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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시인, 수필가 정용하>
■永陽邑誌(人物篇)■
《 鄭 鳳休 》
梅山重器曾孫遊金川沙宗德門號谷口風儀峻整才器超倫以孝友名晩年構亭於家後扁其楣曰山泉
□ 영천읍지 (인물편) □
《 정 봉휴 》
매산 정중기(영조 때 형조참의)의 증손이며 천사(川沙) 김종덕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호는 곡구(谷口)이며 풍채는 엄숙하고 단정하였다. 재주와 기량은 뛰어났으며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가 극진한 인륜이 소문났으며 노년에 집 뒤에 정자를 지어 그 처마에 걸어 놓았던 편액을 산천(山泉)이라고 불렀다.
*영양읍지에서 영양(永陽)은 지금의 영천을 말하며, 읍지(邑誌)란 고을의 연혁, 지리, 풍속, 인물, 문화 등을 기록한 책을 말함.
*천사(川沙:시냇가의 모래)는 경북 의성 소재 사촌마을에 세거한 안동 김씨로서 돈녕부 도정에 제수된 김종덕의 호(號)이며, 정 봉휴 선조의 호(號)는 곡구(谷口)인데, 곡구는 중국 섬서성에 있는 지명이며 한나라 때 은거 선비인 정 박(字:자진)이란 사람이 은거하던 고장으로서 특히 가을 경치가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정 박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는 존경을 받는 우상인바 호(號)가 곡구라고 함은 곡구 정봉휴 선조의 학문이 한나라 은거 선비인 정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또한 성씨(姓氏)가 일치하는 요인도 있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 한나라 때 유학을 정치철학의 토대로 삼은 동중서(인명) 선생의 고향이 광천(廣川)이기 때문에 중국 및 조선의 선비들은 동중서 선생을 가리켜 “광천선생”이라고 불렀으며, 조선 초기에 점필재 김종직 선생께서는 세종 29년 1447년에 모든 문관과 무관 그리고 왕실의 종친들이 참가하여 “오래된 법률의 폐단에 관한 대책”이란 제하(題下)의 시험 즉,‘등준시’에서 11등을 차지한 사성공 정종소 선조를 가리켜 “오천 정선생”이라고 부른 것과 같은 맥락인데, 여기서 오천(烏川)은 경북 영일을 가리키며, 이는 유명 인사(人士)를 그 사람의 출신지 또는 본관과 동격화(同格化)하는 풍조를 뜻함.
《 鄭 致建 》
梅山重器五世孫號晩霽大姿渾厚 篤學 力行士友推重有遺稿
《 정 치건 》
매산 정 중기(영조 때 형조참의)의 5세손으로서 호(號)는 만제(晩霽:체험을 쌓은 후에 서책에 임함으로써 참된 사물의 이치에 형통함 )이며 존귀한 풍채와 화기애애한 인정이 두터웠다. 학문에 전념하고자 힘써 나아갔으며 선비인 벗들이 높이 받들고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생전에 남긴 원고(遺稿)가 있음.
*만제 정치건(1825~1875) 선조께서 생전에 남긴 원고가 「회최고(薈蕞稿:)」인데 손바닥만 한 원고 즉 겸손 차원에서 ‘보잘것없는 초고’이란 뜻인데 회최고는 2권의 서적으로서 222수의 한시와 한문 수필 56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한문 수필은 1860년도 이후에 집중적으로 쓴 것으로 보이며, 순수한 수필로서의 성격을 지녔으며 내용이 심오하고 현대적인 감각을 지녔기에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가하여도 무방할 것이다(저자의 한문 수필을 접해 보면 화기애애한 두터운 인정을 느낄 수 있음).
