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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못 봐도 보고 싶은 게 자식이고, 하루만 없어도 허전하고 텅 빈 자리가 아내와 남편 자리인데, 60년이 넘는 세월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남북으로 갈라져 살아가고 있는 지구상 유일한 ‘한 민족 분단국가’, 대한민국과 북한에 사는 이산가족이 그들이다.
이념의 대립, 분단의 논리 이전에 분단으로 인해 오랫동안 사무치는 그리움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볼 일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그렇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옳겠다.
▲[사진] 철원 노동당사 / 철원 노동당사 앞에 있는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안내판. 안내판 뒤에 소이산이 보인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출발지점, 노동당사
강원도 철원군 한여울길 5코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의 출발지점인 철원 노동당사 앞에 서면 전쟁의 상흔을 모르고 자란 세대들도 전쟁이 남긴 상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앙상하게 남아 있는 철원 노동당사 건물에 검게 그을린 흔적이 역력하다. 건물 곳곳에 포탄과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총알 자국 아래 씨를 내린 식물이 올해도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등록문화재 제22호인 철원 노동당사는 광복 이후 1946년 북한 공산당의 지배 아래 이 지역주민들의 노동력과 자금을 동원해 지어진 건물이다. 철원 노동당사는 1946년에 지어져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사용했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이라는 명목 아래 1개 리 당 쌀 200가마 씩 착취했다고 한다. 건물 내부공사를 할 때는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공산당원만 출입할 수 있게 했다고 전한다.
▲[사진] 철원 노동당사 벽 총알자국 아래 꽃이 피었다 / 구(舊) 철원군 도로 원표.
북한 공산당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할했으며, 이 지역 애국인사 등을 체포하고 고문, 학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노동당사 옆에는 옛날 철원 경찰서 터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철원경찰서는 일제의 식민통치 전위기관이었다. 광복 이후에는 소련군이 주둔했다. 한국전쟁 때에도 남아 있던 건물이 지금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 터만 남았다. 철원 노동당사에서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가기 전 도로가에 옛날 도로원표가 보인다. 옛날 도로원표는 일제강점기에 철원군에서 세운 것이다. 평강 16.8km, 김화 28.5km, 원산 181.6km, 평양 215.1km 등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
옛날 도로원표에서 길을 건너면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 뒤로 앞으로 가야할 소이산이 보인다
▲[사진] 소이산 가는길 / 산길로 접어들기 바로 전에 있는 정자에서 본 풍경.
지뢰꽃길과 생태숲길
소이산은 봉의산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부터 봉수대가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매설된 지뢰로 인해 일반인들이 드나들지 못해 생태가 잘 보존됐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은 2011년 행정안전부 공모사업 중 하나였던 친환경생활공간조성사업으로 선정되어 조성된 길이다. 군부대와 춘천국유림관리소의 협조를 얻어 길을 낸 것이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안내판에 나온 길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출발한다. 안내판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도로 한 쪽 옆을 걷다가 삼거리에서 우회전 한다. 그 다음 삼거리가 나오기 바로 전에 ‘소이산 전망대’와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사진] 작약꽃. 꽃 뒤로 산으로 들어가는 계단길이 보인다 / 정자를 지나 소이산으로 들어가는 산길 초입.
왼쪽은 소이산 전망대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을 제대로 걷는 길이다. 이정표를 지나 오른쪽 길로 가면 된다. 길옆에 논이 있고 길 끝에 정자가 보인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은 지뢰꽃길, 생태숲길,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등 세 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지뢰꽃길 바로 전에 지뢰꽃 산방이라는 이름이 붙은 정자가 있다. 정자 앞에 작약꽃이 피었다. ‘미덕’이라는 꽃말을 가진 작약꽃은 꽃말답게 넉넉하게 피어 아름답다. 작약꽃 옆에 솟대가 하늘을 향해 솟았다. 오월 햇볕이 쨍쨍하다.
▲[사진] 철조망에 지뢰꽃길이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 길 옆 철조망 아래 금낭화가 피어있다.
길은 소이산으로 접어든다. 철조망 앞에 경고문구가 보인다. 철조망 안쪽은 ‘군사 통제보호구역 내 지뢰매설 지역’으로 출입을 통제한다는 내용이다. 통제구역은 철조망으로 완전히 봉쇄돼 접근할 수 없다. 지뢰가 있다는 말에 긴장은 됐지만, 길만 따라가면 안전하다는 문화관광해설사의 말로 긴장된 마음을 녹여본다.
