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에스라-01 고레스왕의 칙령(에스라 1장 1-4절)
성경말씀은 에스라서 제 1장 1절에서 4절까지 봉독합니다.
[에스라 1장]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4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그 동안 70년간 바벨론에서 고생 많았죠.
드디어 해방되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칙령이 나서 오늘 아침에 그 칙령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들이 잡혀 가기는 바벨론에게 잡혀갔는데, 돌아올 때는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 황제의 칙령을 따라서 사실은 페르시아에서 돌아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땅은 바벨론 땅이지만 바벨론을 함락시켜서 그 바벨론을 차지하여 실제로 다스리는 나라가 페르시아의 고레스 황제입니다.
그래서 이 고레스 황제가 즉위하기를 BC538년에 즉위 했는데, 즉위하자마자 바로 이런 칙령을 내렸어요.
이 고레스라는 사람이 어떻게 유대인들을 이렇게 돌아가도 좋다. 또 돌아갈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 하는 영을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그런 영을 받았다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아마도 다니엘 같은 그런 학자가 이사야서같은 책을 보여주면서, ‘당신이 태어나기전 여기 오기전에, 당신이 여기 나타나기 전 150년 전에 벌써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당신 이름까지 예언되어 있었다.’ 하면서 이사야서를 가지고 와서 보여줬지 않겠나..
지난번에 우리가 이사야서 공부했는데 잊어버렸죠.
잊어버렸기 때문에 목사가 먹고 사는 거야.
한번 가르쳐서 다 기억하면 저는 아무 할 일 없죠.
자꾸 잊어버려요. 그러니까..
이사야서 45장을 한번 펴보십시다.
이사야가 지금 여기는 이른바 제2이사야서라고 하기 때문에 40장부터 66장까지는 앞에 이사야서 1장부터 39장까지를 기록한 그 이사야가 기록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의 논의가 끝이 안 날 정도로 복잡합니다.
어떻든 확실한 것은 고레스가 이 고레스 칙령을 내리기 전에 이 이사야서는 기록되어 있었던 거예요.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45장에,
[이사야 45장]
1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2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놋문이 바로 바벨론 성에 둘러있는 100개의 청동문입니다.
그 바벨론 성이 꽤 큰 성인데, 그 성벽을 빙둘러 가면서 100개의 청동문이 있었는데, 이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4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네 이름도 내가 지어줬다. 칭호를 주었노라..
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이 기록은 고레스가 바벨론을 침공해 오기 훨씬 전에 이런 기록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레스가 와서 바벨론을 딱 점령해서 보니까 다니엘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자가 백발이 성성해가지고 그러고 있었는데, 그 다니엘은 뭐라고 했겠어요? 고레스를 보고 그대가 올 줄 내가 알고 있었노라. 했겠죠.
‘그게 무슨 소리요?’
‘이리 오시오. 당신이 오시기 전에 150년 200년 전에 당신 이름까지 다 지어놓고 그런 예언이 있었다.’
‘당신이 혼자 잘먹고 잘살고 떵떵거리라고 이 바벨론 성을 함락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온 천지와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뜻이 계셔서 당신앞에 이 바벨론 놋문이 닫히지 못하게 이렇게 한 것이다.’ 하고 이것을 딱 펴 주었을 때 고레스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야 이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이름까지 지어놓고 내 할일까지 다 지정되어가지고 이렇게 되어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지 않았겠어요?
여러분 혹시 요세푸스라는 책을 가지고 계신 분은 요세푸스 제 2권 제 1장 2장 3장 부분을 읽어보시면 제가 드리는 말씀이 하나도 거짓말이 아니고, 제가 그냥 막연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역사가 요세푸스가 고레스가 자기 자신이 이 일을 위해서 선택된 하나님의 종이다. 하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거기 다니엘이라는 말은 없지만, 어떻든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거예요.
와서 보니까 이사야서에 자기 이름까지 나와있고, 예루살렘에서 사로잡혀 온 사람들을 풀어주고 그들을 도와서 무너진 바벨론이 함락시킨, 지금 고레스 왕이 점령한 그 바벨론 성이 함락시킨 그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당신은 선택된 사람이다. 하는 그런 이야기를 고레스가 들었을 때 아마 큰 충격을 받았겠죠.
그리고 그 때까지 페르시아에는 신이 있는데, 그 신이 이원론적 신이야.
바벨론 내지는 페르시아 신이 이원론적 신인데, 이것을 이른바 쪼로아스터교라고 하는데, 배화교(拜火敎)라고 해요. 배화교..
배(拜)라는 말은 경배(敬拜)한다는 말이고, 화(火)는 불 화(火). 불을 숭상하고 불을 경배하는 그런 신이 있습니다.
그 신이 두가지가 있는데, 선한 신이 있고, 악한 신이 있다는 거야.
선한 신은 ‘아우라마스타’라는 선한 신이 있고, 악한 신 ‘아리만’이라는 악한 신이 있어서, 광명의 신이 아우라마스타이고 어둠의 신이 아리만이라는 신이 있는 거야.
이게 고레스가 믿어온 신인데, 여기 지금 고레스가 만난 하나님이라는 분, 그 고레스가 이 말을 들었으면 큰 충격을 받았을 거야.
이사야 45장 7절에,
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그러니까 그 옛날 조로아스터교의 종교는 빛은 선한 신 아우라마스타가 창조한 것이고, 어둠은 아리만이라는 악한 신이 창조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원론적으로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거죠. 이사야서 45장 7절에..
