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아침 기차로 아산역에 도착해 기다리던 김지훈 운영위원의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이용해 약속장소인 갈산교회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교회 사택에서 사위인 류수정목사와 이경란사모께서 반겨 주신다. 군지를 펼쳐 보이시면서 운산면에서 강제징용관련 120명의 명단을 보여 주었는데 40번째로 이용교(李龍敎)옹이 기록되어 있다. 군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정확안 명단이 나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해 주셨다. 교회 인근에 이용교옹 노부부가 살고 있으니 자식으로 챙겨드리기도 좋다고 하시면서 함께 안내해 주셨다. 집안으로 들어가 취지를 설명하고 영상인터뷰를 시작했다. 면에서 소집통보가 나와 3월 중에 15-6명이 트럭을 타고 하루를 달려 춘천을 거쳐 화천 댐 현장에 도착했다고 하셨다. 손주사위 한동훈목사가 화천에서 목회중이라 5월 24일 화천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하시니 류목사님께서 반기시면서 그렇게 해 보기로 하고 인터뷰를 마무리지었다. 준비해 주신 김밥도 맛있게 먹고 집을 나섰다. 며칠 후 5월 19일 한주희 목사로부터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용교(李龍敎)옹의 증언 정리 (요약)해서 소개한다.
1921년생 12월 26일 생. 6남매 중 셋째. 고향인 충남 논산 운산 거주 중. 2013년 5월 15일 방문인터뷰. 부인 조미현할머니와 함께 살고 계셨고 가까이에 딸 이경란 사위 류수정목사(갈산교회)가 살고 있어 함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사위가 화천에 목회하고 있어 5월 24일 추모집회에 참석할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 했는데 5월 19일 임종하셨다는 통지를 받았다. 질문은 생략하고 증언만 간추려 소개한다. -방문조사자 : 김지훈 이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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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징용은 70년 전에 다녀왔다. 1940년 3월(추정) 논산군에서 나와 징용을 가야 한다고 하면서 면서기가 구두통지를 해 왔고 그래서 며칠 후 읍내 친구 유택호 이갑생 정호철 3인과 함께 서산면사무소에 집결했다. 다른 일행과 열댓명이 함께 트럭을 타고 춘천을 거쳐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저녁에 화천 댐 공사 현장에 도착했고 밥을 먹었다.
화천댐과 발전소 공사에 동원되었는데 모두 2년간이었다. 겨울에는 공사를 할 수 없어 철원에 가서 기차길을 내는 공사를 했다. 부친이 목수였기에 목수 기술 배웠고 현장에서 인정받아 비교적 수월하게 일하고 생활했다. 다친 적도 없었다. 콘크리트를 타설하기 위한 틀을 짜는 일을 많이 했다.
아침에 일어나 일본국가를 부르고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을 했었다. 일본 사람들은 기계다루는 일 중요한 일 사람부리는 일 등을 했고 삽질은 조선사람이 했었다. 점심은 걸어서 가는 시간을 포함해 1시간이었다.
일을 하다가 몸이 아프면 몽둥이 들고 일하러 나오는지 확인하러 왔었고 쉬게 되면 밥도 먹을 수 없었고 임금도 없었다. 출렁다리를 통해 건너다녔는데 위험해서 다니기 싫어했었다.
공사현장 근처 초가집에서 15명정도 합숙을 했는데 이불도 없이 그냥 옷 입은채로 잤고 아침에 일어나 식당으로 가서 한가지 반찬에 눌린 쌀과 이팝 등으로 지은 밥을 먹었다.
일하는 과정에서는 2명이 1조 도리시마가 되어 감시를 했다. 체격이 좋은 조선사람들이었다. 게으름을 피우면 감시자로부터 몽둥이로 맞았다. 도망가다 붙잡혀와서 죽도록 매를 맞는 모습도 보았다. 일이 힘들어서 도망갈 수도 있는데 잡히면 맞아 죽으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구타가 많았다. 말을 잘 못 알아 들어서 구타당하기도 했다.
일본인 현장사장이 형편이 어려운 징용자에게 호의를 베풀어 돈을 쥐어 주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준 사례도 있었다.
일하다 사고로 죽으면 머리를 잘라 나무 상자에 담아 고향 집으로 보냈는데 집에서는 난리가 나는 것이다. 공사현장 내 목공소에는 그런 상자를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사용했다. 그런 상자를 만드는 일도 했었다. 얼마나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여러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보았다.
