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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
성경본문 : 시편 103: 1-5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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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맞이하는 모든 날들이 다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첫 열매를 거둘 때에... 그것을 가지고 성소를 찾아와서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의 축제를 열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지키는 <맥추감사절>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2021년의 남은 반년을 시작하는 7월의 첫 주일이기도 하여서, 특별한 날이 되었습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에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예물을 드리며, 그동안 내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찬양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와 복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한 주간을 보내면서 오늘을 생각하며 지난 반년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기억나는 감사할일들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저 같은 경우는 참 분명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난 3월초에 몇 분의 교우들과 함께 <터키>를 돌아보면서 견문도 넓히고, 초대교회의 흔적과, 사도 바울의 여정을 돌아 볼 수 있는 것은 참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여정을 평생 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정의 막바지에 <터키>의 <체스메>라는 항구에서 그리스영토인 <히오스>라는 섬까지 배를 타고 가는데...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너무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이러다가 혹시 여기서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무사하게 항해를 마쳤는데... 힘들었던 항해 중에 그리스인 선원이 내 뱉듯 던진 말이 날이 갈수록 제게는 참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서로가 영어에 서투르니까... 제가 그에게 한 말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중에 있는데, 구명조끼라도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어디를 보아도 배 안에서 구명조끼가 있다는 안내문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주 단호한 태도로 ‘no problem’이렇게 말하더니 나를 무시하고는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그 선원이 지나가기에 구명조끼 이야기를 다시 했더니 역시 이번에도 ‘no problem’ 그러더니 앞을 가리키면서 이제 거의 다 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씩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혹시 그의 말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격려의 말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no problem’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요? ‘문제없어... 별거 아니야...’ 이렇게 읽을 수가 있지 않을까요?
지나치게 낙관하고 문제를 외면하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우리들 중 대부분은 너무 소심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을 걱정하면서, 불안해하고 염려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합니다. ‘no problem’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마! 별거 아니야!
오늘 우리가 <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주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그 분에게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나에게는 어떤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함께 읽었던 시편 103편의 서두에 나오는 말씀은 혹시 무엇이 감사하지?
나에겐 감사할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감사에 대하여 참 막연하게 생각되었든 분들에게 감사할 이유가 생각나게 소중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내 영혼아...’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내가 나의 내면에 있는 다른 자기를 향하여 말하는 듯한 형식입니다.
어쩌면 밝은 내면과 어두운 내면이 서로 경쟁을 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두운 내면은 거듭해서 억울하고 속상했던 일들만 말하려 하는 자아를 말한다면... 밝은 내면이란 기쁘고 좋았던 일... 감사할만한 일들을 끄집어내려 하는 자아를 말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겠지요.
오늘 우리들은 어떠할까요?
만약에 우리가 한 편에서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들을 하나하나 열거해보고... 다른 한 편에서는 섭섭하고 속상했던 일들을 열거 해보고... 이렇게 해서 좋았던 것과 속상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지워간다면... 그 끝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감사할 일들이 남게 될까요?
아니면 속상했던 일들이 남게 될까요?
어쩌면 감사할일들은 금방 떨어져 버리고 남게 되는 것은 불평과 원망뿐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 특별히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이런 계산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감사의 리스트를 뽑아 보았더니 한 15개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못할 이유를 뽑아 보니 한 30개도 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난 감사할 수 없어...’ 또는 ‘감사할 일들이 더 많으니 난 감사해야 해’ 이런 식의 감사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실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우리의 계산이나 생각을 넘어 서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모든 것이 모자라고 불평할 만한 현실이지만, 단지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감사가 가진 신비함입니다.
그런가하면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감사할 이유가 된다고 하더라도 단 한 가지 감사하지 못할 이유 때문에... 그것에 발목이 붙잡혀서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 불행한 모습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를 우리는 창세기에 나타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뱀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들은 정말 행복했고... 온통 감사할 것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뱀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금하게 하셨는데...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너희들도 하나님처럼 될 텐데... 그것을 금하게 하신 하나님이 정말로 좋으신 분일까?’ 뱀이 그들의 마음에서 감사가 사라지게 하는 데에는 단 한 가지면 충분했습니다.
