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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큰믿음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겸손
가짜는 진짜를 핍박한다.
변승우 지음
서 문
눈을 뜨고 성경을 보라. 그리고 교회사를 보라.
진짜가 과격하고 거칠 수는 있다.
진짜는 용감하게 진리를 말하고 회개를 촉구한다.
그래서 핍박은 받을지언정 누구를 핍박하는 일은 없다.
선지자가 누구를 핍박했는가?
세례요한이 누구를 핍박했는가?
예수님이 누구를 핍박했는가?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이 누구를 핍박했는가?
이분들은 항상 핍박을 받았고 진짜였다.
반면에 선지자를 핍박한 왕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세례요한과 예수님과 사도들을 핍박했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들은 가짜였다.
또, 기롤라모 사보나롤라,
존 후스 ,
잔 다르크가 누구를 핍박했는가?
이들은 핍박을 받았고 진짜였다. 이들을 핍박한 사람들이 가짜였다.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
존 웨슬리,
찰스 피니,
윌리암 부스가 누구를 핍박했는가?
이들은 항상 핍박을 받았고 진짜였다. 이들을 핍박한 자들이 가짜였다.
반면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역사를 살펴보면 교권을 잡고 이단시비를 벌이고 남을 핍박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가짜였거나 진리에 있어서 그릇된 자들이었다.
이제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후예인가?
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는가?
당신은 핍박받는 진짜인가? 아니면 진짜를 핍박하는 가짜인가?
귀를 열고 잘 들으라!
당신이 입에 거품을 물고 다른 사람을 핍박할 때
실상은 상대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가짜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목 차
서 문
1. 핍박은 우리와 상관없는 과거사가 아니다!
(1) 핍박은 과거 네로 황제 때 뿐 아니라 지금도 일어납니다.
(2) 핍박은 공산주의 국가 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일어납니다.
(3) 핍박은 세상뿐 아니라 교회의 목사와 신자들에 의해서도 일어납니다.
2. 진짜는 진짜이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
(1) 성령을 따라 난 자
(2) 믿음을 지키려는 자
(3) 경건하게 살려는 자
(4) 성령 충만을 받은 자
(5) 진리를 타협 없이 전하는 자
(6) 부흥의 촉매로 쓰임 받는 자
(7) 마귀의 왕국에 위협이 되는 자
3. 가짜는 가짜이기 때문에 진짜를 핍박한다!
(1) 이스마엘처럼 육체를 따라 난 자들
(2) 바리새인들 같이 종교적인 자들
(3) 자기중심적이며 시기심에 불타는 자들
(4) 바울처럼 자기 스스로 판단하는 자들
(5) 좌파의식을 가진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
결 론
1.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2. 용서하고 축복하고 기도하라!
3. 대적이 아니라 자기와 싸우는 자가 되라!
가짜는 진짜를 핍박한다.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라디아서 4:27-29)
저는 주일학교 때 ‘구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순진한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과 교사 선생님들이 선포한 천국과 지옥을 실제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순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일학교 때 교회 안에서 설교를 가장 잘 듣는 어린이였습니다. 아마 설교를 듣는 것처럼 공부를 했다면 우등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항상 설교를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선생님들께 순교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제가 너무 자주 이런 부탁을 드렸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알고 있던 모든 순교이야기가 동이 났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기독교 서점에 가서 순교에 관한 책을 사서 읽어보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작골이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 기독교 서점이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래서 그때는 그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마음으로 순교를 준비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잔인한 고문과 사형 방법을 상상하면서 마음 준비를 했습니다. 제가 그 일을 직접 당하고 있다고 상상하며 과연 내가 이것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이래도 내가 끝까지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마음 준비를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고문과 순교를 생각하면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만약 그것이 저의 소명이라면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혹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그런 부르심을 받았을 터인데 그들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너무 심한 고통을 허락하지 마시고 승리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은혜를 부어달라고 기도하곤 합니다.
그러던 중, 지난 주 주일의 일입니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일이 많았고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말씀이 안 임했었는데, 갑자기 주일날 교회 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말씀이 저에게 임하기 시작했습니다(엡 6:19). 주제는 “핍박”이었는데, 성령께서 ‘지금은 이 메시지가 필요할 때이니 이것을 설교로 준비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전하라. 그리고 그 내용을 책으로 만들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필요에 따라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일예로 현재 갓피플몰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있는 “사도와 선지자들을 잡는 위조 영분별”도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성령님께서 메시지를 주셔서 설교하고 또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여 책으로 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직후 교회에 대한 조직적인 음해와 핍박의 움직임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번 밥 존스 목사님 댁을 방문했을 때 밥 존스 목사님이 제게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주님께서 목사님의 ‘생각’에 성령의 바람을 불게 할 것이고 목사님께서 전체 회중의 목을 축여주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목사님의 ‘생각’에 임하게 될 것이고, 그 ‘생각’에 임한 것들을 선포하게 되면 목사님께서 회중에게 물을 먹이시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정확히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메시지가 그런 것임을 압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깊게 잘 읽어보시고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1. 핍박은 우리와 상관없는 과거사가 아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핍박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핍박은 초대 교회 당시 네로 황제 때나 있었던 일이고, 중국이나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그릇된 생각입니다. 이것은 비성경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평생 핍박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나니아가 주님께 바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들은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9:15-16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바울의 사명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핍박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소명 중의 하나는 윈 형제처럼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정말로 많은 해를 받았습니다.
고후 11:24-27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런데 바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고난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벧전 2:19-21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고난은 그리스도인들의 부르심(소명)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함께 참여키 위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도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불가피한 것입니다. 고난의 불가피성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 10:24-25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요 15:18-20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예수님은 말씀이 완전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으로도 핍박을 피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성령의 능력)에 있어서 완벽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능력으로도 핍박을 피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격에 있어서 완전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인격으로도 핍박을 피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종은 주인보다 크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정도의 말씀과 우리가 가진 정도의 능력과 우리가 가진 정도의 인격으로 어떻게 핍박을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바리새인들에게는 성경적인 말씀도 안통하고 은사와 능력과 현저한 기적도 안통하고 인격과 사랑 실천도 안통합니다. 그러므로 핍박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핍박을 받을 때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벧전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핍박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핍박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그 누구도 핍박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그럴까요? 여러분께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핍박은 과거 네로 황제 때 뿐 아니라 지금도 일어납니다.
핍박은 단순히 “기독교순교사화”에만 나오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핍박은 우리의 현재이고 또 미래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말세에 대해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마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이것은 말세의 징조를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세가 되면 너희가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전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 될 것을 의미합니다. 전세계 어디에서나 핍박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피할 곳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 릭 조이너는 “추수”라는 책에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현재 가장 자유로운 나라 중 몇 나라에서 성경이나 종교서적으로 갖는 것이 징역이나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되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공산주의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며 세계는 붉은 물결의 맹렬한 공격으로부터 잠시 숨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 후 공산주의는 보다 더 눈에 띄게 진출하게 될 것이다. 남한, 필리핀, 남중미(멕시코와 대부분의 아프리카를 포함하여)가 궁극적으로 공산주의에 휘말릴 것이다. 이것은 변형된 공산주의의 형태이어서 공산주의라는 것이 적합한 단어가 아닐 것이지만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전체주의일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손에 떨어진 나라 중에는 기독교는 물론 다른 종교마저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꾀하는 나라들이 있을 것이다. 동시에 어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점점 더 종교에 대해 관용을 베풀게 되지만 그렇다고 참된 종교의 자유라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유 또는 민주국가로 남아 있는 나라에서는 점점 더 종교에 대한 관용이 사라지게 되며 마침내 이 땅 위의 어느 나라에서든지 신자들은 어느 정도 위험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신자들에 대한 가장 심한 핍박이 오늘날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나라들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를 핍박하는 정권 중의 상당수가 거짓된 교회와 손을 잡을 것이다. 이 거짓된 교회는 국가에 충성을 다짐하며 ‘자유세계’로 남아 있는 지역 백성 대부분을 다스리는 권세를 잡을 것이다. 이 교회는 정부와 백성을 선동하여 그들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대적하게 할 것이다.”
예수님은 말세의 징조 중 하나로 박해를 예언하셨을 뿐 아니라 대환난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이것은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극심한 환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7년환난 전 휴거설을 선호하지만 환난을 통과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이 둘 중 어느 것이 맞는 지 납득할만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학설 중 어느 것이 맞는 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핍박은 단지 과거사가 아닙니다. 핍박은 현재의 일이며 미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핍박을 기대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핍박을 예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해야 합니다.
(2) 핍박은 공산주의 국가 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일어납니다.
중국 지하 교회의 지도자 윈 형제가 쓴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어본 분들이 많을 줄로 압니다. 그는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당하고 수많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죽을 정도로 얻어맞고, 전기봉으로 입을 틀어막기도 하고, 사람들이 소변을 그에게 누기도 하고, 손톱 밑을 뾰족한 바늘로 찔러 고통을 이기지 못해 기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쇠몽둥이로 다리를 쳐서 두 다리가 부러지고 뼈가 으스러지기도 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74일간 단식한 것은 유명합니다. 그런데 왜 단식했는지 아십니까? 라인하르트 본케와 하이디 베이커가 추천한 그의 신간 “하늘 생명수”라는 책에서 그는 감옥 안에서의 고문과 고통이 너무 심하여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아 단식을 했노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고 기적적으로 감옥을 걸어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자유세계로 탈출했습니다.
그때 윈 형제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박해는 끝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에 대한 박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중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과 자유세계의 교회가 그를 핍박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 2000년 캘리포니아 기독교 언론사의 한 기자가 그를 음해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그 기사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갔습니다. 그로 인해 윈 형제는 굉장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때의 일을 윈 형제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기사를 듣는 동안 슬픔이 내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캐나다에서의 모든 여정은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들었다. 신문 기사를 본 기독교 지도자들은 예정된 집회를 취소할 것을 검토하고 있었다.
이 상황은 기사가 나간 지 24시간도 안 되어 시님 연합의 장로 전원을 비롯한 중국가정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에게 알려졌다. 이에 따라 수융쩌, 장롱량 같은 잘 알려진 지도자들이 해명서를 작성, 서명하여 팩스를 통해 외국으로 보내왔다. 해명서에는 나에 대한 제반 비방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들이며, 내가 시림 연합의 장로이자 공식 대표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신문의 공격, 그것도 캐나다 강연 일정이 시작되는 시점에 교묘히 맞추어 자행된 듯한 이해할 수 없는 사태, 나는 이후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박해에 맞서 싸움을 벌여야 했다.
나는 구타, 전기봉 고문, 갖가지 모욕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나는 중국을 떠나 서양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박해의 날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추악한 기사를 쓸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믿음 안에 있는 친구들 앞에서 불만을 쏟아놓았다.
‘왜 그 사람들은 우리한테 연락해 이 서류들을 보자고 하지 않는 건가요? 전 이해를 못 하겠어요! 자기들이 직접 진실을 확인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기 증거를 다 갖다 놓았는데!’
그러자 통역자가 말했다.
‘윈 형제님, 그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님에게 연락하지도 만나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구타와 투옥으로 박해를 받지만, 서양의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말에 의해 박해를 받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영적 박해는 중국에서의 신체적 박해와 모양만 다를 뿐 견디기가 결코 더 수월하지 않았다. 나는 힘을 북돋워 달라고 주님께 부르짖으며 매달렸다. 그리고 이 공격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우리의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이처럼 핍박은 중국과 북한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한국 같은 자유세계에서도 일어납니다. 핍박은 폭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프레드릭 프라이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핍박이라고 하면,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화형에 처하거나, 요한에게 그랬던 것처럼 끓는 기름 가마에 집어넣거나, 온 몸에 못을 박거나, 로마 황제 네로가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했던 것처럼 불에 태워 죽이는 것만을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그런 것만이 핍박이 아니다. 핍박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떠들어대고, 지껄일 때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핍박은 결코 끝나는 법이 없다!
