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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Ellen G. White Notes)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출판하는 보충교재 [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아직 한글번역본이 없는 예언의 신 인용구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4년 1기 – 시편>
제5과 낯선 땅에서 부르는 여호와의 노래
<1월 27일/안, 서론>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역경과 시련이 우리를 둘러쌀 때 우리는 하나님께 피해야 하며, 건져낼 힘이 있으시고 구원하시기에 강하신 주님께 확신을 가지고 도움을 기대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할진대 그 축복을 간구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의 의무이며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찬미하는 것을 등한히 하지 않는가? 우리는 모든 축복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더 자주 감사를 표현해야 않겠는가? 우리는 감사하는 정신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하여 깊이 명상하고 회고해야 하며 비록 우리가 슬픔과 고통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2기별, 268)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5~16). 이것이 그리스도의 습관이었다. 그분은 종종 시험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이에 복종하는 대신 혹은 노를 발하는 대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들을 부르셨다. 그분은 신령한 노래로 사탄이 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사용한 유창한 말들을 멈추게 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유혹을 당할 때 참소나 험담 대신에 그들의 창조주를 찬양하게 하라. 주께서는 이같이 화평케 하는 자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대의 부주의한 말로 원수에게 유익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라.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분은 그대의 힘이시다.(그분을 알기 위하여, 185)
◎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그분의 허락을 믿지 아니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그분의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이다. …
사탄이 그대들을 시험할 때 그대들은 의심하고 비판하는 말은 한마디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대들이 사탄의 유혹을 용납하는 문을 열면 그대의 마음은 불신과 반역적 의심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그대들의 느끼는 바를 기탄없이 말하여 버린다면 그대들이 말하는 의심마다, 그대 자신에게 영향이 미치게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다른 사람의 생애에도 싹이 나서 열매를 맺게 하는 씨가 되어 그 말의 감화를 소멸시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비록 그대들은 사탄의 일시적 시험과 올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모르나 그대들의 감화를 받은 다른 사람들이 말한 그 불신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런즉 우리가 언제나 영적 힘과 생기를 주는 그런 말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누구나 다 시험이 있고 또 견디기 어려운 근심과 대항하기 어려운 유혹들이 있다. 그대들의 어려운 사정은 그대들과 같은 연약한 인간에게 말할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기도로 하나님께 내놓을 것이다. 언제든지 의심하고 낙담하는 말은 한마디라도 입 밖에 내지 않는 규칙을 세워라. 그대들은 희망을 주고 원기를 돋우는 말로 다른 사람의 생애를 명랑하게 하고 그들의 노력에 힘을 더하여 주는 데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정로, 119-120)
<1월 28일/일, 악이 득세하는 날에>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죄의 시작과 그 존재 이유는 많은 사람에게 큰 수수께끼가 되어 있다. 그들은 악의 소위(所爲)와 그 무서운 결과로 생기는 불행과 파멸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들은 무한한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이런 일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의심한다. 여기에 그들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가 있다. 불신과 의심에 싸여 있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분명히 나타나 있고 구원에 필수적인 진리에 대하여 눈이 멀어 있다. 죄의 존재에 관하여 질문하면서 하나님께서 결코 계시하지 않으신 것까지 알아내고자 노력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한다. … 그것을 구실로 성경의 말씀을 거절해 버린다. …
성경에 무엇보다 분명히 알려져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가 들어온 것에 대하여 전혀 책임이 없으시다는 것, 하나님의 정부에는 반역을 일으킬 조건이 될 만한 아무런 결함이 없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강제적으로 거두어 버린 일이 없다는 것 등이다. 죄는 하나의 무단 침입자이다. 그것이 나타나게 된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죄는 오묘한 것이며,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 죄는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는 위대한 사랑의 율법에 대항하여 싸우려는 정신의 표현이다.(쟁투, 492~493)
