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봉 시집{색채 예보, 창문엔 연보라색} 출간
노혜봉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90년도 월간『문학정신』신인상으로 등단했다. 1992년도 한용운 위인 동화 『알 수 없어요}(1992년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를 출간했고, 시집으로는『산화가』,『쇠귀, 저 깊은 골짝』,『봄빛절벽』, 『좋을好』,『見者, 첫눈에 반해서』(2018년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등이 있다.
문학상으로는 ‘성균문학상’, ‘류주현 향토문학상’,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경기도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고, ‘시의 나라’ , ‘시터 동인’ 및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 서울문학의 집 회원’, ‘한국 가톨릭문인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혜봉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인 {색채 예보, 창문엔 연보라색}의 시들을 읽으면, 맑게 흐르는 시냇물의 청아한 물소리를 듣는 듯한, 햇살에 빛나는 물결의 반짝임인 윤슬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소리와 춤이, 그리고 향기와 색이, 문자와 무늬들이 서로 교감하고 화답하는 예술적 융합의 경지가 황홀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시적 성취는 첫 시집인 산화가에서부터 시인이 줄기차게 밀고 나온 “미학적 견인주의”가 발효되어 복욱한 향기를 내게 된 것이라 판단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예술의 현실화에서 현실의 예술화에 이르는 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ㅁ이라는 방, 마음가면의 모서리 각이 있는, / 저 깊은 곳 ㅇ방은 또 어디에 갇혀 있나// 불안한, 초조한, 두려운, 가끔은 오만한 ㅁ,/ 섣부른 이 지병은 날마다 널 보며 자꾸 보챈다/ 한참 모자라다 스스로 뾰족한 각을 키운다// 부추를 다듬으며 매운 파를 다지며 넌, 무기력해/ 걸레를 빨며, 잡지는, 신문은 안 보아도 괜찮아/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말자 야단치지 말자// 지난 달부터 넌, 암, 쬐끔 아팠지, 고까짓 것 괜찮아/ 불안해 하지도 말자 미련을 삭이지도 말고/ 죽을 만큼 기침이 심한 건, 평생 두려워해서 못한 말/ 무서운 부끄러움이 게으른 구석 점, 점으로 닫혔다// ㅁ ㅁ ㅁ 널 미워했던 싫어했던 거울 뒷면의/ 한 끗 욕심, 지루한 편견으로 쌓인 벽, 우울한/ 오만함이 짙은 잿빛으로 뒤틀린다 둥글게 맥없이,// 방시레 웃음으로 생그레 음악으로 가비얍게 춤으로/ 가뭇없이 사라진다 저, 비웃음, 눈웃음, 헛울음,/ 딴청 짓, 허망한 가면의 겹겹 끝자락을 떠나서/ 애틋한, 안타까운, 외로운, 애착, 애끈한 저, ㅇ/ 허전한 울림이 눈결에 꿈결에 귓결에 남실대는// ㅇ ㅇ ㅇ 오롯이, 나만을, 올연히, 온 맘을 드러내/ 말 속에 묶은 맘 그 끈이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툭, 투두둑 끊어질 때까지/ 느슨하게 맞선다 진짜배기 그림자 나를 보듬는다.
―「그 겹과 결 사이」, 전문
‘겹’이란 어떤 것이 포개지고 겹쳐진 상태이고, 결이란 바탕으로서의 켜가 지닌 짜인 상태나 무늬 등을 의미한다면, 겹이란 사회화의 과정을 거친 사회적 자아를 의미하고, 결이란 그러한 사회적 자아에 오염되지 않는 상태의 순수한 본래적 자아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사회적 자아로서의 겹은 “마음가면”이라는 시어가 대변해주고 있고, 본래적 자아는 “진짜배기 그림자”라는 표현이 표상해주고 있다. 결은 본디 가지고 있는 성질로서 천성이라든가 천품 등의 용어들과 친연성이 있고 겹은 습관이라든가 관습, 혹은 사회성이라든가 인위성이라는 어휘와 긴밀히 결부된다.