나는 당신이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영적인 사람인지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반드시 당신에 대해 지껄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마귀인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항상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 퍼부어질 더러운 쓰레기들을 내뱉을 입들을 사용하기 위해 주변에 서성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이용한다.
그 사람은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당신에 대해 비판의 말을 할 것이다. 당신은 그들의 비판이 얼마나 황당하고 어리석은 말인지를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비판하는 말을 하고, 당신에 대해 비판하는 책을 쓰고, 그들의 책에서 당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비판하고, 방송에서는 당신의 이름을 거명하며 당신에 대해 떠들 것이다!”
저는 이런 종류의 박해를 수없이 받아 보았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인터넷 카페와 홈페이지의 글들과 동영상, 갓피플몰의 서평, 끊임없는 비아냥대는 이메일, 이단 사냥꾼들이 쓴 거짓되고 왜곡된 신문과 잡지의 기사들을 통해 지금 이 순간도 저는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박해보다는 덜하겠지만 이런 박해 역시 아주 극심한 고통을 줍니다.
잠언 12:18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이 말씀 그대로 이런 박해 역시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줍니다. 저는 저를 음해하며 공격하는 글들을 통해 실제로 칼로 찌르는 듯한 마음의 고통과 통증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짓으로 다른 교회나 사역자를 음해하고 공격하는 사람도 나쁘지만 이에 못지않게 나쁜 것은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마 5:10-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여기서 분명히 예수님은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박해자들은 결코 정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비양심적이고 거짓말을 잘합니다. 존 웨슬리는 “어리석은 자들이여, 그대들은 악마가 죽었다고 생각하는가? 자기의 왕국을 위하여 싸우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그 무기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겠는가? 마귀는 거짓말쟁이며 거짓말쟁이의 아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거짓된 말과 기사에 쉽게 흔들리는 귀가 얇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기사와 소문을 너무 쉽게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퍼트리며 입으로 범죄합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3) 핍박은 세상뿐 아니라 교회의 목사와 신자들에 의해서도 일어납니다.
핍박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불문하고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따르려는 자들에게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핍박은 불교도나 회교도 그리고 공산주의자나 기독교의 안티세력뿐 아니라 같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도 자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 인터넷 카페의 “한국 교회를 망치는 이단정죄병”이라는 게시판에 보면 “지옥의 군대가 진군해오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릭 조이너의 책에 나오는 충격적인 환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군대는 엄청난 규모로 내 시야 끝까지 뻗쳐 있었다. 그것은 각기 다른 군기를 들고 있는 부대들로 나뉘어 있었다. 맨 앞에 있는 부대들은 교만, 자기 의, 존엄, 야욕, 불의한 판단, 그리고 질투와 같은 깃발들 아래서 진군하였다.
나의 시야 너머에도 훨씬 더 많은 악의 군대들이 있었지만, 지옥에서 나온 이 끔직한 선봉대가 가장 강력해보였다. 이 군대의 대장은 바로 '형제들의 참소자'였다. 이 군대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에 이름이 붙어있었다.
칼의 이름은 협박이었고, 창은 배반, 그리고 화살들은 참소, 험담, 중상, 흠잡기 등이었다. 이 군대의 주공격을 준비하기 위하여 전초대로 거절, 앙심, 조급, 용서하지 못함, 정욕 등의 이름을 가진 마귀들의 중대들이 앞서 나가 있었다...
이 환상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이 군대들이 말을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그리스도인을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 중 대부분은 옷을 잘 차려입고, 존경받을 만하고 또한 세련된 데다 교육도 잘 받은 듯이 보였으며, 사회 각 계층을 고루 대표하고 있는 듯하였다...
이들 대부분의 신자들은 하나 이상의 귀신들에게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그 마귀 중 하나가 지휘를 하고 있는 것이 명백히 보였다... 내가 멀리 이 군대의 후위를 바라보니 바로 ‘참소자’의 측근들이 보였다. 나는 그의 전략을 깨닫기 시작했고 그것이 너무 단순함에 놀랐다. 그는 분쟁이 난 집은 온전히 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군대는 교회에 분열을 가져와 교회가 완전히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획책하는 것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그리스도인들을 이용하여 자기 형제들 간에 싸움을 일으키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전방 사단들 중 대부분은 그리스도인들이거나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속임수에 빠진 신자들이 ‘고소자’에게 복종하여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들을 지배하는 그의 힘은 강화되어 갔다.”
‘이 환상이 진짜일까?’ 하고 의심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경고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교회들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의 경우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큰믿음교회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떤 사람들은 대부분 목사들과 신자들이었습니다. 마귀는 단순히 공산주의자나 회교도들을 통해서만 일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의 등에 올라타서 같은 그리스도인을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는 슬프지만 교회가 존재하는 곳, 기독교인이 존재하는 곳엔 언제나 핍박이 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현상은, 윈 형제와 함께 “하늘에 속한 사람”의 공동 저자인 폴 해터웨이의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글을 일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요 몇 년간 이라크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 사이에는 최악의 형태로 전쟁에서 죽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를 묘사하는 새로운 표현이 있습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는 크나큰 영예로 간주하지만, ‘아군에 대한 오발’에 당하는 경우야말로 최대의 모욕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같은 편이라고 생각한 동료 병사들의 총탄에 맞는 것은 처절하기 그지없습니다.
불행하고도 비극적이지만, ‘아군에 대한 오발’은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들 사이에 현실로 건재합니다... 마땅히 한 편이 되어 싸워야 할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포화를 맞는 것은 우리가 극복해야만 할 비참하고 처절한 일입니다...
이 얼마나 성령님께서 슬퍼하고 통탄하실 일입니까! ‘아군에 대한 오발’은 그다지 오래된 용어는 아니겠지만, 비통하게도 사도행전에서 보듯 교회가 탄생한 이후로 신자들 사이에 계속 있어 왔습니다.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부흥의 불길을 꺼버린 것을 기독교 역사를 통해 줄곧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지도자들 중 많은 수는 복음을 ‘수호’하겠다는 열정이나 무지로 말미암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핍박부터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역사를 통틀어 많은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잔혹한 공격을 받아 왔습니다. 알렉스 버컨(Alex Buchan)이란 저널리스트는 핍박 받는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잡지(Compass Direct)의 1997년 11월 21일자 기사에서 이러한 공격들에 관해 논평한 적이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아군에 대한 오발’이 중국에서도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 저는 새로운 책을 쓰기 위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이 1305년에 베이징에서 프란시스 파의 선교사인 몬테코르비노의 요한(John of Montecorvino)을 얼마나 거세게 공격했는지 읽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전년도까지 6천 명에게 세례를 주었건만, 시기심에 물든 네스토리우스 교도들부터 ‘첩자, 주술사, 사람 사기꾼’으로 불렸습니다. 훗날 요한은 ‘그 모든 중상모략이 없었다면, 나는 3만 명이 넘게 세례를 주었을 것이다’라고 술회했습니다.
1900년대 초 웨일즈 부흥 운동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반 로버츠(Evan Roberts)라는 젊은이를 메마르고 갈급한 땅에 축복의 주된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웨일즈 목회자들은 로버츠가 ‘자기들의’ 회중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한 나머지 그의 사역을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이반 로버츠를 이단이요 사기꾼이라고 매도하는 전면 신문광고를 수차례에 걸쳐 게재했고, 수십 명의 목사들이 이 독설 광고에 서명했습니다... 기독교내 다른 지도자들로부터 역시 거센 비난에 시달렸던 찰스 피니(Charles Finney)와 드와이트 무디(D.L. Moody) 같은 부흥 운동가들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조차도 주님을 위하여 충성스럽게 사역하는 동안 내내 격렬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자서전에는, 영국에서의 일련의 초기 집회가 영국 교회들로부터 얼마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교회들은 이 전도자를 거부하고 미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집회에 참석했던 제 친구 하나가 저에게 말하기를, 경기장 밖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무리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든 피켓에는 ‘그 사람 말을 듣지 마시오. 듣다가는 지옥에 갑니다.’와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날 아군에 의한 오발이 얼마나 많은지요! 더 슬픈 사실은 전장에서는 실수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만 교회 안에서는 의도적으로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아군에 의한 오발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핍박이 우리와 무관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까지 핍박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해오셨다면 이제 착각에서 깨어나십시오. 핍박은 결코 저나 여러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1) 핍박은 과거 네로 황제 때 뿐 아니라 지금도 일어납니다.
(2) 핍박은 공산주의 국가 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일어납니다.
(3) 핍박은 세상뿐 아니라 교회의 목사와 신자들에 의해서도 일어납니다.
윈 형제의 말이 옳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해와 고난은 지구 반대편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어느 문화, 나라, 정부에 속했건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는 박해와 고난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싶습니다. 심약한 마음을 강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핍박 없이 좋은 것만 받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막 10:29-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것은 문맥을 보면 ‘복음’과 ‘사명’을 받은 자에 대한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면 핍박을 받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감당하려 하면 핍박을 받습니다. 결코 복음 혹은 사명만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사모하고 좋아하는 것이고 하나는 우리가 꺼려하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할 수 없습니다. 가지려면 둘 다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바른 말씀만 가질 수 없습니다. 말씀을 가지려면 말씀과 핍박 둘 다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만 가질 수는 없습니다. 성령과 핍박 둘 다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부흥만 가질 수 없습니다. 부흥과 핍박 둘 다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천국도 마찬가지고 하늘나라의 영원한 영광과 상급도 마찬가지입니다.
행 14:19-22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롬 8:17-18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리고 하나 더 큰믿음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큰믿음교회만 가질 수 없습니다. 큰믿음교회와 핍박 둘 다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즉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십시오. 그리고 핍박에 굴하지 않고 큰믿음교회에서 잘 훈련받고 준비되어 대부흥과 대추수를 위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고 천국에서 영원히 큰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2. 진짜는 진짜이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
바울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 9:15-16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해를 받도록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된 그릇이었습니다. 사도들은 핍박에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행 5:40-41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예전에 수융쩌 형제가 한국에 왔을 때 집회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핍박을 받도록 선택된 자들의 특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핍박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가짜를 건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 목사와 신자들의 눈이 어두워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므로 ‘아군에 의한 오발’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러나 마귀는 착각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진짜를 한 눈에 알아봅니다. 그리고 진짜 만을 공격합니다.
마귀가 공격하는 진짜에는 다음 일곱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이것을 알면 핍박 받는 일이 슬퍼할 일이 아니라 주님 말씀하신 대로 정말 기뻐하고 뛰놀만한 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1) 성령을 따라 난 자
갈 4:22-23, 28-29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 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심한 적대관계는 이스라엘과 아랍입니다. 영적으로도 이스마엘과 이삭은 적대적입니다. 릭 조이너는 “육체로 난 것과 성령으로 난 것 사이에는 적대 관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삭은 여주인인 사라의 아들이고 이스마엘은 몸종인 하갈의 아들입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인 반면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였습니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교회 안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입니다.
오늘날 약속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에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팔복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팔복의 사람은 반드시 핍박을 받습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학교, 군대, 직장에서 성경에 어두움이라 표현된 불신자들과 잘 어울립니다. 같이 담배를 피우고 같이 술도 마시고 같이 고스톱도 하고 같이 음담패설하고 같이 거짓말을 하고 같이 뇌물도 받습니다. 그래서 핍박 받을 일이 없습니다.
반면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그들은 어둠이 아니라 빛입니다. 그들은 부패하지 않았으며 부패를 억제하는 소금입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세상의 어두움을 폭로하고 부패에 제동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껄끄러워하고 미워합니다. 이런 따돌림은 세상 사람들로부터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명목상의 신자들을 통해서도 옵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낙태, 이혼, 자살 모든 면에서 신자와 불신자의 비율이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연예인들의 경우 최진실 씨의 경우가 보여주듯이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는 자들이 더 많이 자살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자살한 연예인이 모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마만큼 명목상의 신자들이 교회 안에 많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명목상의 신자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핍박은 당연한 것입니다.