하늘매발톱꽃과 금낭화가 철조망 아래 어울려 피었다. 무릎을 꿇고 꽃의 높이에서 꽃과 길과 철조망을 한 눈에 넣는다. 지뢰가 묻힌 통제구역 철조망 아래 피어난 꽃, 그 한 장면은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기에 충분했다.
▲[사진] 지뢰꽃길 / 길에서 만난 지뢰꽃 시비.
그리고 그 길에서 철원의 정춘근 시인이 쓴 시 ‘지뢰꽃’을 새긴 시비를 만났다. 시인은 철조망 안 지뢰밭에서 피어난 가을꽃을 보았다. 그 꽃을 꺾으면 뇌관이 터져 화약 냄새가 날 것 같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그 꽃들은 왜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나’ 묻고 있다.
▲[사진] 푸른 풀밭길이 싱그럽다 / 길을 걷다보면 군사시설물을 볼 수 있다.
군사시설물이 곳곳에 남아 있는 숲길을 지나면 정상으로 올라가는 넓은 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 700m 정도 올라가면 ‘소이산 전망대’와 ‘소이산 평화마루공원’이 나온다.
▲[사진] 숲길을 벗어나 정상으로 올라 가는길 / 소이산 전망대로 올라 가는길.
전망 좋은 곳
소이산은 해발 362m다. 낮은 산이지만 주변에 산이 없어 전망이 좋다.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를 조망할 수 있다.
소이산 전망대로 가는 나무데크 계단으로 올라간다. 전망대 앞에서 풍경을 즐긴다. 전망대에 오르면 주변 지형과 옛 건물터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 투명한 안내판에 주변 지형에 맞춰 윤곽선을 그리고 해당 지점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사진] 소이산 전망대 안내판. 전망대에 주변 지형에 맞춰 윤곽선을 그리고 해당 지점을 안내하는 내용을 적어 놓은 안내판이 있다 / 소이산 평화마루공원 꼭대기에서 본 풍경. 논 가운데 낮은 언덕 세 개가 줄지어 있는 곳이 삼자매봉이고, 그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백마고지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소이산 평화마루공원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미군이 레이더 기지로 쓰던 곳이다. 미군막사로 사용하던 건물도 있다. 한국전쟁 때에는 발칸포기지도 있었다. 방공초소와 부대시설은 최근까지 국군이 사용했던 시설물이다.
공원 꼭대기에 올라가면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가 보인다. 백마고지(백마산), 김일성고지(고암산), 평강고원, 아이스크림 고지 등을 볼 수 있다.
▲[사진] 소이산 평화마루공원 꼭대기에서 본 풍경. 사진 중앙 부분 오른쪽에 작은 언덕이 아이스크림고지다 / 소이산 평화마루공원에 있는 조형물.
1952년 10월6일 저녁 4만 명이 넘는 중국 인민지원군이 철원 북방 395고지를 공격했다. 이에 맞서 2만여 명의 대한민국 국군과 미군이 힘을 모아 싸웠다. 포병대대와 전차중대 자주포병대대 등도 동원됐다. 9일 동안 12번의 공방전을 치렀다. 전투는 중공군 1만여 명, 국군 35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10월15일 오전에 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백마고지전투에 대한 설명이다. 포격으로 인해 고지의 모습이 백마 같이 변했다고 해서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철원평야 한 쪽에 아이스크림고지가 보인다. 아이스크림고지의 원래 이름은 삽슬봉이다. 해발 219m의 산이다. 삽슬봉을 놓고 적군과 아군이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졌다. 끊임없는 포격에 산이 아이스크림 녹듯 흘러내렸다고 해서 아이스크림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사진] 소이산에서 내려와서 철원 노동당사로 돌아가는 길에서 본 하얀 새 / 철원 노동당사로 돌아가는길.
