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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6-15
올바른 교육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서로 인사하시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사랑합니다. 은혜받습니다.”
어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 여행을 했습니다.
부자는 다이아몬드와 황금과 온갖 보석이 들어있는 큰 가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지식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바다 한 가우데 이르렀을 때 풍랑이 일어나고 그 배는 바다속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모두 벌거벗은 채 간신히 목숨만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가지고 있던 보석을 몽땅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하나도 잃어버린 것이 없습니다.
그는 아직도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지식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대인 랍비가 쓴 ‘옷을 팔아 책을 사라’는 책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누가 더 부자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식을 가진 자가 더 부자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버려도 지식은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민족의 장래를 교육에 맡겼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태풍을 만난 사람과 같이 박해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모진 박해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육입니다.
그들은 민족이 태풍을 만나 어려우면 어려을수록 더욱 철저히 자기의 자녀들을 교육했습니다.
그것만이 살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땅도 사라지고 재산도 사라지도 인생도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이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고대 이스라엘에는 랍비 위원회가 있어서 나라 안을 순회하면서 도시나 마을이 얼마나 잘 경비되고 있는지를 조사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한 성읍에 랍비가 도착했습니다.
그는 읍장에게 물었습니다.
“이 성읍의 방위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때 읍장은 한 무리의 병사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이 망대로 쓰는 작은 요새를 가리키면서 말합니다.
“이 병사들이 지킵니다”
이 말을 들은 랍비들은 깜짝 놀라면서 말합니다.
“당신이 이런 식으로 이 성읍을 지킨다면 이 읍은 장래는 정말 암담하오. 이 성읍은 병사들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 아니고 교육이 지켜주는 것이오. 그런데 그대들은 어찌하여 우리에게 학교를 보여주지 않습니까?”
이것은 유대인들이 그동안 세계역사속에서 그렇게 많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그 민족성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오늘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육이었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나일강물에 버려지고 바로의 공주가 그를 데리고 가서 키울 때에 그의 어머니 요게벳이 유모로 그 가정에 들아가서 모세를 키으면서 무엇을 했습니까?
교육을 했습니다.
“너는 히브리민족이다. 너는 애굽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히브리 민족이다. 이것을 잊지 말고 너는 장차 커서 히브리 민족을 위하여 일하는 일꾼이 되어라”
결국 모세가 어떻게 합니다.
40세에 바로의 공주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어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섭니다.
이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그들은 교육을 통해서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그 숱한 고난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내일부터 우리 교회도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여름성경학교를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 어릴 때 가르치라.
지방에서 과수원을 하는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농작물들도 비가 올 때는 비가 와야 제대로 자라고 열매도 맺는다는 것입니다.
땅콩을 보면 비가 오지 않으면 싹이 나오다가 말고 그만 스러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마늘도 비가 오지 않으면 뿌리는 많은데 알은 조그맣고 쓸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뿌리를 보면 그가 얼마나 살려고 발버둥을 쳤는가를 알 수 있는데 발버둥만 쳤지 아무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람도 때를 잃어버리면 나중에 잘되는 것이 아니라 땅콩이 스러지듯이 그냥 스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식물이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배울 때 배우고 자랄 때 자라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때를 놓치면 고생만 죽도록 하고 아무 열매도 없이 끝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이가 세살이 되면 벌서 그 아이를 무릅에 앉혀놓고 ‘토라’ 즉 율법을 가르칩니다.
그들이 처음 가르치는 것은 ‘쉐마’인데 이것을 반복해서 그 말씀이 아이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질 때까지 가르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교육은 반복교육입니다.
유월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이 되면 언제나 네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째 “왜 우리가 이런 의식을 행합니까?”
둘째 “누가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 주었습니까?”
셋째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 어떻게 살았습니까?”
넷째 “우리가 어떻게 애굽에서 나왔습니까?”