*위의 읍지에 기록된 내용 중에 “존귀한 풍채”에 관하여 정 치건 선조의 아드님인 정 진벽(1845~1915)께서 쓴 ‘회최고 서문’에 의하면 부친을 가리켜 “골격은 준수하셨고 특별히 영혼의 기운이 탁월하시고 밝으셨다” 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골격이 준수’하였다는 것은 만제 정치건 선조께서 풍채가 뛰어나고 미남이었다는 뜻인바 예부터 아들이 아버지를 칭송하는 것은 금기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기록한 것은 이를 은폐하는 것이 너무나 아쉽기에 후손들에게 전해주고자 점잖게 묘사한 것으로 보여진다(만제 정치건은 곡구 정봉휴의 손자임).
『같은 문채』
-고인의 버금(둘째)형제 정 봉휴-
*호가 곡구(谷口)이며 강학자로서 당시 선비들로부터 스승으로 추앙받으셨는데, 고인의 차남이 저자 집안의 장남으로 양자를 들었기에 번역인에게는 혈통으로는 고인께서 6대조가 되시나, 가계도상으로는 저자께서 번역인의 6대조가 됨. 여기서 고인이란 호(號)가 석윤(石潤)이신 정인휴(鄭麟休,1776~1850) 선조를 가리키며 제목에서 “같은 문채(又)란 앞에 쓴 다른 사람들의 글과 동일한 제목이란 뜻으로 저자인 정봉휴께서 백씨인 정인휴 선조의 초상 때(1850년) 쓴 제문이라는 뜻임.
아! 인간으로서 갖는 위치는 의지하는 것에 있는가. 부모님과 더불어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형이 다음 차례가 되는데 그것이 이미 이유 있는 말인 것은 만약 가장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을 때 아버지와 형을 반드시 애달프게 부르게 되고, 거듭 보호받을 수 있는 은혜를 의탁하는 터전이 되기 때문이다. 부형(父兄)이라고 함께 호칭 되고, 공통된 반열에 있다는 것은 오로지 아버지와 형이 함께하고 형과 더불어 아버지를 기리는 것이니 마땅히 공경하고 그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심히 들쭉날쭉한 말은 아닐 것이다. 아! 세 번째 남아(丙丁)인 나와 형제들은 이후에 부모님께 의지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을 갖추지 못했구나. 형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우에게는 우월감이 되는데 이를 억제하게 되어 매사가 쇠퇴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아우에게 모범을 보여준 주인으로서의 형님의 존재감에 있을 것입니다.
수십 년간 거듭 보호를 해준 것은 오직 나의 주인이신 형님(兄主)이시고 아울러 유일하게 의지한 것도 형주(兄主)이시다. 몸소 수염을 늘어뜨리는(언행을 절제함) 것을 능히 두텁게 하셨고, 식사는 반드시 같은 그릇을 사용했으며, 잠자는 곳도 같은 장소이셨으며, 걱정스러운 일을 당했어도 즐기시며 하셨다. 형제들은 함께 출타하여 함께 집에 들어왔으며 아울러 함께 학문을 하면서 분명하지 않는 의혹이 생기면 곧바로 이치를 동원하여 바로잡는 것을 돕는데 정성을 다했었다. 방을 달리하여 각각 분거(分居)하면서 같은 대문을 사용했는데 아우에게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기에 형의 아들로서 가계를 이었으며, 아우가 질병에 걸리자 병으로 인한 아우의 고통을 함께 나누셨다. 칠십여 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금까지 서실(書室)을 단정하게 정리하신 후에 비로소 지팡이를 받들어 여러 형제들과 자리를 함께 했으며 오랜 밤은 외로운 등불을 닳아 없어지게 하였기에 기름진 예법의 골격(핵심)을 어루만질 수 있는 공적을 베풀 수 있었다.