선악과를 바라보는 순간!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신 수많은 좋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는 더 이상 좋으신 분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없게 만드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둡게 보이게 하는 것... 우리를 좋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 하나님께서 더 이상 좋은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그것은 단 한가지 일 수도 있습니다.
단 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사건... 아주 사소한 만남... 어떤 사람에게 들었던 아주 작은 말... 그런 것들이 우리들에게서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 가기도 하고...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주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잊지 말아라... v.2
시인이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될까봐...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공허하며, 얼마나 어둡고 침울하며, 얼마나 가난한 것인지...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스스로에게 ‘주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잊지 말아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하나 자기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할 일들...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소중한 은혜들을 생각해 봅니다.
* 주님은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이 대목에서 저는 새삼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 이것도 감사할만한 이유가 되는구나...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주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다는 것... 때로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잊어버리고 살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처럼 감사할 이유가 또 어디에 있을까요?
주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기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거리낌 없이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을 날마다 새롭게 경험하며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 탕자와 같은 우리들인데... 그 모든 죄를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를 맞아 주시고, 아름답고 존귀한 옷을 입혀 주시며, 살진 송아지를 잡으시어 기름지고 풍성한 하늘의 잔치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또한 주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하신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죄 없으신 당신의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시고는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희생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지요.
‘주님은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분...’ 이 고백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언제든지... 어떤 조건 속에서든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이 복된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 모든 병을 고쳐 주시는 분...
이렇게 그는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은혜를 생각합니다. 혹시 지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을 겪었던 시간이 있었다면... 우리는 모든 질병에서 고침을 받게 하여 주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아직도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직면한 분들이 있다면...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지켜 주시고 붙잡아 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나를 모든 질병에서 결국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을 믿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껏... 이렇다 할 아픔이나 고통이 없이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면... 이렇게 나를 항상 건강하게 살게 하여 주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해 주시는 분...
우리가 삶에서 직면하는 문제는 단지 질병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아주 사소해 보이고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나의 발목을 붙잡아 매기도 하고...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직면했던 위기와 어려움은 얼마나 많았던 지요... 그런데 그 때마다 나를 파멸의 위기에서 건져 주신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혹시 그 당시에는 잘 몰랐어도... ‘맞아 하나님이셨어... 하나님께서 나를 그 어려움의 수렁에서 나를 건져 주신 거야...’ 이런 느낌을 가지는 분들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려울 때마다... 진흙탕과 같은 곳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진정으로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 사랑과 자비로 단장하여 주시는 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과 자비로 단장 시켜 주신다는 것... 이것도 감사할 일이로구나... 말씀을 생각하면서 참 기뻤고 좋았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잘 먹고, 잘 입고, 아프지 않고, 모든 일이 잘 되고... 이런 것만을 가지고 감사하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를 향해서든지... 사랑과 자비를 잃지 않고 살고 있다면... 사실 그것처럼 멋진 삶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보여 주신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미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부럽지 않은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관대하고... 너그럽고... 받기보다는 주기를 좋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늘 베풀 수 있다면... 기꺼이 손해를 보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평생을 좋은 것으로 흡족히 채워 주시는 분...
그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좀 놀라게 됩니다.
어떻게 살았기에 이런 고백을 할 수가 있을까?
‘난 하나님의 은혜로 평생을 좋은 것만 누리며 풍족하게 살아 왔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그가 가진 재산이 얼마나 많고... 오늘 그가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다면 이런 고백을 할 수가 있을까요?
