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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가 아시아 투어에서의 연이은 졸전으로 인해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마드리드 지역 신문 <아스>는 레알 마드리드의 도쿄 베르디 전 0-3 완패를 가리켜 '할복'이라 표현, 강도 높은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아스>는 또한 베르디가 지난 5경기 동안 23골을 실점한 팀이며, 수준 이하의 플레이로 일관한 레알 선수들이 아시아 팬들을 크게 실망시켰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이번 베르디 전 패배가 지난 2년 전부터 겪어오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문제를 '압축시켜' 보여주고 있다는 것. 물론, 무리한 투어 일정 및 낮은 수준의 동기부여, 선수들의 저조한 컨디션 등이 배제할 수 없는 요인이긴 하더라도, 최근 2년 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레알의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카시야스의, 카시야스를 위한, 카시야스에 의한
레알 마드리드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고질적인 수비불안이다. 지난 04/05 시즌, 레알은 바르샤의 뒤를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적은 실점을 기록했고, 이러한 통계적 자료는 그 동안 레알이 겪어왔던 수비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살펴봤을 때, 레알의 수비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레알 마드리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의 슈팅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지난 04/05 시즌, 바르셀로나는 38라운드 동안 총 331회의 슈팅을 허용했고, 이 중 골문으로 향하는 유효슈팅은 총 173회였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의 기록을 훨씬 상회하는 583회의 슈팅 및 348회의 유효슈팅을 허용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583회 슈팅 허용은 세군다 리가로 강등된 누만시아(19위)와 알바세테(20위)의 기록을 넘어서는 놀라운 수치다.
▲ 04/05 시즌 라 리가 상위권 3팀의 슈팅 허용숫자 비교.
1위 바르셀로나: 총 331회 슈팅 허용, 173회 유효슈팅 허용, 실점 29.
2위 레알 마드리드: 총 583회 슈팅 허용, 348회 유효슈팅 허용, 실점 31.
3위 비야레알: 총 421회 슈팅 허용, 229회 유효슈팅 허용, 실점 37.
▲ 04/05 시즌 사모라상 순위. (출전횟수-실점으로 집계)
1위 빅토르 발데스(바르셀로나): 35경기 출전, 25실점, -10.
2위 이케르 카시야스(레알 마드리드): 37경기 출전, 30실점, -7.
3위 레오 프랑코(아틀레티코): 37경기 출전, 32실점, -5.
무려 두 배에 가까운 슈팅 허용숫자(유효슈팅은 두 배를 넘는)에도 불구,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실점은 고작 2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러한 통계적인 자료는 지난 시즌 압도적인 수치로 최다 세이브 1위에 랭크되었음에도 불구, 사모라상 부문에서는 2위에 머물러야 했던 '불운의 사나이' 이케르 카시야스가 위기 때마다 레알을 여러 차례 구해냈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카시야스의 믿을 수 없는 활약을 증명해주는 또 다른 통계적인 자료도 있다. 우선 레알 마드리드가 38라운드를 통틀어 가장 많은 슈팅을 허용했던 10경기를 손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세비야 원정경기(25회), 아틀레티코 원정경기(24회), 베티스 원정경기(24회), 바르셀로나 홈경기(24회), 베티스 홈경기(23회), 사라고사 원정경기(23회), 마요르카 원정경기(21회), 오사수나 원정경기(20회), 헤타페 원정경기(20회), 레반테 원정경기(18회).
레알 마드리드가 위 10경기 동안 허용한 총 슈팅숫자는 무려 222회. 유효슈팅 또한 무려 137회로서 그야말로 '맹폭'을 당했다. 그러나 레알은 상대팀 공격수들에게 폭격을 당하면서도 고작 8실점밖에 기록하지 않았고, 10전 8승 2무라는 믿기 어려운 전과를 올렸다. 흔히 일류 골키퍼는 승점 10점 이상을 보장해준다고 말하지만, 카시야스는 사실상 혼자의 힘으로 레알에게 승점 26점을 선물한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드리드 더비'에서 카시야스를 상대로 득점할 수 없었던 토레스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난 04/05 시즌, 카시야스는 에스파뇰의 카메니와 함께 라 리가 10년 역사를 통틀어서도 길이 기억에 남을만한 '수퍼 세이브' 장면을 여러 차례 연출해냈고, 요한 크라이프 또한 카시야스야말로 레알 마드리드가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보물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카시야스가 보여준 지난 시즌의 활약은 어쩌면 1024분 무실점 기록의 보유자 페트르 체흐(첼시) - 카시야스 못지 않게 '수퍼 세이브'를 연발해냈던 - 의 그늘에 어느 정도 가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레알의 수비 조직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카시야스 없이 지난 시즌 2위는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거북이 마드리드
그렇다면 레알 마드리드가 이처럼 많은 숫자의 슈팅을 허용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느린 스피드에 관한 문제다.
