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346]다산茶山의 차시茶詩
새로 찾은 다산의 차시
초당 정착 이후 다산은 혜장 등에게 손 벌리지 않고도
차를 자급자족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당에 정착한 지 6년 째 되던 1814년 3월 4일에
문산(文山) 이재의(李載毅, 1772-1839)와 주고받은
「이산창수첩(二山唱酬帖)」에
다산의 차 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차시 두 수가 남아 있다.
雨後新茶始展旗 우후신차시전기
곡우 지나 새 차가 비로소 기(旗)를 펴자
茶篝茶碾漸修治 다구다년점수치
篝=배롱 구, 대그릇 구. 동자(同字)簼. 碾=맷돌 년.
차 바구니 차 맷돌을 조금씩 정돈한다.
東方自古無茶稅 동방자고무다세
동방엔 예로부터 다세(茶稅)가 없었거니
不怕前村犬吠時 불파전촌견폐시 吠= 짖을 폐.
앞마을에 개 짖어도 염려하지 않는도다.
「이산창수첩」에 수록된 다산 친필 차시.
따로 붙은 제목은 없다.
곡우가 지나서야 햇차가 도르르 말려있던 새잎을 편다.
일창일기(一槍一旗)는 우전차(雨前茶)의 대명사다.
2구는 갓 펴진 새잎을 보고, 찻잎을 따서 담을 차 바구니와, 차 끓일 때
떡차를 가루 낼 차 맷돌을 꺼내 정돈하는 정황 설명이다.
차 맷돌을 말한 것에서 다산이 주로 마신 차가 떡차였음을 거듭 확인한다.
다산은 혜장에게 준 「제장상인병풍(題藏上人屛風)」에서도
“볕드는 창가 책상에서 독루향(篤耨香)을 사르고, 소룡단(小龍團) 떡차를 다린다.
(燒篤耨香, 點小龍團).”고 적은 바 있다.
3,4구는 차를 딴다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차 세금을 매기는 법이 없어,
앞 마을에 개 짖는 소리가 들려도 아전이
세금을 독촉할까봐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각다고」에서 중국 역대의 각다 정책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던 것과 맥락이 서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