어쩌다가 근심이 가중되시면 따뜻한 밝은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서 생각을 모으셨다가 곧장 책상으로 가셔서 세상의 덕(德)에 대하여 논리를 펼치셨는데 지난해를 경계로 삼아 금년에도 하루 이틀이 바야흐로 즐거움이 무궁하셨건만 어찌되고 어찌된 일인지 칠월 그믐에서 팔월 초에 우연히 설사병에 걸리셨으나 오랜만에 반갑게 만난 귀한 친구분을 능히 맞이하여 함께 어울리셨으며 11일 제사일 관계로 초 8일에 앞집을 다녀오신 것이 계기가 되어 상실되었던 잔여 증세가 점차 악화되어 기운이 없으시고 나른해하시더니 마침내 정신이 맑지 않으셨는데 아직 급하지는 않으나 선대의 일에 관하여 아들과 조카들에게 가르침과 인도하는 방도에 대한 말씀은 한마디도 못 하셨다. 영결에 즈음하여 금일의 아픔을 어찌 일일이 열거하랴마는 육신을 절반이나 잘라내는 아픔이 지속되고, 이미 칠십 년을 서로가 의지해왔기에 하루가 잠깐이었는데 가히 이별을 금지하지 않기에 울적한 도자기(답답하고 근심스러운) 심정이로다. 맏이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영원히 아우들을 버리는 것과 같으니, 오늘의 이 상황을 어찌하랴. 이후에 아우는 누구에게 보호를 받으며 또한 의지하겠는가. 함께했던 집을 돌아보면서 지난날들을 생각해 보니 장남과 막내의 숫자 차이는 18세요, 아우와의 연차적인 순서에는 일곱이 존재하는구나. 항상성을 추구했던 높은 집에 앉아 있으니, 형님께서 거처했던 집(棟)은 맏이로서 앞과 뒤에 있어, 좌우에서 아우들이 우러러보면서 조심해서 규칙을 지키도록 한 것은 좋은 성과를 위한 어떠함인데, 만약 다음 차례에 집안이 쇠퇴하여 영(零)으로 떨어진다면 넘어진 채 기울어진 경사를 흘겨보려나?
아우가 도외시하는 사치라는 것도 이를 표준으로 삼아 행동하신 맏이를 따른 것이니, 아~ 마침내 멀어지고 마는 나의 주인이신 형님의 덕성(德性)과 텅 빈, 인애(仁愛)여! 장차 거드름을 피우는 머리털과 시선들의 위세를 무엇으로써 통솔하겠으며, 공경과 다스림이 함께하였던 집이건만 이후에 뒤얽힌다면 무엇으로써 규칙을 세우랴. 등뼈 같은 집안의 본분은 뽕나무와 느릅나무 그리고 들깨를 무성하게 하는 것인데, 각각의 일에 대한 배열이 불가능하다면 으뜸 되는 한(恨)이 되는지라, 인생의 존망에 대한 감정이 번잡해지는 것을 탄식하며 무릇 아우들의 몽매함이 이후에 이어진다면 선대를 받들고 손님을 맞이하는 정성은 마침내 허전해할 것입니다. 몸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공경하는 사람이 되어 겸덕(겸손과 덕망)과 더불어 청렴결백하고 검약(검소함과 절약)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격은 온순해야 하며 질박하고 꾸밈이 없다면 예법은 허락하고 규칙은 승낙하게 될 것이나 그것을 흉내를 내거나 개선하지 않는다면 물에 잠기어져 전해지는 것이 없다면 훗날 두고두고 아파할 것입니다. 아! 팔순 생애에 고락을 서로가 맞잡았고, 두 여인의 몫을 하는 한 명의 며느리에게 완벽한 복(福)을 지녔다는 명성이 마침내 훼손되었으니 이 모든 것은 운명이 시킨 것인지라 또한 장차 어찌 대응하려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우리 남매는 다섯 사람인데 손위인 누님은 이미 팔순으로 아름답게 무르익어가고, 막내 남동생 또한 이미 육십을 향한 고개 꼭대기에 오르고 있으나 형제와 여형제 또한 아무 탈 없이 행복한지라, 만약 모두가 생존해 있다면 희한(稀罕:매우 드문 현상)이라 칭하며 축하를 받을 일인데 뜻하지 않는 결함이 주인이신 형님으로 말미암아 비롯되었기에 이것이 더욱 아프며 또한 애석한 일이로다. 더군다나 치규(고인의 장손인 정 치규를 가리킴) 손자에게 축적된 세월이 안겨준 고질병은 한결같은 형님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절로 부터 벗어난 너저분한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았던 호연(浩然:넓고 큰모습)하신 어른이셨기에, 비록 기량을 헤아릴 수 없는 어둠 속의 길(冥道)이 그것을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주인이신 형님의 본래의 마음과 의도하신 생각은 마땅히 아우들에게는 본보기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형님의 제반 고뇌를 아우들이 약속할 수는 없으나 스스로 부담을 떠맡을 것입니다. 다만, 칠순의 늙은 아우가 어찌 감내할 수 있겠습니까.
