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사문은 욕망을 끊어서 집착에서 자유롭다.
먼저 붓다는 집 없는 방랑자,
즉 집이 없음을 무척 강조한다.
집을 갖는다는 것은 사물의 본성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이 삶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순간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여기에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욕망은 미래에 대한 꿈들이고 미래에 대한 바람들이다.
마음속 깊이 우리는 항상 불만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어떻게하면 더 나은 삶을 살까 궁리한다.
열정이나 욕망속에 사는 사람은 무익한 삶을 산다.
그는 항상 불행하고 비참하다.
그는 항상 실재하지 않는 꿈을 꾼다.
홀로 있음은 영원한 것이다.
붓다는 홀로 있음을 이해하고 그 진실 속에 머무는 것이
집착을 버리는 것의 의미라고 말한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모든 집착을 버리고 모든 다리를 버리라는 것이다.
붓다의 가장 깊은 가르침은 무엇인가?
붓다의 가장 위대한 메시지는 '무아' <아나타> 이다.
그것이 붓다의 가장 깊은 가르침이다.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먼저 그는 이 세상은 환영이니 여기에 집을 짓지말라고 한다.
그리고 집착은 꿈이니 모든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라고 한다.
그때 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오직 집과 함께, 욕망과 함께, 관계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나'라는 것은 이 모든 꿈의 결합이며 누적된 겉모양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을 버릴때 문득 그대는 사라진다.
그것이 붓다가 말하는 담마이며, 도이고, 궁극의 법칙이다.
아무 것도 없다.
오직 무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요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죽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태어나겠는가?
무아는 참으로 아름답다.
이것이 실재에 대한 붓다의 개념이다.
이것은 이해하기가 몹시 어렵다.
붓다가 그의 몸을 떠난지 단 5백년만에 불교는 인도에서 쫒겨났다.
사람들은 그런 혁명적인 가르침을 믿을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환영이다.
집착은 어리석다.
그대 자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