아마도 그는 겉으로 판단 할 수 있는 그런 특별함이나 풍성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그렇게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시23:1)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삶이기에... 그 길은 가장 좋은 길입니다. 늘 풍성하고 흡족함을 누리는 삶인 것이지요.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께 대하여 ‘평생을 좋은 것으로 흡족히 채워 주시는 분...’ 이렇게 고백하며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네 젊음을 독수리처럼 늘 새롭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
어떤 분은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한 청년의 감사 찬송이라고 설명을 하는 글을 보았는데...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이제는 새로운 희망을 가질 때도 아니고... 모든 면에서 젊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아 옛날이여...’라는 노래가 절로 흘러나올 수밖에는 없는 시간이 그에게는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맘이 알지 못하는 젊음의 비결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비결인 것이지요.
지금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그는 다시 옛날로 돌아갑니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항상 희망으로 가득차고, 그리고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듯... 새로운 힘이 생겨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고린도 후서5:17)이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나에게 힘을 주시고... 나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에게는 항상 감사하며 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 시대는 다르지만... 한 신앙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이유들을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덧붙일 수 있는 감사할 일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에 우리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게 되기도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아주 작은 일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감사가 우리의 삶 전체를 밝게 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감사가 지닌 신비함입니다.
여전히 우리가 어렵고 힘든 삶의 조건 속에 던져져 있더라고 하더라도...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2) 내 속에 나 아닌 나를 끌어내라.
시 103 : 3-5
여러분 안에 나 아닌 나가 들어 있는 것을 아시나요?
여러분 안에 지금 나보다 더 위대한 나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시나요?
미켈란젤로가 지나가다가 큰 대리석 돌덩어리를 보았습니다. 그 돌덩어리로 죽은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 상을 조각하였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품 중에 하나입니다. 돌 속에 인류 최고 유산이 들어 있는 것을 본 것이 미켈란젤로였습니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이런 제목의 글을 읽었습니다.
“달걀이 걸어간다.”
달걀이 어떻게 걸어가는가 호기심이 일어나서 끝까지 읽어보았습니다. 달걀은 걸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병아리가 되어서 걸어가면 걸어갈 수 있습니다. 달걀 속에는 병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속에는 다른 여러분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나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보다 다른 나가 숨어 있습니다. 그 나를 끌어내면 새로운 나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성경의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근근히 이어가는 어부였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인 자기 모습이 자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루에 3천명, 5천명 회개시키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베드로는 어부 베드로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지금의 나 아닌 진정한 나를 끌어 내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지금 모습이 진정 여러분의 모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진정한 내 모습을 내 안에서 끌어내야 합니다.
삭개오도 그렇습니다.
삭개오는 평생 세리장으로 살다 죽을 줄 알았습니다. 평생 돈이나 모으면서 살다가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뽕나무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에 감격하여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 주겠사오며 남에게 토색한 것은 4배나 갚겠나이다.”
그 후 삭개오는 평생 자선 사업가로 살았습니다. 수전노에서 유명한 자선사업가로 변모되었습니다. 노랭이 삭개오속에 자비로운 숨결을 내쉬는 자선 사업가의 삭개오가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 하였으면 진정한 삭개오가 세리장이 삭개오속에서 나오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성경의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기드온이 그랬습니다.
덴막의 문호 안델센도 그랬습니다. 그는 글쓰는 문필가가 되고 싶어하였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에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안델센이 쓴 글을 보더니 던지면서 말했습니다.
“이것도 글이라고 썼느냐? 그만 두거라.”
안델센은 집으로 돌아 와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할머니가 왜 우는 지 물었습니다. 안델센은 그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지혜로운 분이었습니다. 울고 있는 손자 안델센을 데리고 봄에 막 싹이트고 있는 꽃받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막 싹트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얘야! 이 싹을 봐라. 조그만 싹이지. 조금 있으면 무럭무럭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단다. 너는 겨우 이런 싹이야. 크게 자랄 거야. 이제 시작이야. 열심히 해.”
이 말에 안델센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드디어 세계적인 문호가 되었습니다.
내 안에는 지금 나아닌 내가 숨어 있습니다. 그 나를 끌어 내야 합니다.