무슨 소리야?
빛도 내가 지은 것이고 어두움도 내가 지은 것이야.
평안도 내가 짓고 환난도 내가 창조하나니..
환난은 왜 창조하느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게 될 때 환난도 내가 짓는 것이다.
..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빛도 어두움도 전부 나 혼자 하는 것이지, 무슨 아리만이라는 어둠의 신이 따로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얘기를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이 고레스가 이런 내용을 듣고는 자기가 그 때까지 가지고 있던 그 페르시아 종교로부터 이 페르시아 종교는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고레스가 다니엘은 고레스 왕 3년까지 있었거든요.
그래서 3년간 다니엘이 잘 지도했기 때문에 이런 모든 역사를 성경이 예언된대로 그 성취되는 그 일에 쓰임을 받게 된 거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여기 에스라서를 볼 때에,
[에스라 1장]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하는 것은 고레스가 BC539년에 바벨론을 함락시키고 그 이듬해 BC538년에 메대 페르시아 신바벨로니아 전체를 통치하는 그런 왕으로 명실상부한 페르시아, 메대 페르시아 연합국의 황제로 등극을 하는 거죠.
등극을 하자마자 바로 제일 먼저 선포한게 유대인들은, 오늘 우리가 본문에 본 대로,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그러니까 그렇게 하신게 어디냐 하면, 예레미야서라든지 이사야서라든지 이런 데 하나님께서 자기 종 고레스를 통해서 이루실 일들을 여기 저기 예언해놨기 때문에, 그런 것을 다니엘이 차근 차근 챙겨가지고 여기도 보고 여기도 보고 여기도 봐라.
‘이게 당신을 보고 한 말이다. 당신은 이 일을 위해서 선택된 사람이다.’
그렇게 다니엘이 잘 지도했기 때문에 고레스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따라서 유대인들은 풀려나서 돌아오게 된 거죠.
에스라서 1장 3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그러면 나머지는 뭐예요?
자기 나라 바벨론 자기 나라 페르시아 자기 나라 그 지역 모든 신들은 참 신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보니까 참 신이시다.
여러분 이렇게 믿어야 믿은 겁니다.
여호와 즉 스스로 계시는 분, 영원자존자, 하나님 한분만 참 신이시고, 모든 신은 아예 없는 것이고 있으면 귀신에 불과한 거예요. 가짜예요. 가짜..
그래서,
..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백성된 자’는 유대인들이죠.
..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거기 줄을 그으세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인사하는 것도 많이 바꿔졌죠.
4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여러분 70년간 포로생활 해온 것을 그것 세세하게 포로생활의 애로사항이나 고충 이런 것을 일일이 다 잘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옛날에 우리가 여기 경험이 있는 분은 몇몇분 밖에 없겠죠.
일제하에서 압제를 당할 때 우리가 우리 땅에 살고 있어도 일본사람이 우리를 억울하게 할 때에 그 한이 맺혀가지고 그랬는데, 이것은 지금 자기 땅에 살고 있는게 아니고, 아예 포로로 노예로 끌려가서 바벨론에서 살았으니까..
그 설움이 오죽하겠어요?
그런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내지는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스룹바벨 이런 사람이 있어서 그래도 다른 민족에 비해서는 유대인들은 포로갔어도 조금은 대우받고 살았어요. 오히려.. 노예라도..
그래도 나라 잃어버린 사람은 서러운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우리나라 안에 늘 사니까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죠?
여러분 옷을 입고 있을 때는 옷을 입었는지 말았는지 잘 몰라요. 그게 제일 좋은 옷이예요.
입었는지 말았는지 모르는 그런 옷이 딱 맞으니까 안 불편하니까 옷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거죠.
여러분 신발이 아주 편한 신발은 내가 신었나 말았나 이게 제일 좋은 신발이죠.
신발이 계속 발을 찌르고 아프고 하면 신발이 느껴지는데, 그런데 신던 신발 신으면 편안한 거죠.
그런 것처럼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가 모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를 잘 한다는 거예요.
그런 말도 처음듣죠? 역설적이죠.
여러분 왕이나 대통령이 정치를 잘 하면 국민들이 대통령 이름을 몰라야 돼요.
그러면 정치를 잘 하는 거예요.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이런 사람들은 국왕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국민의 태반이라는 거예요. 누군지 모른다는 거예요.
국왕이 자전거 타고 다니니까..
그 정도로 정치라든지 나라가 누리고 있을 때는 소중한지 모릅니다.
잃어버린 후에야 그게 그렇게 소중한 거예요.
건강도 마찬가지죠.
여러분 건강할 때는 건강이라는 단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몰라요.
저도 젊은 날에는 건강 문제 가지고 이야기만 꺼내어도 병신 같아 보였어요.
그런데 한번 피를 토하고 폐결핵을 앓아가지고 몇번 그렇게 하고 나니까, 그때부터는 건강 잃어버리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다 끝나버리는 거야.
그래서 나라를 잃어버리고 바벨론에 포로되어서 노예가 되어 있을 때 처음에는 거기에 적응을 못해 가지고..
차라리 태어날 때부터 노예로 태어났으면 모르겠는데..
노예 생활 안 하던것 제멋대로 살던 사람을 끌어다가 노예 시켜보세요. 다 큰 사람을..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하다가 그런 삶을 살다가 연세 많은 사람들은 거기에서 바벨론에서 다 죽었고, 70년 만에 돌아오니까 10살 때 포로잡혀 간 사람도 80세가 된 것 아녜요.
