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4,8-12; 1요한 3,1-2; 요한 10,11-18
+ 찬미 예수님
지난 한 주간 안녕하셨어요?
오늘은 제61차 성소 주일입니다. 성소주일은 1964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중에 성 바오로 6세 교황님에 의해 제정되었는데요, 성소주일이 올해 환갑을 맞이했네요? 하느님의 여러 부르심 중에 특별히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를 위해 기도하고 협력할 것을 우리는 오늘 다짐합니다.
올해 성소 주일 담화문에서 교황님은, 자신의 온 삶을 통해 부르심을 받아들인 분들의, 성실하고 꾸준하면서도, 눈에 잘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은 헌신을 기억하자고 권고하시며,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네 부류의 사람들을 언급하십니다.
첫째는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지 않고, 피상적 경향을 좇지 않으며, 사랑과 너그러움으로 관계를 돌보고,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선물에 자신을 열고, 자녀와 자녀의 성장에 봉사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부모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첫 번째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노동을 헌신과 협력의 정신으로 수행해 가는 사람들로서, 더 정의로운 세상, 더 연대하는 경제, 더 공정한 정책과 더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애쓰는, 공동선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침묵의 기도와 사도직 활동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주님께 봉헌하고 있는 수도자들입니다. 수도자들은 때로는 소외된 곳에서 지치지 않고 창의적으로,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실현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사제들인데요, 사제들은 복음을 선포하고, 형제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와 함께 자신의 삶을 나누어주며, 희망을 뿌리고, 하느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모든 이에게 보여 주기 위해 자신을 봉헌한 사람들입니다.
이번 교황님 담화문의 특징은 우선 부르심 받은 사람들을 사제, 수도자의 순서로 언급하시지 않고 가장 먼저 어머니, 아버지의 성소를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작년에도 그러셨는데요, 뭔가 교황님스럽네요?
두 번째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이라 해도, 공동선을 위해 헌신하는 선의의 사람들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을 실현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또한 사제에 대한 표현이 너무나 시적인데요, 직역하면 ‘(예수님께서 당신 몸인 빵을 쪼개어 주신 것처럼,) 사제는 형제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쪼개고, 부러뜨리고,) 부수기(spezzare) 위해, 그리고 희망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기 위해 자신들을 봉헌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그 어떤 말씀보다도 강력하게, ‘제발 이렇게 좀 살아다오.’라며 타이르시는 말씀처럼 느껴집니다.
이어서 교황님은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젊은이들, 특히 교회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거나 불신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께 매료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중요한 질문들을 예수님께 여쭈십시오. 복음 말씀을 통해, 언제나 우리를 은혜롭게도 위기 안에 두시는 그분의 현존이, 여러분을 불안하게 하도록 하십시오.” 제가 지금 이상하게 번역한 게 아니라 직역을 했는데요, 각 나라 주교회의 번역실이 난리가 났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기로 초대하신다, 그분의 현존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라는 말씀인데요, 젊은 시절에 더 자주 겪게 되는 위기와 불안이,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아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예수님께서 젊은이들과 함께 계신 방식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러한 위기와 불안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자신의 성소를 진정으로 깨닫게 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교황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고, 명령하시기보다는 제안하십니다. 예수님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십시오. 그분을 따르는 데서 행복을 찾을 것입니다. 만일 그분께서 부르시면 여러분 자신을 완전히 드리십시오.”
우리는 성소 주일을 맞아 우리 각자가 하느님께 받은 부르심을 잘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한 온 세계의 사제, 수도자, 선교사들 그리고 우리 본당의 박재욱 율리아노 신학생과 김승조 요셉 신학생, 그리고 예비 신학생과 예비 수도자 모임에 나가고 있는 예비 성소자들에게도 관심과 기도를 선물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목자는 대략 50마리에서 100마리 정도의 양을 쳤습니다. 목자와 양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목초지에서 몇 주 혹은 몇 개월을 함께 지내기도 했는데요, 밤에는 여러 목자가 모여서 양들을 한꺼번에 모아 놓은 다음,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돌로 울타리를 쌓고 번갈아 불침번을 서며 맹수와 도둑들로부터 양들을 지켰습니다.
날이 밝으면 목자들은 각자 자기 양을 불러내어 목초지로 떠나는데, 목자마다 양들을 부르는 소리가 달랐습니다. 자기 목자가 내는 소리를 알아들은 양은 목자를 따라가고, 목자는 자기 양을 알아봅니다.
양은 자신을 방어할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목자는 이리가 덤비면 막대기와 지팡이를 가지고 필사적으로 양들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목자가 아니라, 삯을 받고 임시로 양을 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자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기에 양들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예수님께서는 삯꾼들처럼 양을 버리고 달아나지 않으시고, 목숨을 걸고 양을 지키는 분이라 말씀하시고, 실제로 목숨을 내던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당신의 양인 것을 아실까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예수님 말씀은, ‘내가 만일 너를 모른다면, 내가 아버지를 모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각기 다른 성소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직업을 뜻하는 영어 단어 중 vocation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부르다’라는 뜻의 라틴어 vocare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 모두 하느님의 소중한 부르심이고, 우리는 그 일을 통해 하느님 나라 건설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받은 부르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양으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분 목소리를 알아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삯꾼의 목소리를 목자의 목소리로 혼동한 적도 있습니다. 때론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가기도 했고, 허무주의에 빠져 있기도 했고, 냉담한 시간을 겪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를 아시고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그분 앞에 나와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십니까?’라는 우리의 질문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의 목자다. 나는 너를 위해 내 목숨을 내놓는다.”
이제 나는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나의 목소리를 알아들으십니다.
* 교황님의 성소 주일 담화문:
[담화] 2024년 제61차 성소 주일 교황 담화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cbck.or.kr)
착한 목자, 칼릭스투스 카타콤바의 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