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면지에 나와있는 신풍산성 지도>
높이 108여 미터의 성재산에 타원형으로 둘레 길이 355m인 토성형태로 남아있다.
남쪽으로 대룡천이 깎아지른 성밑으로 흐르고 동쪽으로는 유구천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유구- 공주, 정산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으리라.>
<신풍면지에 나와 있는 신풍산성 소개>
<신풍면사무소에서 바라본 신풍산성
신풍성결교회 건물 뒤로 보인다.>
<성결교회 구내에서 만난 목사님으로 보이는 분이 친절하게 산성에 대한 안내와 길안내까지도 해준다>
<산성 바로 밑(북벽)에서>
<뒤돌아본 신풍 시가지와 멀리는 유구읍내까지 훤하게 조망된다.>
<토성벽처럼 생겨버린 성벽 둘레를 돌아본다.>
<성안은 밭으로 경작하다가 이제는 풀밭으로 변해버렸다. 의령 남씨들의 소유란다.>
<경사진 정도와 크기가 틀림없는 토성 형태이지만....>
<,나무 속에서 찾아낸 석성 흔적들: 이따금씩 성돌이 한 두개 보이고 뒤채움석 일부도 남아있다.>
<화강암 (쑥돌) 재질에 크기가 성돌이다.>
<바깥 성돌은 다 빼가고 남은 채움석으로 보이는 돌들>
<성 안에 묘가 있고, 거기에 산정리 지번과 '신풍산성 내'라는 주소가 비석 옆면에 명기되어 있다.
<서쪽 성벽 끝 쪽 안에 세워진 산불감시초소 산줄기는 서쪽의 봉황산(195m) 으로 이어진다.>
<마을 이름이 '산성미', 도로 이름은 '산성길', 지명으로 도로명으로 산성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사라져버린 성돌들은 어데로 갔을까?.내려오다 민가의 벽돌 담 밑에 가즈런하게 놓였는 돌들이 크기는 딱 성돌만한데, 어째 석질과 다듬은 정도가 다르다...>
<동원리 갔다오다 유구천변에서 서쪽으로 본 신풍산성 전경
:옆의 대룡천과 성 앞의 유구천은 해자노릇하는 자연 요새였으리라>
<동원리(東院里) 예술마을을 찾아서 350년도 더된 고목나무는 당산목, 그 아래서 한여름 폭염에 흘린 땀을 식힌다.
산성과도 관련있을 지명에서 옛 역원을 떠올린다.>
<동원리 마을 한 가운데 비닐하우스 사이에 숨어있듯이 남아있는 3층 석탑:고려초기>
<석탑 설명에서 신풍현 치소가 백제시대부터 있었슴을 말해주고 있다. 탑은 백제시대, 신라시대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을 앞 개울가에 피어난 무궁화>
<석탑의 빛깔이 금방 세수하고 나온듯 깨끗하다. 석재에서 오는 느낌(깨끗함, 석질 등)이 정산 서정리 9층석탑에서 본 느낌과 똑 같다. 석탑 앞 부분의 앙연 조각이 야채롭다.>
<모덕사(慕德祠) 전경
신풍에서 정산가는 길로 가다가 좌회전해서 송치를 넘어 공수원으로 온다.
공수원 못 미쳐서 면암 최익현 선생을 기리는 모덕사를 먼 발치에서 보고만 온다. >
(*곳곳에 서린 역사의 숨결을 느껴 본 하루였다.)
첫댓글 폭염 속 나서신 보람이 있어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