30살때 갔어도 100살 넘으면 못 돌아오니까..
그러니까 대부분 바벨론에서 다 죽었고, 새로 난 사람들이 돌아왔을 텐데, 70년 살다보니까 거기에서 정이 붙어 사는 거야.
오히려 바벨론에서 뿌리박고 정 붙을만하니까 또 돌아가라는 거죠. 그렇죠?
사실 어떤 사람들은 ‘돌아가기는 뭘 돌아가? 나라가 없어져버리고 끝장 나버렸어. 차라리 바벨론이 더 좋아..’ 이런 사람도 있었을거야.
그러나 의식이 있고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무슨 소리야? 우리는 가서 흙집에 살아도 내 집으로 돌아가야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겠는가.. 하고 굉장히 참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서 갈등을 했을 텐데, 어느 날 갑자기 페르시아에서 고레스라는 사람이 일어나서 메대 페르시아를 병합을 해버리더니 그 연합군을 몰고 바벨론에 와서 BC539년에 그 큰 성 바벨론이 함락 된 거예요.
바벨론 성이 함락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인데, 함락되면서 결국 벨사상 왕이 죽임을 당하고..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점령한지 1년 정도 남짓 되었을 때에, 그 고레스 왕이 다니엘의 지도를 받아서 자기가 바벨론에 포로잡혀 온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전 짓게 할려고 선택되었다 하는 사실을 인식을 하고는 이 고레스가 칙령을 내렸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 때까지 ‘야 우리가 다시 70년 만에 돌아간다는 말이 그렇지, 70년은 무슨 70년 앞으로 700년 되어도 돌아가기 틀렸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가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꿈꾸는 것 같았다고 해요.
시편 126편에 오늘 묵상하던 구절인데, 펴보세요.
시편 126편에, 바벨론으로 돌려보낼 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다는 거야.
[시편 126편]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야 이게 꿈이냐 생시냐?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이렇게 감격하면서 울면서 그렇게 돌아오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도 일본에 징용 갔었어요. 징용을..
문서라든지 증거가 없어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세상 떠나버리고 나니까 어쩔 수 없는데, 그런데 징용가서 문어부대가 있는데, 문어부대가 뭐냐?
펜티만 입혀가지고 옷을 홀랑 벗겨서 일을 시키는 거야.
일본이라는 나라가 우리보다 기온이 따뜻하고 하지만, 북해도 지방은 우리나라 경기도 지방과 비슷하거든요. 그러니까 춥죠..
그런데에서도 옷을 홀랑 벗겨서 일을 시키는데, 왜냐? 도망 못가게..
그렇게 혹사시키고 탄광안에 갇혀서 여러 날 동안 갇혀가지고 갱도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거기에서 자기 소변을 받아먹고 살았다는 얘기를 어려서부터 들었는데, 그렇게 혹독하게 하다가 어느 날 일본 천황이라는 사람이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 앞에 무조건 항복하는 무릎을 꿇고 해방이 되어 돌아오는데, 그 돌아올 때 얼마나 기뻤겠어요?
돌아오는데 배가 그 당시 연락선 큰 배를 탔으면 될텐데, 조그만한 배를 탔는데 그 배가 오다가 풍랑을 만나서 고생한 그런 이야기라든지 그런 것을 보면, 돌아올 때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그 당시 발전은 말할 것도 없죠.
여러분 일본이 얼마나 발전했느냐 하면, 지금부터 50년 전에 일본 오끼나와에서 발진한 전투기가 하와이 진주만까지 날아가서 진주만 폭격했다는 거예요.
그 정도로 일본이 발전했어요.
우리는 지금 그런 것 만들어가지고 자랑스러워 가지고 떠드는데, 일본이 그 때 그 정도로 발전했어요.
그러니까 그런 발전된 세상에 있었지만, 해방이 되어가지고 돌아온다 하니까 집에 와봐야 뭐 있습니까?
거지같은 가족들 하고.. 먹고 살길도 아무 것도 없고 그나마 일본사람들이 다 빼앗아 가버린 땅이니까..
그렇지만 감격하면서 돌아왔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너무 예사로 아버지가 늘 하니까 늘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 같으면 전기를 받아 써 놓을 건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돌아오는 이야기 그런 것 들어보면..
그리고 그 당시에는 차가 없으니까 걸어서 부산에서 저 지리산까지 갔으니까..
아마 걸어가면 얼마나 걸어갔을까..
한 빨리 가도 일주일은 갔을 거야. 걸어서..
그래서 가족들 만났던 그런 굉장한 이야기죠.
그런데 여기 이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5개월 걸려요. 걸어서 5개월..
5개월 걸려서 돌아오는 거예요.
돌아오면 가족이 있나? 전부 다 포로잡혀 갔는데.. 황무지 위에 돌아오는 거예요.
그래도 나라 잊어버리고 외국에 포로잡혀가서 종살이 하는 것보다 우리가 우리 땅에 가서 흙집을 짓고 살아도 우리 땅에 돌아간다. 그런 감격으로 돌아왔다는 겁니다.
5절입니다. 에스라 1장 5절,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그러니까 자원하는 사람, 하나님의 감동을 입어서 하나님의 예루살렘 전을 건축하기를 자원하는 자만 일어나니,
6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
그러니까 거기에 건축하기 위해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올라가지 않고 바벨론에 남을려고 하는 사람들이 전부 다 헌금을 한 거야. 헌금 헌물을 해서 은과 금과 기명을 다 즐거이 드렸습니다.
