수하지만 수백 송이가 어우러져 피면 꽤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리고 그 꽃 자체로 예쁘다기보다 가녀린 여인과 함께 있으면 더 예쁘지요.
여학생들이 가을소풍 때 코스모스 꽃밭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예뻐 보입니다.
그 가냘픈 모습들이 코스모스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더군요.
오늘 여기서는 강 가에 핀 모습이 아름답군요.
다운동 근처에 이르니 온통 노랑 꽃밭길이 나오는군요.
코스모스의 변종 같은데, 주황색 짙은 빛이 특이합니다. 가을꽃에만 이런 빛깔이 있지요.
지나고 보니 사진을 놓쳤는데요. 자세히 보면 길섶에는 흰 꽃들도 많았습니다.
대개 흰 꽃은 낮게 피었고, 주황색 꽃은 높에 피더군요.
그리고 꽃 사이로 나비가 날아다니는데, 글쎄 내가 단순화시켜 봐서 그런지 몰라도
내 눈에는 흰 나비는 주로 흰 꽃에 즐겨 앉고, 노랑 나비는 노랑 꽃에 즐겨 앉는 듯했습니다.
20초 정도의 관찰을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한순간 신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배가 너무너무나 고파서 더 길게 관찰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사진 순서가 잘못된 듯싶은데요.
선바위 떠나 얼마 안 돼 찍은 사진 같아요. 오다가 뒤쪽을 한번 돌아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우연히 돌아다본 길, 내가 지나온 그 길에 가을빛이 따사로운 느낌으로 배어 있네요.
참 좋은 날입니다. 좋은 산책길이구요.
언제나 길을 가다가 뒤돌아보면 내가 지나온 그 자리에 내가 찾던 것들이 있어요. 그 때는 몰랐던 것들....
저 햇살, 저 나뭇가지, 저 하늘, 저 구름....
저것들을 보려고 이 길을 나섰던 건데, 저 길 걸어오면서는 왜 못 보았을까요?
분명 빛의 장난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볼 수 없고, 꼭 지나온 뒤에 뒤돌아보아야 보이는 것들...
오다 보니 길섶 한모퉁이에 외로운 가을이 앉아 있어요.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길섶 한모퉁이에...
정성스레 스마트폰을 대고 조심스럽게 담아왔습니다.
뉘 집에 타작이라도 하는지, 잘 익은 곡식 냄새가 나는 빛깔입니다.
그럭저럭 다운동도 지나고 삼호교도 지나 늘 즐겨 다니던 국숫집에 들러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웠습니다.
시원한 김치국물 같은 비빔국수의 맛이 입 안을 감치더군요. 훗딱 한 그릇 비우고 다시 강변을 나섰는데...
갈 때 눈여겨 보았던 강 가의 물억새가 반갑네요. 아직은 억새꽃이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두 주만 지나면 이 억새들도 눈부시게 하얀 빛을 내뿜겠지요..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니 배고픔은 가시는데, 피곤기는 더하네요.
그래서 한참을 걸은 뒤에 스타벅스에 들렀습니다. 따끈한 커피 한잔 생각이 간절해서요.
까페 아메리카노 작은 머그잔에 4,100원. 잔이 좀 더 크면 4,600원이고, 아주 큰 잔은 5,000원이 넘네요.
평소 밥 한 끼 값에 버금가는 스타벅스 커피값에 분개하는 글을 써 왔으면서,
오늘 이 피곤기를 풀어줄 까페 아메리카노에 대한 갈증 앞에서 나는 무력하기만 합니다.
고소한 듯하지만 무어라 딱 집어 표현하기 힘든 그 풍취를 코끝으로 느끼면서 커피를 한 모금 넘기니
오늘 긴긴 산책의 피곤이 다리 끝으로 스르르 풀려 나가는 느낌이네요.
찻집 1층의 자리에 앉은 이는 나뿐이었습니다.
다들 강변에서 마시려고 커피를 갖고 나가더군요.(테이크아웃이라는 게 그거죠?)
아니면 아예 넓은 창가에 앉으려고 커피를 갖고 2층으로 올라가든지...
나 혼자 1층 작은 탁자에 앉아 마시고 있으니 오히려 고즈넉해서 좋았습니다.
작은 잔이라 해도 머그잔은 제법 커서 오래 마실 게 있네요.
사진 속 찻잔에서도 향기가 느껴지나요? 그 따스한 온기도?
근래에 드물게 느낀 좋은 커피 향이고 또 맛이었습니다.
상황에 따른 효용가치란 게 절절히 느껴지는군요.
찻집을 나와 강변을 벗어날 때쯤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가을빛이 있었습니다.
소란스러운 도심 가까운 곳이지만 사진으로 담아 보면 또 다른 느낌이 있을 듯해서 담아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길이 멀고 힘드는군요.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매치에서 함양까지가 30리인데, 그 길을 걸어서 갔다가 오곤 했습니다.
그보다 조금 더 먼 길일뿐인데, 이렇게 힘이 드나 싶어 좀 서글퍼지네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 씻고 한숨 자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숨 자고,
저녁엔 지인과 문어 안주로 술 한잔 나누고,
다음날인 오늘, 그러니까 연휴 첫날.. 어제 소풍날 남는 시간에 엮어 본 태화강 가을빛을 정리합니다.
울산에서 바람재
첫댓글 존경하는 서상호 전회장님
잘 들 지내시나요 ?
잘 지내지요. 저 하늘 빛, 구름 빛, 코스모스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