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술동아리에 가는 날 새벽같이 일어나 샤워를 한다. 젊은 여성들이 득실대는 그곳에 노령의 냄새를 숨기기 위해서다. 완벽주의 정신으로 향수까지 분사하려다가 참았다.
나이가 들면 노화 냄새가 난다. 중성 지방산이 산화하는 과정에서 발산되는 물질, 노네랄 때문이다. 생리적 현상을 근원적으로 제거할 방법은 없겠지만 몸을 깨끗이 하고 화장요법을 곁들이면 숨길 수는 있다.
체취는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 미팅 자리에서 생리적 현상을 참지 못하고 가스 냄새를 풍기면 미녀를 쟁취할 수가 없다. 해외 바이어들과 중요한 상담을 하는데 마늘 냄새를 풍긴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연륜이 경과 할수록 몸단장 입 단장을 하고 노네랄 냄새를 숨기려는 노력은 늘그막 사회생활의 기본예절이 아닐까 굳게 믿는다.
오십 대 후반 젊은 나이에 지인들로부터 주례청탁을 받고 멈칫한 적이 있었다. 심적 부담이 컸지만 그들의 진솔한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진정으로 그들의 미래를, 밝게 열어주고 싶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성을 쏟았다. 관용과 상호존중의 미덕을 깨우치고 역경과 아픔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덕목을 심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아이들의 결혼식은 주례선생님 없이 웃음과 감동이 넘치는 축제의 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따뜻한 봄날, 파도가 넘실대는 해운대 P호텔 카프리 룸에 한 쌍의 신랑 신부가 나란히 섰다. 신랑 아버지의 축사 시간, “주향백리 화향천리 인향만리.” 라는 경구를 인용하였다. 술향기는 백 리를 가고 꽃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는 중국 남북조시대 송계아의 이야기에 나오는 말이다.
인향만리의 주제로 하여 부부 중심사회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인품이 온후하고 덕이 놓으시며 매사에 사랑으로 배려하는 사람을 우리는 향기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꽃의 향기는 바람결에 흩어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마음속에 남아 오랫동안 향기를 풍긴다는 의미를 되새겨 주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충언과 함께 꽃향기에 나비가 날아들듯이 벗과 이웃이 찾아드는 향기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라는 당부의 말도 빼먹지 않았다. 아플 때나 힘이 들 때 기댈 언덕이 되라는 의미를 담아 축시를 낭송했다.
그대여,
살다가 힘이 들고 허허로울 때
작고 좁은 내 어깨지만 그대 위해 내놓을게요.
잠시 그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아요.
나도 누군가의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음에
행복해 하겠습니다.
신부의 여동생이 자매간의 애증(愛憎)을 담은 편지를 나긋한 음성으로 낭독을 했다.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한편의 모노드라마다. 신랑 친구들이 가벼운 댄싱으로 축가를 부르고 신랑 신부는 사랑의 키스를 연출한다. 카프리 룸에 축복의 세레나데가 울려 퍼지고 레드와인의 향기가 자욱하게 파도를 탄다.
사는 동안 많은 부류의 사람을 만난다. 만날수록 정감이 가고 공명이 오래 머무는 향기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취를 풍기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온통 불구덩이고 불만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거북해진다. 나 또한, 향기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지만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헛말이 튀어나온다. 돌아서서 후회하지만 뱉은 말은 되돌릴 수가 없으니 두고두고 통한으로 남는다. 삼사일언(三思一言) 삼사일행(三思一行)을 되뇌어 보지만 쉽지가 않다. 인격도야(人格陶冶)는 죽도록 지켜야 할 삶의 가치이기에 일구월심(日久月(深) 으로 분발하리라
예술동아리에 가는 날이면 언제나 아침 샤워를 하고 계절의 향기가 묻어나는 옷으로 몸단장을 한다. 오딧세이 스킨로션을 듬뿍 바르고 거울 앞에서 표정 관리를 한다. 그리고 가슴을 쫙 펴고 꼿꼿하게 걷는다. 마음의 양식을 얻기 위해 글발을 가꾸고 황혼의 삶을 회개하며 명상에 잠긴다. 마음의 양식은 향기를 수반하니까.
한번 왔다가는 인생, 살아지는 날까지 힘이 넘치고 향기로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라.
첫댓글 좋은 말씀들 깊이 새기겠습니다. 더위에 몸조심 하시고 건강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