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감위선(不敢爲先)
어느 철학자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과 같이 다섯가지를 들었습니다.
1.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2.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약간 부족한 외모
3.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절반 밖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4. 남과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5.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말솜씨
이들 다섯 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부족함’에 있습니다.
옛날 주(周)의 제후국인 노(魯)나라 환공은 의기(欹器)라는 그릇을 늘 가까이 두고 자신을
경계 하였다고 합니다. 공자께서도 이 그릇을 의자[座] 오른쪽[右]에 두고 반성의 자료로 삼았다[銘] 하여
'좌우명(座右銘)'의 유래가 된 그릇 입니다.
이 그릇은 텅 비면 기울어지고, 가득 채우면 엎어지고 중간 정도 채우면 반듯해 지는 그릇입니다.
공자께서 이 의기가 의미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풀었습니다.
"총명하고 예지가 뛰어나도 스스로 어리석다 여기며 살아가고 공적이 온 세상을 다 덮어도
사양으로써 이를 지키고 용맹함이 세상을 뒤흔들어도 항상 겁을내며 조심하고
부유함이 천하에 가득해도 겸손으로서 이를 지켜라 (孔子家語 중에서)
이 의기는 한마디로 가득 채우지 말고 반 쯤 비워 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직장인의 조건도 위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재산이 많아서---,외모가 출중해서---,학식이 높아서---,힘이 세어서---,말을 잘해서---
이러한 조건들을 가득 채웠다고 성공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득차면 자만해 지고 자만하면 게을러지고 부패해 집니다.
비운다는 것은 바로 부족함을 아는 것이요, 부족함을 아는 것은 겸손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때 혈기방자(?) 하여 자신감 넘치게 아는 체, 있는 체,
잘난 체 한 적은 없었던가를 살펴봅니다.
돌이켜 반성해 보면 얼마나 내가 못났는가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철이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 여겨집니다.
성훈에 “아는 것은 겸손함만 못하고 겸손한 것은 사랑함만 못하다 ” 하였습니다.
세상에 내가 아는 게 많다고 큰소리치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또 성훈에 첫 번째가 ‘사랑’이요 두 번째가 ‘겸손’이며
세 번째가 감히 나를 앞세우지 않는다는 뜻의 ‘불감위선’ [三曰 不敢爲先] 이라 하였습니다.
인격의 최고 경지는 바로 인간을 사랑하는 것, 겸손, 그리고 불감위선이라 여겨집니다.
불감위선이 되어야 겸손의 단계에 이르고, 겸손해야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불감위선'을 제대로 실천하여 왔는지 반성해 봅니다.
언제나 1등!, 1등만이 최선이고, 가득! 가득한 것이 최고이며,
남과 경쟁하여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먼저! 빨리! 높이! 도전하라고 강조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쪽만의 가르침 이었습니다.
겸손없는 자부심은 자만이 됩니다. 겸손없는 용기는 무모함이 됩니다. 겸손없는 지식은 아집이 됩니다.
겸손없는 비지니스는 고객을 무시하게 됩니다. 겸손없는 승리는 오만이 되고 맙니다.
겸손이라는 '비움'이 있어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데 자만, 무모, 아집, 무시,
오만으로 가득 차 있는 그릇에는 아무것도 더 담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도전과 경쟁의 원천은 바로 ‘겸손’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일류를 지키기 위해서, 일류에서 초일류로 가기 위해서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물을 통해 겸손의 미덕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나아갑니다.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가고 빈곳은 채워 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 갑니다.
"뜻 쓰기를 물과 같이 하면 말없는 가운데 공덕이 있다.
물과 같은 마음! 이것이 바로 사랑[慈]이요, 겸손이며, 불감위선 [不敢爲先]이 아닐까요?
<송인성 님이 주신 카톡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