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티키타카] 레알마드리드와 스페인 대표 팀에서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이 이룩한 화려한 업적은, 그 혼자 만의 힘이 아니다. 전술 전문가인 토니 그란데 코치와 더불어, 피지컬 전문가인 하비에르 미냐노 코치가 언제나 델보스케 감독을 위해 선수들의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렸다.
델보스케 감독은 오지 못했지만, 그의 최고 조력자였던 그란데 코치와 미냐노 코치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 팀의 코칭 스태프에 합류했다. 합류하고 가진 첫 일정인, 11월 콜롬비아, 세르비아와 친선 경기부터 효과가 나타났다. 1년 넘게 무기력한 경기를 하던 대표 팀은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았다. 지칠줄 모르고 뛰었고, 수비적으로 단단했다.
축구계에서 감독의 일은 잘 드러나지만, 언론 전면에 나서지 않는 코치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0년 넘게 스페인 대표 팀과 레알마드리드를 전담 취재해온 미겔 앙헬 디아스(전 마르카, 현 카데나 코페) 기자는 이들의 에피소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스페인 내에서도 몇 안 되는 전문가다. 그란데 코치의 이야기에 이어 미냐노 코치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스페인의 피지컬 장인, 미냐노
-유도 3단, 국가체육지도자, 박사학위, UEFA 프로 라이선스
“당신이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그를 그라운드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일이요.” 레알마드리드는 이제 막 브라질 축구 스타 호나우두를 영입한 참이었다. 하지만 호나우두는 아직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훈련 캠프에서 어떤 활동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릎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하비에르 미냐노는 그런 호나우두를 지켜보는 델보스케 감독의 절망적인 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감독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할 수 있었던 있었던 이유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 팀의 새로운 피지컬 코치에겐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훈련 계획을 구성해야 한다. 이런 일은 미냐노 코치에게 쉬운 작업이다. 그만큼 압박감이 크고, 성과를 빠르게 내야 하는 작업을, 미냐노 코치는 세계 최고의 레벨에서 해왔다.
미냐노 코치가 구성한 프로그램을 통해 호나우두는 조금씩 조금씩 훈련량을 늘려가며 경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레알마드리드가 기대했던 경기력을 보여주게 됐다.
호나우두는 수 많은 많은 아침 시간에 미냐노 코치 옆에서 러닝을 했던 유명한 스타 선수들 중 한 명이다. 또 다른 스타는 지네딘 지단이다. 유벤투스에서 레알로 이적해온 프랑스 스타는 이탈리아식 피지컬 훈련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지단은 델보스케와 그의 코칭스태프가 해온 훈련 방법에 적응하기 위해 따로 개인 훈련을 해야 했다. 미냐노 코치가 지단을 레알의 방식에 녹아들도록 이끌었다.
◆ 최고의 선수들 지휘한 미냐노, 다양한 자격증 갖고 있는 ‘피지컬 장인’
미냐노 코치의 손을 거친 축구 선수들은 굉정히 많다. 대단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특히 많았다. 피구, 라울, 차비, 세르히오 라모스, 푸욜, 피케, 부스케츠, 비야, 토레스… 미냐노는 스타 선수들과 일하는 것이 익숙하다. 하지만 그는 겸손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스타 선수와 하는 일이아니라, 어떤 일이든 전력을 다해 임한다.
그의 커리큘럼은 무한하다. 주목을 끌만한 이력이 많다. 체육교육 박사 학위를 갖고 있고, 프로 감독 자격증(UEFA 프로 라이선스)도 갖고 있다. 그는 국가체육지도자 자격증도 갖고 있다. 농구 지도자 자격도 갖췄고, 유도 3단, 검은 띠의 소유자다. 여기에 안전구조사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 그는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스포츠 과학과 피지컬 훈련에 대한 강단에 서고 있다. 게다가 3년 간 피지컬코치협회에서 내는 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스페인의 피지컬 '장인(maestro)'이라고 할 수 있다.
미냐노는, 레알의 전설 라울과 마찬가지로 아틀레티코마드리드 유소년 팀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여기서 떠난 이후 라파 베니테스와 페페 포르톨레스가 부임한 레알마드리드 하부 조직에서 인생 전체를 바꿀 기회를 얻게 된다.
델보스케 감독은 꽤 엄격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미냐노 코치도 델보스케 감독과 처음 일하던 시기에는 문제를 겪었다. 미냐노 코치가 레알에서 일을 시작한 초기의 일들을 털어놨다. 그가 19세 이하 팀의 훈련을 지휘한 이후였다. 라커룸에서 나오는 데 목소리가 들렸다. 델보스케 감독이었다. 그에게 라커룸을 나설 때 불을 끄라고 소리쳤다. 이게 처음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델보스케 감독이 미냐노 코치의 능력을 발굴하고, 지지해줬다.
