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정 성 희
어깨너머로 바다가 한눈에 모여든다. 쪽빛으로 흥건히 물들인 비단보자기가 구겨진 듯한 바닷가, 그 너럭바위에 앉아 처얼썩 처얼썩 화음을 내며 물 위로 널뛰는 파도의 날렵한 춤사위를 바라본다. 뱃고동 소리보다 더 크게 포효하는 파도는 공중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그 너머의 세상을 기웃거리기라도 하듯 해면 밖의 유희를 즐긴다. 바구니에 담아둔 게 마냥 담 넘어 검푸른 물살이 요동치는 더 먼 바다로, 더 넓은 세상으로 소용돌이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원추형의 꼭짓점이 닿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암
같은 삶을 살다 간 이상의 날개처럼 날아보고 싶었던 것도 아닐까.
어디선가 바람 한 자락이 불어와 내 몸을 휘감고 있던 대처에의 그리움을 건드린다. 그 긴 꼬리에 묻은 낯선 문명의 냄새는 갇힌 액자 속의 풍경 같은 고답적인 틀에 얽매인 자신을 풀어주고 싶은 욕망으로 꿈틀거린다. 거대한 멍석말이로 밀려왔다 부서지는 희뿌연 물테를 보며 어제가 오늘인 양 밋밋한 내 삶의 제한된 반경에 염증이 도진다. 색주가의 수박등 같은 화려한 문명의 자궁을 그리며 수평선으로 테두리 쳐진 궁륭 저편 닿을 수 없는 먼 곳을 향해 해파리처럼 떠다니고 싶었다.
내가 있는 땅은 너무 비좁았다. 모둠발로 훌쩍 뛰어도 북한산에 닿을 만큼 좁다란 땅이 발아래 어설프기만 했다. 거대한 서구문명과 아름다운 인공의 조화가 어우러진 드넓은 땅을 향해 줄달음치고 싶었다. 서쪽바다를 자맥질하며 건너온, 흰 치마를 두른 보헤미안은 그렇게 내 안의 잠을 깨웠다. 나는 수평선 너머 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향해 눈썹을 휘날리며 찬란한 유채색의 꼬드김 속으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그 바람대로 한국에 주둔한 미 군속 남편을 만나 그의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성조기를 배경으로 몽고족의 후예임을 애써 감춘 흔하디흔한 동양인의 얼굴이 새겨진 신분증을 건네받았다. 한국 땅 안에 있는 그들만의 치외법권 지역을 내 집인 양 자유롭게 드나들며 새로운 환경과 이국의 풍물에 촉수를 모아 그 별천지세계로 숨는 것이 흥미로웠다. 발정 난 구렁이처럼 온몸을 뒤틀며 파고드는 미합중국의 화려한 관능의 색채를 기웃거리며 그 원색의 도발적인 요란스러움에 발 놓을 틈 없이 신났다.
추자벌레가 살아 꿈틀거릴 것 같은 짙은 눈썹을 쌓아둔 코 큰 사내들이 황소개구리처럼 와글와글 떠들어댄다. 몸통둘레만큼이나 우렁차게 새어나온 목소리는 미국의 젊은 역사를 대변해주는 듯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들린다. 나른한 햇살을 즐기는, 가늘고 긴 목에 화려한 장신구를 단 여인들은 그들의 강력한 경제력을 말해주는 듯 어딘지 모르게 귀티가 난다. 꽃무늬를 그려놓은 것 같은 정원에 잘 다듬어진 잔디와 눈부시게 청청한 수목들로 울타리 쳐진 녹색의 조경은 바깥세상 잡목들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도도함이 엿보인다. 마치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미군부대가 우리 땅의 우듬지 자리를 차지하고선, 그 주변과 구획을 지어 경계를 하듯이.
나는 알롱달롱 색들인 머리에 무르팍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검정고무신을 신은 한국인이다. 거울 속에 비대칭적으로 비친 모습을 보며 내 삶에 녹아있던 값싼 서구문화에 대한 숭배의식을 축출해 내려는 내적혁신도 없이 세계화만을 부르짖으며 대한민국을 대한미국으로 전환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허나 내가 만든 신미국은 낯선 표정으로 갈옷을 입은 한민족의 조상을 닮은 어설픈 이방인을 냉랭하게 구분하는 듯했다. 바람에 휩쓸려 땅 위에 정착하지도 못하고 허공 속을 떠돌다가 길가 한 구석으로 패대기쳐진 쓰레기처럼, 나는 객지의 추녀 밑을 깃드는 나그네 꼴이 되고 말았다. 그제서야 미국사회가 쌓아놓은, 낮지만 두터운 장벽을 죽는 날까지 부수어버릴 수 없다는 걸 직감하였다. 아무리 서양 사람의 흉내를 내어도 빈대떡에 케첩을 발라먹는 격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미군부대 담벼락을 따라 걷는다. 육중한 시멘트 숲 사이로 휑한 공허가 보인다. 마을조차 없는 허허벌판에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이다. 나는 광야에 홀로 선 외로운 문명인이 되어 풀기 잃은 고개를 아래로 떨군다. 잔디 사이에 돋은 잡풀에 두 눈이 머문다. 뿌리째 뽑으려 하니 막무가내다. 그 흔한 풀들조차 죄다 뿌리를 갖고 있는데, 나는 왜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기만 했단 말인가. 내 그림자가 길게 자리를 잡힐 때서야 나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이 고슴도치 가시처럼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태평양을 건너온 거인에 가리어 고향이 지닌 아늑한 세상을 망각해 왔었던 것이다.