전에 저는 “뱀은 절대로 죽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옛 뱀인 사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사데교회 신자들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칩니다. 사탄은 죽은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가진 교회와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사탄이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을 충동질해서 저희 교회를 끊임없이 음해하고 공격하는 것은 우리 교회가 박제가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상해하거나 의기소침해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고 뛰노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믿음을 지키려는 자
기독교가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박해자들은 같은 말을 되풀이해왔습니다.
“지금이라도 예수를 부인하고 믿지 않겠다면 살려주겠다!”
만약 이때 배교하면 핍박은 없습니다. 핍박은 주기철 목사님처럼 믿음을 지키려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3:20-21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어떤 사람은 우리가 북한에 사는 것도 아니고 이 말씀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렇게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10:32-39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이와 같이 공산주의자들뿐 아니라 가족들이 박해자입니다. 주일학생과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은 불신 부모님에게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것은 약한 편입니다. 결혼한 여자 분들은 불신 남편이나 시부모로부터 박해를 받을 수 있는데, 갖가지 욕설과 폭력과 이혼 위협 등 아주 심각한 박해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남편들은 공산주의자들 못지않게 아주 잔인하고 악합니다. 그러므로 여 청년들은 정신을 차리고 절대 불신 결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믿음 때문에 박해 당하는 많은 여 성도님들을 보았습니다. 이런 박해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온실 속의 화초가 바람에 약하듯 우리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의 바람에 너무 약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불신남편이나 시부모가 핍박해오면 핍박이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혹은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교회에 다시 나오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어리석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핍박이 없어지는 그때가 되면 그때는 본인의 믿음이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아무도 핍박하는 일이 없어도 스스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싫어서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영원히 지옥에 가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저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얻을 것이요 얻으면 잃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하신 것처럼 맞아 죽으십시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너무 잔인하다고요? 아닙니다. 이게 진짜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잔인하셔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박해자가 주는 고통도 지옥의 고통에 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핍박은 육신의 가족 뿐 아니라 영적인 가족들을 통해서도 일어납니다. 즉 불신 가족 뿐 아니라 교회에 다니는 가족들을 통해서도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이 믿지만 교리적이고 종교적이라서 성경적인 바른 설교와 성령의 역사들을 수용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박해자가 됩니다. 저희 교회에는 이런 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저는 이분들이 당하는 고통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받는 박해와 동일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교회를 옮길 때 큰 교회로 옮깁니다. 그래서 군중들 틈에 숨어서 아무 터치 받지 않고 편하게 신앙생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경우는 다릅니다. 우리 교회는 거리와 상관없이 전국에서 등록합니다. 교회까지 오는데 두세 시간이 걸리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 뿐 아니라 유명한 초대형교회들에서 성도들이 끊임없이 저희 교회에 등록합니다. 이분들은 편하게 신앙생활하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거리도 멀고 시설도 불편하지만 제대로 신앙생활 해보려고 모여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과 친척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분들이 받는 핍박은 믿음을 지키려고 받는 핍박과 동일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스런 눈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응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타협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견디고 승리하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3) 경건하게 살려는 자
블레즈 파스칼은 박해를 가리켜 “경건에 대한 최선의 표징”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A. B 부르스는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사신 것처럼 살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그 노력의 결과로서 다가오는 모든 고난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자세하게 풀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팔복입니다.
마 5:3-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여기서 핍박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음이 청결한 자 뒤에 위치한 여덟 번째 복임을 기억하십시오. 앞에 7가지 복이 없이 핍박을 받으면 그것은 팔복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말대로 “죄가 있어 매를 맞는 것”(벧전 2:20)입니다. 7가지 복이 있고 핍박을 받아야 팔복입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경건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미 미국이나 캐나다에선 동성애를 죄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빗나가지 않을 것이며 세상은 점점 더 롯의 때와 노아의 때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때처럼 동성애가 창궐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죄를 짓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하게 살면서 죄를 죄라고 부르는 자들은 세상의 눈에 가시처럼 될 것이며 타겟이 되어 핍박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각오해야 합니다.
(4) 성령 충만을 받은 자
찰스 피니는 “기도”라는 책에서 “성령 충만케 될 때 따르는 결과들”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이 성령 충만할진대 당신은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똑같이 많은 반대에 부딪힐 것을 각오해야 한다. 교회 내의 주도적 인물들이 당신에게 반대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도 그랬다... 당신이 성령 충만하다면 장로들이, 심지어 목회자까지도 당신에게 대적할 것이다. 사탄과도 힘든 다툼을 자주 벌이게 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
열두 사도가 오순절 날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그들은 핍박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복음의 증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 모두 핍박을 받았고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지하 교인들 사이에는 “주를 위한 순교자들”이라는 노래가 유행한다고 합니다.
“오순절에 교회가 태어난 이래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기꺼이 목숨을 바쳤네.
복음을 흥왕하게 하고자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마침내 생명의 면류관을 얻었네.
(합창)
주를 위해 순교하세 주를 위해 순교하세.
나 주님 위해 기꺼이 죽으리니 큰 영광이겠네.
주님을 끝까지 사랑했던 사도들은
주님 따라 기꺼이 고난의 길 걸어갔네.
요한은 밧모 섬에 외로이 유배당했고
스데반은 성난 군중의 돌 맞아 죽었네.
마태는 페르시아에서 폭도의 칼에 찔려 죽었고
마가는 양다리에 묶인 말 두 필이 반대 방향으로 달려 찢겨죽었네.
의원 누가는 잔인하게 목 매달렸고
베드로, 빌립, 시몬은 십자가에 못 박혔네.
바돌로매는 이교도들의 손에 산 채로 가죽이 벗겨졌고
도마는 인도에서 다섯 필의 말에 사지와 머리가 묶여 찢겨죽었네.
사도 야고보는 헤롯왕에게 목이 잘려 죽었고
작은 야고보는 날카로운 톱에 몸이 반으로 잘렸으며
유다는 기둥에 묶여 화살세례를 맞았네.
맛디아는 예루살렘에서 목이 잘렸고
바울은 네로 황제 치하에서 순교했네!
나도 십자가를 지고 앞으로 나가
사도들을 따라 희생의 길을 가리.
수만 명의 소중한 영혼 구하기 위해
내 모든 것 버리고 주를 위해 순교자 되리.”
이처럼 정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반드시 핍박을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 많은 목사들이 성령 충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혀 핍박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핍박하는 자가 되고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흐름을 따르는 법”이라는 책에서 잔 오스틴 목사님은 담대하게 이렇게 진실을 말했습니다.
“사도행전은 모든 교회시대를 위한 교회의 원형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언제나 하나뿐이었습니다. 모든 교파에 속한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이 하나 된 교회의 일부입니다.
사도행전 1장은 성령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성령세례가 어떻게 우리의 영을 풀어놓아서 진정한 예배와 경배와 찬양을 통해 아버지와 교제할 수 있도록 해주는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은 성령세례가 끝이 아니고 초자연적인 기적의 흐름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행전 4장에 나타난 원형을 보겠습니다. 여기는 핍박의 흐름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핍박의 원형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제자들처럼 성령의 능력이 있으면 우리는 똑같은 핍박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근본주의자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근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 당시의 교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핍박을 했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핍박은 사도행전에서 발견되는 원형의 일부입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신자들이 성령세례를 받자마자 그 당시의 종교인들이 핍박을 가했습니다. 행복해하는 대신 이 종교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행 4:26)
이것이 바로 오늘날도 교단의 가르침에 더 충실하고, 영적으로 눈이 멀고, 종교적인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이것이 민간에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행 4:17)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행 4:18)
잘 들으십시오! 이 종교적인 사람들은 이 소식이 더 퍼져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불치병자가 낫는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역사도 더 나타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취한 얼마나 끔찍한 태도입니까?
나는 모든 교파에 속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 이런 것을 빼앗고 자기 교단주의의 울타리 안에 사람들을 가두어두고 이런 어리석은 것만을 가르치는 분파주의의 영을 나는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당신이 속한 교단이 당신을 구원해 줄 수 없습니다. 교단이 당신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교단은 당신에게 영생을 줄 수 없습니다. 교단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당신의 이름을 기록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죽어서 당신의 교단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구원하십니다. 당신이 순종해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새장에 갇혀서 묶여 있으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빼앗기고서 마귀의 거짓말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질투심이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불러 일으키셔서 눈먼 교단의 신조와 사람의 전통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는 목소리가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 이 세대에 임했습니다. 교회놀이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지금은 당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구 편이 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시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값을 지불하지 않으려고 얕은 강가로 물러서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교단 교회에서 나는 사도행전에서 발견된 그런 교회의 모형을 따랐습니다. 나는 능력으로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자 당연하게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초자연적인 흐름이 흐르기 시작하면 즉시 조직적인 종교의 핍박이 따라올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단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빈 식품 창고를 구입하여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먹이면서 여기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행하고 계십니다! 집회 때마다 사람들이 구원 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초자연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들어서고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흐름을 따르기 시작할 때는 핍박을 예상하십시오. 너무 충격을 받지 마십시오.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핍박이 온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우선순위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교단에 소속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 분파적이고, 악하고, 마귀적인, 교단주의의 영은 열정을 가지고 대적해야 합니다. 타협하지 마십시오. 사랑으로 충만하십시오. 성경은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마 10:36)고 말하고 있습니다. 타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지 마십시오.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십시오.’(엡 6:10)”
여러분이 특별히 존경하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도 방언기도를 하고 치유를 위해 기도한다는 이유로 목사 안수를 거절당하고 소속 교단의 교회들로부터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순복음으로 교단을 옮기셨습니다. 조용기 목사님과 윤석전 목사님도 성령 충만했기 때문에 표적이 되었고 이단시비에 휘말리고 갖가지 공격을 받았습니다. 최근에 알파 코리아와 G-12 역시 사람들에게 성령 세례를 받게 하고 성령을 체험하게 한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릴 뻔했고 공격을 받았습니다. 불발로 끝이 났지만 고신측 대구 노회에서 저희 교회를 이단으로 몰려고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원수는 항상 성령 충만한 자를 찾아다니고 그런 교회와 목회자를 표적으로 삼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에게 핍박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핍박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이상히 여기지 말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여유 있게 승리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5) 진리를 타협 없이 전하는 자
한번은 캐더린 쿨만이 설교의 문제점에 대해 이런 지적을 했습니다.
“오늘날 설교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는 것 같은 설교이며,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것을 전하는 설교입니다. 하나님은 강단에 서는 자기 종들에게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하도록 계획하신 적은 없다고 나는 믿습니다.
강단에 서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 자신의 부르심에 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설교자들이 진리를 타협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밥 존스가 제게 말한 대로 교회가 진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진하게도 사람들은 교인들이 바른 진리를 환영하고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전했던 구약의 선지자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을 보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까지도 그런 대접을 받으셨습니다. 더구나 성경에서 예수님은 불신자가 아닌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8: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여전히 죄의 종이며 그들의 아버지는 마귀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자들에게 올바른 구원론을 제시하고 설교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말함으로써 자신들의 실상을 말해주는 설교자들을 미워하고 이단으로 매도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뿐 아니라 미래에 진리를 외칠 자들이 동일한 대우를 받을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마 23: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신약성경의 3분의 2를 쓴 사도 바울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박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미워하고 심히 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대 진리를 타협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진리를 바르게 깨달으면, 그리고 타협하지 않고 전하면, 반드시 핍박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선지자들과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왜 핍박을 받았습니까?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그대로 전했기 때문입니다. 존 후스, 조나단 에드워즈, 존 웨슬리, 찰스 피니가 왜 핍박 받았습니까? 역시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타협하지 않고 전하면 반드시 핍박을 받습니다.