03/04 시즌부터 레알의 밸런스는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에로와 마켈렐레의 대체자는 영입되지 않았고, '노장' 대열에 합류한 지단과 피구가 눈에 띄게 하향곡선을 그림에 따라 델 보스케 감독 시절부터 고수해오던 레알 특유의 '볼 점유율 축구'는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물론, 지단과 피구는 전성기 시절 만큼 빠르게 질주할 수 없다 할지라도, 결코 수비가담 자체를 소홀히 하는 선수들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공격에서 수비로,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것. 지단과 피구는 공격시 볼을 빼앗겼을 때, 또는 윙백들을 지원하기 위해 수비에 가담했을 때 반대 상황으로 전환하는데 있어 어김 없이 '속도의 문제'에 봉착하곤 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빠르지 못한 공수전환 속도는 숫자 싸움에서의 열세라는 문제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레알이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하는 속도는 상대 팀이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레알이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속도는 상대 팀이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미드필드 앞선에 위치한 선수들이 1차 저지선을 구축하기도 전에 상대 공격수들이 골문 근처까지 도달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던 것. 사무엘, 엘게라 등의 센터백들은 그야말로 중과부적, 궁지에 몰리기 쉽상이었다.
공수 전환속도가 느린 레알은 공격시에도, 수비시에도 숫자 싸움의 열세라는 문제에 직면해야 했다. 룩셈부르고 감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구를 과감히 스타팅 라인업에서 제외, 지단과 그라베센, 베컴을 나란히 허리 라인에 포진시키는 4-3-1-2(다이아몬드식 4-4-2)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다만 4-3-1-2로의 변화 및 그라베센의 가세가 팀 전체의 밸런스를 회복시키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할지라도, 레알의 수비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전술적인 측면에서 수비라인을 정돈하기에는 지나치게 시간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전환속도 문제 역시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에 띄게 수비전환 속도가 느린 레알은 아직도 측면에서 가장 쉽게 1:1 상황을 허용하는 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는 무링요의 첼시와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첼시를 상대로 측면공격을 통해 재미를 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양쪽 윙백과 1:1 상황을 맞이하는 순간, 앞선에 위치한 미드필더들의 수비가담이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기 때문. 2~3명에게 에워싸인 상대팀 측면 공격수들은 무의미한 백패스를 반복하거나 무리한 크로스를 시도할 수 밖에 없으며, 상대 선수들의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볼 소유권의 상실이란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조직적이고 전술적인 측면에서 나타나는 첼시와 레알의 커다란 차이점이다.
레알은 결국 스피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술적 재정비 및 젊고 빠른 선수들의 영입을 올 여름 목표로 삼고 있는 모습. 새로 영입된 디오고, 영입이 임박한 호빙요와 함께 뛰어난 스피드와 명석한 두뇌를 겸비한 86년생 영건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가 레알의 레이더에 포착된 대표적인 선수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4-3-1-2 시스템에서 '3'의 왼쪽 위치가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던 지단이 '1'의 자리로 복귀, 라울과 함께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밖에 호빙요의 가세가 공격라인에 어느 정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 여부에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호나우두는 여전히 현란한 발놀림과 천재적인 피니쉬를 앞세워 20골 이상을 뽑아낼 수 있지만, '전술적 기여도'와 '팀 플레이'란 측면에서는 종종 비판적인 시각에서 평가되어왔다. 소극적이고 적게 뛰는 대신 많은 골을 뽑아내는 호나우두와 적극적이고 많이 뛰는 반면 쉽게 골을 뽑아내지 못하는 라울은 그리 인상적인 호흡을 선보이지 못했고, 결국 오웬이 라울과 호나우두의 '중개자'로 투입되어야 했다.
단, <마르카>를 비롯한 스페인 언론들은 오웬이 04/05 시즌 후반기에 높은 팀 기여도를 나타냈음에도 불구,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팀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호빙요의 주전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모습을 보였다. 호빙요는 오웬과 다른 측면에서 팀 공격의 스피드를 증가시킬 것으로 - '주력'이 아닌 플레이의 스피드 - 기대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팀 스피릿 문제
루이스 피구,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데이빗 베컴, 그리고 마이클 오웬. '갈락티코'(은하계 스타)로 불리우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연달아 영입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화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팀 스피릿'에 관한 문제다.