7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전 기명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이라
8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고지기’가 뭐냐 하면, 창고를 지키는 사람이야.
‘창’자 하나 더 쓰면 훨씬 수월할텐데, 그것을 아껴가지고 ‘고지기’ 하니까, ‘목사님 고지기가 뭐예요?’ ‘창고지기죠.
..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거기 줄을 그으세요. ‘유다 목백 세스바살..’
목백(牧伯)이 뭐죠? 목백..
목자중에 맏이. 그렇죠?
백(伯) 자가 맏 백(伯)자야.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백(伯)이라는 말을 잘 모르죠?
그러니까 형중에서도 제일 큰 형을 백형(伯兄)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목백하는 것은 목자의 어른 목자장..
..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9 그 수효는 금반이 삼십이요 은반이 일천이요 칼이 이십 구요
10 금대접이 삼십이요 그보다 차한 은대접이 사백 열이요 기타 기명이 일천이니
11 금, 은 기명의 도합이 오천 사백이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 때에 세스바살이 그 기명들을 다 가지고 왔더라
‘세스바살’이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냐?
세스바살이 아마도 스룹바벨의 바벨론식 이름 같아요.
학자들이 세스바살이 누구냐?
우리가 알기로는 인솔자 총독이 스룹바벨이죠?
스룹바벨로 알고 있는데, 여기 왜 세스바살이라고 하고 있느냐?
그럴 때는 책을 폭넓게 읽어보면 세스바살이 스룹바벨이고 스룹바벨이 세스바살이야.
그러니까 바벨론식의 이름으로 하면 세스바살. 느부갓네살 벨사살하는 그런 네르갈사레셀.. 무슨 ‘사르’, 사르는 왕족에게 붙이는 겁니다.
러시아에 가면 ‘짜르’. 왕을 ‘짜르’라고 하죠.
그래서 이것을 갖다가 학자들이 전부 고민하는데,
넘겨서 5장을 보시면,
[에스라 5장]
14 또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속에서 금, 은 기명을 옮겨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것을 고레스 왕이 그 신당에서 취하여 그 세운 총독 세스바살이라 이름한 자에게 내어주고
그렇죠? ‘총독 세스바살’이니까 그 때 총독이 둘이 있는게 아니거든요.
총독이 스룹바벨 하는 것은 유대식으로 바벨론에서 나왔다. 그런 뜻이고, 바벨론 이름으로는 세스바살이야.
.. 총독 세스바살이라 이름한 자에게 내어주고
15 일러 가로되 너는 이 기명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그 본처에 건축하라 하매
16 이에 이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지대를 놓았고,
전 지대를 놓은 것은 스룹바벨이 놓았는데, 또 세스바살이 놓았다고 하죠?
그러니까 어떻게 두 사람이 놓을 수 있어요? 한 사람이지..
그래서 이것은 이명동인(異名同人)이야.
다른 이름인데 같은 사람을 두고 말한다는 거죠.
.. 전 지대를 놓았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오히려 필역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이렇게 여기까지 보면, 아 세스바살이 스룹바벨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겠죠.
2장입니다.
[에스라 2장]
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의 자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하면서 제일 먼저 누구의 이름이 나와요? 곧 누구죠?
2 곧 스룹바벨과
왜 제일 먼저 나옵니까? 목백이니까 목백.. 그렇죠?
목자중에 맏이니까 그 이름을 제일 앞에 내 놓았습니다.
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느헤미야라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는게 아닙니다.
이 느헤미야는 나중에 느헤미야서를 기록한 느헤미야와 다른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는 흔해빠진 이름이야.
예수아라는 말도 예수 여호수아도 아주 흔해빠진 이름이죠.
한국에 영희 철수처럼 아주 흔해빠진 이름이죠.
..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이 모르드개도 에스더의 사촌 오라버니 그 모르드개가 아닙니다.
모르드개라는 이름은 ‘마르둑 가이’, 마르둑의 남자.
바벨론신의 이름을 따가지고 마르둑 가이라고 이름을 지은건데 모르드개죠. 아주 흔한 이름이예요.
..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여기 이름 다 읽어봐야 저도 모르고 여러분도 몰라요.
이런 이름을 가지고 누구냐고 따져봐야 답이 안 나옵니다.
이것을 기록한 사람도 족보에 그런 이름이 나왔으니까 썼을 뿐이지, 누구인지 잘 몰라요.
그러니까 이런 것은 넘어가고 결론만 보면 돼요.
넘어가서 64절에,
64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 삼백 육십 명이요
이런 것은 제발 아라비아 숫자(42,360)로 쓰면 쉬울텐데, 사만 이천 삼백 육십 명이요 하니까 참 어렵죠.
그러니까 1차로 돌아온 사람이 42,360명.
65 그 외에 노비가 칠천 삼백 삼십 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노비 7,337명 성가대가 200명..
우리도 앞으로 성가대가 200명 쯤 되게 그렇게..
지금은 20명 될까말까 해가지고..
그러면 합이 얼마됩니까?
42,360명 7,337명 200명 합하니까 49,897명. 그렇죠?
제가 어릴 때 셈본을 공부했으니까 산수는 합니다. 수학은 잘 못해도..
계산하면 약 5만이죠.
5만명 정도가 돌아왔다.
이것은 반드시 시험에 나옵니다.
1차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이 대충 얼마냐? 그러면 약 5만명 돌아왔다. 그러면 점수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밑에 보면 68절에,
68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69 역량대로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금이 육만 일천 다릭이요,
6만 1천 다릭이라 하면, 한 다릭이 어느 정도냐 하면, 8.4g 정도 된답니다.