◎ 인류 역사의 기록을 보면, 모든 민족의 발전과 제국들의 흥망이 마치 사람들의 의지나 용감한 행위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가지 사건들은 대부분이 사람의 능력, 야심, 혹은 변덕에 의하여 결정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휘장이 열려서 거기에서 우리는 무대의 상부와 배후는 물론 자비가 충만한 하나님의 대리자들이 인간의 이해관계와 권력과 욕망 등 일체의 승부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그분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활동 무대에 등장했던 각 나라들은 “순찰자”요 “거룩한 자”(단 4:13)이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보이기 위하여 지상의 각 자리를 차지하도록 허락된 것이다. 나라들이 하나님의 원칙을 배척했고 그 배척으로 멸망을 자초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지배하시는 목적은 그 나라들의 모든 움직임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50)
◎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자비로우신 인애(仁愛)는 위대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을 결코 떠나시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당하는 시련들에 대하여 덜 생각하며 적게 말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선하심에 대하여 더 많이 말한다면 우리는 우울함과 당혹감을 훨씬 초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그대들이 마치 어두운 길에 들어서는 것 같고 바벨론에 잡혀간 포로들처럼 느낄 때 버드나무 위에 그대들의 거문고를 걸어 놓고 즐거운 노래로 시련을 이겨 내도록 하자. 아마 그대들은 “나의 전망이 암담할 때, 슬픔과 사별의 멍에가 나의 영혼을 억누를 때 어떻게 노래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슬픔이 예수님 안에서 발견한 전능하신 친구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게 해서야 되겠는가? … 우리 구주께서 살아 계시는 한 우리가 끊임없는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2기별, 268~269)
<1월 29일/월, 죽음의 문턱에서>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
구주의 말씀에는 재난이나 사별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기별도 있다. 우리의 슬픔은 아무런 근거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다(애가 3:33). 그분께서 시련과 환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히 12:10)기 위함이다. 감당하기 심히 어렵고 가혹하게 보이는 시련이라도 일단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축복임이 판명될 것이다. 세상의 쾌락을 앗아가는 혹독한 재난이 오히려 우리의 눈을 하늘로 향하게 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슬픔을 당하여 예수님 안에서 위로를 구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결코 그분을 알지 못했을 사람이 많다.
인생의 고난은 우리 성품에서 불순물과 거친 것을 제거해 내는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이들에 의해 채석되어 깎기우고, 끌로 새겨지고, 갈리고 다듬어지는 것은 고통스런 과정이다. 또 회전 연마기 속에 들어가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속에 들어간 돌은 하늘 성전의 제자리를 채우는 데 부족함이 없게 준비되어 나온다. 쓸모없는 물건을 위해서는 주께서 그처럼 신중하고 철저한 작업을 하지 않으신다. 오직 그분의 보석만이 궁전의 식양대로 다듬어진다.(보훈, 10)
◎ 이제 영광의 주께서는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 운명하고 계셨다. 귀중한 생명을 거두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의 기쁨으로 들뜨지 않으셨다. 모든 것은 숨이 막힐 듯이 침울했다. 그분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었다. 그분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자아내게 한 것은 십자가의 고통과 치욕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당하는 자 중에 제일인자이셨으나 그분의 고통은 죄의 유해성을 느끼는 데서 오는 고통, 인간이 죄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죄의 흉악성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시는 데서 오는 고통이었다. 죄가 인간의 마음 속에 너무나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과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나오려는 사람은 너무도 적다는 것을 그리스도께서는 아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인간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셨고 수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셨다.
우리의 대속자요 보증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우리 모두의 죄가 놓여졌다.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구속하려고 그분은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으셨다. 아담의 모든 자손의 죄가 그분의 마음을 눌렀다. 불법으로 인하여 생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곧 그분의 무서운 불쾌하심이 그분 아들의 영혼을 전율하게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온 생애를 통하여 타락한 세상에 아버지의 자비와 용서하시는 사랑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했다. 죄인들의 괴수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그분의 과제였다. 그러나 이제 그분이 지신 죄의 엄청난 무게로 인하여 그분은 화해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 최대 고민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구주로부터 얼굴을 돌리심으로 인간이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그분의 마음을 찔렀다. 이러한 고민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분은 육체적 고통을 거의 느낄 수 없으셨다.(소망, 752-753)
<1월 30일/화, 하나님, 어디에 계시나요>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여행하기에 가장 평안한 길은 아니며, 때로는 그 길이 어둡고 가시밭같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팔이 그대들을 감싸서 그대들을 죄악에서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가진다. 주께서는 그대들이 그분에 대한 열렬한 믿음을 활용하고 흐릴 때나 맑을 때를 막론하고 그분을 신뢰하기를 배우기를 원하신다.
