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7편 1-9절
1.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각자의 역할과 위치가 다르기에 어쩌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2.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함은 마땅한 일입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창조되었고, 성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찬양은 ‘하나님께서 가장 높으시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통치자’라는 고백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높으시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통치자’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또한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입술의 제사입니다.
3. 우리는 노래를 찬양으로 오해합니다. 노래가 찬양이 아닙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고백입니다. 우리의 말, 행동 그리고 표정 모두 찬양입니다.
4.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 만민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경쟁자나, 원수가 아닌 우리의 형제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5.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으로 기뻐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어찌 교회 밖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고난 속에서, 실패 속에서, 질병 속에서, 성공 속에서, 평안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찬양하면 사람들은 우리를 둘러쌓고 있는 고난과 실패와 질병과 성공과 평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6.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만민을 우리 발 아래 복종케 하셨다고 고백을 합니다. 발 아래 두셨다는 표현은 완전한 승리와 완전한 지배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교회가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 교회가 반드시 승리할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악이 아무리 강하고, 악이 온 세상을 덮고 있는 것 같아도 교회가 승리합니다.
7. 승리자는 패자를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고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자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름답게 하시기 위해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승리가 추한 모습이 아닌 아름다운 모습이 되기 위해 섬겨야 합니다. 승리 자체만으로는 절대로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승리가 아름다운 승리가 될 때 세상은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고 찬양하게 됩니다.
8.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기업을 택하시는 분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 기업은 야곱의 영화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야곱의 영화를 받게 됩니까?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에게서 야곱이 에서보다 무엇이 더 탁월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야곱을 선택하였고, 야곱은 유업을 있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셔서 야곱에게 주신 기업은 가나안 땅이 아닌 바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선택, 자녀됨입니다. 야곱이 에서보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야곱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누리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화는 야곱과 같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맛보고,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탁월한 것 하나 없는 우리를 선택하신 사랑입니다. (영화는 히브리어로 “께온”인데, 이 말은 탁월함이라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