그래서 8.4g×61,000=512,400g 이니까 약 512kg 됩니다.
이것을 오늘날 금시세로 하면 약 2억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이 아니죠.
..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이었더라
7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느디님 사람들’. 이게 어려운 말이죠.
여러분 잘 알 수 없죠.
여러분 보세요. 제사장들에게 수발하는 수종드는 사람을 줍니다.
그러니까 노예입니다. 노예..
‘느디님’ 하는 것은 ‘주어진 자’ 그런 뜻인데, 제사장들이 집에 라든지 자기 주변에 일을 시킬 수 있도록 막일꾼 노예 이런 사람들을 잡아오면 제사장들 집에 일차적으로 배정을 하는 거예요. 노예 신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 그 본성들에 거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그 본성들에 거하였느니라
그리고 3장에는,
[에스라 3장]
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 월에 이르러,
7월에 이르면, 우리는 해가 바뀐다 할 때는 보통 12월 31일로 한해가 마감되고 그 다음에 1월 1일로 해가 넘어가서 바뀌는데, 이스라엘은 안 그래요.
해가 바뀌는 것이 우리처럼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속죄제를 지내고 나면 해가 바뀌는 거야.
속죄제가 언제죠?
7월 10일이예요.
그래서 1년동안 지은 죄를 다 속죄해서 씻고 나면 그때부터 새해로 생각해요. 새해..
우리와는 개념이 달라요.
그래서,
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 월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예수아’ 하는 말이 여호수아와 같은 말입니다.
.. 그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 드리려 할새
3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 조석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오랫만에 제사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회복되었다는 겁니다.
4절에,
4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5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즐거이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6 칠 월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전 지대는 오히려 놓지 못한지라
7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수운하게 하였더라
‘수운한다’는 것은 뗏목을 엮어가지고 물로 욥바항구까지 두로쪽에서 끌고 와요.
그래가지고 거기에서 다시 육지로 끌어올려서 예루살렘, 그러니까 바다에서 건져서 예루살렘 꼭대기부터 올라갈려면 800고지를 올라가야 돼요.
차가 없습니다. 그 때는..
그 어마어마한 나무들을 어떻게 다 가져갔겠는가..
5만명쯤 된다고 하지만, 여자는 와도 몇 사람 안 왔을 겁니다. 보니까..
바벨론에 70년 살다보니까 거기 정들어버리고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가지고 ‘갈려면 당신이나 가요.’ 하면서 언필 애들 교육문제도 있고 해서 안 따라오고.. 수많은 여자들이 안 따라온 거야.
그래서 이 5만명의 숫자에 여자는 얼마나 포함되었는지 몰라도, 여자는 원래 안 세어요.
어떻든 그 5만명 정도 중에서 연세 많은 사람도 안 되는 것이고, 너무 어린 사람은 안 왔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야말로 욥바항구까지 뗏목으로 가져온 나무를 예루살렘까지 가져오는 것은 엄청난 일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8절입니다.
8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이른 지 이 년 이 월에,
2년 2월이라는 것은 실제로 만 1년 두달 되었으니까 14개월 된 거죠.
2년 차 2월에.. 이해가 됩니까?
..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역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게 하매
9 이에 예수아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전 공장을 감독하니라
‘공장(工匠)’이라는 것은 기술자죠. 기술자들을 감독한다 그 말이죠.
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11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여러 노인은, 바벨론 포로 잡혀갈 때 어린 10살이나 20살 이럴 때 잡혀갔던 사람은 70년만에 돌아오니까 80살 90살 된 거야.
그 어른들이 옛날 솔로몬 성전을 봤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야.
왜냐하면 그 규모가 형편 없거든요.
옛날 솔로몬 성전 규모에 비해서 형편없이 꽤재재하게 기초를 놓는 것을 보고, 서글프기도 하고 하나님께 황송하기도 하고 그 좋은 예배당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게 이게 도대체 뭐냐 하는 어른들은 울어요.
..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 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그러니까 어른들은 통곡하고 애들은 떡 먹으니까 기뻐하여 즐거워 하죠.
13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도 꽤 감정적이고 또 표현을 아주 우리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해요.
지난번에 제가 성지에 가서 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페스티벌 그런 잔치하는 DVD를 선물 받아와서 집에서 틀어보니까 한국사람들이 신나서 춤추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얼마나 격렬하게 춤을 추고 노래하고..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로는 저러다가 넘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열정적으로 춤추는 것 봤습니다.
우리 배장로님 춤은 춤도 아니야.. 그보다 열배쯤 격렬하게..
4장입니다.
[에스라 4장]
1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하고 유다와 베냐민 하는 것은 남쪽 유다 백성이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그런데 근방에 구다 사람들 내지는 앗수르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와서 살았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이 와서 은근히 집적거리면서 시비를 거는 거야.
‘야 우리도 건축하자. 한다리 끼자.’ 그러면서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2절에,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이것들이 계속 방해하는 거예요.
이리 보세요.
오늘은 이 한가지만 합시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지금 성전 건축할려고 해요.
그래도 하나님의 뜻이라도 방해가 있다는 거야.
이것 속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저 믿음이 약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조금 하다가 어려움에 봉착하고 누가 반대가 일어나면 하나님 뜻이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 해버려요.
그렇게 해서는 아무 일도 못해요.
하나님의 뜻이라도 반대합니다.
아니 더 바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더 반대하는 거예요.