일찍이 아더 핑크는 "실천적인 기독교"라는 책에서 이렇게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아, 오늘날 은혜를 구하는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는 방식은 신약성경의 표준에 비춰볼 때 얼마나 저급한가? 만일 당신이 성구사전을 찾아본다면, 주와 구주 이 두 단어가 함께 들어 있는 모든 성경구절들 속에는 언제나 '주와 구주'의 순서로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결코 '구주와 주', 즉 역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찾지 못할 것이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눅 1:46-47)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벧후 1:11)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벧후 2:20)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벧후 3:18)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 자기만족과 고집대로 사는 그들의 삶이 엄청난 죄악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까지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 악한 삶에 대해 애통해하며 참회할 때까지는, 그리고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살기로 결심할 때까지는, 자비와 영생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그들의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라 시끄러운 촐싹거림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는 그들의 말은 단지 모욕적인 언동에 지나지 않는다...
아, 슬프도다. 오늘날 전해지는 복음은 많은 격려를 받으면서 그리스도를 불명예스럽게 하는, 마치 추악한 기형아와 같은 사람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부문에서, 심지어 정통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과 '근본주의자들'조차도 구원받는 것은 굉장히 간단한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요한복음 3:16을 믿고 '그 말씀을 의지하거나' 혹은 '그리스도를 그의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면' 그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다했다고 평해진다. 사람이 은행을 신뢰하듯, 혹은 아내가 남편을 의지하듯 죄인이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향하기만 하면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들 한다. 이런 생각이 아주 널리 퍼졌기 때문에 이 생각을 틀렸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이단으로 정죄받기 십상이다."
또, 그는 현대 교회를 장악한 거짓복음에 대해 우려하면서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세상이 구약 성경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신약 성경에 대하여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에 앞서서 회개로 부르기 전에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마음에 율법이 적용되기 전까지는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롬 3:20). 미리 경작하지 않았거나 일구지 않은 땅에 씨를 뿌리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온통 죄를 짓는 일에 몰두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대속을 소개하는 것은 개에게 거룩한 것을 주는 것이다...
슬프게도 그리스도의 구원의 본질이 오늘날의 '복음전도자'들에 의해 잘못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구원자 대신에 지옥에서 구원해 주시는 구원자를 전한다. 바로 이 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치명적으로 속고 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육욕과 세속적인 마음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갈망이 조금도 없이 불 못만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맨 처음 언급하는 곳은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다가오는 진노로부터가 아니라)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이다(마 1:21). 죄의 엄청난 가증함을 깨닫는 자, 양심에 죄의 무거운 짐을 느끼는 자, 그리하여 죄를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자, 죄의 무서운 지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구원자가 되시지만, 다른 이에게는 구원자가 되시지 않는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죄를 사랑하는 자들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신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사악함을 묵과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들을 편드는 죄의 사역자가 될 것이다. 이 거룩한 분을 그같이 고소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신성모독인가?
만약 독자가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실 때, 나는 죄의 가증함을 알지 못했고, 죄의식으로 복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즉시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은 결코 구원받은 적이 없거나, 당신이 이전에 구원받았다고 생각했을 때 실제로는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은혜 안에서 자라감에 따라 죄가 무엇인지를(하나님께 대한 반역) 더욱 분명하게 깨닫고, 더욱 더 죄를 미워하고 죄에 대하여 슬퍼하게 된다. 그러나 양심이 결코 성령에 의해 찔린바 된 적이 없는 자와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 적이 없는 자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떠한 사실의 영역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것과 같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니라.’(마 9:12). 진정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위대한 의사에게서 치료받기를 구하는 자만이 죄로 병든 자이다. 그러한 자만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죄의 행위와, 혼을 더럽히는 죄의 오염으로부터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죄로부터의 구원이요, 죄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의 구원이요, 죄의 지배로부터의 구원이요, 죄의 교활함과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이기 때문에, 복음전도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와 주된 사역은 죄에 관하여 선포하고, 죄의 열매가 아닌 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죄 안에 있는 무한한 극악성을 보여주며, 마음속에서 죄의 다양한 역사를 찾아내고, 영원한 형벌이 바로 죄의 대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아, 복음전도자가 죄에 관하여 선포하는 것, 단지 죄에 관하여 상투적으로 몇 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죄가 무엇인가를 선포하는 것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지 않고 청중들의 관심을 끌지도 않을 것이다. 분명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의 칭찬을 얻는 것보다 사람의 칭찬을 사랑하는 자와, 구령(救靈)보다 자기 봉급에 더 가치를 두는 자는 그에 알맞은 임기웅변의 조치를 취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말씀의 선포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신실한 말씀을 선포함으로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이 부정하게 육체와 영합하여 성령을 쫓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오늘날 복음전도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이란 용어를 잘못 전하고 있다. 대부분의 복음전도자들이 전하는 내용은 ‘구원은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며 값없이 선물로 받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셨기 때문에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고, 단지 그리스도의 피의 무한한 공로를 믿고 신뢰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지금 ‘정통’ 기독교계에 널리 유행하고 있고, 그들의 귀가 멍하도록 자주 듣고 있으며, 그들의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이제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이 부적절하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사람을 미혹하며 잘못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면, 그는 즉시 이단이라는 낙인을 찍히고 행위 구원을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손상시킨다는 비난을 받는다."
여러분 정말 아닙니까? 실제로 오늘날 거짓 복음이 교회 안에 편만하게 퍼져 있습니다. 또 실제로 성경대로 바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이단 사냥꾼과 일부 질 나쁜 목사들과 신자들이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이단’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카페에 제 책의 내용을 소개하며 충분히 납득할만한 글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억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소경이요 우맹들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아더 핑크가 말한 것은 회개와 믿음, 즉 단지 구원론입니다. 제가 최근 통합측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했을 때 집회에 참석한 다른 통합측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분의 친구 목사님이 윤석전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하셨답니다. 그리고 설교를 듣고 정신이 번쩍 나서 교회에 와서 성도들에게 회개해야 한다고 외쳤답니다. 그랬더니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교회 같은데 몇 가정이 반발하여 그 교회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론만 바르게 전해도 성도들이 반발하고 싫어합니다. 그런데 견인의 교리를 바르게 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성령론과 성령의 은사와 역사에 대해 성경대로 바르게 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큰 동요와 반발과 핍박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타협하지 않고 담대히 진리를 전하는 목회자들이 적은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비극이요 불행입니다. 오늘날 진리를 바르게 깨달았어도 타협하지 않고 외치는 설교자들의 수가 너무나도 적습니다.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더 진리를 외치는 자들이 매도를 당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그 수가 늘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새로운 흐름이고, 또한 큰믿음교회가 앞서 나가며 쉽게 갈 수 있도록 그 길을 닦고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설교자가 어떤 유형의 설교자일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명한 설교자요 저술가인 에이든 토저(A. W. Tozer) 박사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20세기 후반의 교회가 지난 반세기 동안 받은 상처에서 회복되려면, 새로운 타입의 설교가가 나타나야 합니다. 단정한 회당장 타입의 사람은 결코 안 됩니다. 자신의 직무를 감당하고 사례금을 가져가면서 아무런 질문도 제기하지 않는 제사장 타입도 안 됩니다. 누구든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럴듯한 말을 구사하는 목사 타입도 안 됩니다. 이상의 모든 형태들은 이제까지 계속 시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뭔가가 부족합니다...
새로운 타입의 종교적 지도자가 우리 가운데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지도자는 고대의 선지자 타입이어야 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보았고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내려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런 지도자가 오면(나는 이런 지도자를 한 명뿐 아니라 많이 보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능글맞은 우리의 모든 억지웃음을 단연코 부정할 것이며, 문명사회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제거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비판하고 부인하고 저항할 것입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를 미워하고 반대할 것입니다. 이런 타입의 사람은 왠지 구부정하고 무뚝뚝하며 퉁명스럽게 말하고 다소 세상에 대해 화가 나 있는 듯한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는 언젠가는 죽어 없어질 그 어떤 피조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아닙니까? 아멘입니다. 정말로 선지자와 같은 이런 주의 종들이 이 시대에 곳곳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자와 같이 담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6) 부흥의 촉매로 쓰임 받는 자
저는 부흥을 원합니다. 저는 제가 아닌 다른 누구를 사용하시거나 저희 교회가 아닌 다른 어느 교회를 사용하든지 큰 부흥이 일어나길 원합니다. 왜냐하면 부흥은 가장 많은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내며 천국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고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때인 동시에 마귀가 발악을 하며 저지하기 위해 역사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부흥에는 핍박이 있을 수밖에 없고 매 시대마다 교회 안에서의 핍박은 부흥이 일어나는 곳에 집중이 되었습니다. 부흥이 일어나면 표적(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1960년대 인도네시아 대 부흥을 위해 쓰임 받았던 멜 태리는 “진정한 부흥은 항상 박해를 초래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제자로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 중의 하나를 목회하고 있는 프레드릭 프라이스 목사님은 “만일 당신이 목회에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비판받을 각오를 하라.”고 했습니다. 둘 다 맞는 말입니다.
먼저, 부흥이 일어나면 핍박이 일어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므로 시작된 초대 교회의 부흥부터 모든 부흥에는 반대자들이 있었고 극심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제1차 대각성 운동과 제2차 대각성 운동, 웨일즈 부흥, 아주사 부흥, 그리고 토론토 부흥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흥에는 성령만 임하신 것이 아니라 악령들이 악착같이 따라붙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태만할 때가 많으나 마귀의 종들은 결코 태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부흥을 결사 저지하려 듭니다. 그러므로 부흥에는 항상 핍박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또한, 교회가 성장해도 핍박이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는 이단 사설을 가르치는 것이 없고 매우 성경적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교리보다 더 성경적인 것이 문제라고나 할까요? 우리는 무분별하거나 비인격적으로 은사 운동을 하지 않으며 신중히 분별하여 성경적이고 인격적으로 은사 사역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기적이지 않으며 사랑으로 행하고 많은 것을 나누어주고 베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오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핍박입니다.
제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가 아는 교회 중 아주 많은 교회들이 그 설교가 이단은 아니지만 심각할 정도로 비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들은 은사를 아주 무분별하고 비인격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적잖은 이들이 매우 탐욕스럽고 이기적입니다. 첫 눈에도 그들이 양의 탈을 쓴 이리임이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그런 교회를 문제 삼는 이단 사냥꾼이나 교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그 교회들은 작지만 우리 교회는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회가 성장하면 핍박을 받습니다. 그것이 정해진 코스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실제로 이단시비가 교회가 성장하면서 겪는 하나의 과정 혹은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부흥하는 교회들이 마치 성경에 나오는 요셉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의 시기와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이 서로를 핍박하지 않은 것을 보면 신기하지 않습니까? 요셉의 형들은 자기들 같이 평범한 형제들은 핍박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 중 뛰어났던 요셉만 힘을 모아 핍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교회들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람은 부패했기 때문에 설사 형제라도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뛰어나고 잘 되는 것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에 나타난 민족적인 뒤틀린 심리 때문인지, 아니면 땅 덩어리가 좁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국 교회 안에서 이런 현상이 아주 심합니다. 제 생각엔 우리 민족이 특히 속이 좁고 나쁜 것이 아니라 땅이 좁아서인 그런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이나 캐나다 교회들 사이에서는 이런 일이 별로 없는데, 한인 사회에서도 오히려 한국보다 더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나라의 땅은 넓지만 실제 ‘이민 사회’라는 땅은 한국보다 더 작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땅덩어리가 좁아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되었든 이제는 마음을 넓혀야합니다. 그래서 남이 안 되면 깨소금 맛이고 남이 잘 되면 시기하고 음해하는 못된 심보와 습관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 대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웃는 사람과 함께 웃을 수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로 바뀌어야 합니다.
(7) 마귀의 왕국에 위협이 되는 자
며칠 전 논현동에 있는 한 웨딩 프라자에서 약 60여명의 연예인들에게 사역하고 있는 샨 볼츠를 만났습니다. 샨은 저의 절친한 친구요 가족과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약 1년 만에 다시 만났고 그래서 한참을 포옹을 하고 서로 반가워했습니다. 잠시 후 샨이 양해를 구하고 유명한 배우인 이정재 씨에게 개인 예언을 해주었습니다. 그후 자리를 논현동에 있는 한 식당으로 옮겨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던 중 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밥 존스 선지자는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심각한 반대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일은 정말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자주 얘기합니다.”