이른 바 '글로벌 레알'로 불리우는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는 팀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레알의 유스팀 출신 수비수 프란시스코 파본은 과거 인터뷰를 통해 "락커룸에 가보면 레알 선수들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대표적으로, '갈락티코'와 '비갈락티코'로 구분할 수 있다" 라고 언급, 논란의 여지를 제공했던 적이 있다. 왈테르 사무엘 또한 "나도 내성적이고 베컴도 내성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영어를 못하고 베컴도 스페인어를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안녕' 정도의 인사밖에 나누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지난 2003년, 베컴의 입성과 함께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된 카를로스 케이로스는 비록 전술적으로 무능력한 모습만을 남기고 떠났다 할지라도, 적어도 '글로벌 레알'의 수장으로서는 더할나위없이 적합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케이로스는 영어와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를 모두 유창하게, 또는 수준급으로 구사할 줄 안다. 또한 피구, 베컴과 함께 한솥밥을 먹었던 경험을 갖고 있으며, 지도자로서의 경력 또한 훌륭한 편이다. 레알은 다개국어에 능한 케이로스가 팀 전체의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해내는 동시에, 피구와 베컴, 호나우두 등의 수퍼스타들을 하나로 융화시킬 것이란 기대감을 품고 지휘봉을 맡겼다.
그러나 케이로스는 모든 면에서 기대에 어긋나는 모습을 보였고, 한 시즌만에 경질당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이는 리버풀에 '라틴 왕국'을 건설하고 있는 라파 베니테스 감독과는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뛰어난 전술가이자 영리한 심리학자이기도 한 베니테스는 잉글리쉬들과 스패니쉬들의 의사소통 문제 해결을 위해 적지 않은 힘을 쏟아부었다. 베니테스는 전술을 지시하거나 팀 전체의 계획을 발표하는데 있어 결코 스페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베니테스와 함께 영어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구사하는 싸비 알론소 - 알론소는 대학에 입학해 경제학을 전공했던, 축구 선수로서는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 역시 루이스 가르시아 등이 영어실력을 늘려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스티븐 제라드, 제이미 캐러거 등의 잉글랜드 토박이들 또한 스페인 출신 선수들과 사생활을 공유하면서 - 이 과정에서도 알론소는 '중개자'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영어 습득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정신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알론소의 인터뷰에 따르면, 제라드와 캐러거 등은 스페인 선수들과 TV로 라 리가 경기를 즐겨보고, 토론을 하며, 게임도 함께 즐긴다고 한다. 이러한 정신적 공감대의 형성은 리버풀 선수들을 좋은 친구관계로 만들었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감격의 드라마를 선보였던 리버풀 '팀 스피릿'의 원동력은 어쩌면 위와 같은 과정에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반면 베컴은 아직도 스페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 내성적인 성격의 베컴은 입단 초기에 적극적으로 동료들에게 말을 거는 법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케이로스 감독 역시 베컴의 스페인 적응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리버풀의 스페인 선수들과는 달리 베컴에게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를 익히고, 스페인에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베컴의 사례는 곧 정신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레알 선수들 간의 '팀 스피릿 결여'를 부분적으로 보여준다. 잉글랜드 선수와 스페인 선수들 간의 의사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는 조직력 및 정신력의 부재란 측면과도 간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나는 이미 오베르마스보다도 스페인어를 잘한다" 라고 밝힌 반 보멜의 사례, 디 바이오, 피오레, 코라디 등의 입성과 함께 직접 발벗고 나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던 비센테의 경우 등과는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지난 99/00 시즌, 레알은 시즌 초반에 부상 악재와 수비 불안이 겹쳐들면서 강등권 근처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당했고, 결국 리그 5위로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그러나 챔피언스 리그에서 만큼은 라울과 레돈도, 모리엔테스, 카시야스 등이 고비 때마다 제 역할을 해주면서 팀을 유럽 정상으로 이끌었고, 이는 리버풀의 04/05 시즌 우승 못지 않은 예상 밖의 드라마였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를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끈 것은 갈락티코들의 예술 축구가 아닌, 위기 때마다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던 '팀 스피릿'이 아니었나 회상해 본다
-사커라인 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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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
150% 동감 입니다.
정말 수비진의 부재가...제일 문제인것 같군요...
정말 동감함
정말 대단하군요
하는말이 고작 "안녕".... 아~ 안되는데.... 베컴... 빨리 팀적응 했으면.......
잘쓰셨네요.. 이야.. 수비진이 문제가 있는줄은 알았지만 유효슈팅에서 저런 수치가 나오고 있는줄은 몰랏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