여러분 술집 짓는데 누가 반대하는 것 봤어요?
하나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세상이 반대하지 않지만, 교회가 들어오면 반드시 반대합니다. 왜냐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바른 일 옳은 일 하면서 누구 반대한다고 거기 너무 위축되면 안 돼요.
저는 우리 지리산 지역에 제가 82년도에 가서 그로부터 한 10년 안쪽에 82년도부터 92년도 그 안에 지리산 지역에 교회를 31개를 개척을 했어요.
지리산 선교회가 발족해가지고..
그런데 31개라는 예배당을 짓고 교회를 개척할 때, 그 마을 주민에게 반대 안 받은 교회는 한 건도 없습니다.
다 예외없이 반대해요.
아무리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도 예수님 반대할 줄 알아요. 희한하죠.
자기가 왜 반대하는 줄도 모를 거야.
누구의 감동받아 가지고 교회를 반대하는지도 모르고 반대해요.
그런 것을 보면 참 세상이 꽤 영적이라는 거야.
여러분 그 사람들도 악령으로 상당히 신령한 사람들이야. 그렇죠?
악령에 의해가지고 상당히 신령한 거야.
예수 반대할 줄 아니까..
예수님이 자기에게 아무 해롭게 한 것 없거든..
자기 집에 오이를 하나 따먹은 것도 아니고. 자기 애를 때린것도 아니고..
그런데 어디를 가도 예수님 반대하는 것은 저 산골짜기 신작로 끝나는 동네 그런 데에 살아도 예수님 반대하는 거예요.
저는 그런 것을 봐도 참 신비스럽다..
절 들어오면 아무도 반대 안합니다.
무당이 밤새도록 잠 못자게 해도 아무도 반대 안해요.
그런데 교회에서 찬송만 불러봐. 바로 전화가 오고 난리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현장 신학을 하면서 ‘아 세상 사람들은 역시 알든 모르든 인식을 하든 인식을 하지 않든간에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구나.’ 악한 자에게 소속되어 있어요.
본능적으로 자기 죄성이 본능적으로 예수님을 반대하는 거야.
자기들 집에, 우리도 그랬습니다만, 석가모니도 섬기고 공자도 섬기고 조상도 섬기고 성주신도 섬기고 용왕신도 섬기고 산신령 섬기고 삼시랑 섬기고 동신도 섬기고.. 기본으로 7귀신 들어있어요. 다..
그런데 8번째 9번째 예수님 하나 더 섬기자 하면 안 한다는 거야. 절대로..
놀랍지 않습니까?
다 하는데 하나님도 섬겨보지.. 그러면 더 좋을 덴데..
그런데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여기 지금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예레미야가 예언을 했고, 예레미아의 예언을 이방 나라 왕이었던 고레스왕도 믿어서 유대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했고, 무사히 돌아와서 기공식도 했고, 그리고 지금 예배당을 짓는데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와서 집적거리면서 시비를 걸면서 방해를 하는 거야.
방해할 때 여러분 이 방해하는 것도 참 인내심이 있어요. 진짜..
우리보다 훨씬 더 인내심이 있는 거야.
왜냐하면 마귀가 인내심이 있거든요.
이 부분은 4장 4절에서부터 해가지고 24절까지는 끝없이 질문이 올라오는 부분이야.
계속 이 문제가 어떻게 된 것이냐 하고 질문이 오는데, 조금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잘 보세요.
5절입니다.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그러면 이 말은 ‘성전 공사를 명할 때부터 성전 공사 완성될 때까지’ 란 말이죠. 이게..
다리오 왕 2년에 다시 재개가 되어서 다리오 왕 6년에 완성 되는데, 그때까지,
.. 의사들에게,
‘의사(醫師)’가 아닙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의사(醫師)라고 읽어버려요.
의사(醫師)가 아니고 의사(議士). 의사는 의원(議員)들이죠.
페르시아의 국회의원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하였으며
저희(沮戱)는 저주하고 희롱하다 그런 뜻이예요.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저희가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니라
이것은 따로 입니다.
그 다음에,
7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또 같은 왕 때에,
8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소한 그 글에
그러면 이게 방해하고 고소하고 문서를 보내고 한게 여러 번이다 그 말이죠.
여러 번 했는데,
다른게 문제가 된게 아니고, 지금 딱 문제가 된 것이..
앞으로 보세요. 오해가 없기 위해서 설명하면,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려놓고 금방 돌아오는데 6개월 걸리고, 돌아와서 1년 2개월 지나고 시작해서 전 지대 얼마 쌓다가, 이 사람들의 방해에 의해서 공사가 중단되거든요.
여기 지금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쭉 편지를 했어요.
아닥사스다 왕에게..
그 왕이 받아보니까 진짜 그들이 성을 쌓아서 요새처럼 해가지고 세금도 안 내고 성문을 걸어잠그고 속 썩이면 골치 아프겠네. 당장 공사 중지시키라.
해가지고 공사가 중지 되어서, 제가 볼 때는 한 15년 정도 중단된 것 같은데, 요세푸스라는 학자는 9년 이상 중단되었다고 해요.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아는 대로 페르시아 황제 이름이 고레스 왕 다음에, 캄비세스 2세이고, 캄비세스 2세 다음에 가짜 스메르디스이고, 가짜 스메르디스 다음에 다리우스 히스타페스 1세이고, 그 다음에 아하수에로이고, 그 다음에 아닥사스다거든요. 일반적으로..
