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수필(2024년 고창문인협회 박경리문학관 등)
사월 우중의 문학기행
비가 내린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바람 잔잔한 궂은비다. 비를 맞으며 달리는 차창밖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연초록 새싹이 파릇이 돋아나고 있다.
차 안에서 피어나는 문학의 언어들이 수런수런 차창 밖과 연계된 완연한 초록의 봄이다. 궂은비는 초록의 새싹을 오롯이 밀어 올려 산과들에는 초록바다다. 들판의 하우스가 비를 맞으며 은빛 물결처럼 잔잔하다.
구례의 서시천 생활환경 숲을 거쳐 천개의 향나무 숲을 안고 도는 섬진강 따라 평사리 동정호를 바라보며 박경리문학관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우산을 받쳐 들고 경사진 길을 따라 허위허위 올라간다.
‘토지“의 배경인 평사리에 작가 박경리의 삶과 문학을 되새기고 기억하기 위하여 2016년에 건립된 박경리 문학관, 나는 『토지』라는 소설 내용보다 『토지』를 쓰기까지 작가의 삶의 내면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작가는 일제하에 성장하여 전쟁과 산업화 시대를 체험하면서 인간과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연민을 느낀 분이시란 생각을 하며 올라가는 길, 비탈진 산자락에 감나무들이 새싹을 띄우며 초록비단을 펼쳐 놓았다. 저만치 물레방아 돌아가는 옆에 어느 여인이 우산을 받쳐 들고 사색에 잠겨 있는 듯 아름다운 모습이다.
최참판댁과 박경리 문학관 가는 길을 가르치는 푯말 뒤편에 매실나무들은 풋 매실 실하게 달고 비를 맞으며 연초록 푸른 세상을 마음껏 즐기는 듯 잎을 우산삼아 허공에서 군무(群舞)다.
문학관 마당 잔디밭에서 잔디와 함께 비를 맞고 있는 땅 원고지의 “하동 섬진강‘ 글에
“섬진강과 해란강이 왜 다를까 하고 생각한다. 아름답기론 섬진강 편이다. 조촐한 여자같이, 청아한 소복의 과부같이 백사(白沙)는 또 얼마나 청결하였는가.” (토지 3부 번뇌무한(煩惱無限 중에서) [해란강(하이란강) 조선족 자치주의 두만강 지류다.]
또 다른 땅 원고지의 ‘생명’에는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 이상의 진실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까지 껴안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생명의 아픔⌟중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보내는 ‘창조’란 글은
“창조적 삶이란 자연 그대로, 어떤 논리나 이론이 아닌 감성입니다. 창조는 순수한 감성이 돼야 합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책을 펴들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박경리 동상이 밟고 있는 돌의 뒤에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작가의 노년의 심정 술회가 가슴이 먹먹해지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토지의 시간적 배경은 1897년에서 1945년까지 약 50년간이며, 공간적으로는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하여 북으로는 만주 일대와 남으로는 일본 동경 등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어 근대화의 진행과정에서 한ㆍ중ㆍ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작가의 서사 내에 끌어들이고 있다.
1969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1994년에 탈고한 대하소설 토지, 만 25년의 창작 기간을 거쳐 완성하였고, 원고지 약 3만 1천 200여장, 약 600여명의 삼 세대 인물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에 해방과 전쟁을 관통한 작가 박경리의 삶과 4반세기에 걸쳐 이루어낸 생명의 창조물 ‘토지’를 담아낸 공간이 바로 여기 박경리 문학관인 것이다.
“그녀는 삶의 연민, 한(恨)의 미학” <작가 세계>에서
“⌜토지⌟는 육이오사변 이전부터 내 마음 언저리에 자리잡았던 이야기예요.”라고 시작하여,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얘기를 선명하게 기억하며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끝도 없는 넓은 땅에 누렇게 익은 벼가 그냥 땅으로 떨어져 내릴 때까지 거둘 사람을 기다렸는데, 이미 호열자가 그들을 죽음으로 데리고 갔지요. 외가에 사람들이 다 죽고 딸 하나가 남아 집을 지켰다고 해요. 나중에 어떤 사내가 나타나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객줏집에서 설거지하는 그 아이의 지친모습을 본 마을 사람이 있었대요. 이 얘기가 후에 선명한 빛깔로 다가 왔지요.” 혼자 남은 그 딸, ⌜토지⌟에서는 누가 역할을 했을까를 생각해본다.
“외할머니의 이 얘기가 마흔 여섯부터 일흔 살까지 [토지와 더불어 살아왔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삶이 지속되는 한 [토지]는 끝나지 않을 거예요. 라고 그 처참했던 당시의 민초들의 삶을 그려낸 동기를 술회하였다.