오늘은 다윗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다윗은 목자였습니다.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으로 양을 끌고 다니면서 양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양 젖을 짜서 팔고, 양 털을 깍아 팔고 때로는 양을 파는 목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왕이 되었습니다. 목자 다윗속에는 왕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목자가 아닌 왕의 모습을 끌어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보통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왕이 되었습니다.
내속에서 나아닌 다른 나를 끌어내는 비결이 무엇일가요? 다윗의 생애를 보면서 그 비결을 찾아 보려고 합니다. 우선 다윗의 고백을 들어 봅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 3-5)
1. 탈출시켜주시는 하나님
다윗은 내 모든 부정적인 상황에서 탈출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확실이 믿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되 어떤 하나님을 믿었나요?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다윗은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을 죽이고 남의 아내를 빼앗아 산 남자입니다. 그러나 우리아 장군을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와 함께 살았습니다. 이런 큰 죄를 나단 선지자가 지적하였습니다. 그 때 다윗은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리고 울었던지 침상이 눈물로 둥둥 떴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다윗은 그 이 후 이 죄에 사로잡혀 쩔쩔 매며 산 적이 없었습니다. 이 죄책감 때문에 주눅죽어 산 적이 없습니다. 늘 죄인의 모습으로 살았지만 사람을 죽인 상처가 그를 위축되게 하지는 못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으니 나도 나를 용서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여 주셨는 데 누가 나를 정죄하리요라는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죄에서 탈출시켜 주시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여러분의 과거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다 용서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 지은 죄로부터 얽매여 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다윗은 과거 지은 죄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음을 자신만만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죄를 지었다고 할 지라도 주님이 용서하여 주신 줄 믿고 다시 그 죄에 대하여 아픔을 가지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다윗은 병에서 고침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에 어떤 병에 걸렸었는 지 구체적인 기록은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어려서부터 사울왕이 죽이겠다고 따라 다녔습니다. 언제 죽을이지 모르고 객지 생활을 오랫동안 먹는 것이 부실하였고, 자는 곳에 항상 객지였습니다. 몸이 온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병들었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이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탈출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로부터 그리고 병으로부터 탈출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체험적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병은 타할루아임이라고 되어 있는 데 이는 복수입니다. 다윗은 한 가지 병에 걸렸던 것이 아니라 많은 병에 걸렸던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병을 다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종합병원과 같은 다윗을 다 거쳐 주셔서 병에서 탈출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병을 모두 고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다윗은 또 다신 체험을 생생하게 하였습니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여 주시는 체험입니다. 파멸은 히브리어로 <샤하트>라고 되어 있는 데 이는 무덤을 말합니다. 무덤에 들어갈 것을 건져 주셨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죽을 뻔한 순간에서 그 때 그 때 그 때마다 건져 주시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기가 막힌 사건입니다. 다윗은 도망갔습니다. 도망가 있는 동안에 압살롬이 기가 막힌 죽을 당하였습니다. 노새를 타고 가다가 상수리 나무에 머리 칼이 걸려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노새만 빠져 나가 버렸습니다. 이를 본 신하가 요압 장군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요압은 그곳으로 달려 갔습니다. 심장을 찔러 죽였습니다.
다윗은 죽을 뻔 하였으나 하나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왕이 자기 자리를 빼앗는다고 군사 3천명을 풀어 다윗은 잡아 죽이려고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때 그 때마다 묘하게 살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체험을 생생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의 위기에서 탈출하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2. 소원을 만족시켜 주시는 하나님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긍휼로 관을 씌우시고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다윗은 단 한번도 자기가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윗속에 왕이 모습이 숨어 있었습니다. 다윗속에 들어 있는 왕의 모습을 끌어 내주신 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셔서 이새의 집에 가서 아들중에 왕으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집에 갔습니다. 8명 아들이 있었습니다. 7명이 사무엘 앞에 모였습니다. 사무엘은 외모가 좋은 큰 아들을 왕으로 알고 기름을 부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는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하시면서 홀로 양을 치며 남아 있는 다윗을 불러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속에 있는 다른 나를 부르셔서 다른 나를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적 고백이 있습니다.