저도 미국의 밥 존스 댁을 방문했을 때 이와 똑같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억을 떠올리며 ‘정말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저는 윈형제의 “하늘 생명수”라는 책에서 이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요성 때문에 “사탄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계획들만 공격 대상으로 삼습니다.”라는 글을 카페에 올려서 회원들과 나눈 일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과 전략을 알려 주시면, 우리는 순종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공격과 반대에 부딪혀도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의 부르심이 우리 삶에 주어졌다고 해서 이제부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오히려 사탄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계획들만 공격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 외에 그리스도인들이 벌이는 온갖 계획들과 프로그램들은 사탄의 지상 나라에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적 사탄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느껴지는 계획은 두려워합니다. 그런 전략은 사탄의 사악한 나라를 박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여러분이 받은 비전이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해도 놀랄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걸어가는 길에 고난과 핍박이 가득하다 해도 놀랄 것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르고 그분의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고 싶습니까?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열매 맺는 삶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많은 반대와 비방, 비난과 거짓 고소, 그리고 고통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오해하고 여러분의 동기를 의심할 것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의 진전을 가로막기 위해 여러분의 앞길에 온갖 장애물을 가져다놓을 것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런 일을 겪었고, 사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경험을 했습니다.”
같은 책에서 윈 형제는 또 이렇게 썼습니다.
“전 세계의 놀라운 그리스도인들을 수없이 많이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중국 교회가 무슬림, 힌두교도, 불교도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백 투 예루살렘 비전'을 듣고 열렬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이 비전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며 열정적으로 연락해 올 때마다 끊임없이 놀랍니다. 하지만 중국인 신자들이 선교사가 되어 중국 너머로 간다는 생각에 모두 매료당한 것은 아닙니다. 소위 선교 지도자들 중 일부는 그 비전은 허튼 소리이고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완전히 눈이 먼 그들은 '백 투 예루살렘 비전'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 투 예루살렘 비전'이 자라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나쁜 말을 했습니다. 적은 많은 사람들을 부추겨 우리를 인신공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공격은 점점 커졌고 지나치다 못해 우스꽝스러울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비판자들 중에 정말 진실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단지 분위기에 편승하여 자기들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공격하는 것에 만족해합니다.
우리에 대한 공격이 커져 갔지만 저는 크게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 투 예루살렘 비전'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것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탄이 이것을 파괴하기 위해 그토록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럽에서 열린 한 모임 중에 어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내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윈 형제, 저는 형제님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형제님이 몹쓸 사람이라는 온갖 비열한 고발과 소문들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탄이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수많은 주요 기독교 지도자들을 속이고 형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보아, 형제가 흑암의 나라에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중국 정부조차도 형제의 명성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형제가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람들이 형제를 공격하느라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것을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하나님이 저희에게 주신 지성전을 세우라는 전략을 실행하면서 이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서울 큰믿음교회가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지성전 설립에 대해 말씀해오셨습니다. 이것은 제가 원치 않는 것이었고 오해받고 공격받기 쉬운 일이라서 마음이 무겁고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많이 주저했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예언의 은사가 있는 믿을만한 교회 안퍅의 모든 목회자들에게 분별을 요하는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동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을 원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 기도 부탁을 받은 모든 목회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디 제이콥스에게도 물어보았는데 신디 제이콥스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밥 존스의 경우는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큰믿음교회가 지금은 서울에 있지만 전세계에 걸쳐서 생겨나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 지성전은 지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교회와 달리, 지성전의 헌금이 서울로 올라오지 않고 10%를 모아 다른 지성전들의 필요를 위해 사용하는 것 외에 100% 지성전과 그 지역을 위해 사용됩니다. 그리고 아주 큰 일 외에는 지성전 담당교역자가 재정이나 일꾼을 세우는 일에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주일낮예배 동시 영상 설교를 제공하고, 저와 저의 대표적인 동역자들이 한 달에 1번씩 방문하여 무료로 자기 은사대로 설교와 사역을 통해 그 교회를 섬깁니다. 그래서 영혼들의 유익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꾀할 뿐 지성전에서 아무 것도 취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눈으로 보면 어느 도시에 다른 교회가 하나 세워지는 것과 큰믿음교회 지성전이 세워지는 것은 전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영혼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는 꼭 필요하고 유익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지성전이 하나 세워질 때마다 얼마나 많은 핍박과 반대에 부딛히는지 모릅니다. 저희가 캐나다 밴쿠버에 지성전을 세울 때 밴쿠버 지역에 있는 수많은 목사들이 저를 이단으로 몰았습니다. 그리고 사악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당시 어떤 목사님은 저를 비난하다가 주일날 강대상에서 말을 못하는 벙어리가 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다시는 저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후 부산에 지성전을 세우자 이번에는 부산 대형교회 목사들이 들고 일어나서 강대상에서 저를 지목하며 이단이라고 말하고 제가 소속되어 있는 교단과 기독교 단체에 저를 조사하여 징계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정말 끝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습니다.
이처럼 지성전 건립에 대한 반대와 저항이 심하기 때문에 저도 그만 두려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계획을 다 접었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에 큰믿음교회가 생겨나게 될 것”이라는 밥 존스의 예언이 영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가서 밥 존스 목사님에게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목사님, 저희는 전세계에 지성전을 세우라는 지성전 프로젝트를 주님께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추진하다가 지성전만 세우면 그 도시의 목회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계하고 그리고 시기심에 사로잡혀 이단이라고 매도하는 바람에 그 계획을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지난 번 바로 그런 시기에 목사님을 뉴저지에서 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목사님이 큰믿음교회가 한국에 있지만 전세계에 생겨나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그 예언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계속 지성전을 세워야만 하는 것인지 아닌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밥 존스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보죠. 만일 사단이 잡아먹으려고 안달을 하고 있지 않다면, 그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인 게 거의 확실합니다. 기름 부으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많은 핍박을 견뎌내야 합니다. 기름 부으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고전 16:9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곳에 위대하고 효과적인 사역의 문이 열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곳에 계속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에 이렇게 많은 대적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밥 존스 목사님이 잘 지적한 것처럼, 마귀는 효과적인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지는 곳에 자기의 수하들을 총동원하여 집중 공격을 퍼붓습니다. 이것은 전쟁 때 가장 중요한 전략적인 요충지를 우선적으로 집중 공격하여 점령하는 것과 그 이치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밥 존스 목사님의 이런 대답을 듣고도 저는 마음을 온전히 정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지성전을 세울 때의 반발과 공격이 너무 심했고, 그로 인해 한국 교회 내에서 정말로 이단으로 매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우가 아닙니다. 실제로 최근 대구에 지성전을 세우자 고신 교단 대구 노회에서 총회 때 저를 이단으로 몰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주님께서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왜 사람들의 비난에 주춤하여 영혼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고 지성전을 세우지 않느냐?”
그리고 동역자들을 통해 “큰믿음교회의 지성전의 건립은 이 나라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전국에 지성전이 세워짐으로 그 지성전을 통해 강력한 중보기도의 군대가 일어나 나라를 위해 울부짖을 때 이 나라가 변화된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대 부흥과 대 추수도 큰믿음교회의 지성전 건립과 연결되어 있다. 큰믿음교회의 지성전을 통하여 이 나라 전역에 대부흥과 대추수의 불길이 일어나고 모든 교회로 번져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구나. 오해를 받고 핍박을 받더라도 주님께 순종하자.’라고 결단하고 대구에 지성전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쯤에서, 제가 공격을 받을 때마다 함께 공격을 받고 마음고생을 많이 한 사랑하는 큰믿음교회 성도들을 위해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 중의 하나인 크렌쇼 크리스천 센터 교회를 담임하는 프레드릭 프라이스 목사님의 책에 나오는 글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당신은 핍박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비판도 받을 것이다... 당신이 선한 일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당신을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믿음에 대한 진리를 배우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치유를 받을 수 있는가를 가르치기 전까지는 누구도 나를 비판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 자신이 마귀에게 엄청난 문젯거리가 된 것이다.
내가 믿음 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지를 배우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발견하기 전까지, 나는 누구로부터 어떤 비판도 받은 적이 없었다. 17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비판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의 나의 임무조차도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왜 마귀가 나를 쫓아다니겠는가? 어떤 바보가 자신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어떤 대상을 향해 총을 쏘겠는가? 그 누구도 자기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별볼일없는 목표물을 향해서는 탄약을 허비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이 큰믿음교회를 계속 공격하는 것은 어느덧 큰믿음교회가 사탄의 두통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큰믿음교회는 주님께는 기쁨이지만 사탄에게는 골칫거리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바리새적인 사람들을 충동하여 큰믿음교회를 공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퍼하지 마십시오. 자부심을 가지고 크게 기뻐하십시오.
이상 여러분께 어떤 사람이 핍박을 받게 되는 지 7가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놀랍게도 핍박은 악인뿐 아니라 어느 시대나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 성령을 따라 난 자
(2) 믿음을 지키려는 자
(3) 경건하게 살려는 자
(4) 성령 충만을 받은 자
(5) 진리를 타협 없이 전하는 자
(6) 부흥의 촉매로 쓰임 받는 자
(7) 마귀의 왕국에 위협이 되는 자
그러므로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핍박을 받는 목회자나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핍박을 하는 목회자와 교회, 그리고 핍박을 전혀 받지 않는 목회자와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예수전도단의 설립자 로렌 커닝햄 목사님은 존 웨슬리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리한 지적을 했습니다.
“존 웨슬리의 설교는 압제를 받으며 힘없이 살고 있던 노숙자들과 뒷골목의 사람들에게 소망을 가져다주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성직자들은 그를 이단이라고 불렀고 교회 밖으로 내쫓기도 했다. 그에 대한 온갖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도는가 하면 그는 온갖 죄목에 붙여져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정부와 사회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주도로 그를 반대하는 책과 전단이 나돌았다. 또한 그는 수십 번이나 그를 반대해서 일어난 폭도들에 의해 죽을 뻔하였다.
웨슬리는 이와 같은 것을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즉 자신이 그 사역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하루는 웨슬리가 말을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며칠 동안은 아무런 핍박도 당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어느 한 사람 벽돌이나 계란을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그는 곧 말을 세우고 내려와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하나님, 혹시 제가 죄를 짓고 타락한 것은 아닙니까?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보여주십시오!’
그 반대쪽 울타리에서 그 기도를 듣고 있던 한 사나이가 그가 바로 웨슬리임을 알아보았다.
‘잘 됐군. 저 감리교 목사를 내가 손 좀 봐야겠어!’
그는 벽돌 하나를 집어 웨슬리에게 던졌다. 벽돌은 웨슬리를 살짝 비켜갔다. 그러자 웨슬리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 괜찮았군요. 제가 아직도 당신의 임재하심 가운데 있었군요.’ 라며 펄쩍 뛰며 좋아했다.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한다고 해서 당신이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따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나는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인간적인 명예를 잃는 아픔을 겪지 않은 채 효과적으로 사역하고 있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나는 여러 명의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지도자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오해받고 조롱당하고 심지어는 언론이나 성직자들에 의해 명예를 훼손당하는 고통을 당하였었다.”
로렌 커닝햄의 이 말은 오늘날 교회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성경적인 명확한 진리를 다시 일깨워줍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에 나타나 있는 바로 그 진리입니다.
