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렌시아(避難處)
일상의 일에 지치면 몸과 마음이 힘들고 피폐해진다. 가끔은 활력을 얻기 위한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혹자는 여행을 떠나거나 조용한 곳에서 세상의 일을 잠시 잊고 피정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피난처라는 뜻으로 ‘케렌시아’라는 말이 있다. 이는 원래 스페인어로 마지막 일전을 앞둔 투우장의 소가 잠시 쉴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곳을 이르는 말이다. 이때는 투우사가 소에게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재충전의 공간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자주 ‘겟세마니’동산으로 올라가 기도를 드리며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곳은 예루살렘성 밖 키드론 계곡 건너편으로 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로 성안은 사람들의 생활 터전으로 시끌벅적한 공간을 벗어난 ‘케렌시아’이다.
나의 케렌시아는 백자산이다. 그곳에 가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충전의 힘을 받아 돌아온다. 오를 때는 힘들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골고타 언덕을 떠올리며 기도의 시간이다. 오르막이 끝나고 긴 능선 길에 접어들면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묵상과 생각을 정리하며 걷기에 몸과 마음이 충전된다.
또한 나만의 피난처는 서재이다. 이곳은 나의 일상의 삶을 정리하며 글을 쓰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조용히 하느님을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느님과 만남이 기도이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야말로 기도하며 충전이 된다. 이곳에서 시편을 묵상하며 ‘맏배’의 묵상집(2014)을 얻었다.
또 일 년 반(2015. 12.12-2017. 6.25) 동안 성경필사를 하면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성경 이천여 쪽을 옮겨 쓰면서 힘들었지만, 그 고통의 열매는 신앙의 길로 들어서는 엄청난 은총이었다. 구약 3권, 신약 1권으로 제본하여 바울로 대주교님의 서명을 받아 고이 진열장에 펼쳐져 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올해 계획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으로 잡았다. 하루 20-30분간을 성경을 읽으며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으로 말이다. 옛 이스라엘은 그들의 맏배를 하느님께 봉헌했다. 나는 하루의 이삼십 분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맏배의 시간으로 정했다.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성경에 ‘올바른 기도’란 “너희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6)하셨다. 바로 골방은 나만의 휴식처요 피난처로 하느님을 만나는 케렌시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