독수리가 그의 보금자리로 날아갈 때 흔히 폭풍우를 만나 산속의 좁고 험한 골짜기로 밀리는 일이 있다. 검고 성난 구름 덩어리가 독수리와 그의 보금자리가 있고 햇빛이 비치는 산봉우리들 사이를 휩쓸며 지나간다. 한동안 그는 당황한 듯이 보인다. 그리하여 그 독수리는 마치 그 빽빽한 구름을 쓸어버리려는 듯 그의 강한 날개를 퍼덕이면서 이쪽저쪽으로 돌진한다. …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위에 있는 평온한 햇빛 가운데 나타날 때 그는 강렬한 개선의 소리를 발한다. 흑암과 폭풍우는 모두 그의 아래편에 있다. 그리고 하늘의 빛은 그의 주위에 비취고 있다. 그는 높은 바위에 있는 그의 사랑하는 보금자리에 도달한다. 그리고 만족한다. 그는 흑암을 통과하여 빛에 도달하였다. 이렇게 하는 데는 그에게 노력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가 찾는 목적물을 얻음으로 상급을 받았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따라갈 수 있는 유일의 길이다. 우리는 그런 산 믿음을 활용해야 한다. 그 믿음은 우리를 하늘빛에서 분리하는 두꺼운 벽과 같은 구름을 깨뜨릴 것이다. 우리는 도달하여야 할 믿음의 산봉우리들이 있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성령 안에서 평강과 희락뿐이다.(아들과 딸, 323)
◎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한 것의 영원하고 창조되지 않은 근원이시다. 그분을 신뢰하는 자는 그분이 이러하심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을 하늘 아버지로 바라보는 자들에게 그분은 그분의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보증을 주신다.
우리의 심령을 열고 그리스도의 임재의 태양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나의 형제자매여, 빛으로 향하라. 그대가 의기를 앙양하고 부흥시키는 감화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실제적이고도 개인적인 접촉을 하라. 그대의 믿음이 강하고 순수하며 확고부동하게 하라. 그대의 심령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대가 아침에 일어나서 그대의 침대 곁에서 무릎을 꿇고 하루의 의무를 성취할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스도 품성의 향기가 그대의 활동에 힘을 주도록 그분께 구하라. 그대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영감을 줄 말을 할 수 있도록 그대를 도와달라고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간구하라. 그리고 구주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라.(아들과 딸, 199)
<1월 31일/수, 하나님의 약속은 영구히 폐하였는가?>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시인 다윗은 그의 경험에 따라 마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때때로 그가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길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은 크게 용기를 얻었다. 그러다가 그가 하나님의 자비와 변함없는 사랑의 뒷면을 보았을 때 모든 것은 어두운 구름에 가리워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 어두움을 뚫고 하나님의 속성을 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속성은 그에게 확신을 주고 그의 믿음을 강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삶의 위험과 어려움들을 깊이 생각할 때 그것들이 매우 험악하게 보였기 때문에 그는 그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신의 죄를 그토록 강렬한 빛 가운데서 조명해 보았기 때문에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하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가 울면서 기도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속성과 그분의 품성에 관하여 보다 더 분명한 견해를 갖게 되었다. …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굳게 붙잡았다. 그래서 그는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 비록 하나님께서 깊은 신비에 싸여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모두 자비롭고 선한 것을 그는 알았다. 이는 모세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품성이기 때문이다. …
다윗이 그 약속들과 특권들을 자신에게 적용시켰을 때, 그는 더 이상 경솔한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며, 용기가 꺾이어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절망 가운데로 내던지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다. 하나님의 교훈 속에 나타나 있고, 그분의 오래 참으심과 탁월하신 위대성, 그리고 자비 속에 전시된 하나님의 품성을 그가 전체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이적들은 무한정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화잇주석, 시 77:7,10-12)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여행을 명랑하게 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찬양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우리 앞길에 많은 축복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시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며,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다. 즉 희망을 굳게 잡을 수 있으며 어두움을 빛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세상에 남겨 두지 않으셨다. 우리의 앞길에는 아름다운 꽃밭들로 장식되어 있을 것이 약속되어 있다. 이 꽃들은 어디든지 있으며 풍부한 향기를 발할 것이다.