“나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어요.”
이 말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많은 성경의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그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고백할 것입니다.
“나는 결코 갈데아 우르를 떠날 것을 생각지도 못 했어요. 내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한 것입니다.”
모세도 고백할 것입니다.
“나는 미디안에서 양을 치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지요.”
배드로도 고백할 것입니다.
“나는 어부로서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은 상상도 못 하였지요.”
다니엘도 고백할 것입니다.
“나는 사자굴속에 들어가서 살아 나오리라고는 기대하지 못 하였었지요.”
모두가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로 관을 씌우시고 소원을 만족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3. 새로운 인생을 만드시는 하나님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내 안에서 새로운 나를 끌어내어 나를 새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독수리와 같이 청춘을 새롭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다윗은 늙도록 평생 주변에 있는 적들을 섬멸시키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 왕국을 이루었습니다. 자기가 보아도 대견스러웠습니다. 이제는 안정되게 쉬고 싶었습니다. 행복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요압 장군에게 인구조사를 시켰습니다. 군사수를 조사시켰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말렸습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다윗의 불신앙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구수는 얼마든지 관계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기를 바라는 선지자들이 간곡하게 말렸습니다. 인구조사는 두 가지 죄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는 죄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착각한 죄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결국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불신앙하는 인구조사 후 갓 선지자가 다윗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벌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벌을 받으십시오. 첫 째 7년 기근, 둘째 적에 쫓겨 3개월 도망 다니는 벌, 셋째 3일 전염병입니다.”
자기 회초리를 자기보고 선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윗왕은 7년 기근은 생각만하여도 끔직하고 적들에게 3개월 도망다니려면 고생이 극심할 것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3일 전염병을 선택하였습니다. 다윗이 선택하자 말자 3일 동안 전염병이 온 이스라엘에 퍼졌습니다. 7만명이 죽었습니다. 인구조사 결과 130 만명이었으니 20명에 한 명 죽은 것입니다. 인구 자랑을 하려고 인구 조사를 하였더니 인구가 줄게 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오늘 날 대통령 잘못으로 7만명이 죽었다면 당장 사표를 낼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위기속에서 철저히 하나님께 회개하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환골탈퇴하였습니다. 독수리와 같이 청춘을 다시 찾듯이 새로운 마음으로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은 새로운 자기를 찾았습니다. 본문에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한다는 말은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 반 쯤 죽였다가 살아나는 사건을 경험하는 것이 독수리의 청춘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독수리의 자기 관리를 독특합니다.
자기 문제는 자기가 가혹하게 처리하여야 합니다.
아내의 치과 치료비를 남편은 장모에게 청구하였습니다. 청구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모님! 내게 보내주신 따님께 하자가 발생하였습니다. 하자 보수비를 청구합니다.”
장모님이 답장을 보냈습니다.
“자네가 잘못 사용하다가 발생한 부분은 사용자가 하자 보수비를 지불하여야 하네.”
잘못이 생겼을 때 남에게 핑계되지 않고 스스로 환골탈퇴하는 마음으로 극복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독수리의 청춘 회복법입니다.
독수리는 새 중에 왕입니다. 그리고 새 중에 가장 오래 사는 새입니다. 70년 삽니다. 그러나 70년 살기 위하여는 40살 전후에 큰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독수리가 40년 살고 나면 발톱이 안으로 굽어져 먹이를 챌 수가 없어집니다. 독수리 부리는 가슴쪽으로 구부러져서 먹이를 잘 먹을 수도 없습니다. 깃털은 오래되어 무겁기만 합니다. 날라다니기 조차 힘겨워집니다. 이 때 독수리는 양자 택일을 하여야 합니다. 이대로 죽든지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든지 자기 선택입니다.
