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고, 친애하는...
이 시대의 엄마, 딸들을 위해
책방 문을 연 이후, 매월 마무리 시작은 <달리 책 소개> 글을 끼적이고, 끝은 <책방 BEST>집계로 책방 한 달 살이를 마무리한다. 습관은 몸이 기억하고, 오늘이 그날이라고 말을 거는데, 자꾸 뒷걸음치고 있다.
가을볕이 좋아 <책방은 외출 중> 팻말을 걸고 동네 한 바퀴라도 돌고 오고 싶은 토요일 오전. 며칠 전에 온 책들을 정리하다가 손에 잡히는 가장 가벼운(!) 책을 집어 들었고, 「친애하고, 친애하는」(백수린 소설)을 단 숨에 읽어 내려갔다.
엄마에게. 이 네 글자를 적은 뒤 다음에 쓸 말을 고르느라 머뭇거려본 이들을 위한 소설이라는 추천사 행간에서 나는 「동백 꽃 필 무렵」(드라마)과 「82년생 김지영」영화가 오버랩 됐다.
「친애하는,,」소설, 「동백..」드라마, 「..김지영」영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키워드를 갖고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여성이고 딸이고 엄마일 수 있는 우리들 이야기여서 나는 자꾸 장르를 넘나들며 서성거렸다.
“그런 완벽한 여름의 어떤 날, 연노란색 태양이 아직 머리 꼭대기에 있었을 때, 달궈진 모래를 맨발로 밟고 걷다가 무언가에 이끌린 듯 옷을 벗고 바닷물로 뛰어드는 알몸의 여자와 그 옆에 서 있던, 세월이 좀 더 흐르고 나면 그런 엄마가 부끄러워지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린 여자아이를”(p 126)
어린 동백이를 버린 어미라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기고 스산하게 살아왔고, 영화 속 엄마는 딸의 가슴앓이에 굳건히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가슴 아프고, 소설 속 엄마는 어린 인아를 외가에 맡기고 유학길을 떠나 서로 관계 맺기가 서툴기만 하다.
어찌 보면 엄마-딸 관계는 이중적이다. 좋으면서도 싫고 한없이 고마워하면서도 못내 서운하고 사랑하면서도 틈틈이 미워한다. 서로의 역할이 처음이라, 더구나 이 시대 한국사회 여성으로서 엄마로 딸로 살아내기가 버거워서 오히려 이중적이다. 정작 함께 풀어가야 할 남성, 부(夫), 부(父)는 부재(不在)하거나 걸림돌인 세상에서 딸은 엄마 또는 위 세대 여성이 나아간 바로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봐라, 인아야. 세상엔 다른 것보다 더 쉽게 부서지는 것도 있어.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저, 녹두처럼 끈기가 없어서 잘 부서지는 걸 다룰 땐 이렇게, 이렇게 귀중한 것을 만지듯이 다독거리며 부쳐주기만 하면 돼.” (P 99)
드라마에서 죽어서야 이름을 되찾은 향미(최고운), 빙의를 통해서만 현실을 얘기할 수밖에 없던 김지영, 할머니의 죽음을 겪고 새 생명을 잉태하고 다시 세상 앞에 선 인아.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살얼음 걷듯 이 시대를 건너가는 그녀들 삶속에서 나는 우리 엄마와 나와 뒤에 따라 올 우리 딸이 생각나서 자꾸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묵묵히 살아내는 힘으로 견뎌주며 길을 내주었던 위 세대 여성과 더 예민해지려고, 더 불편해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우리 세대의 여성과 그 길 위를 더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갈 뒤에 올 여성들 모두를 친애하고 친애하며.....
( * 소설 내용과 조금 빗나간 글 흐름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 책소개 : 강영선
제주시 아라동에서 책점방 [아무튼, 책방]을 운영하고 있음
독립출판물+블라인드북+헌책+인문학
아무튼 책을 읽고, 팔고, 글을 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