또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평을 작가는 아주 세심하게 표현하였다.
길상은 의도했던 인물이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고, 주갑이는 의외로 성공적인 인물이었다는 점, 서희와 인실은 격류가 흐르는 사람들이다. 월선과 임이네는 자생하는 민초와 같은 자연적 인격체여서 작가의 무의식 속에서 저절로 울어 나오는 사람이라 했다. 길여옥은 작가가 바라보는 모습이 그녀에게 스며 있다고 말한다. 길여옥을 작가와 같은 사람으로 여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용이와 영팔이 같은 인물에 인간의 존엄성을 부여했다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토지』 서문에서 평사리는 한 번도 찾아와 본 적이 없는 곳이라 했다. 그런데 이곳에 토지의 기둥을 세운 것은 무슨 까닭인가. 30년이 지난 뒤에 작품의 현장에서 『토지』를 실감했다. 서러움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이었다. 아름답고 광활하며 비옥한 땅 악양은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이다. 고난의 역정을 밟고 가는 수 없는 무리, 이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라면 이상향을 꿈꾸고 지향하며 가는 것 또한 우리네 삶의 갈망이다. 그리고 진실이다. 『토지』의 배경이 된 악양 평사리를 이렇게 이상향화 한 것이 그에 대한 보답인 것만 같다.
오늘날 작가는 총체적인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왜 쓰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냐고 자문(自問)하면서 그 답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창조는 정신의 소산입니다. 특과 본도 정신의 소산입니다. 기능과 창조는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그 공평한 자리에 서서 우리는 물으며 발을 내밀어야 할 것입니다.”
작가는 『토지』 1부를 쓰던 삼 년 동안의 작가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풀어놓는다.
“나는 주술(呪術)에 걸린 죄인인가. 내게서 삶과 문학은 밀착되어 떨어질지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雙頭兒)였더란 말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 답한다.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것들, 진실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고 그것들을 위해 좀 더 일을 했으면 싶었다. 고뇌스러운 희망이었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의 원고를 썼던 것이다.“
“소설일 따름, 허구일 뿐이라는 얘기다. 진실은 참으로 멀고 먼 곳에 있었으며 언어는 덧없는 허상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녀는 또 ”존재이지만 그런 존재들의 동반자가 작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문학도 하나의 선택이며 과정인 것입니다. 그것을 인식한다면 허황된 행복의 의상을 벗어버릴 수 있고 저 얼음의 나라, 사막 속의 땅과 삶의 치열함 속에서 아름다움으로 찾아낼 수도 있으리라. 어떤 경우에도 삶은 아름답습니다. 그 삶과 생명 스스로도 그러한 존재이지만 그런 존재들의 동반자가 작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라고 작가의 자기성찰을 가감 없이 내보이고 있다.
그녀는 사마천(司馬遷)이란 시에서도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긴 낮 긴 밤을/멀미 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글을 썼던 사람/육체를 거세당하고/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첫 시집 『못 떠나는 배』의 첫 번째 시. (1988)
박경리 문학관에서 나와 최참판댁으로 갔다. 마당이 질퍽거린다. 외양간에서 모형 소가 운다. 뒷 사당까지 둘러보았다. 나오면서 사랑채 주련을 읽으며 사진을 찍었다. 주련의 글이 옛일들을 생각하게 하였다.
一掬歸心天盡頭(일국귀심천진두) 한가닥 돌아가고 싶은 마음 하늘에 닿았는데
岳陽無處不淸幽(악양무처불청유) 악양은 맑고 그윽하지 않은 곳이 없구나.
杜谷林塘春日遠(두곡임당춘일원) 두견새 우는 골짜기 숲속 연못에 봄날은 아직 멀었지만
輞川煙雨暮山浮(망천연우모산부) 구비도는 강 안개비 속에 저문 산이 떠있구나
雲泉歷歷編供興(운천역역편공흥) 구름과 샘은 뚜렷이 흥취를 돋우는데
軒冕悠悠惹起愁(헌면유유야기수) 초헌의 사대부도 은근히 수심이 이는구나.
經筵每被摧三接(경연매피최삼접) 글 가르치는 자리에서 자꾸만 재촉 받으니
辜負亭前月滿舟(고부정전월만주) 정자에 업힌 달빛만 배에 가득하더라.
- 성종대 문신 유호인의 악양동천이란 시인데 마치 이곳에 최참판댁이 들어설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읊은 시란 생각이 들었다.
빗길 우산을 받쳐 들고 쌍계사로 향하였다. 몇 번 와본 곳이기에 알음알이를 내지 않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우들은 저마다 자기의 시, 수필 등을 낭송하고 낭독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고도 그윽한 행복의 시간이 흘러가는 아쉬움을 남기며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