임금은 월 1회 반장을 통해 지급되었고 식대 등을 제하고 주었다. 배가 고파 숙소에서 현장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빵가게에서 빵을 사 먹었고 받은 월급을 모두 배고파 빵 사먹는데 전부 썼기 때문에 돈이 남지 않았다.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겨울철에 철원에서 일해서 차비를 마련해서 기차를 타고 귀향했는데 마을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면서 반겨 주셨다. 아버지가 자상하셨다. 친구들과 따로 혼자 돌아왔다. 징용마치고 돌아가면 다시 다른 징용자들이 와서 일했었다.
강제동원진상규명위에서 국내외 징용자 조사를 받을 때 함께 징용간 친구들의 사실확인을 위해 도장도 찍어 주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야간 강습소를 드문 드문 다녔는데 집에서 일본말 배우게 한다고 못다니게 해서 중단했었다. 대신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녀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불러 한글을 깨우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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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현재 강제동원 조사위에서 국내에서 노무동원을 당했다며 피해 신청한 사람은 1만 6,950명이다. 그러나 현행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상 국외 동원자에 한해 보상하도록 되어 있다. - 일제 강제동원, 그 알려지지 않은 역사 391p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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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에서 2010년 3월 종합면 두개면 18회에 걸처서 올린 기사내용들이다.
일본은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을 발동하고 8월에는 학교졸업자 사용제한령,의료자직업신고령 제4조 "정부(일본)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상 필요시 칙령이 정하는 바 제국 신민을 징용해서 총동원 업무에 종사시킬수 있다"
일본 후생생 자료 따라 조선상공회의소에서 편집,간행한 [조선경제 통계요람]
1949년판 "1939~1945 전시 노무동원조선인 112만 9812명
석탄광산 49만 3005명 금속광산 11만 3258명 토목건축 17만 6889명
항만하역 3만 9153명 공장기타 11만 4857명
제일교포 박경식(1922-1998)[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 이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평생을 일본에 살며 징용자를 찾고 기록하고 확인 한것만 수십만건이 넘으니...
1939-1945 일본에 징용 100만명 조선에서 한반도 내 강제 징용 450만명 군인,군속 37만명 합계 600만명이 징용당해서 노역을 했다. 군속은 53년까지 22만명이 귀향하고 15만명은 행불이다.
일본 본토의 탄광 비행장 등에서 최소한 6만명 이상 조선인 사망 추정된다
일본 후생성에는 4만의 조선인 희생자명부 보관한것이 확인되었다. 이것도 제일교포 박경식씨에 의해서 추가조사로 일본 등지에서 동원 노동력이 150만명이나 되는 것을 확인 했다. 실제 사망자명부도 일본은 가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절대로 내놓지 않았다 박경식씨 같은 분의 끈질긴 노력에 일부 익명의 일본공무원들이 장부복사본을 넘겨 준것이다...
일본내 석탄탄광 60만 군수40만 토건30만 금속광산 15만, 항만운수 5만 으로 150만으로 추산하고
일본 민간 단체 [ 조선인 강제 연행진상 조사단]-(그래도 사람사는 세상엔 정의로운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순수민간인으로 구성된 민간단체이다
1974년 150만명의 조선인이 일본에 끌려와 강제 노동에 혹사 당하고 2002년에는 징용조선인명부 42만명을 공개했다.
일본인 아라후네 세이주로 船淸十郞 은 1965년 11월20일 사이타마 3구 선거구 시국강연회에서 '조선인 징용공 사망자가 57만6000명, 조선인 위안부가 14만 3000명이라고 밝혔다'
일본인 야마구치 노무보국회 동원부장 - 조선인 강제 연행,조선인 노예사냥,조선여성 강제 위안부끌고갔다고 했고 1939-1945 일본 남양군도(남태평양의 괌 사이판 등 호수북쪽 파푸아뉴기니 부터 필리핀 전까지의 남태평양의 점 전부)에 153만 조선인 징용, 조선내에선 480만명 징용노동동원되다
이천홍 사회과학원 1938년 2월 일본육군 특별법지원명령 400명 조선인 지원병1기생
일본 공안조사청 1940년대 자료에 1944-1945년 조선인 168만 6589명 사할린 일본본토 남태평양등에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20만명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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