아! 곧 날이 밝으면 크게 돌아가시는 행차인지라 칠순의 동기(同氣:형제자매의 총칭)간이 하루아침에 영원한 이별인데 비록 죽음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남은 생(生)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는지요. 아! 인생이 잠시이니, 항상 있었던 것도 멀어지는가? 집안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또한 형님마저 떠나가시니 역력한(기억이 뚜렷한) 것은 미래의 유업(遺業)이런가. 창포(저자 자신)의 붉은 눈에는 하늘과 땅이 정지된 듯 주변은 온통 황량한데,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오래도록 마음과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니 바라건대 지금부터 오래도록 연마하여 비움으로 인한 평온함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부모님과 조상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생존하실 수 있다면 기쁘게 맞이할 것이며 아우는 마땅히 기운이 넘쳐날 것이나 인간에게 염증을 느껴서 배가 부르다고 하신다면 슬픔과 근심은 무한해질 것입니다. 부모님께 절을 올리듯 글로써 여쭈어 올리려니 이 아우의 애통함과 괴로움은 외마디 아우성과 긴 아픔이 되어 하늘이 꺾어지고, 땅이 찢어지는데 엎드려 바라건대 공경하는 혼령께서는 슬픈 속마음을 편안하게 하소서.
*아! 세 번째 남아(丙丁)인 나와 형제들은 이후 부모님께 의지하고..... 라는 구절에 담긴 뜻은 집안에서 아버지가 갑(甲)이면, 장남은 을(乙)이 되고, 나머지 아들 형제는 병정(丙丁)이 된다는 뜻이며, 형제들만을 기준으로 볼 때는 장남과 차남이 각각 갑과 을이 되고, 나머지 형제는 병정이 되는데, 저자께서는 차남이시다. 이를 통하여 당시에는 아들 중에서도 특히 장, 차남 선호 사상을 엿볼 수 있음.
*장남과 막내의 숫자 차이는 18세요, 아우와의 연차적인 순서에는 일곱이 존재하는구나.라는 문장의 뜻은 장남과 막내의 연령 차이가 18살이며, 장남과 차남의 연령이 7살 차이라는 뜻임.
*형님께서 거처했던 집(棟)은 맏이로서 앞과 뒤에 있어, 좌우에서 아우들이 우러러보면서 조심해서 규칙을 지키도록 한 것은 좋은 성과를 위한 어떠함인데 라는 구절에서, 4형제가 입구 자(口) 모양의 큰 집에 함께 거주하였으나 장남이신 고인께서는 전면의 건물과 후면의 건물에서 거주하셨고 나머지 형제분들은 좌측과 우측 건물에 각각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뜻하는 바는 장남은 앞에서 모범을 보이는 동시에 뒤에서 형제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고, 아우들은 좌우 측에서 장남을 도우면서 보필함으로써 장남 중심의 위계 문화를 존중하면서 집안을 발전시키고 탄탄하게 한다는 의미가 내재 되어 있음.
*등뼈 같은 집안의 본분은 뽕나무와 느릅나무 그리고 들깨를 무성하게 하는 것인데...라는 구절의 의미는 문중에서 핵심(등뼈)이 되는 집안으로서 학문이나 예법 등 분야에서 ‘선두 자리(뽕나무, 느릅나무)’를 고수하겠다는 의미이며, 들깨가 뜻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주변에 향기를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뜻으로 보임.