그런데 겹은 “불안한, 초조한, 두려운, 가끔은 오만한 ㅁ”이라든가 “거울 뒷면의/ 한끗 욕심, 지루한 편견으로 쌓인 벽, 우울한 오만함”, 그리고 “비웃음, 눈웃음, 헛울음, 딴청 짓, 허망한 가면의 겹겹” 등의 구절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불안과 가식과 인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마음의 가면을 쓰고서 살아가는 사회적 자아는 비굴과 거짓, 허위와 가식으로 점철된 것이어서 결코 시적 주체의 진정성을 발현하지 못하며, 그러하기에 때문에 시적 주체를 편안하게 하지 못하며 마음의 평안을 가져올 수 없다. 시적 주체가 자신을 다그치듯이 내뱉는 다짐이라든가 명령어들이 시적 주체의 불안하고 불안정한 내면의 풍경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런데 “허망한 가면”인 겹이 “우울한/ 오만함이 짙은 잿빛으로 뒤틀리”고, “둥글게 맥없이” 무너지자 결이 살아난다. 겹이 사라지자 “저 깊은 곳 ㅇ방”에 있던 결은 “애틋한, 안타까운, 외로운, 애끈한 저 ㅇ”으로서 “눈결에 꿈결에 귓결에 넘실대”는 모습으로 찾아오게 된다. 사각의 감옥 같던 ‘ㅁ’으로 점철되었던 겹이 붕괴되자 원만구족한 ‘ㅇ’의 속성을 지닌 결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결이란 “오롯이, 나만을, 올연히, 온 맘을 드러내/ 말 속에 묶은 맘”으로서, 그것이 회복되자 시적 주체는 “진짜배기 그림자”가 자신을 보듬는 충일한 정서를 경험한다. 물론 우리는 ‘진짜배기 그림자’라든가 ‘눈결’, ‘꿈결’, ‘귓결’ 등의 어휘에서 심미적 충동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시적 주체가 추구하는 것이 “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를 뜻하는 ‘결’이라는 것을 상기해 보면, 그 속에는 어떤 경향성이라든가 조화, 혹은 균형 같은 심미적 요소가 숨어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이 길항하는 다음 대목에서도 삶의 본질이 아름다움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은 안개 색, 안개 색과 놀아 주어야 할 때,/ 그대가 내 심장의 관상동맥 한 혈관을 막았을 때,/ 죽음이라는 숨턱을 넘는 것이 숨 쉬는 것보다 쉬울 때,// 여기는 안개 색,/ 허우적거릴 뿐, 부유스름한 물살에서/ 세차면서도 부드러운 물너울을 타고 얼굴이 잠길 뿐, / 사방은 온통 물안개바다, / 잠의 눈꺼풀이 마냥 무거울 뿐,/ 잔잔한 물살에 몸을 맡긴 채,/ 기진맥진 나뭇가지를 부여잡을 뿐, / (엄마, 어머니, 어머니……)// 저 멀리서 갑자기 잠이 환하게 촛불을 들어올렸다/ __엄마, 나예요, 나, 울음에 목 쉰 소리/ __응, 여기가 어디지, 가슴뼈를 송곳이 마구 찔렀다/ 분당 서울 대학 병원 그물 시술 중환자실// 그대가 내 가슴을 쥐고 목숨 줄을 꽉 조였을 때,/ 어두운 숲길 내 시간이 그루터기에 걸려 쓰러져 있었다/ 죽음이란 유혹, 알약에 취해 실컷 몸과 놀고 싶었다// 내 명줄을 딸이 꽉 잡고 있었다/ 하늘 한 조각이 꽉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살아 봐, 살아 보는 거야,/ 개똥밭에 굴러도 뒹굴며 살아 봐,/ 엷은 보라색, 보라색은 신비한 하늘색이지/ 새로 태어나는 색이지, 신새벽 저 창문을 봐,/ 오롯이 보이는 새별, 개밥바라기별을 다소곳 바라 봐.
----[색채 예보] 전문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다 딸이 명줄을 붙잡고 있어서 다시금 이승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새로 태어난 것 같은 회생의 순간에 시적 주체는 새벽의 개밥바리기별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엷은 보라색”이라는 ‘색’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 등의 사건이 진술되어 있다. 사실 이 시집 속에는 소리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색에 대한 관심이 넘쳐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본색’이라든가 ‘정색’들이 그러한 성향을 대변해준다. 그런데 시적 주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순간 “새로 태어나는 색”인 “엷은 보라색”을 보게 되는 것이다. 먼동이 터오거나 일몰이 다가올 때 지평선에 자욱하게 깔리는 색이 엷은 보라색일 것이다. 따라서 엷은 보라색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걸쳐 있는 색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이므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던 시적 주체가 그러한 색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굳이 그러한 순간에 깨어난 의식이 ‘색’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신비한” 엷은 보라색을 본다는 것은 시적 주체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심미적 본성을 대변해주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혜봉 시집 {색채 예보, 창문엔 연보라색}, 도서출판 지혜, 양장,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