우리의 매일 받는 축복을 그대로 넘겨 버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가지고자 함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축복을 잃어버리는가. … 그늘지고 보잘 것 없는 장소에 핀 꽃도 빛의 광선을 모두 받을 수 있음을 응답하며 잎을 낸다. 태양 없는 집 속의 감옥 같은 새장 안의 새도 양지에서 사는 것처럼 당당하게 노래한다. … 하나님께서는 그들로부터 평화와 희망과 위로를 수집하기 위하여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들, 감사하는 심령을 사랑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직 그분의 사랑의 더 깊음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이다. …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을 산 믿음으로 붙잡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감사드리자. (높은 부르심, 10)
<2월 1일/목, 악인들이 개가를 부르는 날에>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많은 사람이 부귀와 권력을 얻음으로 스스로 천국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하게 말하며”(시 7:8), 인권을 짓밟고, 하나님의 권위를 멸시한다. 거만한 사람들이 한동안 큰 권력을 휘두르고 그들이 경영하는 모든 사업에 성공할지는 모르나 결국 그들은 실망과 불행만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조사의 때가 임박했다. 지존자께서 인간들이 건축한 것을 보시려고 곧 강림하실 것이다. 그분의 주권이 드러날 것이며 교만한 인간의 사업들은 낮춤을 당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3~14, 10~11).(부조, 124)
◎ 위대한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우리는 백성들이 무관심에서 벗어나 그날을 준비하도록 촉구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담대함을 버릴 것이 아니요 오직 전보다 더욱 확고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도우셨고 그리고 끝까지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우리는 파괴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위로하기 위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나게 하는 기념비적인 기둥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눈에서 닦아주신 모든 눈물, 그분께서 달래주신 모든 고통, 모든 불안, 모든 두려움, 모든 부족함, 베풀어진 모든 자비를 기억 속에 생생하게 간직하고, 남은 순례의 여정 동안 우리 앞에 놓인 모든 일에 대비하여 우리 자신을 강하게 하길 바란다. (This Day With God, 58)
◎ 구유에서 시작하여 십자가에서 마친 예수님의 생애는 자아 포기와 고난에 참여하라는 부르심이었다. 예수님의 생애는 사람들의 목적을 드러냈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진리를 가지고 오셨으며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모든 사람은 다 그분에게로 이끌렸다. 자아를 경배하는 자는 사탄의 왕국에 속했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태도로 저희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보일 것이었다. 이같이 각 사람은 자신에 대한 판결을 자신이 내린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은 그들이 진리를 거절한 것이 어떠한 성질의 것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십자가가 제시될 것이요, 그 십자가의 참뜻이 범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던 각 사람의 마음에 이해될 것이다. 신비한 희생 제물이 달린 갈보리의 광경 앞에서 죄인들은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 모든 거짓 핑계는 일소될 것이다. 인간의 배도는 그 극악한 본성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선택이 어떠했던가를 알게 될 것이다. 오래 계속되어 온 대쟁투 가운데서의 진리와 오류에 대한 모든 문제가 그때에는 다 명백히 밝혀지게 될 것이다. 우주의 심판에서 하나님께서는 죄악의 존재와 계속에 대한 일체 책임이 없이 서실 것이다. (소망, 57-58)
<2월 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거룩한 목자” (소망, 480–484)
각 영혼은 마치 그가 구주께서 위하여 죽으신 유일의 사람인 것처럼 예수님에게 잘 알려져 있다. 각 사람의 고민은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도움을 구하는 부르짖음은 그분의 귀에 들어간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그분께로 이끌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은 “나를 따르라”라고 명하시며 그분의 성령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분에게 나아가도록 한다. 많은 사람이 이끌려 가기를 거절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누구인지 아신다. 그분께서는 또한 누가 그분의 부르심을 즐겨 듣고 목자이신 그분의 돌보심 아래 오기를 원하는지 아신다. 예수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마치 이 지구 표면에 그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각 사람을 돌보신다.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온다. 동방의 목자는 그의 양을 내몰지 않는다. 목자는 폭력이나 위협에 의지하지 않고 앞으로 가서 양들을 부른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부름에 순종한다. 이와 같이 구주이신 목자도 그분의 양들을 그렇게 돌보신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의 백성을 무리 양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예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도다”라고 선언하신다. 그분은 아무에게도 그분을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으신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시 77:20; 렘 31:3; 호 11:4).
형벌의 두려움이나 영원한 보상에 대한 희망이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그분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제자들은 베들레헴의 말구유로부터 갈보리의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세상에서의 그분의 순례 생활을 통하여 나타난 구주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을 보았다. 마음이 끌렸으며 영혼은 부드럽게 되고 또 정복되었다. 바라보는 자들의 마음속에 사랑이 일깨워진다. 그들은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그분을 따른다.
목자가 자기 양떼보다 앞서가서 몸소 행로의 위험을 먼저 당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그렇게 하신다.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신다. 하늘로 가는 길은 구주의 발자취로 성별되었다. 길이 가파르고 험할지 모르지만 예수께서 그 길로 여행하셨다. 우리를 위해 더욱 쉬운 길을 만들기 위하여 그분의 발은 억센 가시들을 내리눌렀다. 우리가 져야 할 모든 짐을 그분께서 친히 지셨다.