*두 여인의 몫을 하는 한 명의 며느리에게 완벽한 복을 지녔다는 명성이 마침내 훼손되었으니....두 사람의 몫을 하는 부지런한 며느리에게 시아버지와 그 형제분들이 모두 살아계신다는 것은 완벽한 복이었는데, 고인께서 돌아가셔서 그 명성이 마침내 훼손되었다는 뜻임.
*어둠속의 길(冥道)이 그것을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라는 구절에서 명도(冥道)는 저승으로 가는 길을 상징하며, 상제(上帝:하늘을 다스리는 신)께서 고인이 생전에 행하신 기량과 덕행을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그 여부를 떠나서 아우들은 형님을 본보기로 삼겠다는 뜻임.
又(우)
-仲弟 鳳休(중제 봉휴)-
嗚呼人所依歸者父母而父母不在則兄爲之次故言已之最切處則必曰父兄嗚呼覆庇之恩依歸之地幷稱而共列之者惟父與兄則兄與父其尊其位不甚參差矣嗚呼丙丁以後則吾之兄弟俱無父母之依庇而抑有弟勝於兄主者弟則以兄主在耳所以替事數十年覆庇之惟吾兄主依歸之惟吾兄主而粤自髧髮食必同器寢必同被憂樂焉共之出入焉共之事有疑晦則擧理而相規以至分居則異室而同門弟無嗣續而兄之子以系之弟有疾病而弟之痛以分焉七十年如一日而一自書室粧修之後乃奉杖屢兄弟同處永夜孤燈磨肥而戞骨拊陳跡而增傷暖日明窓聚首而連床論世德而垂戒去年今年一日二日其樂無窮奈之何七晦八初偶患泄症以邂逅之崇知之而爲參十一日祀事初八日移次前家因過喪餘症勢漸次添谻竟至不淑而先世未遑之事子姪敎誨之方未承一言於臨訣之際今日之痛豈特尋常割半之痛而已哉七旬相依一日暫離猶不禁鬱陶之思何况今日永棄弟輩而長逝者乎自此之後弟更何庇而何依嗚呼環顧同堂昆季之數十八而弟之年次在於第七位矣尋常座上堂兄舍伯後先而左右焉弟輩之瞻仰矜式者果何如而轉盻之頃次第零落而如弟之無忕者處作行首嗚呼旣無兄主之德性又乏兄主之仁愛而偃然在頭目之位將何以率羣弟而御同堂乎又何以律後昆而幹家務乎桑楡荏冉之歎人生存歿之感紛不可枚列而最恨夫弟輩蒙昧繼述無人奉先接賓之誠意自卑尊人之謙德與夫廉介也儉約也平順質實之可儀可則者似不兌沒沒無傳於後來痛矣痛矣嗚呼八旬人世苦樂相秉二女一婦竟毁完福之名氣數所使亦且奈何而顧念吾之娚妹五人姉氏已八耋邵年矣季弟亦已躋六十嶺巓而兄弟娚妹尙幸無故而俱存人皆以稀罕稱賀者而不意欠缺之端自兄主始焉此尤可痛而尤可惜者也矧甭逵孫之積歲痼病此則兄主之一心耿耿者也擺脫塵累浩然長歸則冥道之記不記雖不可度思而以兄主之心爲心者惟餘弟輩則諸般苦惱弟輩不期然而自擔着矣七耋老弟又何以堪耐耶嗚呼明日卽大歸之行也七旬同氣一朝永訣死雖無知生豈可忍嗚呼生斯長斯之家父歿而兄又逝歷歷前塵蒲眼荒凉廓立穹壤我安適歸緬惟今行庶修久曠之靖省父母祖先更如在世之歡迎則猶勝於弟之留在人間厭飫此無限之悲愁耶若拜父母稟達此弟之寃苦也一聲長痛天摧地裂伏惟尊靈鑒此哀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