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53:4-5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
오늘은 ‘종려주일’이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다고 해서 ‘종려주일’이라고 부른다. 마16:21에 보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어느 예쁜 여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얼굴과 몸은 심한 화상으로 인해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딸은 어머니 얼굴을 보여 주는 것이 싫어서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고, 엄마가 어떤 이유든지 학교에 오는 것도 절대 반대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도시락을 빠뜨리고 학교 갔다. 엄마는 밥을 굶을 딸을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워 “어떤 이유든 딸이 절대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한 딸의 부탁을 잠시 잊고 딸에게 줄 도시락을 챙겨 학교에 갔다. 도시락을 받은 딸은 엄마에게 인상을 쓰며 “왜 학교에 왔냐구 빨리 가라”고 재촉을 했고 그 모습을 본 친구들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우리 집 가사 도우미라고 말을 했다.
하교를 해서 집으로 들어온 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에게 화를 내며 따져 물었다. “왜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왔어... 밥 한끼 안 먹는다고 죽어... 죽느냐구...” 엄마를 원망하며 울고 있는 딸에게 엄마가 말을 했다. “엄마 얼굴이 왜 이렇게 된 줄 아니? 네가 어렸을 때, 아빠는 출근하고 내가 바깥에서 빨래할 때 원인 모를 불이 나 불길이 온통 집안에 휩싸여 있었어. 그때 엄마가 너를 구하려고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구해 오는 동안 이렇게 심한 화상을 당한거야.” “엄마는 엄마 얼굴과 몸이 심한 화상으로 일그러졌지만 후회하지 않아 너를 구할 수 있었으니까... 만약 지금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엄마는 너를 구하러 들어갔을거야... 미안해 딸 다시는 엄마가 학교에 가지 않을께...” 엄마의 말을 들은 딸은 대성통곡을 하며 엄마의 품에 안겨 용서를 빌었다. 그때부터 흉하게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과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을 구해 주신 엄마를 자랑하며 다녔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엄청난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만나 볼 수 있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을 느낄 수 있음)
우리들은 엄마의 사랑과 헌신을 알지 못해 철부지로 반응한 딸과 같이 우리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온전히 깨닫지 못해 철부지 어린아이같이 반응할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다. (영적 베이비 수준을 벗어 버리자) 이제부터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성숙한 주의 자녀로 반응하길 바란다.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시간, 예수님이 왜 고난을 당하셨는지 생각해 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자.
1.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하셨다. 우리 주님이 고난을 당하신 이유 첫 번째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위해서다. 사람이 병이 들면 여기저기 아프다. 사람이 그렇게 아프기 시작하면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아프다. 그것이 더 고통스럽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몸과 마음이 하나라고 말을 한다. 몸이 아프면 권태와 짜증이 나고, 외롭고 우울하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두려움과 공포가 오기도 하고 자포자기 비관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고,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고 한다. 몸이 병들면 마음도 병이 들고, 마음이 병이 들면 몸도 병이 드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인생들은 모두가 몸과 마음의 병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슬퍼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해결이 안 됨 - 세상적인 방법은 그때 뿐이고 다시 몸과 마음이 괴롭고 슬픔에 잠김) 예수님은 이렇게 평생 질고와 슬픔으로 살다가 죽어 멸망에 들어가는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
마8:16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하셨고 막2:17에도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하셨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주님이 나를 위해 베푸신 그 은혜를 믿고 질고와 슬픔에서 놓임을 받아 살아야 할 것이다. 5절 하반절에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하셨다. (나을 것이 아니라 나음을 받았음- 믿음으로 선포하자) 주님이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다 치료해 주시고 해결해 주신 것을 믿고 선포할 때 새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복음의 능력으로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될 것임 – 육신의 질고와 슬픔보다 영적인 질고와 슬픔에서 치료해 주심 –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감) 요8:32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셨다.
2.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하셨다. 예수님의 고난을 당하신 것은 (찔리고 상하신 이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으신 이유) 예수님 자신의 죄와 허물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죄인 된 우리들을 위해 고난을 당하신 것이었다. 히4: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하셨다. 오직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신 것이었다. 롬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셨고 롬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셨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셨다. 그 당하신 고난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나음을 받았다. 회복의 은혜를 받았다.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능력으로 죽었던 내 영이 살아났고 잃어버렸던 에덴의 복이 다시 회복이 되었다. 엡2:1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든지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는 것이다.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다시 마음 깊이 새기고 이제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어린 양 예수님을 위해 사는 성도들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고후5:15에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