지금은 예수께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셔서 함께 우주의 보좌에 좌정해 계시지만 그분은 자비심 많은 성품을 조금도 잃지 않으셨다. 오늘도 똑같이 부드럽고 동정적인 마음이 괴로움을 당하는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다. 오늘도 못 박히신 손은 세상에 있는 그분의 백성을 더욱 많이 축복하시려고 펼쳐져 있다.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리스도께 자신을 바친 영혼은 그분이 보시기에 온 세계보다도 더 귀중하다. 한 사람을 구원하여 그분의 왕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라도 구주께서는 갈보리의 고통을 당하셨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분이 위하여 죽으신 사람은 단 하나도 결단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의 추종자들이 그분을 떠나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그분은 그들을 꼭 붙잡으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모든 시련을 통하여 결코 실패하지 않는 조력자가 계신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홀로 유혹과 싸우고 악에 맞서 투쟁하다가 마침내 괴로움과 슬픔에 압도되도록 버려두지 않으신다. 지금은 비록 예수께서 인간의 안목에서 숨겨져 있을지라도 믿음의 귀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계 1:18). 나는 그대의 슬픔을 견디었으며 그대의 투쟁을 경험하였으며 그대와 같은 유혹을 당하였다. 나는 그대의 눈물을 안다. 나도 역시 울었다. 인간의 귀로 차마 들을 수 없는 극한 슬픔을 나는 안다. 그대는 고독하고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지 말라. 그대의 고통이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의 심금도 울리지 못할지라도 나를 바라보고 살아라.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10).
아무리 목자가 양을 사랑할지라도 실상은 자기 자녀들을 더욱 사랑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일 뿐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시다.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요 10:14~15)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를 “내 짝 된 자”(슥 13:7)라고 하나님께서는 선언하셨다. 즉 그분과 영원하신 하나님 사이의 친교는 그리스도와 세상에 있는 그분의 자녀 사이의 친교를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우리가 그분의 아버지의 선물이요 그분이 하신 일의 보상인 까닭에 예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사랑하신다. 독자여, 그분은 그대를 사랑하신다. 하늘 그 자체도 이보다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믿으라.
예수께서는 거짓 목자들로 말미암아 잘못 인도된, 온 세상에 흩어진 영혼들을 생각하셨다. 그분의 목장의 양으로 모아들이고자 한 자들이 이리들 가운데 흩어졌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6)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 말씀은 내 아버지께서 그대들을 매우 사랑하셨으므로 내가 그대를 구속하기 위하여 내 생명을 주었기 때문에 그분이 나를 더욱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내가 내 생명을 드려 너희의 빚과 죄를 담당하여 너희의 대리자와 보증인이 됨으로 나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고 있다.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을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다.” 인간 가족의 일원으로 예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으나 하나님으로서는 세상을 위한 생명의 근원이셨다. 예수께서는 다가오는 죽음에 저항하실 수 있었으며 죽음의 지배 아래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생명과 불멸을 드러내시기 위해 자원하여 생명을 버리셨다. 그분은 사람들이 영원한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세상의 죄를 지고 죄의 저주를 견디며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4~6).
◎ “하나님의 인” (5증언, 209).
각 시대를 내려다보고 있던 선지자에게 이 시대가 그의 이상 앞에 제시되었다. 이 시대의 나라들은 전례 없는 자비를 받아 왔다. 가장 좋은 하늘의 축복이 그들에게 주어져 왔다. 그러나 늘어난 교만, 탐심, 우상 숭배, 하나님께 대한 경멸, 야비한 배은망덕이 그들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기록을 신속히 종결짓고 있다.
그러나 나를 전율하게 하는 것은 가장 큰 빛과 특권을 가졌던 자들이 팽배해 가는 죄악에 감염된 사실이다. 그들 주변에 있는 불의한 자들의 영향을 받고, 많은 사람, 심지어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 많은 사람까지도 냉랭해지고 거센 악의 조류에 압도당하고 있다. 참된 경건과 거룩함에 대하여 던지는 보편적 조롱은, 하나님과 밀접한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한다. 만일 그들이 마음에서부터 빛을 따르고 진리에 순종하고 있다면 이 거룩한 율법이 그처럼 멸시받고 도외시될 때도 그들에게 더욱 귀중하게 보일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하는 일이 더욱 현저해질수록 그 율법을 준수하는 자들과 세상을 구분하는 선은 더욱 분명해진다. 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그 교훈을 멸시하는 정도에 따라 증가 된다.
위기는 신속히 다가오고 있다. 급증하는 수치(數値)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내릴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려준다. 비록 형벌하기를 싫어할지라도 그분께서는 형벌하시되 신속히 하실 것이다. 빛 가운데서 걸어가는 자들은 다가오는 위험의 징조들을 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을 무관심하게 기대하면서, 하나님께서 심판의 날에 그분의 백성들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스스로 위로를 받으면서 조용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활동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임을 깨닫고, 강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야 할 것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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