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경석입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합니다. 정상 부분에 다른 성분의 붉은 암석이 섞여 있어 마치 용암이 흘러내리는 화산처럼 보입니다.
돌을 돌려 보면 또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산 정상부터 내려오는 붉게 물든 가을산 같기도 하고, 어느새 봄꽃이 만발한 풍경처럼도 보입니다. 만약 꽃이라면 진달래쯤 되겠지요.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이 돌은 한순간에 두 계절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문득, 계절의 순환이라는 당연한 이치가 새삼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오면 꽃이 핍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매년 경험하면서도 사람들은 그때마다 새삼 놀랍니다.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서 갑자기 연둣빛이 번지기 시작하면, 저 나무가 살아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무는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나뭇잎을 피우는 것은 식욕을 되찾았다는 것이고, 꽃을 피우는 것은 성욕을 되찾았다는 신호라면, 결국 생존을 위한 본능이 자연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나무가 오랫동안 꽃을 피우고, 잎을 내고, 다시 졌다가 또 피는 이유는 단순한 미적 욕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일겁니다.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시간을 버티고 나면 조금 더 단단해지거나, 혹은 더 유연해집니다.
때로는 삶의 가혹한 환경이 따스한 봄볕처럼 변화를 촉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늘 적당한 온기 속에서만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꽃이 필 때가 되었으니 필 것이라는 믿음, 바람이 불면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라는 기대.
그러나 과연 그것이 언제나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우리는 예상치 못한 변수 속에서 우왕좌왕하기 일쑤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한파가 몰아쳐 동백꽃이 성급하게 피었다가 얼어붙기도 하고, 예상보다 오래된 추위 때문에 초청장을 받은 봄바람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렇게 용암이 폭발하는 화산 앞에 화산재를 맞으며 서 있을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결국 답은 준비일겁니다.
꽃들도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견디고, 적당한 시기를 기다려 필 준비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삶에서 어떤 순간이 오든 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준비한다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직전, 예상치 못한 폭설이 내려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다립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꽃에게도 유보가 있다는 것을.
끝까지 참고 버티면 마침내 첫 꽃잎이 터진다는 것을.
때로는 그 첫 꽃잎이 예상보다 늦게 피기도 하고, 혹은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피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때로는 인생의 불확실함을 유머로 받아들이며 즐기는 여유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꽃은 필 때가 되면 핍니다.
예상보다 일찍 필 수도 있고, 조금 늦게 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나름의 방법으로 생존하고, 필사적으로 꽃을 피울 준비를 해야한다는 점이겠지요.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때가 되면, 우리는 결국 우리만의 꽃을 피울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