이 질문은 매년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예 이 이야기를 통째로 글짜하나 빠지지 않고 다 외워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수천년의 역사를 입에서 입을 통해 지켜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그러므로 어릴때부터 자녀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속에 뛰어난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어릴때부터 자녀를 교육해서 우리의 자녀들이 세계속에 뛰어난 민족이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2. 사람이 되게 하라.
어느 날 이스라엘로 유학을 간 아버지가 초등학교 다니는 딸에게 만화영화도 보여주고 동화도 들려주고 맛있는 것고 해 줄테니 친구들을 초대해 오라고 말했습니다.
“몇명이나요?”
“글쎄, 우리 집 공간으로 보아 여덟명 정도가 좋겠다. 그리고 네 반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골라서 불러오는거야. 알았지?”
그런데 딸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합니다.
“저… 아빠, 오글리는 공부는 못하지만 친절하고 성실해요. 나한테도 잘해주는데 불러도 돼요?”
“그리고 아빠, 에스더는 공부는 그저그렇지만 칠판도 혼자 다 지우고 청소도 가장 열심히 하는데….”
이렇게 해서 여덞명의 아이들을 초대하는데 하나같이 “공부는 못하지만…”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빠가 조금 화가 났습니다.
그때 딸이 말합니다.
“아빠, 아빠가 그랬잖아요. 동생하고 사이좋게 놀아야 착한 아이라고…”
“그럼 넌 공부 잘하는 아이는 한명도 없니?”
그 말을 하는 순간 딸의 얼굴은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순간 아버지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공부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람을 판단할 때 공부잘하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용감한가, 얼마나 봉사정신이 투철한가, 얼마나 진실한가, 이런 인간성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또 그렇게 자녀들을 교육을 합니다.
한마디로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의 출세나 물질적인 성공을 위해서 자녀들을 교육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녀들이 기도책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하기 위해서 교육을 합니다.
생각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머리가 아니라 지혜가 되어야 하고 출세가 아니라 사람이 되어야 하고 부귀와 영화 같은 인생의 화려함이 아니라 삶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행복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며칠전 폴란드의 크바시니에프스키 대통령이 예드바브네에서 거행된 유대인 학살 추모식에 참석해서 생존자와 유가족 등 30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나치 독일 점령시절이었던 60년전에 있었던 ‘예드바브네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합니다.
예드바브네 학살은 1941년 7월 10일 1600여명의 유대인이 예드바브네의 한 농가 헛간에 갇힌 채 불태워져 죽임을 당한 사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를 장악한 공산당 정권은 이것을 나치 독일의 만행이지 폴란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출신의 폴란드 역사학자인 얀 토마스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이웃들’이라는 책을 통해 이것이 나치의 묵인 하에 폴란드인이 저지른 사건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크바시니에프스키 대통령이 폴란드인을 대표해서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해 사과를 한 것입니다.
그는 이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한 사람의 시민으로 폴란드 대통령으로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은 폴란드인의 이름으로 사과합니다.”
그리고 당시 학살 현장에서 기적처럼 죽지 않고 살아나온 야쿠브 페시노비츠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답사에서 “이 곳에 와 진심으로 사과해준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폴란드 언론매체들은 “대통령의 용기있는 사과는 공산 정권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아 후손에게 진실을 가르치고 폴란드인과 유대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뜻깊은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입만 열면 지난 날을 사과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역사를 왜곡하고 자손들에게까지 거짓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장차 자라나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머리는 똑똑할지 모르지만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육은 머리 좋은 기술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육도 사람을 길러내고 하나님의 백성을 길러내는 교육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지혜를 가르치라.
오늘 말씀은 갈렙에 대한 말씀입니다.
갈렙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가 열두사람의 정탐꾼을 보낼 때에 함께 따라갔던 사람입니다.
그때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 중에 열사람은 우리는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든지 들어가서 그 땅을 자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땅은 똑같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문제입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서 다시 광야로 들어가서 40년을 고생하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 다시 가나안 땅 정복에 나섭니다.