눅 6:22-23, 26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이것은 둘 다 진리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이것은 하나만 진리가 아니라 둘 다 진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교회 전체가 존경하는 목사는 존경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의 교단과 교회들을 보면 교리적으로 성경적이지 않은 교단과 교회도 많고,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터부시하는 종교적이고 바리새적인 교단과 교회도 많습니다. 그런 교단이나 교회들은 성경대로 진리를 전하면 싫어하고 대적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 받고 방언을 말하고 병고치고 귀신 쫓고 예언하면 싫어하고 대적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회와 사역을 하면서 어떻게 한국 교회 전체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간증이 있습니다.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의 아버지 잔 오스틴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사랑의 흐름”이라는 탁월한 책의 저자이기도 한 잔 오스틴 목사님은 인격이 훌륭하고 사랑이 충만하여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분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이런 목사님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주의해서 들으십시오! 이것은 진짜 바른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런지 그분의 간증을 들어봅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한 침례교회의 목사였을 때 나는 성경 말씀에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나는 경건한 삶을 살았지만 박해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나는 누구든지 범할 수 있는 모든 죄에 대해서 언급하는 설교를 하려고 작정했습니다. 나는 회중들을 불편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종류의 핍박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핍박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회중들은 나를 사랑했습니다. 예배 후에 그들은 나와 악수를 하고 즐겁게 돌아갔습니다.
그 시절에는 핍박이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반대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습니다. 우리가 방언을 말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강력한 강을 따라 흐르기 시작하자마자 사방에서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분파주의를 일으키는 종교의 영이란 것이 존재합니다. 종교의 영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종교의 영은 모든 성령의 역사를 비판할 것입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한 교회나 목사가 한국 교회 전체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 목사와 교회는 진리의 일부를 타협했던지, 아니면 성령을 터부시 했던지 둘 중의 하나의 죄를 하나님 앞에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모든 교단과 교회와 목회자들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진리와 성령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았다면 저나 우리 교회처럼 반드시 구설수에 올랐을 것이고 이단시비가 일어났을 것이고 문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의 눈에 감추어져 있는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저희 교회의 인터넷 카페에 올린 “이제는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성경적인 바른 분별의 기준이 회복되어야 합니다.”라는 글은 매우 가치가 큰 글입니다.
“논란의 대상이 되고 시비가 끊이지 않는 교회를 조심하라고요. 그런 교회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어서 그렇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만약 여러분이 이런 그릇된 가정과 생각의 지배를 받는다면 여러분은 구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분들을 배척하게 될 것입니다.
물 심판을 경고한 노아
메시아에 대해 주로 예언한 이사야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참 선지자 미가야
그리고 그 외의 대부분의 선지자들...
또 여러분은 신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분들을 배척하게 될 것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의 가장 큰 자인 세례요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인 예수님,
베드로를 위시한 열두 사도들,
순교자 스데반 집사,
그리고 사도 중의 사도인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
또한 여러분은 교회사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분들을 배척하게 될 것입니다!
1차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조나단 에드워즈, 존 웨슬리, 조지 휫필드,
2차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찰스 피니,
설교의 왕자, 찰스 스펄전,
전도자 디. 엘. 무디,
아주사 부흥의 윌리암 씨무어,
전설적인 하나님의 사람 스미스 위글스워스와 캐더린 쿨만,
가톨릭의 성 비오 신부님,
인도의 성자 썬 다싱,
몇 년 전에 작고한 케네스 해긴 목사님과 오랄 로버츠 목사님.
여러분은 이런 분들이 잘못되었다고 배격하고 이분들이 목회하지 않는 다른 교회를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은 팔복을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마 5:10-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여러분에게 팔복은 칠복이 될 것이며, 유머를 사용하자면 영적인 칠복이입니다. 즉 그런 사람은 영적인 바보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칭찬만 받는 교회와 목회자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럴 경우 여러분이 좋은 교사, 좋은 목사, 좋은 복음전도자를 만날 확률은 그나마 있습니다. 그러나 기름 부음 받은 선지자, 그리고 강력한 사도를 만날 확률은 거의 제로입니다. 저는 진실을 말했습니다. 귀가 있거든 제 말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깨달으시고 이제부터는 분별의 기준을 바꾸십시오.
마지막으로, 처음에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논란의 대상이 되고 시비가 끊이지 않는 교회를 조심하라고요. 그런 교회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어서 그렇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쓰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사탄의 표적이 되어 있는 교회들도 바로 그런 교회들 속에 있습니다.”
3. 가짜는 가짜이기 때문에 진짜를 핍박한다!
“진짜는 진짜이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라고 앞에서 밝힌대로 진짜는 핍박을 받지 다른 사람을 핍박하지는 않습니다. 진짜는 어두움을 드러내고 회개를 촉구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을 핍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짜는 다른 사람을 핍박합니다.
가짜는 뱀처럼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물고 늘어집니다. 그것이 가짜의 속성입니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핍박하는 자는 진짜가 아닙니다. 가짜입니다. 저희 큰믿음교회를 공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온전히 가짜든지 부분적으로 가짜든지 정도의 차이는 나겠지만 가짜입니다.
어제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이 책의 제목과 구조에 대해 새롭게 가르쳐주시면서 서문을 영감으로 제게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눈을 뜨고 성경을 보라. 그리고 교회사를 보라.
진짜가 과격하고 거칠 수는 있다.
진짜는 용감하게 진리를 말하고 회개를 촉구한다.
그래서 핍박은 받을지언정 누구를 핍박하는 일은 없다.
선지자가 누구를 핍박했는가?
세례요한이 누구를 핍박했는가?
예수님이 누구를 핍박했는가?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이 누구를 핍박했는가?
이분들은 항상 핍박을 받았고 진짜였다.
반면에 선지자를 핍박한 왕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세례요한과 예수님과 사도들을 핍박했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들은 가짜였다.
또, 기롤라모 사보나롤라,
존 후스 ,
잔 다르크가 누구를 핍박했는가?
이들은 핍박을 받았고 진짜였다. 이들을 핍박한 사람들이 가짜였다.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
존 웨슬리,
찰스 피니,
윌리암 부스가 누구를 핍박했는가?
이들은 항상 핍박을 받았고 진짜였다. 이들을 핍박한 자들이 가짜였다.
반면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역사를 살펴보면 교권을 잡고 이단시비를 벌이고 남을 핍박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가짜였거나 진리에 있어서 그릇된 자들이었다.
이제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후예인가?
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는가?
당신은 핍박받는 진짜인가? 아니면 진짜를 핍박하는 가짜인가?
귀를 열고 잘 들어라!
당신이 입에 거품을 물고 다른 사람을 핍박할 때
실상은 상대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가짜임을 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저는 한 기독교 신문의 국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순복음**교회 정**목사에 대해서 제게 말했습니다.
“그 목사가 수년째 이단 사냥꾼들과 각 교단의 이대위와 기독교 신문사의 기자들에게 주기적으로 큰믿음교회를 음해하는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되어 아마 그에 대한 자료가 충분할텐데, 이제 그를 고소해서 집어넣어야 되지 않겠습니까?”(실제로 저는 약 2년 전 교회 직원에게 그가 저와 우리 교회에 대해 거짓으로 음해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메일로 보내는 모든 것을 자료화 해놓으라고 이미 지시해두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집어넣으려면 언제든지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가 사실과 다른 악의적인 거짓말을 하도 많이 유포했기 때문에 그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는 ‘선**자와 예*’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수년째 저와 저희 교회를 매도하고 있고, 신앙계에도 자료를 보내어 저를 음해하고, 주안장로교회 부목사들에게 계속 저를 음해하는 자료를 보내고, 그리고 저희 교회의 성도들과 카페 회원들에게 수시로 메일을 보내어 저와 큰믿음교회를 음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가리켜서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는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거니와 진짜는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목회자는 스스로 괴로워서라도 절대로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가짜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짜는 진짜를 핍박합니다. 진짜가 진짜이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처럼 가짜는 가짜이기 때문에 진짜를 핍박합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앞으로 명백한 이단성이 있는 일부 집단을 제외하고, 핍박 받는 자를 조사할 것이 아니라 핍박하는 자들을 불러서 조사하고 징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계의 질서를 잡고 공의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럼 진짜를 핍박하는 가짜에는 어떤 이들이 있을까요?
(1) 이스마엘처럼 육체를 따라 난 자들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명백한 진리지만 교회가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인데, 교회 안에서 명목상의 신자들이 도리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갈 4: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 구설수에 오른 교회들이 자기들을 변호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 시대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인 존 스토트는 “진정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참된 교회, 아브라함으로부터 자신들의 영적 활동을 찾는 그리스도인 신자들에 대한 핍박은 언제나 세상-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낯선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와 의붓 형제인 종교적인 사람들, 곧 유명무실한 교회에 의한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예수님은 자신의 민족에 의해 호된 반대를 당하셨고, 거부와 조롱과 정죄를 당하셨다. 바울을 미행하고 바울과 싸우도록 부추기면서 바울을 가장 맹렬하게 반대한 사람들은 공식교회인 유대인들이었다. 중세 교황 제도의 획일적인 구조는 무자비하고 끈질긴 광포함으로 모든 개신교 소수 집단들을 핍박했다. 그리고 오늘날 복음주의 신앙의 가장 큰 적은 불신자들-그들은 복음을 듣고 종종 그 복음을 받아들인다-이 아니라 교회, 체제, 성직자 계층이다.”
계열은 서로 다르지만, 릭 조이너도 공감이 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스마엘은 약속의 씨가 아니라 참 유업을 받은 자를 핍박한 자이며 이는 오늘날도 그러하다...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은 조만간 어쩔 수 없이 자기들의 영역을 침해한다고 느끼는 자들을 비난하고 공격하게 될 것이다. 이삭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았고 따라서 그에게 이스마엘은 위협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스마엘을 공격할 필요가 없었다.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은 별로 안정되어 있지 못하다. 그들은 종종 교회를 위해 진리를 수호하는 파숫군의 너울을 쓰고 공격을 감행할 것이나 그들의 참된 동기는 언제나 자기들의 영역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사랑입니다.
요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일 3:14-15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런데 이단사냥꾼들을 위시해서 이들의 주장에 부화뇌동하는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보면 얼마나 사랑이 없고 시기심과 증오심으로 가득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자기 아버지가 마귀이기 때문에 마귀를 닮아서 그토록 사랑이 없고 다른 교회와 목회자를 비난하는 일에 열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과 설전을 벌이셨습니다(31).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믿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구원 받은 참 신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아비는 마귀이며 마귀의 자녀라는 사실을 밝히자 분노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명목상의 신자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참된 신자들을 핍박합니다. 하나는 그들의 성품이 제 아비인 마귀를 닮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참된 목회자와 신자들의 메시지를 통해서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고신측 대구 노회에서 제가 기독교인 중 2%만 구원 받는다고 주장한다고 거짓 주장을 했습니다. 이것은 모함입니다. 하워드 피트만과 밥 존스의 간증에 의하면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불신자들을 모두 포함하여 구원 받는 비율이 대강 2%에서 2.5%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 명목상의 신자가 얼마나 많다는 것입니까? 지구상에 이삭의 자손보다 이스마엘의 자손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처럼, 교회 안에도 거듭난 신자보다 거듭나지 아니한 명목상의 신자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들 속에는 약속을 따라 난 자들을 핍박하는 이스마엘의 DNA가 심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자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며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2) 바리새인들 같이 종교적인 자들
세례 요한과 예수님, 그리고 사도들과 바울을 핍박한 주된 세력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진정한 신자들이 1세기 이후에 사라진 것이 아니듯이 바리새인들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오늘날 바리새인들은 주로 이단사냥꾼들과 교리적이고 종교적인 목사들과 신자들 속에 존재합니다. 윌리엄 데알테가는 “성령을 소멸하는 자들”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수세기에 걸쳐 성령의 역사를 반대하는 자들 즉 바리새인들의 속성을 연구’한 책입니다. 그 책에서 윌리엄 데알테가는 바리새주의가 외식을 넘어 이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바리새인이란 철저히 종교적인 사람으로 무엇보다도 전통과 질서와 합의된 정통의 입장에서 현상유지를 철두철미하게 주장하고 옹호한다. 필자가... ‘합의된 정통’(consensus orthodoxy)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당대의 대다수의 종교적인 사람들로 인해 수용된 신학적 해석과 관계가 있다...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성령의 새로운 역사에 반대하기 위해서 전통과 합의된 정통의 진리를 과장하는 데 있다. 궁극적으로 바리새인은 교회 안에서부터 하나님의 역사를 반대한다. 따라서 성경은 바리새주의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예영수 박사님 역시 “이단 정죄와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탁월한 책에서 바리새주의를 치명적인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
“일반 역사와 교회사에서 바리새주의는 항상 전통과 정통을 자신들의 전용물로 이용하면서 진리와 성령운동을 방해하는 이단이었다...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바른 교리는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보지 못하게 주변을 막아버린 신학적인 체계가 되어버린다. 기독교 세계에는 신학 체계로 되어진 교리가 많다.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세대주의, 오순절주의 등 자신이 선택한 신학적인 체계에 맞는 성경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이단이니, 자유주의자니, 비 정통이니 하고 송사하는 것은 바로 바리새인들이 하는 짓들이다.”
