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를 끌면서 투어 오시는 분들이 선덕여왕 촬영지를 묻곤 하는데, 정작 그분과 관련된 유적지나 능을 묻는 분은 없다. 하기사 경주에 사는 나도 선덕여왕의 능을 안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삼국유사에 여왕의 유언에 따라 능을 낭산 도리천에 썼는데, 도리천은 불경에 사왕천 위에 있는 곳으로 훗날 여왕의 능 아래 사천왕사가 들어선 걸 보면 여왕이 예지력을 가진 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천왕사는 길가에 있어 오며 가며 자주 보고, 또 지난 번 서목탑 드잡이 행사에 초대되어 가보기도 했으면서 거기서 지척에 있는 선덕여왕의 능은 왜 갈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지난 겨울에 문득 가보고 싶어져 남편과 둘이 능을 찾았다.
그런데 사실 표지판만으로는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길찾기가 쉽지 않았다.
누군가의 무덤 사이를 지나 얼마를 오르니 거기 덩치만 큰 볼품없는 능이 하나 보였다.
여왕의 능은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흙더미를 올린 것이 문외한인 내 눈에도 왕의 무덤치고 너무 초라해 보이는 거다.
왜냐하면 다른 왕릉엔 무덤 주위를 돌판으로 돌리고 그 위에 12지신상을 새기는 등 정성을 다 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려진 듯 외진 곳에 누운 여왕의 무덤이 나를 너무 속상하게 했다.
마치 내 자신이 홀대를 받은 듯해 화가 치미는 거다.
아무리 후사가 없다해도 여왕의 업적이 얼마인데 이런 대접을 받는단 말인가?
우리가 잘 아는 첨성대나 분황사 그리고 황룡사 9층탑 등이 모두 여왕 시절에 세워진 것들이다.
그런데 일개 장군인 김유신의 묘보다 못하며 그나마도 찾는 이도 없는지 오르는 길조차 제대로 닦여있지 않은 걸 보니 왠지 분한 마음이 들어 씩씩거렸더니 남편은 그러는 내가 우스웠던 모양이다.
내 스스로도 좀 쑥스러워져 " 괘씸한 것들, 누가 내 무덤을 이 꼴로 만들어 놨어?" 하며 웃고 말았다.
며칠 전 친분이 있는 수녀님이 전라도 광주에서 내 얼굴 한번 보시겠다고 먼 길을 달려 오셨다.
불국사나 석굴암 말고 좀 더 특별한 걸 보여드리고 싶어 선덕여왕릉에 가보자고 했다.
그러면서도 보고 혹 실망하시지나 않을까 좀 망설여지기도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능으로 오르는 좁은 길이 어느 새 차 한대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넓어져 있고 능 바로 아래에 차 몇대는 세울 수 있는 주차장도 닦여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왕의 능을 찾는 차들이 줄을 잇고 있는 걸 보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능 주변도 손을 보았는지 넓고 평평해졌고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보기가 훨씬 좋아졌다.
표지판도 새로 세웠던 모양이다. 선덕여왕의 본명이 김덕만이라고 굳이 쓴 걸 보니 매스컴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는 드라마에서 처럼 김덕만이 쌍둥이로 태어나 바리대기처럼 부모에게 버려졌다가 나중에 화랑이 되고 김유신과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다는 기록은 없다. 필시 허무맹랑한 작가의 상상일테고 혹 시청자 중에 그걸 실제 역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우려되기도 하지만 요즘 여왕님께서 능을 새단장하시고 손님 맞이에 바쁘신 건 드라마의 덕을 톡톡히 본 거라 생각하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 선덕여왕은 오십이 넘어 아버지 진평왕의 왕위를 계승했으며, 화랑세기에는 언니인 천명공주가 아들 김춘추의 아버지인 김용수공과의 사랑을 택하는 대신 현명한 선덕여왕에게 왕위를 양보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신라 27대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은 어느모로 보나 여느 왕들에 못지 않은 훌륭한 왕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제 묻혀있던 여왕의 면모와 업적이 다시 한번 역사 위로 드러나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기뻐서 그런지 선덕여왕릉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 참에 헬스투어 코스에 선덕여왕릉 참배를 끼어보면 어떨까?
첫댓글 네이버 오빠야는 정말 간단 명료 하게 설명 했더군요...ㅜㅜ 그래서 전 도서관에 가서 책 빌렸습니다.(읽고 있는중!!!)
책 읽으시고 독후감 부탁해요~
느티나무님 덕분에 평소 궁금했던 선덕여왕 공부 많이 했어요. 담에 꼭 한번 릉 에가보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꼭 모시고 갈게요.
요즘 느티나무님 글이 살아움직이는것 같아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ㅎㅎ 혹여 선덕여왕 환생아닌지...
선덕여왕을 사랑하는 여인네들 누구나 선덕여왕의 환생이라 생각하는 것 같더라구요.ㅎㅎ
여왕의 현명한 면모와 업적에 반해서 무심하게 세인들의 관심에서 밀려났던 초라한 선덕여왕의 능이 이제서야 제대로 빛을 보는 건가요... 느티나무님 저도 그동안 선덕여왕의 능을 왜 저렇게 볼품없이 놔두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젠 주위의 소나무와 보기좋게 어우러지게 단장하였다니 기쁜 소식이네요 선덕여왕 (덕만공주) 능 주변에 사계절 볼 수 있는 자태 고운나무도 가득 심었으면 더 좋겠죠
아직은 삭막해요. 예쁜 꽃나무를 심어 드리자고 시장님께 건의해 볼게요. ㅎㅎ
시장님여왕의 능이 좀 화사해야죠 설렁하면 싫어요...
경주를 사랑하시는 느티나무님께 박수를....
선덕여왕을 매우겨 보는 시청자로서, 보면서도 능이 어디에 있는지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가까운 시일내에 한번 가 보고 싶네요 경주에 오랫동안 살면서 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참으로 러운 마음도 드네요
전광석화님 오랜만이예요. 우리 선덕여왕님 팬클럽 만들어 볼까요?
다음에 경주 가면 꼭 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