그때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아갑니다.
그는 전에 이스라엘이 그렇게 무서워하고 떨었던 아낙 자손들이 사는 땅을 자기에게 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자손들을 모두 데리고 가서 아낙사람들이 살던 성을 치고 그 성을 차지합니다.
갈렙은 왜 이러한 일을 했을까요?
그 땅이 정말 좋은 땅이어서 탐이 나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자기의 자손들을 교육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것으로 그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두려워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외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돌아섰습니다.
그는 이 아픈 마음을 가지고 40년을 하루같이 기다리면서 아낙 자손들의 성을 정복하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이제 85세가 되어서 그가 먼저 앞장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으 두려워서 접근하지 아니하려 했던 그 성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그의 자손들이 무엇을 배웠습니까?
지칠줄 모르는 그의 믿음입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그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의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은 신앙으로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신앙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렙은 그의 자손들에게 신앙을 물려주기 위하여 자기가 직접 그의 모든 자손들을 이끌고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는 성으로 가서 그 성을 빼앗고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보라는 것입니다.
너희도 믿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산 교육입니다.
큰 저수지에 물이 빠졌습니다.
평소 열 길이나 되는 깊은 물이 무릅에 찰 정도로 줄어들면서 바닥이 드러나고 물 속에서 평화롭게 헤엄치던 고기들이 물밖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물고기가 탐이 나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 들어 맨손으로 고기잡이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옷을 입은 채 바지만 조금 걷어 올리고 뛰어 들고 어떤 사람은 저고리를 벗은 채, 또 어떤 사람은 속옷만 입은 채 뛰어들어 고기를 잡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흥분으로 싸움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다락 한 구석에 넣어두었던 그물을 끌어내어 해진 곳을 깁고 찢어진 곳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궁금하게 여긴 그의 아내가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은 밖에 나가서 무얼 보았기에 갑작스럽게 떨어진 그물을 손질하시우?”
“응, 저수지에 물이 빠졌는데 온통 고기 투성이라구. 사람들도 그걸 잡느라고 생난리가 났구…”
“그럼 당신도 그걸 잡으려고 다 낡은 그물을 손질한다는 거에요?”
“암 그래야지. 그래야 많이 잡을 수 있지.”
“당신도 참, 그물 고치는 사이에 고기 씨가 마르겠소.”
아내는 투덜거렸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무 말없이 하루 종일 그물만 손질했습니다.
드디어 해가 질 무렵 그물을 다 고친 그는 그물을 들고 저수지로 향했습니다.
여전히 저수지에는 사람들로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이 얕은 가에서만 서로 잡겠다고 난리지 물이 깊은 곳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유유히 그물을 들고 저수지 가운데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수선한 그물을 힘차게 던졌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했던 그 곳에서는 무지막지하게 큰 물고기가 그물 가득 실려 나왔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 줍니까?
사람들이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을 위해서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이 현실에 뛰어들어 한건 해보려는 심정으로 법석을 떨고 있을 때 그런 사람들의 소리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자기 본분으로 돌아가서 내일을 위해 힘을 기르고 그물을 뜨는 지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머리쓰는 사람이 앞서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 지혜로운 사람이 결국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당장의 처세술을 가르치지 말고 삶의 진정한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여름성경학교는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행사가 성경에 대한 지식이나 전달하는 그런 행사가 되지 않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참으로 인생을 살아갈 올바른 지혜가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믿음을 심어주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자녀들의 교육에 민족의 장래를 걸었던 것과 같이 우리들도 교육에 우리 가정과 교회와 이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걸어야 합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7:35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저들이 거짓을 가르칠 때 우리는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하면 머지 않아 우리는 분명 저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뛰어난 민족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자녀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올바른 교육으로 미래를 열어가야 하겠습니다.
“미래를 열어가자”
여러분 모두 자녀들의 믿음을 잘 인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복된 가정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