이게 순서인데, 그러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고레스 왕이 아직 임기 중인데 어떻게 아닥사스다 왕이, 고레스 이후에 다섯 번째 등장하는 왕이 아닥사스다 왕인데, 여기다가 무슨 투서를 보내가지고 아닥사스다 왕이 공사를 중단하게 했다는 거냐.
해가지고 성경을 세밀히 본 사람은 꾸준히 질문이 옵니다.
여러분 이런 질문 안한 사람은 성경 제대로 안 본거야.
말이 안 되잖아요.
고레스 왕때에 올라갔는데, 아닥사스다 왕이면 세월이 얼마나 흘러가야 되는데..
적어도 80-90년 후에 나올 얘긴데, 공사 중단이라는 것은 가자마자 바로 중단되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아닥사스다 왕이라고 하느냐?’ 하고 질문을 하는데,
이 아닥사스다 왕이 누구냐 하면, 공사 중단시킨 아닥사스다 왕이 캄비세스 왕이야.
이 캄비세스도 아닥사스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아닥사스다라는 말을 아무리 제가 사전을 찾아봐도 그 말과 그 용어의 용례가 정확하지 않는데, 아마도 왕들에게 붙이는 어떤 존경하는 칭호처럼 된 거예요.
그러니까 본래 자연인으로서의 본명은 캄비세스 2세이고, 그 사람을 아닥사스다라고 한 거야.
그 이야기는 제가 억측으로 지어낸게 아니고 요세푸스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요세푸스 2권 1장 2장에 보면 이 때 이 아닥사스다가 캄비세스 2세를 두고 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출전을 밝히니까 찾아보실 분은 찾아보세요.
그러면 아직은 고레스 왕이 살아있을 때인데, 어떻게 캄비세스가 일을 처리했느냐?
그것은 해명이 됩니다. 어떻게 해명되느냐?
그것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페르시아 황제는 지혜롭게 하는데, 왕이 전쟁터에 나갈 때는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워놓고 가요.
임시왕으로..
그래서 실제로 전쟁터에 나가는 왕이 집에서 다스리는 왕자 후계자에게 왕위를 맡기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죽어도 아무 왕권의 공백이 없어요.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서 죽으면 그냥 그대로 그냥 세워놓고 간 왕자가 왕이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고레스 왕이 여러 곳에 전쟁을 수행하고 다닐 때에 캄비세스가 다 알아서 처리하는 거예요. 왕권을 가지고..
그러니까 만약에 고레스 왕이 예루살렘 전을 건축하라 했는데, 고레스 왕이 중지시키는 일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아닥사스다라는 사람이 했는데, 그 아닥사스다는 누구냐 하면 캄비세스 2세라는 말을 요세푸스라는 역사책에 나오는 거예요. 유대 역사가인데..
그러면 해명이 된 거죠.
23절에,
23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역사를 그치게 하니
24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서 바사 왕 다리오 제 이 년까지 이르니라
‘바사왕 다리오 제 2년’이라고 하면 BC520년 쯤 됩니다. 그 때까지 공사가 중단된 겁니다.
여러분 이럴 때 보세요.
우리가 여기 있는 분들 중에 경험이 있는 줄 모르겠는데, 예배당을 짓다가 집단 민원이 발생하고 투서가 들어가고 고발이 들어가고 해서 공사가 중단되어 보세요.
참 어렵습니다.
그 때 지도자는 참 고충을 이루 말로 다 못해요.
저는 그런 경험을 직접 경험을 했거든요.
그것도 한번 두번 경험한게 아니고.. 여러 번..
대한민국의 법이 희한하게도 절 짓는데는 매우 호혜적인데, 예배당을 짓는 것은 범사에 안 되게 해 놨어요.
얼마든지 법을 가지고 못 짓게 할 수 있도록 장치를 해 놨습니다.
더 웃기는 것은 못 짓는 교회는 없어..
사천에서 예배당을 지어야 되는데, 대지를 구하지 못해 가지고 대지 얼마와 밭을 끼워가지고 땅을 산거야.
그런데 그 밭을 예배당 짓게 지목되게 해 달라. 절대로 안 해줘.
대지 거기에 지으라는 거야. 속 썩이지 말고..
대지는 앞으로 있고 밭이 뒤로 있는데, 밭으로 밀어 넣어가지고 교회 앞마당이 좀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렇게 지어야 안 되겠어요?
그러니까 어차피 아무리 허락이 안 된다고 하니까, ‘허락 안 하는 너희가 너희 멋대로 하니까 나는 내 멋대로 짓는다.’ 하고 대지에 좀 걸치고 밭에 좀 걸쳐서 지은 거예요.
그리해야 일이 되니까..
그래서 지었더니 사천군에서 바로 나와서 적발해가지고 고발 조치해가지고, 그 때 태풍 주디인가 뭐가 와서 온 땅을 할퀴고 지나갔는데, 강변 강둑을 다 무너뜨리고 갔는데, 그것 수보하기 위해서 포크레인 가져온 김에 때려부순다는 거야.
그것을 내가 어떻게 지은 예배당인데 개척하면서 피눈물 흘려가면서 진주노회에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뭐라고 했냐? 건축헌금 해달라고 하면 잘 안 해주니까, 내가 내 손으로 예배당 지으니까 진주 노회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싶으면 블럭 한 장씩 보내달라. 한 사람이.. 그 때 블럭 한 장이 120원이예요.
120원 이상을 헌금해달라 했더니, 진짜 어떤 분이 120원 헌금한 거야.
