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보이는가
김영미
3주째다. 많이 피곤하다. 그런데도 지금 가구를 사려고 남편과 함께 매장에 들어왔다. 넓은 매장에 소파와 식탁, 침대가 전시되어 있었다. 바로 옆에서 젊은 남녀는 손을 잡고 양쪽으로 침대가 늘어서 있는 가운데를 천천히 움직이면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는 매트리스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등을 머리 부분에 기대고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여자는 그 반대편 매트리스 위를 양손과 엉덩이로 매트리스를 튕기며 난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왼쪽으로 나의 남편이 가구들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남편은 매트리스에 대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질문하면서 누웠다 일어났다 하면서 직원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자니 더 피곤해서 난 쇼파 위에 앉아 기대었다.
마음속으로 ‘이건 아닌데’ 생각하는 중에 입구 쪽이 시끌시끌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나가던 여자가 낮은 장식장 위에 무엇을 만지작거리면서 ‘이거 왜 이렇게 놓은 거지? 이렇게 놔야하는데’ 허리를 살짝 구부리고 이것저것 옮기면서 하는 말이다. 나는 옆에 있는 남자와 아이들은 여자가 하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시끄러운 소리에 그 들과 상담했던 직원이 입구 쪽으로 몇 걸음 나가면서 ‘왜 그러시냐?’고 웃으면서 말한다. ‘아니오, 일부러 이런 건가’ 혼잣말처럼 하는 소리가 매장 중간쯤 쇼파에 앉아있는데 귀에 들어와 박힌다.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매장 밖으로 나가고 매장 안은 다시 조용한 말소리만 들린다. 내 남편은 여전히 직원과 상담중이다. 고객은 대개 매트리스를 고를 때는 예산, 쿠션감, 높이 순으로 비교하지 내장재가 무엇이 들어갔는지 굳이 궁금하지 않다. 그런데도 남편은 꼼꼼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물어보고 있는 중이다.
매트리스는 잠을 잘 수 있으면 되고, 식탁은 앉아서 밥 먹으면 되고, 쇼파는 오다가다 앉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남편은 쇼파에 대해서도 내장재는 무엇이고, 겉 소재는 무엇인지 물어보고 앉았다 일어났다 한다. 식탁에 대해서는 아래 다리가 어떻게 마감되었는지 위에는 무슨 재질인지 색깔의 종류는 어떤지를 물어보기도 한다.
남편은 그동안 같은 브랜드의 매장을 다니면서 몇 차례를 똑같은 제품에 대해 같은 질문을 해댄지라 이젠 궁금하지도 않다. 정해진 예산안에서 적당하게 편한 제품을 사면, 되는 데 말이다. 가구점을 돌아보니 내 안목으로는 예산안에 들어오는 제품들은 거기서 거기이다.
맘에 드는 게 없는지 입구 쪽을 향하는 남편을 따라 나도 나간다. 그러면서 문득 아까 여자가 멈췄던 곳에서 왼편을 바라보았다. 그 여자가 무엇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했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거기에는 ‘WELCOME’ 의 알파벳이 한 개씩 나열되어 있었다. W와 O의 글자에는 오리인형이 한 개씩 서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서 있었다. 마주보는 오리인형이 떨어져 있으니 서로 가깝게 붙여 놓으려고 했던 것 같다.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인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얼굴과 꾸민 옷 등의 값만 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한 것이 아닌, 그가 입고 있는 차림이나 그 옷을 돈의 가치로 보기도 한다. 그 화려함에 눈을 빼앗겨 그 사람의 됨됨이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비싼 집과 차를 타고 알만한 명품 옷을 입은 사람이라도 그 됨됨이가 형편없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한번은 알만한 집단에서 단체복을 입고 있는 한 남자를 본 적이 있다. 단정함이 풍기는 은발의 할아버지였다. 그 모습을 똑같이 본 옆의 사람은 ‘대학교수’ 같다고 했다. 그냥 그 사람은 깔끔한 외모의 이미지를 가졌을 뿐인데 어째서 드러나지도 않는 사회적 지위가 보이는 걸까?
일전에 추동에 있는 대청호 둘레길을 걸은 적이 있다. 아침 이른 시간이었다. 저 멀리 호수위에 한 마리의 오리가 뒤로 포말을 일으키며 앞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남편이 외쳤다.
“어, 영미다!”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난 웃음이 났다. 나도 그 오리를 보면서 ‘나 같다’라고 하던 찰나였다. 왜 그렇게 말했냐고 물었더니, 옆으로 눈동자를 던지며 남편이 말한다.
“사회성이 떨어져”
들어가는 소리로 들릴 듯 말 듯 하게 말한다. 꽃노래도 삼세번이라는데 옆에 있는 남편은 내가 웃는 게 좋다고 저런 농을 하곤 한다. 그런데 난 그 말을 듣자마자 푸하하하 하고 웃었다. ‘웃지 말아야 하는데 또 웃었네.’ 하면서 다시 그 오리를 보니 물 위를 나르듯이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다른 무리가 보이지 않는 그 아침에 그 오리 혼자 열심히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것으로 그 사람에 대한 기대를 한다. 내가 실망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잘못이 아닌 나의 기대에 그 사람이 부응하지 못해서이다. 사람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인격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높은 학력을 가졌다고, 비싼 차를 운전한다고, 말을 번지르르하게 한다고 그 사람의 인격이 덩달아 따라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람은 40세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도 내가 지고 있는 책임은 얼굴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을까. 우습게도 나는 답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그 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가게를 빠져 나오면서도 오늘 내내 보았던 가구들 중에서 어떤 것들을 선택할지에 대해 남편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전 같으면 나의 주장을 편하게 말할 텐데 오늘따라 얼른 결정하지 못한다. 어떤 것을 사던 기본 용도에 맞으면 되는 것인데도 말이다. 사람을 볼 때도 누구를 보던 간에 겉모습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한다. 오늘 가구점을 몇 곳 들리면서 얻은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