미냐노는 델보스케 감독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가장 먼저 와서 가장 늦게 떠난다. 그는 모든 것을 통제한다. 그와 함께 일하며 레알마드리드를 이해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호르헤 발다노가 물러난 뒤 델보스케 감독이 1군 팀을 두 번째로 이끌게 됐다. 그때 겨우 만 29세였던 미냐노 코치에게 산마메스에서 열린 경기의 웜엄을 맡겼다. 이에로, 산치스, 라울, 라우드루프, 사모라노 같은 선수들의 컨디션을 그가 만들었다. 다른 피지컬 코치에게도 기회가 돌아갔다. 좋은 결과를 낸 쪽은 미냐노 코치였다. 1995-96시즌 아르세니오 이글레시아스가 피지컬 코치로 부임해서 일하고 있었다. 그 일은 미냐노 코치에게 넘어왔다.
델보스케 감독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레알 1군 팀을 지휘했다. 이 기간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두 번의 라리가 우승과 1번의 UEFA슈퍼컵 우승, 1번의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1번의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했다.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누구도 쉽게 하기 어려운 성과다.
2004-05시즌, 델보스케 감독은 터키 무대로 도전했다. 베식타슈 감독을 맡았다. 언론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시기다. 하지만 당시 주역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도자 경력을 더 풍부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2006-07시즌, 미냐노는 델보스케 감독의 허락 하에 라싱산탄데르로 향했다. “난 이미 나 만의 팀운영 콘셉트를 구축하고 있었고, 델보스케 감독도 그 점을 인정해줬다. 델보스케 감독은 내게 거절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인산적으로, 솔직하고, 좋은 방식으로 일을 풀어줬다.” 미냐노 코치는 그때 델보스케 감독과의 일을 지금도 고마워 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델보스케 감독과 함께 스페인 대표 팀에서 일하게 됐다. 8년 동안 그는 2번의 월드컵, 2번의 유로, 2번의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했다. 총 113차례 국가 대표 경기를 치렀고, 86승 10무 17패를 기록했다. 델보스케 감독은 미냐노 코치의 일을 완전히 신뢰했고, 그의 영역을 절대 침범하지 않았다.
“비센테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나서 결정한다. 항상 나를 믿어줬다. 그가 내 일을 믿어주지 않았다면, 내 뒤에 서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내게 자유를 줬고, 내 판단을 믿어줬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미냐노 코치는 미국 프로축구 시카고 파이어 팀의 제안을 받기도 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다른 제안도 있었다. 알제리축구협회에서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과 함께 일할 뻔 하기도 했다. 알제리 대표 팀 코칭 스태프 합류가 상당히 진척되기도 했다.
카파로스 감독은 델보스케 감독이 스페인 대표 팀 감독에서 물러나고 훌렌 로페테기 감독이 부임하기 전, 스페인 대표 팀 감독의 강력한 후보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스페인에는 최종적으로 로페테기 감독이 선임됐다. 알제리 대표 팀에는 루카스 알카라스가 부임했다가 지난달 본선 진출 실패 이후 물러났다.
반 년 가까이 벤치를 지키다 미냐노 코치의 프로그램을 통해 2002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주전 자리를 꿰찬 솔라리
◆ 통제 원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경기 감각 떨어진 선수도 부활시킨 미냐노
미냐노 코치는 매우 세심하게 일한다. 선수들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훈련량과 부하를 밀리미터 단위로 통제하고자 한다. 하지만, 결국 자기 몸을 제일 잘 아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한다. 강요하는 것은 꺼린다. 그는 자신이 도와주고 조언해주는, 상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
미나노 코치는 선수들의 개별 훈련을 디자인하는 데 전문가다. 지금 레알마드리드 카스티야 감독을 맡고 있는 산티아고 솔라리와 보낸 시즌은 그 좋은 예다. 아르헨티나 선수는 거의 6개월 넘게 선발 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미냐노 코치에게 더 많이 훈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꾸준히 미냐노의 방법으로 훈련했다.
솔라리는 피지컬과 정신적으로 노력한 보상을 받았다. 결국 시즌 말미에 주전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그는 2002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선발 선수로 나섰다. 레알이 9번째 우승을 이룬 대회다.
함께 오래도록 일 해온 미냐노와 그란데 코치는 다시 한번 같은 유니폼을 입게 됐다. 델보스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 둘은 그를 그리워하고 있지만, 한국사람들과 융화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란데 코치는 하비와 함께 일하게 된 것에 대해 굉장히 행복해 하고 있다.
이제 며칠만 시간이 지나면, 두 스페인 코치가 운명과도 같은 재회를 월드컵에서 하게 될지가 드러날 것이다. 한국과 스페인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같은 조에 속하는 운명이 펼쳐질지, 스페인 내에서도 꽤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조추첨은 12월 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다. 스페인은 포트2, 한국은 포트4에 속해 한 조가 될 가능성이 있다.
글=미겔 앙헬 디아스(스페인 카데나 코페 기자), 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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