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위봉 정상 직전 헬기장에서
두위봉(1,466m)은 산 모양새가 두툼하고 두루뭉술하여 주민들은 두리봉이라고도 부르는 산
이다. 6월 초순이면 두위봉은 갑자기 화장을 시작하여 연분홍 철쭉이 도시의 멋쟁이 처녀처
럼 화사하게 치장을 하며 맑은 날이면 투명한 햇살아래 철쭉들이 눈부시게 화사한 모습을 보
이고 분홍주단 같은 철쭉 위로 희뿌연 안개가 덮이거나 구름이 흐르는 장면은 마치 꿈속을 거
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두위봉 등산로 입구 안내판에서
▶ 산행일시 : 2013년 5월 25일(토), 맑음, 더운 날
▶ 산행인원 : 18명
▶ 산행시간 : 7시간 24분
▶ 산행거리 : 도상 14.4㎞
【산행코스】자뭇골 펜션단지→1,143m봉→주릉→암봉(두위봉 정상표지석)→두위봉
(△1,470.1m)→1,462m봉→1,368m봉→△1,439.8m봉→도사곡 두위교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9 : 25 - 자뭇골 펜션단지, 산행시작
10 : 22 - △1,021m봉
12 : 04 - 삼거리, 자미원에서 오는 등로와 만남, 이정표(두위봉 정상 700m)
12 : 22 - 두위봉 정상 표지석이 있는 봉우리
12 : 36 ~ 13 : 00 - 헬기장, 중식
13 : 03 - 두위봉(斗圍峰, △1,470.1m)
14 : 16 - ┫자 갈림길 안부, 왼쪽은 도사곡 휴양지 3.30㎞
14 : 24 - 너덜지대
17 : 20 - 두위교, 산행종료
1. 앞이 두위봉 정상(△1,470.1m), 멀리 왼쪽 흐릿한 산은 질운산
챔프 님(한명우, 1988년 서울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82㎏ 금메달리스트)이 필리핀 레슬링 국
가대표감독을 맡고 있어 바쁜 일정 중에 일시 귀국한 틈을 타서 오지산행에 나왔다. 국내외에
레슬링경기 중계가 있으면 으레 단골해설가이기도 한 챔프 님의 유려한 구변으로 사북 가는
차안이 모처럼 시끌벅적하다. 챔프 님으로부터 필리핀에 대한 최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현황을 듣노라니 산행 들머리인 사북이 금방이다. 증산 자뭇골로 들어간다.
자뭇골 펜션단지 앞이다. 차가 더 들어갈 수 없다. 두위봉 등로는 오프로드 바리케이드 친 임
도로 시작된다. 등로 입구에는 나이 지긋한 산불감시원이 등산객들이 지정등로를 벗어나는
지 예의 주시하고 있어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돌길인 등로 따라 오른다. 곧 하늘
가린 숲속길이다.
별일이다. 맨 앞서 가던 챔프 님이 등로에서 뱀을 보았다며 갑자기 온몸으로 놀란다. 뒤로 줄
지은 일행은 그 놀라는 모습을 보고 더 크게 놀란다. 대간거사 님이 다독인다. 호랑이나 사자
등의 맹수가 의외로 파충류를 무서워하는데 아주 까마득한 옛날 그들의 선조들이 파충류에
잡아먹힌 수난의 역사를 대대로 기억하고 있는 까닭이라고 한다.