만일 70살까지 살기 위하여 청춘을 되찾기를 결정하면 독수리는 까마득한 낭떨어지에 둥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부리를 자기가 바위에 부딪쳐서 뽑아 버려야 합니다. 피눈물나는 고통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150일 동안 둥지에 앉아서 새로운 부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새로운 부리가 생기면 그 부리로 자기 발톱을 자기가 물어 뜯어 뽑아 버려야 합니다. 한 발톱 한 톱 뽑아 내는 고통을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고통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발톱이 날 때까지 둥지에서 가만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150일만에 새로운 발톱이 생기면 자기 깃컬을 모두 뽑아 버립니다. 그리고 조금 더 기다리면 새로운 깃털이 돋아납니다.
그러면 완전히 새로운 독수리가 되어 30년 가량을 더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독수리의 청춘이 회복된 것입니다. 독수리안에 새로운 독수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내 안에 나아닌 새로운 나를 끌어 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는 여러분이 모르는 위대한 여러분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 내야 합니다.
누에가 잠을 몇 번 잡니다. 그리고 나서 명주실을 뽑아 자기를 감싸고 또 잠을 잡니다. 그리고 나면 그 안에서 나비가 되어 나오게 됩니다. 누에 속에는 전혀 다른 나비가 들어 있습니다.
내 안에는 전혀 다른 내가 들어 있습니다. 그 나를 찾으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또 다른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우리 나라를 몇 번 쳐들어 와서 쑥밭을 만들었던 우리 나라로 보면 철천지 원수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본 측면에서 보면 일본의 위상을 크게 높인 민족의 영웅입니다. 일본에서 그는 미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대단한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점쟁이에게 갔습니다. 점쟁이가 손금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당신은 손금이 안 좋아서 출세를 못 하겠다.”
그가 물었습니다.
“손금이 어디가 안 좋다는 말인가요?”
“손금이 이어져야 하는 데 당신 손금은 가지가 끊어졌다.”
“어디까지 손금이 이어져야 좋은 손금인가요?”
점쟁이는 손금이 이어져야 하는 곳을 알려 주었습니다. 풍신수길은 이 말을 듣자 말자 칼로 손바닥을 찢어서 손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정도면 됩니까? 이 정도면 나도 출세할 수 있겠지요? 나도 출세하였다.”
이런 정신으로 일한 그는 일본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다윗 이야기를 끌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그냥 살았으면 목동으로 양과 함께 살다가 양과 함께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속에 들어 있는 다른 다윗을 찾았습니다.
다윗속에는 왕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동으로 살 뻔 하였습니다. 내 속에 들어 있는 다른 나를 찾아야 합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외치고 싶습니다.
내 속에 나 아닌 나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한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미국 동해안 메릴랜드 병원을 개업하고 의료활동을 하고 있는 맥카리스터 박사입니다. 어느 날 사랑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였던 아내가 병으로 죽어 가는 데 의사인 자기도 손을 쓸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을 보면서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고민하고 스트레스로 고통을 당하던 중 중풍병에 걸렸습니다. 지체 장애인이 되어 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회만 있으면 자살하려고 작정하였습니다. 점점 자기 혼자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음식도 약을 먹는 것처럼 써서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살하지 않아도 곧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간호원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해변가로 가서 시간을 보내자. 자네들은 수영을 즐기게. 나는 시원한 바다로 나가 속시원하게 즐기고 싶네.”
그리고 간호원들과 함께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는 간호원들에게 수영을 즐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물에빠져 죽을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간호원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을 혼자 남겨두고 바닷물속으로 들어가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간호원들의 눈길이 멀어지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였습니다. 그 때 바다에서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간호원 한 명이 바닷물속에서 쥐가 나서 물결 따라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간호원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상하지 못 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맥카리스터 의사는 자기가 장애인이고 휠체어 없이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이라는 것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 간호원을 끌고 땅위로 나왔습니다. 남자는 혼자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땅위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뛰려는 의지가 그를 살린 것입니다. 그의 온 세포가 정상화되었습니다.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에게는 나외에 놀라운 내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을 끌어내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목동 다윗 속에는 왕 다윗이 숨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1. 탈출시켜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2. 소원을 만족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3. 새로운 인생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