바리새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명백한 이단이지만 이단으로 정죄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정통의 탈을 쓴 채 다른 참된 교회와 목회자들을 이단으로 모는 일을 합니다. 이들 바리새인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바리새인은 교만하고 독선적입니다.
바리새인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우월감은 사탄의 속성과 같은 것으로,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파멸 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들은 자기와 신학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거침없이 이단이요 사이비라고 공격합니다. 그들은 마치 머리를 높이 들고 다른 사람을 물려하는 뱀들과 같습니다.
2) 바리새인에게는 종교적 교만이 있습니다.
교만 중에 최악의 교만은 ‘종교적 교만’입니다. 종교적인 교만은 영적인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먹게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교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처럼 교만한 자에게는 진리가 감추어지고, 어린아이 같이 겸손한 자에게만 계시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마 15:14)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일반 평신도보다도 목회자들이나 중직자들 중에 바리새인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3) 바리새인은 종교적 전통을 맹신합니다.
전통이란 합의된 정통 신앙이나 관습을 뜻하는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전통적 신앙과 실천에 일치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전통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전통과 성경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전통이 성경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권위가 있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막 7:8)라고 하셨고, 계속해서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 7:13)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바리새인들은 교리를 맹신하므로 똑같은 일을 합니다.
4) 바리새인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교만에 사로잡혀 ‘합의된 정통’의 이름으로 자신의 신학을 정당화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려 듭니다. 그들은 오만하여져서 자신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지도, 교정, 정죄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불완전한 자기의 견해를 기준 삼아 제멋대로 오만하게 판단합니다.
5) 바리새인은 맹목적인 증오심을 표출합니다.
바리새인의 근본 동기는 사랑이 아니라 증오심입니다. 그들은 타겟으로 삼은 상대가 완전 파멸할 때까지 집요한 증오심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질투와 증오심에 사로잡혀 있어서 자신들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언행이 타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헤아리지 못합니다. 도리어 자신들의 아비인 마귀를 닮아 타인의 패배에 병적인 희열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항상 마귀적인 열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비난하는데 열을 올립니다.
6) 바리새인은 지능적인 거짓말로 영적 살인을 자행합니다.
바리새인은 교만하고 증오심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심지어 지능적인 거짓말과 영적인 살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오늘날도 바리새적인 이단사냥꾼들은 영성이 강한 목회자들의 설교와 글을 악의적으로 과장하고 왜곡하며, 정죄를 위한 정죄를 합니다. 참소하는 귀신에게 격동 되어 문맥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을 과장 왜곡 인용하여 영적 인격적 살해를 서슴없이 행합니다. 그들은 마귀가 살인자인 것처럼 영적인 살인마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바리새적인 목사와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단 사냥꾼들은 대부분 바리새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부정하겠지만 그들의 행위가 그들이 바리새인임을 드러냅니다. 성경의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이 시대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심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섭니다. 성경의 바리새인들이 유대교의 주류를 형성했듯이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 바리새인들이 다수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혹 자신이 바리새인은 아닌지 정직하게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자기중심적이며 시기심에 불타는 자들
사울 왕은 자기중심적이고 시기심에 사로잡힌 자였습니다. 그는 충신이며 자신의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사울 왕뿐 아니라,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과 장로들,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역시 자기중심적이고 시기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사도들을 핍박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입니다. 심지어 목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조금만 손해가 된다 싶으면 다른 교회나 목회자를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저희 교회를 공격할 때 금 매끼를 하듯이 도덕으로 살짝 덧칠을 합니다. 그럴듯한 이유들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하나님 나라와 영혼들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적이고 탐심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릭 조이너의 글에 이런 그들의 생리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참소자는 대부분 믿는 자들의 불안정성을 통해 접근해 옵니다. 이 불안정성은 믿는 자들이 자신들의 영토에 집착하도록 내몹니다. 불안정성은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에 의해 위협 받게 됩니다. 참소자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자신의 이유로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고상한 합리성들을 이용할 수도 있는데, 가령 진리나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 자신의 영토를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누군가가 보다 큰 권위와 영향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들은 더욱 더 사단의 공격 목표물이 됩니다. 만일 그 사단이 영적인 지도자들의 마음속에 영토보전이나 자기를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을 뿌릴 수 있다면, 지도자는 자기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 안에 그것을 뿌릴 것이며, 더욱 파괴적인 분열과 파벌의 영이 있게 될 것임을 사단은 잘 알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세력 범위를 보호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야기되는 결과적인 분열이 바로 진정한 기름 부으심과 권위로부터 우리를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보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바로 그것을 잃어버리는 결과는 초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저항할 수 없는 영의 법칙입니다.”
순복음**교회의 정모 목사는 영성 운동을 하는 자이지만, 같은 지역에 큰믿음교회가 생겨난 것 때문에 그렇게 악랄하게 공격했습니다. 또, 캐나다에 지성전을 세우자 캐나다에서 이단이라고 난리였고, 부산에 지성전을 세우자 부산의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이단이라고 떠들어 댔습니다. 그리고 대구에 지성전을 세우자 대구 고신측 노회에서 이단으로 몰려고 했습니다. 결국 주의 은혜로 그들의 모든 시도가 무산 되었지만 이것은 이단시비와 핍박의 배후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이기심과 시기심입니다.
우리는 목회자들이 다른 교회나 목회자를 핍박하는 것은 자기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핍박하는 자 뿐 아니라 핍박 받는 자들도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그 위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마이크 비클의 간증입니다. 1989년까지는 마이크 비클의 모든 사역들이 잘되어갔습니다. 하지만 1990년 1월에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었습니다. 1990년도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도화선을 건드린 것 같았습니다. 그는 10개에서 12개 정도의 다른 사역 단체들에 의해 심한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마이크 비클이 가르치고 있는 교리들과 사역에 관한 거짓말들을 퍼뜨리기 시작했고, 악한 영들에 의해 기만을 받은 극단적인 사교집단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통과하는 동안 그는 보복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꼈습니다. 그에 대항하여 말해진 것들은 모두 거짓이었으며, 그의 분노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주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들에게 그렇게 분노하는 이유는 네 안에 숨어있는 야망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에 그는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부인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야망 때문이 아니라고요. 당신의 나라와 당신의 이름이 훼손 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역자들이 심하게 공격을 받아 나의 이름이 훼손되어졌을 때에는 왜 분노하지 않았느냐?”
이 말을 듣고 마이크 비클은 부끄러웠습니다. 자신이 힘들어하고 분노한 이유는 사실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자신 안에 있는 이기적인 야망들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공격을 계속 받는다면 자신의 이기적 야망들이 무너져 내리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이크 비클의 이 간증은 저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다른 훌륭한 많은 점들에서도 마이크 비클과 같지 않지만, 이 점에 있어서도 마이크 비클과 같지 않습니다. 저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역자들이 공격을 받을 때에도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단지 큰믿음교회의 부흥을 꿈꾼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를 변화시키기를 원했고, 그것이 무산될까봐 저를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심을 느꼈습니다. 비록 그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어느 정도는 제 안에도 야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핍박자들에게 더욱 분노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이크 비클의 글을 읽으며 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핍박을 받을 때 야망의 잔재들을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땅의 것이 아니라 온전히 위엣 것을 찾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분노하기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핍박하는 자들을 용서하고 축복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워질 것입니다.
(4) 바울처럼 자기 스스로 판단하는 자들
“승리하는 삶”이라는 책에서 D. L. 무디는 이렇게 썼습니다.
“양심은 안전한 안내자가 못됩니다... 양심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영향을 받으므로 하나님에 의하여 조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양심에 의해 정죄를 받지 않고서도 잘못된 일들을 행합니다. 바울은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행 26:9)라고 말하였습니다. 양심 그 자체가 교육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리새인 시절, 바울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바울은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양심적인 사람도 얼마든지 박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양심적인 사람들이 박해자가 되는 이유는 그들이 혼적이고 영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전 2:13-14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이와 같이 영분별은 영적으로라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양심적이지만 혼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식과 도덕으로 인해 교만하여져서 눈과 귀가 막히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박해자가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교회를 개혁하겠다고 혼적인 생각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교회를 대적하고 박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이지 못하고 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적인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영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판단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분별과 판단이 영적인 것이 되려면 종교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령 충만하지 않은 종교적인 목사와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들이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들을 핍박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매우 분별하기가 어려운 것이 있는데, 어떤 분들은 아주 영성이 좋습니다. 그들은 성자들과 방불한 영성을 갖고 있고, 온전히 하늘의 것을 추구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고 겸손하고 거룩하며, 섬김과 희생적인 삶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들의 장점을 이용합니다. 그것 때문에 영적인 교만이 슬며시 자리잡게 합니다. 교만은 항상 눈을 가리고 귀를 먹게 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사랑과 겸손, 그리고 희생적인 삶의 중요성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밝히 믿음과 비전에 대해서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다윗의 맏형 엘리압이 그랬던 것처럼 믿음을 교만으로 착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 속에 있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비전을 야망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판단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왕왕 하나님과 사람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아니라 숨는 것과 작은 것을 선택합니다. 작은 것이 진정한 것이고 작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겸손한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의 많은 이들이 사실상은 큰 꿈과 큰 믿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며, 큰일을 이룬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즉 진정성은 절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동기의 문제라는 것을 간과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큰 꿈과 큰 믿음을 가지고 큰일을 계획하고 성취해나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그런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정말 겸손히 자기를 부인하고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했기 때문인 것을 알지 못하고, 고상한 척 하면서 그들을 대적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말을 하거나 글을 씁니다. 그래서 제가 많은 좋은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책들은 추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책과 글들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5) 좌파의식을 가진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
어떤 분들은 목사인 제가 왜 가끔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여러분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좀 드리면, 올해 12월에 다시 저희 교회에 오십니다만 하이디 베이커 목사님이 저희 교회에 오셨을 때 다음과 같은 예언을 했습니다.
“이런 것은 제가 거의 듣지 못하는 말씀인데요. 저는 사람들에게 정치에 관여하라고는 제안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 이 교회가 정치적으로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고요. 큰믿음교회가 선택한 것도 아니지만, 이 교회가 그렇게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 뒤 질 오스틴, 샨 볼츠, 스티브 탐슨 등 여러 예언자들이 같은 맥락의 예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본래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뉴스나 신문에서도 정치에 관한 것은 듣지도 보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세계적인 선지자이며 저술가인 릭 조이너의 “추수”라는 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예언을 읽은 후부터였습니다.
“현재 가장 자유로운 나라 중 몇 나라에서 성경이나 종교서적을 갖는 것이 징역이나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되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극심한 종교의 박해를 경험했던 지역에서는 많은 자유가 주어질 것이다...
