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설교하는 목회자, 책임 가지고 바른 우리말 써야합니다
교회서만 쓰는 어색한 용어ㆍ잘못된 표현 바로잡아야
교단총회 등 교회 회의에서 회장에게 임원을 ‘지명’하는 권한을 줄 때 사용하는 ‘자벽’(自辟)이라는 표현. 교회 밖에서는 듣기 어려운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조선시대 관원을 채용하던 방법’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이것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총회 또는 노회에서 회장을 역임한 이들의 호칭 앞에는 ‘증경’(曾經)을 붙이는데 이 말은 사전에서 찾을 수조차 없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더라도 국어사전이 아닌 교회용어사전으로 연결돼 '전'(前)으로 고쳐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또 한 가지 교회 안에서는 전임 회장이 후임 회장에게 의사봉을 건네줄 때 흔히 ‘고퇴’(叩堆)를 넘긴다고 한다. 이 또한 사회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 생소한 표현이다. 만약 교회에 처음 온 이들이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가뜩이나 낯선 분위기에 더욱 거리감을 들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국어국문학자 이복규 교수(서경대 명예)는 “오늘날 거의 쓰지 않는 이미 사어가 되다시피한 말, 지금은 사라져야 할 표현, 사회에서는 쓰지 않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만 쓰는 어색한 용어가 많다”며 “그 말이 아니고서라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는 유려한 표현이 많은데 하나의 관습ㆍ관행이 돼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경 안에도 최초 번역 작업에 당시 개종한 유학자들이 참여하다 보니 유교 경전에 나타난 표현이 그대로 흘러들어온 경우가 있다”면서 지금은 바뀌었지만 공자, 맹자와 같은 유교학자들의 말을 살펴볼 때 사용한 단어 ‘가라사대’가 성경에 쓰인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기도할 때 부르짖는 “주여”도 문어체로 쓰인 과거의 성경 표현이 남아 어색한 표현 중 하나다. 우리말 존대법에서는 “선생님” “아버지”와 같이 2인칭에 호격조사를 붙이지 않는 게 원칙이다. “주여”의 경우 역시 그냥 “주님”으로 부르면 된다. 말하듯이 쓰는 ‘언문일치’를 추구하는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 오히려 문어를 구어로 가져온 교회 용어는 거꾸로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간혹 기도 중에 하나님을 가리켜 ‘당신’이라고 칭하는 것도 교회 안에서 우리말을 파괴하는 문제에 해당한다. 우리말에서 당신은 두 가지 경우에 사용할 수 있다. 먼저 3인칭 극존칭으로 말하려는 대상이 현장에 없는 경우다. 예를 들어 추도식 날 고인을 생각하며 “당신이 생전 좋아하셨던~”처럼 쓰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흔히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정작 그곳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 경우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여기에서 당신은 다행히 현장에는 함께 있지만 비슷한 지위에 있는 낯선 상대에게 쓰는 예사 높임말로, “당신 잘못이다”와 같이 다툼의 자리에서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버릇없는 자녀가 되는 길이다.
이 교수는 “복음과 진리라는 관점에서 봐도 교회에서 쓰는 말 중에는 용납할 수 없는 대목이 많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예배에 앞서 부르는 ‘준비 찬송’이라는 표현에 대해 그는 “찬송 그 자체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시간을 기다리며, 주의집중을 위해 이러한 말을 사용하고 있다. ‘성경이나 읽읍시다’ ‘특송 들으면서 헌금하겠습니다’ 등도 마찬가지”라면서 “말에는 권세가 있다고 했는데 그런 말을 쓸 때마다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목회자들이 이 말을 사용했을 때는 성도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잡기>(새물결플러스)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한 이 교수는 “우리말을 가지고 설교하고 인도하는 목회자와 중직들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공부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는 “유대인에게 유대말, 히브리어로 계시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말과 한글을 주셔서 복음의 진리를 알게 하셨다”며 “그렇게 볼 때 심하게 말하면 우리말을 잘못쓰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는 잘못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복음을 바로 전하기 위해서도 우리말과 글을 바로써야 한다. 과거부터 사용해왔기 때문에 편하다는 이유로 기존 신자만을 위한 언어, 열린 언어가 아닌 폐쇄적인 말을 고수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면서 “지금 기독교가 듣는 말 가운데 일반 상식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은데 언어도 그 중 하나라고 본다. 전도한다고 하면서 일반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쓰는 것은 복음의 길을 스스로 차단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지만 말과 글이 다른 데서 오는 이질감이 있다. 교회와 세상 사이에도 점점 소통의 벽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 당시 성직자들은 성경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기며 정보를 독점했다. 그러나 교회가 가진 복음이라는 정보는 독점해야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 밖, 그리고 땅끝까지 전해야 할 기쁜 소식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교회에서 사용하는 말과 글 가운데는 우리가 바로잡고 고쳐 써야 할 것이 적지 않다. 한글날을 맞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우리말과 한글을 잘 가꿔 진리를 전달하는 도구로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 아닐까.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914
첫댓글 '당신'의 쓰임
- 3인칭 극존칭으로 말하려는 대상이 현장에 없는 경우: “당신이 생전 좋아하셨던~”
- 현장에는 함께 있지만 비슷한 지위에 있는 낯선 상대에게 쓰는 예사 높임말: “당신 잘못이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나님을 가리켜 ‘당신’이라고 칭하는 것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정작 그곳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아래 복음송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 시:이인숙, 작곡: 김석균
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당신이 있으므로 나도 있고 당신의 노래가 머물므로 나는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 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당신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자료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