내가 그 당시 전교회장이니까 내가 학교에 가서, 야 내가 예배당 짓는데 빨리 120원 이상 내놔.. 만나는 사람마다 120원 받아서 예배당 짓겠다 하니까, 한분이 주머니에 넣더니 딱 120원이야.
그 120원이 60원짜리 토큰 2개 기차타고 왔다갔다 통근할 건데, 어떻게 갈지 모르겠고, 120월 자기가 제일 먼저 내놓는다 하면서 자기가 블럭의 첫 장을 내 놓은 거예요.
그 때 그렇게 해가지고 1천2백만원 모았어요.
30년 전 이야기입니다.
블럭 공장에 가서 120원이 그 당시 블럭 한 장 공시가격인데, 사장을 보고 ‘이것은 보통 집이 아니고 하나님의 집을 짓기 때문에 시멘트를 빼먹지 말고 조금 더 넣어서 단단하게 제대로 찍어달라.’ 내가 10원 더 주겠다고 했어요.
블럭 공장 사장은 그런 사람 처음 만났다는 거야.
다 깎을 생각만 하지 돈을 더 주면서 더 좋게 찍어달라고 말하는 사람 처음 만났다는 거야.
그래서 그 블럭 공장 사장이 정말 감동을 받아가지고 시멘트가 새까맣게 되어 버렸어요.
얼마나 단단하게 했는지 지금까지도 금도 안 가는 거예요.
그렇게 다 쌓아서 지붕을 덮을 때쯤 되었는데, 그것을 포크레인을 가지고 때려부수러 온다는 거예요. 미친 놈들이.. 누가 미쳤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내가 어디가서 청탁 부탁 이것 잘 못하거든요. 평생에 어디가서 뇌물 선물도 잘 못하는 사람인데,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저는 금식도 철야도 잘 안 하거든요. 원래..
금식을 다 해보고 철야를 해도 답이 안 나와..
그런데 날짜는 다가오는 거예요.
그래서 안 되어서 삼천포 경찰서장이 사천 삼천포 함께 관할하는 서장인데, 그분이 믿는 사람이라는 거야. 찾아갔죠. 제가..
때려부수러 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때려부수면 안 되지 그러면서 가만히 있으라고 자기가 군수를 찾아가고 담당 군직원 만나본다는 거예요.
군수를 찾아가서 군수가 담당 직원에게 얘기하니까 ‘이것 불법입니다.’ 하는 거야.
아랫사람이 불법이라고 하는데, 군수가 ‘불법이라도 해줘!’ 그렇게 못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서장에게 말했는데 안 되는 거야.
결국은 때려부수는 날짜만 다가오고, 내 손으로 쌓아올인 것을 포크레인으로 때려부수는 것을 내가 보고 있어야 되는데..
기가 막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안 부서졌느냐?
내일 모레 올텐데, 박정희가 총에 맞은 거야. 궁정동에서..
나는 왜 맞았는가 보니까 나 때문에 맞은 것 같아..
그래가지고 온 전국이 벌집 쑤신것처럼 되니까 대통령이 총 맞아서 죽었다는데..
어느 한 구석에 예배당 짓는 것 그런 것은 잊어버리고 넘어가버리고, 면장이 찾아와서 가짜 서류 만들고 사진 엉뚱하게 찍어가지고 ‘옛날부터 여기 집이 있던 곳이었다’ 하고 넘어가 버린거예요.
그러니까 그 때 좀 믿고 내가 안정했으면 좋을 텐데, 전혀 믿음도 없고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잠도 안 오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뜻이라도 반대도 있고 훼방도 있는 거야.
그런데 믿음을 가지고 못 짓는 예배당이라도 짓는 거야.
저도 꽤 여러 번 반대를 당하고 했지만 다 짓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결론적인 말씀인데, 여러분 앞으로 하나님 일을 할 때에 하나님 뜻이 분명해도 항상 반대나 훼방이 있을 것으로 미리 알고 있어야 돼요.
그런 일이 벌어질 때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아 있다더니 있구나..
‘이게 하나님 뜻이 확실한가 보다.’ 이렇게 해야 돼요.
‘이 세상과 마귀가 반대하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 뜻이 확실한가 보다.’ 이렇게 해야지..
반대가 있다해가지고 ‘하나님 뜻이 아닌가 보다.’ 이러면 아무 일도 못하는 거예요.
똑 같은 현실 앞에서 그 어떻게 대처하느냐? 차이가 나는 거죠.
앞으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세상이나 누구 와서 방해하거나 훼방하거나 할 때 ‘하나님 뜻이 아닌가 보다.’ 하지 말고, ‘하나님 뜻이 확실하다. 봐라. 세상이 반대하는 것 봐라. 마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이면 이것 반대하느냐?’ 이렇게 믿으면 마음이 달라져요.
그리고 할려고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안 할려고 하고 하기 싫어하면, 안 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하도록 마귀가 잘 도와주는 거야.
반대로 할려고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공사 중단 되었으니까 저도 설교 중단 하겠습니다.
9년간 중단했다가 다시 만나게 되겠죠..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레스 칙령에 의해서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꿈꾸는 것같이 찬송하면서 심벌을 치면서 꽹과리 치면서 그렇게 즐겁게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녹녹하게 순적하게 일사천리로 된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훼방도 있고 방해도 있었다는 얘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가 하나님 뜻이 아니라고 속단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뜻이기 때문에 세상과 마귀가 반대하고 훼방한다는 그런 분별력 있는 안목을 가지고 어려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믿음과 담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