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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라. 에스라7:1-10
주신 말씀 에스라7:1-10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하는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하여 하나님 주시는 은혜 받도록 하겠습니다.
날씨가 매우 덥습니다. 이럴때 일수록 더욱 건강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로로부터 귀환하라고 기회를 주었건만 일차 포로귀환한 인구가 오만여명에 불과했고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의 신앙을 잃고 잡족들과 통혼하며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적은 인원만 귀환한 것은 그들이 팔레스틴으로 귀환하려면 한꺼번에 재산을 처분해야 하는데 값이 폭락하여 손해가 극심했고 막상 70년동안 가정과 사업이 안정되었고 이제 살만한 터전이 잡혔는데 다시 불안하고 고생길이 활짝 열린 광야같은 이스라엘로 귀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홀연히 나타나 회개하고 돌아가자고 합니다.
국가적인 민족부흥운동을 하려면 미스바 대회개운동처럼 내적 조직적 합리적 계획적으로 앞장서고 솔선수범해야할 정예병이 있어야 합니다.
성전보다 더 중요한 무너진 이스라엘의 신앙정신을 복구하려는 에스라를 보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마음이 시원하실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율법의 원리를 바로 알라 (1-5)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현실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율법을 주시는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합한 때에 가장 합당한 지도자를 세워 주십니다.
에스라서는 스룹바벨 주도로 이루어진 제1차포로 귀환(BC537)과 성전재건(BC516)이 전반부(1-6장)이며, 7-10장은 에스라 주도하에 2차 포로귀환과 종교개혁을 통한 선민공동체의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면서 이 일후에(ואחר הדברים האלה)은 그리고[ 이 일들 후에]라는 뜻으로 전반부와 후반주의 시간적 간격이 상당히 긴데, 스룹바벨 성전 재건이 주전 516년 페르시아 3대왕 다리오 왕 때 이루어진 일이고, 7장의 2차 포로귀환은 5대왕 아닥사스다 재위시인 주전 458년에 이루어진 일이므로 약 58년이란 간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일이란 스룹바벨 성전재건은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귀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 재건축을 시작하자 대적들의 방해에 부딪쳐 4장에서 중단된 것을 학개와 스가랴의 독려에 의해 다시 시작되어 갖은 모함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관리들에 의해 페르시아 왕조의 인가에 의해 진행되었음을 밝히는 계기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필요한 때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장소에 보내시는데 이는 내적, 조직적, 합리적, 계획적인 하나님의 사람을 양성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려 오시고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앞으로의 미래도 보장하시고 지켜 주실 것이라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세우시고 보내시기에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순종하고 충성하며 합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실 때 거룩으로 옳고 좋은 방법으로 사랑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는 원리는 거룩으로 옳은 방법으로 사랑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온전을 향하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재건과 포로귀환을 주장하시면서 고레스의 귀환조서와 다리오왕의 성전재건공사의 허락 그리고 미적거리는 선민들을 아하수에로의 에스더왕비를 통해 민족멸절의 위기를 죽으면 죽으리라는 온전한 충성으로 선민을 보호하시고 그를 계기로 3차 포로귀환이 그 아들 아닥사스다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에서 에스라의 족보가 소개되고 있는 것은 그가 제사장이요, 율법학자였으며, 7-10장에서 이스라엘 신앙개혁을 통해 신정국가 재건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인물이기 때문입니다.
1차 포로귀환 당시 가졌던 신앙의 감격과 열심을 상실한체 타락하고 음란해져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에스더왕비를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과 선민을 더욱 보호해 주심을 깨닫게 하시고 부림절을 탄생시킨 하만의 유대인 대살상 계획으로부터 승리하게 하시고 율법에 능통한 학사 에스라를 통해 2차 포로귀환을 이끌도록 하신 것입니다.
에스라의 신앙개혁운동으로 말미암아 민족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다는 뜻을 가진 에스라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가장 적합한 때에, 사명감이 투철하며 성경에 능통한 학사 에스라를 보내시어 국가적 민족 부흥운동을 일으키게 하신 줄 믿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교회를 위히 가장 적합한 때에 가장 적합한 종을 세우시고 보내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날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사단이 교회를 무너뜨리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런 모든 사단의 역사를 물리치고 성도들과 그 공동체를 말씀과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세워 주실 줄 믿습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시원케 하실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가 말씀 즉 거룩, 방법, 사랑 ,하나님 중심으로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임을 믿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6-8)
에스라는 하나님이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하고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포로기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당을 짓고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사들을 배출하였고, 이들이 율법의 맥을 이어가는 랍비들이 된 것입니다.
에스라가 탁월한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우심을 입음으로] 라는 כיד케야드는 ‘כ~을 따라’ ‘손יד ’가 결합된 말로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도움이 베풀어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왕으로부터 받는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이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를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페르시아에서 좋은 집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왕이 주는 고위관직에 앉아 권세를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를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로 선택한 것은 왕이 주는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 베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잇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은 하나님을 위하여 또한 포기할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인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에게 신망 받는 관리였고 성경에 능통한 학사였기에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력한 여호와의 손이 항상 그와 함께 하였기 때문임을 명심하여 좌로나 우로 치우침이 없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은 모든 성도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손이 자기 위에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성도의 전하는 복음을 귀하게 받아 생명의 말씀을 존중하며 따를 수 있도록 해야 될 줄 믿습니다.