산의 생김새가 투구 같다고 해서 투구봉으로도 불렀다. 고려시대에는 삽슬봉 정산에 봉수대가 있었다. 북쪽의 평강 진촌산 봉수대와 남쪽의 할미산 봉수대를 연결하는 봉수대였다. 소이산 정상에서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인 백마고지와 아이스크림고지 그리고 넓게 펼쳐진 철원평야를 마음껏 바라보았다. 송곳같이 내리꽂히는 땡볕도, 쉬지 않고 불어대는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바라보고 싶었을 뿐이다.
바람이 등을 떠민다. 이제는 내려가라는 말 같았다. 산에서 내려와 출발했던 철원 노동당사로 가는 길, 모내기 한 논 위로 하얀 새 한 마리가 난다. 파란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오른다.
≫ 여행길잡이 :
○ 관련싸이트 / 문의전화
관련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soimountain/50
철원군청 관광문화과 (033) 450-5255
철원군청 정책과 녹색성장 (033)450-5722
○ 코스요약
걷는 거리 : 5.52km
걷는 시간 : 2시간
걷는 순서 : 철원 노동당사 - 철원 노동당사 앞 길 건너편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안내판 - 안내판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걷는다 - 삼거리에서 우회전 -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 - 정자 앞 계단길(지뢰꽃길) - 생태숲길 - 정상으로 올라가는 넓은 길 - 소이산 전망대 - 전망대에서 내려와 소이산 평화마루공원 꼭대기에서 전망 감상 - 넓은 길 따라 내려가서 도로를 만나면 철원 노동당사 방향 - 철원 노동당사
정상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눈 쌓인 철원평야 전망이 압권이 코스이다. 눈 쌓인 노동당사의 을씨년스러움은 우리나라 분단조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원점회귀형 코스여서 부담이 적다. 정상전망대가는 길을 빼면 대체로 평탄하다.
○ 주변볼거리
철원평화전망대
2007년 8월 준공되었으며 2층전망대는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비롯하여 평강고원과 북한선전마을을 전망할 수 있으며, 모노레일카를 운영하여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제2땅굴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이 땅굴은 한국군초병이 경계근무중 땅속에서 울리는 폭음을 청취함으로써 현대장비를 통한 시추작업으로 땅굴 소재를 확인한 후 수십일간의 굴착 작업끝에 1975년 3월10일 한국군 지역에서 두번째로 발견한 북괴의 기습남침용 지하 땅굴이다.
노동당사
북한이 공산독재 정원 강화와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1946년 건립하여 공산치하 5년동안 철원,평강,포천 지역을 관장하며 양민학살이 자행되던 공간이다(등록문화재 제22호)
백마고지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과 중공군 등 17,515명의 영혼을 진혼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1990년에 철원군에서 위령비 일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월정역
경원산의 간이역이었던 월정역은 남방한계선에 최근접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철원안보관광의 대표적이 경유지이다. 현재는 객차잔해 일부분만 남아 있는데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강렬한 팻말과 함께 분단된 민족의 한을 증명하여 주고 있다.
◈찾아가는길 :
○ 대중교통
가는 편
동송읍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신탄리방면 농촌버스를 타고 노동당사에서 하차(1일 16회 운행) 제일여객 동송본사(033-455-2217)
백마고지역에서 동송행 농촌버스를 타고 노동당사에서 하차(1일16회 운행)
제일여객 동송본사(033-455-2217)
오는편
동송읍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신탄리방면 농촌버스를 타고 노동당사에서 하차(1일 16회 운행) 제일여객 동송본사(033-455-2217)
백마고지역에서 동송행 농촌버스를 타고 노동당사에서 하차(1일16회 운행)
○ 자가운전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입구에는 주차장이 없어 노동당사에 주차를 하고 녹색길 진입로를 따라 0.8km를 걸어 소이산입구까지 걸어가야 한다. 소이산입구에서 지뢰꽃길을 따라 생태숲길까지는 다소 완만하여 걷기에 부담이 없지만 봉수대 오름길부터는 급경사로 인해 다소 어려움이 있으나 오름길을 따라 정상에 다다르면 철원평야를 한눈에 볼수 있는 전망대와 군부대 헬기장이 위치하고 있다. 소이산에서 내려와 1.15km구간을 더 걸어야 노동당사 주차장에 도착할수 있다.
◈ 주변정보
화장실 : 노동당사, 소이산 전망대(정상
식당/매점 : 노동당사 매점에서 구입하거나 사전준비.
숙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