뉘 집 창문틀에 놓인 꽃병 가득 메워진 화초들을 바라본다. 뿌리가 뽑힌 풀들은 옛 토양이 그리워서인지 축 늘어진 사시랑이 같은 몸으로 두리번거리는 반춤이, 땅을 잃은 실향민들의 울부짖음 같아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들이 설 자리는 흙을 벗어난 허공이 아니라 뿌리가 박힌 대지가 아니던가. 파리한 이파리마다 맺힌 짙은 그리움은 추신되어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나그네의 눈가를 적신다.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물속에 던져버린 내 고향을 자루가 긴 뜰채로 건져낸다. 그의 애절한 눈길을 애써 외면해 편치 못했던 나의 양심도 건져낸다. 고향의 살 냄새가 난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반가움에 아무 말도 못한 채 내 집으로 데리고 온다. 대문을 활짝 열어 안방에다 모셔두고 길게 심호흡을 한다. 내가 뱉은 어둡고 탁한 기운을 웅심 깊은 그분은 고스란히 들이마신다. 절대적 타인으로 봉사 오 년, 벙어리 오 년, 귀머거리 오 년의 하 많은 낯선 세월들을 퍼 담아 그동안의 한과 설움을 몽땅 쏟아낸다. 그분은 설익은 패기에 찬, 비루하고 속절없는 시간들을 뭉근한 구들목에다 묻어 따뜻하게 데워준다. 그분의 품에 안긴 나는, 마음속 지도에 더 넓어진 영토를 가진 새로운 땅을 발견한다. 그 땅 위에다 부레와 같은 자신을 단단히 매달아 두어 동면에 든 파리한 세월들을 숙성시킨다.
자숙의 시간을 거치면서 풋내 나던 내 안은 뽀얀 분으로 단내를 풍기기 시작한다. 어느 누구의 폐부도 거치지 않은, 맑고 청량한 고향의 첫물을 들이켜며 이전의 죄들을 조아리고 참선에서 깨어난다. 딴 사람이 되어 긴 여행을 끝낸 나는 까탈스럽게 품격 있는 자리에 놓여 현란하게 돋보이려고 경계를 짓는 외래 것보다, 소박하고 가난하지만 푼푼한 정이 깃든 우리 것이 좋아졌다. 잔가지를 다 쳐낸 몇 가닥의 잎만으로도 고향의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는 함축된 여운이 좋아졌다. 부족한 듯 가난하지만 구수한 마음에서 더 담을 수 없는 삶의 여유로운 향기가 좋아졌다.
얼마 전, 전통적인 타악기와 현대악기가 어우러진 최소리의 드럼공연을 본 적이 있다. 한때 그는 우리나라 록밴드의 일대 획을 그었던 그룹 ‘백두산’에서 드럼을 연주한 대중 음악가였다. 서양의 선진문물에 물린 후에야 비로소 우리 것에 눈뜨게 된 그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며 천년 묵은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의 소리와 춤, 무술이 신명나게 어우러져 온몸을 전율케 하는 그의 두드림은, 뿌리 깊은 한국인의 기백과 당당함이 묻어난 정체성을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근원을 만난 듯 북채로 힘차게 영혼을 두드리는 그 절묘한 소리는 내 안에 식지 않는 깊은 울림이 되었다.
이제 나는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워졌다. 천혜의 지하자원이 풍부해서도 아니고, 세계의 금융을 거머쥘 경제력을 가져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남들이 넘보지 못할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해서도 더 더욱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내가 태어난 고향이 나의 중심이고, 원주를 일탈하려는 당신의 자식을 태반 안으로 품기 때문이다. 겨울눈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실지언정 그 고향은 응달이듯이, 서구의 발달된 문명이 아무리 좋을지언정 내가 있어야 할 본향은 호랑이의 기개가 서린 조선 땅이 아니던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정착할 땅 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쿠르드족이나 니카라과 난민들을 생각할 때면, 작지만 야무진 내 땅, 내 나라가 있다는 것은 여간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수평선 너머 세상을 떠돌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른 탕아를, 고향은 묻지도 않고 받아 주었다. 만선의 깃발을 달지 않더라도, 칭칭이소리가 없이라도 좋아라. 빈 배에 아름다운 강산을 싣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싣고, 아름다운 아리랑을 싣고선, 양수처럼 출렁대는 어릴 적 내 강보이던 고향의 자궁으로 돌아가리라. 돌아가면, 늙어 쇠잔해진 고향의 허리에다 명주실같이 질긴 닻줄을 바투 동여매고는 가나안의 복지 땅을 지키는 등대지기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