제2차 포로귀환은 페르시아 아닥사드다왕 7년인 주전 458년에 이루어져서 1차 포로 귀환 후 80년 만에 다시 이루어진 것입니다.
고레스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갈 것을 지시했지만,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벨론에서 이루어 놓은 모든 삶의 터전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 황무한 땅을 개간해야 하는 등 많은 희생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 약속의 땅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선민이 미적 거리자 하만이라는 아말렉 사람을 통해 선민을 멸절 시키려 할 때 모르드개와 에스더 왕비를 통해 하만의 계략을 좌절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이 조국으로 돌아가라는 것 이을 바로 깨달은 것입니다.
풍요한 이방 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머뭇머뭇하는 백성들에게 인생채찍과 사람 막대기로 징계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바로 따르라는 경고인것입니다.
성도에게 닥치는 위험이나 환난 시련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기 원하셔서 사랑하는 백성을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어차피 멸망할 자들은 단지 심판만 하실 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삶을 살아도 징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우리를 부르시고 인쳐 주셔서 십자가 공로로 거룩하게 하시고 구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기 원하시므로, 환난 시련 곤고 위기를 주셔서 세속에 찌들어 돈과 물질과 명예과 쾌락에 빠지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성도들은 영적으로 늘 올라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올라가다는 말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가는 것을 말합니다.
해발 300메타인 인제에서 해발 50메타인 서울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간다고 합니다. 덜 중요한 곳에서 더 중요한 것으로 가는 것을 올라간다고 합니다. 문명도시 페르시아에서 광야같은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것이어야 한느데 올라간다고하는 것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이 계신곳 하나님이 택하신 곳이기에 페르시아보다 예루살렘이 더 중요한 곳이기에 올라간다 합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성전이 있는 곳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가는 신앙의 길은 영적으로 보면 올라가는 길입니다.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얻는 길이며, 낮아지는 길 같지만 사실은 높아지는 길임을 명심해야합니다. 성도가 신앙의 길을 마치고 마침내 도달한 새 예루살렘은 영원한 생명과 복과 면류관이 기다리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환난과 시련의 길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소망 가운데 당당하게 새 예루살렘성을 향해 힘차게 걸어갈 때 그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속이 뻥뚫리고 시원케 되실 줄 믿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고 말씀을 믿으라 (9-10)
에스라와 그의 일행은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을 출발하여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만4개월에 걸쳐 900km를 걸어서 도착한 것입니다.
귀환자들 중 노약자나 어린이 여자등이 있었고 사막을 피해 북부 시리아 지역으로 우회해야 했으며 도처에 도적과 강도들이 날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적과 매복한 자들이 이스라엘 포로 귀환자들을 노리는 것은 그들의 전재산을 모아 길을 떠난 것이 온 땅에 소문이 퍼졌기 때문에 위험은 더 커지고 길은 더 어려워지고 재산뿐 아니라 목숨조차 지키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성도의 인생여정을 늘 함께 하시고 선한 손길로 도우시는 분이신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멀고 험한 인생의 여정 속에서도 언제나 보호하시고 은혜 가운데서 살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우리 인생이 여정을 되돌아보고 안전하고 평안하며 여전히 많은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은 우연 이 아니라 재수가 좋아서가 아니라 오늘 하루하루의 여정 속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각종사고와 위험과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들고 이끄시고 계심을 믿어야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극한 공포나 외로움을 느낄 때, 위기감이나 좌절감에 빠질 때 , 환난이나 고난에 빠져 헤어 나오기 힘들 때 일지라도 염려하지 말것은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 하리리로다.(시1213-4)”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한순간도 빠짐없이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주심을 믿고 확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먼저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하고 사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회복시키고자 노력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방인과 통혼하며 이방 우상들을 섬기고 있는 것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1차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지도하던 스룹바벨과 예수아, 학개나 스가랴 선지자들 사후에 영적 지도자의 부재로 율법과 규례를 모른 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악과 우상 음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 이야기를 읽은 적 있습니다. 안수집사가 야동을 열심히 보고 전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집사님 안하시면 좋겠지요 하니까 [ 이것 장로님들이나 일부 목회자들도 좋아하던데요 ]하고 그칠 줄 몰라 하더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되었을 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호4: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해서 그릇된 길로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무지와 나태가 죄를 범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에 힘쓰고 복음의 말씀을 전하기에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읽고 묵상하기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안에서 형통한 삶을 살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율법의 원리를 바로 알라 (1-5)
둘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6-8)
셋째로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고 말씀을 믿으라 (9-10)
무더운 날씨에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므로 하나님 주시는 복과 영생의 면류관을 받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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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주일 되세요
생명의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