물참대꽃 흐드러진 오른쪽 산허리 도는 묵은 임도로 더덕조 6명이 간다. 자고치에서
△787.7m봉 넘어오는 능선을 더듬기 위해서다. 나도 합세한다. 임도가 지능선 마루를 넘을
무렵 임도를 버리고 왼쪽 지능선 마루를 잡는다. 되게 가파르다. 애초 신가이버 님을 선두로
내세워 길을 뚫게 한 것이 잘못이다. 들입다 내빼버리니 그 쫓느라 후덥지근한 날 혀 쑥 뺀 땡
칠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암벽 옆 사면도 가파르다. 잡목 붙들어 늑목으로 오른다. 울창한 철쭉 숲 아래에서는 아무 풀
도 자라지 않는다. 그런 철쭉 숲을 오르고 또 오른다. 기를 쓰고 2시간을 올랐을까. 철쭉 숲 성
기고 초원이 나타난다. 이러다 빈손일라 성급하여 눈에 밟히는 참취라도 뜯는다. 이윽고 우리
가 고도 1,000m대에 오른 것을 곰취를 보고 짐작한다. 박새와 큰연령초, 큰앵초, 노루삼, 산
작약이 곰취와 공생한다.
이런 봄날 이런 산길에서는 문득문득 때늦은 사모(思母)의 정을 느끼니 상춘(傷春)의 계절이
되고 만다. 산중(山中) 채향(菜香)이 그윽하다만 이제는 뜯어가 반길 이 없어서다. 불과 십 수
일전에 모상(母喪)을 당한 대간거사 님 또한 분명 채향에 무심할 리 없을 것. 작년 이맘때 피
래산에서 계봉에서 대암산에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더라 하며 참취 뜯던 모습과 오버랩 된다.
내 어릴 적 배운 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를 빈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조홍시가(早紅枾歌)’가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야 가슴에 와 닿는다.
盤中 早紅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柚子 안이라도 품엄즉도하다마는
품어가 반기 리 업슬새 글노 설워하나이다
육적회귤(陸績懷橘)은 중국 원(元)나라 곽거경(郭居敬)이 쓴 이십사효(二十四孝)에 나온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사람인 육적(陸績, 187~219)이 6살 때 구강(九江)으로 원술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원술이 귤을 내놓으니 육적이 아무 말 없이 귤 세 개를 가슴에 품었다. 헤어질
때가 되어 원술에게 절하며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그만 가슴에 품었던 귤이 땅에 떨어졌다.
원술이 그것을 보고 “육랑은 손님으로 와서 왜 귤을 가슴에 품었는가?” 물었더니, 육적이 무
릎을 꿇고 답하기를 “돌아가서 어머님께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여 원술이 이를 크게 기특하
게 여겼다고 한다.(十五、陸績懷橘, 陸績,字公紀,吳郡人。其父康,曾為廬江太守,與袁術
交好。績六歲時,於九江見術,術出橘待之。績懷其三枚,及歸拜辭,橘墮地。術笑曰,陸郎
作賓客而懷橘乎。績跪答曰,吾母性之所愛,欲歸以遺母。術大奇之)
큰앵초꽃이 광활한 초원을 수놓았다. 큰앵초꽃 홍자색 일색의 산상화원이다. 눈부시다. 어린
듯 취한 듯 맴돌다 앞선 일행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 수습하여 뒤쫓는다. 자뭇골과 자미
원에서 오는 탄탄한 등로와 만나고 등로 따라 오른다. 정상 700m. 스퍼트 낸다. 가쁜 숨은 턱
에 와 닿고 땀을 비 오듯 흘린다.
두위봉 주릉에 이르고 사방 조망 트인 암봉. 두위봉 정상 노릇한다. 먼저 오른 여러 등산객들
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상 표지석을 둘러싸고 있어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박무로 흐릿한 예
미산 질운산 넘어 온 산릉과 우리가 넘어야 할 산릉 얼른 살피고 내린다. 두위봉 철쭉은 꽃이
피려면 아직 멀었다. 이제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쉬기 좋은 곳은 다른 등산객들이 선점하였다. 더 간다. 두위봉 정상 오르기 직전 너른 헬기장
이 우리 차지다. 햇볕이 가득하지만 고지라 선선하다. 요즘 산중에서는 된장만 있어도 훌륭한
반찬이다. 맨 밥을 갓 뜯은 산나물에 쌈을 싸먹는다. 일미다. 오지산행은 아무렴 뱃심이라 잔
뜩 먹어 배부르니 노곤하다.