공산주의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며 세계는 붉은 물결의 맹렬한 공격으로부터 잠시 숨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 후 공산주의는 보다 더 눈에 띄게 진출하게 될 것이다. 남한, 필리핀, 남중미(멕시코와 대부분의 아프리카를 포함하여)가 궁극적으로 공산주의에 휘말릴 것이다. 이것은 변형된 공산주의의 형태이어서 공산주의라는 것이 적합한 단어가 아닐 것이지만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전체주의일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손에 떨어진 나라 중에는 기독교는 물론 다른 종교마저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꾀하는 나라들이 있을 것이다...
신자들에 대한 가장 심한 핍박이 오늘날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나라들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를 핍박하는 정권 중의 상당수가 거짓된 교회와 손을 잡을 것이다. 이 거짓된 교회는 국가에 충성을 다짐하며 ‘자유세계’로 남아 있는 지역 백성 대부분을 다스리는 권세를 잡을 것이다. 이 교회는 정부와 백성을 선동하여 그들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대적하게 할 것이다.”
이 예언을 읽고 처음에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과 함께 실현 불가능한 예언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좌파 정부 10년 동안 정말 릭 조이너의 예언대로 될 수 있다는 조짐과 징후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저는 꿈으로 많은 계시를 받는 편인데, 제가 미국 아틀란타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 호텔에서 잠을 자던 도중 아주 생생하고 무시무시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 대한민국 전역의 모든 거리마다 약 100미터 간격으로 한 사람씩 청년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공산주의 사상에 세뇌가 된 청년들로 북에서 인민군들이 내려와서 이 나라를 해방시켜 주기를 노골적인 구호를 외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온 나라가 온통 빨간색이었습니다. 내가 그 청년들 앞을 지나갈 때 그 청년들이 제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완전히 악질 반동분자구만. 너는 그 날이 오면 숙청 대상 제1호다. 이 자의 이름을 기록해둬!”
꿈속이지만 참으로 섬뜩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너무 생생하고 예상치 못한 꿈이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 꿈을 통해 저는 이 나라의 적화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알았습니다. 얼마 전 C. C. C. 본부 김준곤 목사님 사무실에서 이용희 교수님과 함께 목사님을 뵈었을 때 김준곤 목사님이 “우리나라가 적화되었고 80% 이상은 대한민국이 무너졌다. 대한민국은 없다. 그런데 최후의 보루 세력인 교회와 목회자들마저 복지부동이다.” 라고 탄식하시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입니다.
일예로, 전에 저는 금란교회에서 열린 에스더구국금식성회의 강사로 나서 “민노당의 대선 공약”을 그 증거로 내세우며 강력하게 경고했습니다. 민노당에 대선 공약은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어떤 제재도 없었고, 도리어 선관위는 저에게 경고조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 제가 지적한 그대로 이들이 빨갱이 세력이라는 것이 민노당 내부인사들에 의해 속속 폭로되고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뒤 정부가 민노당을 해체시켰습니까? 아닙니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권영길은 또 다시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래도 나라가 적화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이 이와 같아도, 목회자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역감정이 심해서 일정 부분 교회 부흥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정치 분야에서 바른 소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정말 저의 판단이 옳은 것인지 누군가에게 확증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갔을 때 밥 존스 목사님께 여쭤보았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러셨던 것처럼 제가 묻기도 전에 밥 존스 목사님이 먼저 얘기하셨습니다.
“한국의 정치와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일부 실망스러운 일들이 있어왔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일부 정치가들이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그들을 더 높이 끌어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과 한국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북한과 중국 그리고 온 세상에 가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목사님이 선포한 것과 들은 것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연스럽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하이디 베이커가 저희 교회에 왔을 때 정치 분야에 부르심이 있다고 예언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반미, 반정부, 반기독교적인 세력들의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거기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전에도 그런 말을 했다가 두 차례에 걸쳐 100명씩 약 200명의 성도가 교회를 떠났습니다. 목회자가 정치 얘기를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성도들이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요?
저의 질문에 밥 존스 목사님은 단호하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 그것은 목사님이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진리. 목사님은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단순한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하십시오. 변화와 위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불해야 할 대가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목사님은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나라 전체에 관하여 담대하게 말하십시오... 목사님은 진리를 말해오고 있으며 성도들을 잃었습니다. 계속해서 하십시오. 결국에는 진리가 승리할 것입니다.”
에스더기도운동분부의 이용희 교수님의 말씀대로 공산주의는 무신론을 그 바탕에 둔 적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역사상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순교자의 수보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한 기독교인의 수가 더 많습니다. 공산주의의 적은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기독교입니다. 저는 최근에 대만에 집회를 인도하러 가서 다시 한 번 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대만에서 중국 사정을 잘 아는 목사님들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지금 중국 내에선 교회에 대한 핍박이 더 심해지고 아주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다른 신분으로 위장해서 선교하고 있는 모든 선교사들의 명단을 확보해놓고 감시하고 있으며 사역이 커지면 덮쳐서 가두고 모든 것을 빼앗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공산주의는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며 교회를 비방하고 기독교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안티 기독교세력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은 드문 일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의 숫자가 아주 적었던 과거에도 그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되었을 까요?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그것은 지난 10년 동안 좌파 정부가 공산주의 사상의 온실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공산주의 사상이 사회 구석구석에 두루 퍼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힘을 합해서 대처해도 부족한 이 마당에 교회를 공격하는 “mbc 뉴스 후” 같은 프로그램에 목사라는 자들이 나와서 안티 기독교 세력과 입을 맞추며 교회를 성토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개혁을 부르짖었던 “뉴스엔조이” 같은 신문들은 좌파 신문이 되어 한국 교회에 흠집을 내고 공격하는 데 1등공신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을 보면 릭 조이너의 예언이 떠오릅니다.
“거짓 교회 - 신자들에 대한 가장 심한 핍박이 오늘날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나라들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를 핍박하는 정권 중의 상당수가 거짓된 교회와 손을 잡을 것이다. 이 거짓된 교회는 국가에 충성을 다짐하며 ‘자유세계’로 남아 있는 지역 백성 대부분을 다스리는 권세를 잡을 것이다. 이 교회는 정부와 백성을 선동하여 그들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대적하게 할 것이다.”
저는 이들이 바로 그런 거짓 교회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 뿐 아니라 인터넷에 보면 안티들의 주장과 똑같이 십일조를 반대하고 교회들과 목회자들의 흠을 잡는데 열심인 “예수 ****의 향기” 같은 카페들이 있는데 이들은 기독교의 탈을 쓴 적그리스도의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이단성이 없는 교회와 목회자를 상대로 한 이단시비는 그만 벌이고, 기독교의 탈을 쓴 이런 반기독교적인 신문과 인터넷 카페와 목사들을 조사하여 심판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독설과 참소, 조롱하는 말로부터 한국 교회를 보호해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핍박에 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오는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핍박에 대해 잘못 알았던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핍박을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핍박은 우리와 상관없는 과거사가 아닙니다.
진짜는 진짜이기 때문에 핍박을 받습니다.
그리고 가짜는 가짜이기 때문에 진짜를 핍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불가피한 핍박을 당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1.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항상 그렇듯이 핍박을 받을 때에도 예수님의 명령대로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마 5:10-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1) 하늘에서 큰 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핍박에는 상이 있습니다. 그것도 큰 상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히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이 얼마나 큰 상입니까? 이처럼 주를 위해 핍박받는 자에게는 큰 상이 주어집니다. 안디옥의 감독인 이그나티우스는 감옥에서 편지를 쓰면서 자신을 매고 있는 쇠사슬을 “나의 영적인 진주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유명한 청교도 설교자인 리차드 백스터는 “모든 비난들을 당신의 머리에 쓴 면류관처럼 묶어두어라. 그것들을 세상의 보화들보다도 더 큰 재산으로 존중하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늘에서 큰 상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핍박을 받을 때 하늘에서 받을 큰 상을 생각하고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선지자들의 반열에 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타오르는 전도의 열정”이라는 책에서 라인하르트 본케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귀가 여러분을 적으로 취급할 때마다 기뻐하십시오! 마귀는 여러분에게 가능한한 가장 위대한 존경과 최상의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과거에 미워했던 사람들, 즉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종들과 같은 반열에 여러분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군대의 뛰어난 용사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퍼하거나 의기소침해 하는 대신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2. 용서하고 축복하고 기도하라!
눅 6:26-28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는 내 것이라”는 원종수 권사님의 책에 보면 그분의 어머니가 한 말이 나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나에게 타이르신다. ‘누구든지 너를 핍박하거든 감사해라. 네가 쓰임 받는 증거니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라. 그리고 축복해라.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용서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스테반이 본을 보여준대로 대적들을 용서하고 축복해야 진정한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승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용서하고 축복할 때만 그 일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롬 12:14, 19-21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제가 윈 형제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을 받은 것 중의 하나는 그가 그토록 심한 고문과 고통을 당했으면서도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 많은 고문과 구타를 당하면서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한 번도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증명하신다. 정말이다.”
우리가 아무리 핍박을 받았어도 윈 형제가 받은 것만 하겠습니까? 그토록 심한 박해를 받은 윈 형제도 한 번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윈 형제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꺼이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용서하고 축복하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3. 대적이 아니라 자신과 싸우는 자가 되라!
우리는 적을 혼돈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적은 우리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배후에 있는 마귀와 귀신들입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이름의 권세로 배후에서 조종하는 원수 마귀의 세력을 묶어 버려야 합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에 보면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 믿는 자가 마귀에 대하여 권세를 행사하는 데 지식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 아니며 혹은 목사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믿는 자는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권세가 있고 마귀에 대하여 대적할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마 18:18; 막 16:17; 눅 10:19; 빌 2:9-10).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어느 때, 교회 안에 누구라도, 교회 밖에 누구라도, 무엇을 하든지, 혹은 어떤 말을 하든지, 혹은 어떤 행동을 하든지, 만일 그것이 교회를 곤란하게 하든지, 훼방을 하든지, 괴롭게 하든지, 협박을 하든지, 방해를 하든지, 교회의 사역을 지체하는 것이면 영분별의 은사나 지식의 말씀이 없어도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마귀이다. 너는 믿는 자 뒤에서 활동하는 영에게 내 이름, 즉 예수의 이름으로 그의 작전을 당장 중지하라고 명령만 하면 된다. 너는 그 사람을 다룰 필요가 없다. 그 작전 뒤에 있는 악한 영만 다루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번 통합측 일부 목사들이 저희 교회를 이단으로 몰려할 때 이런 명령하는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저는 이런 기도를 자주 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명령과 기도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귀의 궤계를 도말하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의 진짜 적이 다른 사람이나 마귀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부단히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사역은 핍박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에 무너집니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타드 벤트리에게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를 통해 플로리다에서 치유 부흥이 일어났을 때 많은 공격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터 와그너 박사와 릭 조이너를 위시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를 지지해주었고 그는 잘 버텨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역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처럼 진짜 적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부단히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끝까지 아름답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리차드 백스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큰 심판도 자기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은혜가 해야 하는 가장 큰 일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가장 큰 비난과 불평은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우리 자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면서 경계하고 대적해야 할 가장 큰 원수는 우리의 탐욕적 마음과 의지입니다.”
또한, 잔 폴 잭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경건한 성품과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재능이 많고 기름부음을 받은 지도자들이 많기는 하지만, 경건한 성품(도덕적으로 뛰어남)을 갖추고 있는 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들이 말을 가지고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삶의 모습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사역자로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윤리적 기준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과정을 밟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선포하는 대로 살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뛰어난 삶을 살기 위해서 성경 공부를 하며, 하나님과 고요한 시간을 보내며, 지속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숨겨진 승리' 라고 부른다. 이러한 숨겨진 승리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해 줄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기름부음과 은사들에 기초하여 지도자의 자리에 앉혀지기는 했지만,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그러한 사람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그러한 사람들이 저지른 실망스러운 결과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지도자들은 큰 은사와 위대한 기름부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삼손과 같이 도덕적 부패로 말미암아 사역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여러분, 우리의 원수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미워해야 합니다. 자기를 경계하고 자기와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선한 싸움입니다. 우리는 이 싸움을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