2. 자뭇골 등산로
3. 물참대(Deutzia glabrata), 범의귓과의 낙엽 관목
4. 곰취
5. 노루삼(Actaea asiatica),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
6. 큰앵초
7. 두위봉 주릉
8. 두위봉 주릉, 왼쪽 멀리는 질운산
아무 표시 없는 두위봉 정상을 삼각점만이 고집한다. 2등 삼각점이다. 25 복구, 77.7 건설부.
지나는 등산객들이 많아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1,462m봉 내린 야트막한 안부는 ┫자 갈림길
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왼쪽 도사곡으로 내린다. 1,368m봉을 왼쪽 너덜지대로 돌아 넘고
등로는 눈에 띄게 한적해졌다. 하산시간이 너무 일러 △1,439.8m봉 오르기 직전 안부에서 늘
어지게 쉬고는 자유산행이다.
주릉 따라 화절령(꽃꺼끼재)로 가는 등로 버리고 △1,439.8m봉을 왼쪽 사면으로 돌다가 도사
곡으로 내리는 것이다. 오지를 만들어 간다. 수차례나 너덜을 지나고 덤불숲을 뚫는다. 기 받
을까 보호수 표찰 단 아름드리 주목을 우러르다 얼싸안아 본다. 가파른 사면에 쓰러진 거목을
돌아가기도 힘들다. 가까이서 딱따구리 부르르 나무 쪼는 소리에 내 몸이 떨리는 것 같다.
허균(許筠)의 『芳林(방림, 향기로운 숲)』이 여기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겠다.
산골에 드니 아직 봄기운 入峽春猶在
개울 따라 풀이 향기롭다 沿溪草正芳
말안장 풀고 옛 역사에 투숙하여 歇鞍投古驛
침상 빌어 베개에 몸을 기대었네 欹枕借匡床
이상한 새의 그윽한 울음소리 怪鳥多幽響
깊은 숲에는 날 저문 내음 이는데 高林有晩香
피곤한 인생 어느 때나 쉬게 되나 勞生幾時息
두 귀밑머리에 흐르는 세월 아쉽기만 하여라 雙鬢惜流光
운이 좋았다. 곰취와 병풍취 군락지를 만난다. 병풍취는 우산만하니 서너 잎만 뜯어도 한 봉
지가 거뜬할 만큼 부피가 커서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다. 다른 일행들도 어디서 재미를 보는지
조용하다. 가자산 님이 새끼 품은 어미 멧돼지와 느닷없이 눈을 마주치고 혼겁하여 도망하던
중 나를 만났다. 그 얘기를 들으니 나도 은근히 겁난다. 가자산 님과 함께 간다.
배낭이 얼추 무거워지고 하산을 서두른다. 묵은 임도와 만나고 임도 잠깐 따르다 지능선 마루
금을 잡아 죽은 산죽지대를 쏟아져 내린다. 그만 내려가자하니 풀숲이 나오면 곰취가 수두룩
하다. 이로 아직 고도 1,000m대를 벗어나지 못한 줄 안다. 어디선가 상고대 님의 연호를 잃어
버렸다. 지능선 마루금을 고수한다. 인적은 물론 수적도 없다. 암릉이 자주 나온다. 그때마다
양쪽 사면으로 번갈아 비켜 내린다.
낙엽송 숲 내리기도 고약하다. 저절로 부러진 가지가 사방에 널려 있어 헤쳐 지나느라 땀 뺀
다. 골짜기 물소리 들려 반갑다. 산비탈 덤불숲 헤쳐 머리 내미니 두위교다. “열매 따다 벌에
쏘여도 내려오면 다 낫는다.” 콩고 속담이라고 한다. 그 짝이다.
11. 두위봉 주릉
12. 멀리 희미한 산은 매봉산
13. 두위봉
14. 두위봉 자락
15. 이름 모름
16. 곰취, 키 큰 박새가 왜소하다
17. 천남성(天南星, Arisaema amurense var. serratum),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