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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2일 성탄절 후 셋째 주일예배
성경: 골2:6-15절(신326)
제목: 우리의 충족한 복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예배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의 진리, 즉 새 언약을 갱신하면서 감사와 즐거워하는 축제라고 생각합니다. 즉 설교를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들었고 배웠고 믿었던 복음의 약속을 다시 확인하여 더욱 믿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설교의 내용은 거의 반복적이며, 설교자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 전체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유월절과 오순절과 장막절에 이스라엘이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말씀(언약)을 다시 기억하여 즐거워하며 감사하며 소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이미 들었고 배웠던 복음의 진리를 다시 확인하여 감사하며 믿음과 소망으로 사랑의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핵심은 6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라).” 즉, 그 핵심은 ‘그 안에서 행하라’(6b)는 바울의 권면(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그러므로’를 통하여 앞에서 말한 내용(1장과 2:1-5), 즉 그 내용의 요약인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그 주로 받았으니”(6a)에 근거합니다. 특히 우리말 성경에서 생략된 ‘주’ 앞에 ‘그(정관사)’는 앞에서 설명한 ‘그 주’이심을 나타냅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그의 창조에서(1:15-17)와 그의 구속에서(1:18-23) 만물의 주이시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는 ‘그의 구속에서 그리스도 예수가 주이심’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골로새 교회가 ‘에바브라’에게 이미 들었고 배웠던 ‘복음’입니다(1:5-8, 23). 고후4:5절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복음, 즉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습니다. 즉, 우리는 주를 위해 존재하는 그의 소유(종)이며(롬14:7-9),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5:18).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것이다!’라고 외치지 않은 영역은 한 치도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 주권’의 개념인데, 깊이 생각하시고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에 의한 그와 우리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의 속량을 통하여 그의 소유(아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래서 “그는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1:18)이시며, 우리 안에 계시며(1:27), 우리는 그 안에 있습니다(1:28).
그러므로 바울은 ‘그 안에서 행하라’(6b)라고 우리에게 권면(명령)한 것입니다. 여기서 ‘행하라’는 현재 명령으로 ‘그 안에서 계속 걸으라(살라)’입니다. 여기서 그는 4개 분사를 사용하여 ‘그 안에서 행하라’(6b) 주동사를 설명합니다(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헬라어에 주동사 명령을 수식하는 분사는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주 안에서 행하라’라는 것일까요?
첫째로,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뿌리가 박혀 있게 하라)’(7a)입니다. 여기의 분사는 완료 신적 수동태로서 하나님에 의하여 이미 일어난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식물 비유를 사용하여 그의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그리스도 예수(주) 안에 우리가 이미 박혀 있게 된 상태가 지속하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이것은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그와의 우리의 연합을 강조합니다.
둘째로 ‘세움을 받아(세워지게 하라)’(7b)입니다. 여기의 분사는 현재 신적 수동태로서 계속 진행되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건물의 건축 비유를 사용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그 안에 우리가 계속 세워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것도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계속되는 그와의 우리의 연합을 강조합니다.
셋째로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확고하게 되라)’(7c)입니다. 여기의 분사는 현재 신적 수동태로서 계속 진행되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교훈을 받은 대로’는 골로새 교회가 ‘에바브라’에게 받았던 교훈, 즉 복음의 진리 입니다(1:5-8). 곧 ‘믿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분사 명령은 하나님에 의하여 ‘그 안에서 우리가 계속 확고하게 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것도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계속되는 그와 우리의 연합을 강조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 안에서 행하라’(6)라는 그의 명령에서 왜 바울은 이처럼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한 주님과 우리의 연합을 계속 강조할까요? 이는 오직 그의 복음, 즉 그와의 우리 연합만을 통해서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요15:5절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그 안에서 행하라’(6)라는 그의 명령은 단순히 스스로 행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의 명령’이기에 이것은 복음의 열매로서 명령, 즉 새 언약의 명령입니다. 우리의 주님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로 믿어 순종하게 하시는 명령입니다. 롬1:5(16:26)절입니다.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행하기 전에 주에 대한 우리 믿음이 중요하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한 그와 우리의 연합을 반복하여 강조한 것입니다.
넷째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7d)입니다. 여기의 분사는 앞의 3개의 수동 분사와 달리 현재 능동 분사로서 계속 진행되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주 예수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가 주와의 연합을 이루시며, 그 연합을 통하여 어떤 환경에서도 풍성한 열매(순종, 사랑)를 맺히시는 하나님께 계속 감사를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복음의 진리인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8). 이것도 우리가 ‘그 안에서 행하라’(6)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원래 ‘철학(필로소피아)’은 문자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여, 철저하게 이성적 판단과 추론에 따른 이론(가르침, 교훈)을 지칭합니다.
여기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가 하나의 정관사(그)와 전치사(디아)를 같이 가지기에 동격으로 ‘헛된 속임수인 철학’을 의미합니다. 골로새 교회에서 할례 같은 율법 의식들의 준수를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2:16), 신비체험과 나아가 천사 숭배를 주장하는 자들(2:18), 육체의 욕구를 극히 억압하는 금욕주의자들(2:23)과 같은 그의 대적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들의 교훈에 ‘철학’이라는 용어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철학을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으로서 그리스도(복음의 진리)를 따름이 아니기에 ‘헛되고 속이는 철학’이라고 하여서 그것에 사로잡히지(중독되지) 않도록 경고한 것입니다(8).
그 이유는 우리에게 우리의 복음, 즉 그리스도만으로 충족하기 때문입니다(9-10). “(왜냐하면)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 시라.” 원문에는 우리말 성경에 생략된 이유 접속사(왜냐하면)가 있기에, 바울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는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기 때문입니다”(9). 여기서 ‘신성’은 하나님을 가리키며, ‘육체로’는 전에는 그의 죽을 그러나 이제는 영광의 육체를 가리킵니다. 1:19절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렇습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십니다. 그의 창조(1:16-17)와 구속(1:18)을 통하여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주)’(10b)이십니다. 당연히 이것들에 포함이 된 사람의 전통이며 세상의 초등학문인 모든 철학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므로 모든 철학은 그를 섬기며 따라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이신 그 안에서 우리의 충만 때문’입니다(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여기서 ‘충만하여졌으니’는 신적 수동 완료 분사이기에 우리의 충만은 우리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충만하게 하신 조건이 오직 ‘그 안에서’입니다.
‘너희가 충만하여졌다’의 유일한 조건인 ‘그 안에서’(6, 7, 9, 10)가 15절까지의 내용의 조건으로 계속 강조됩니다. 즉 ‘그 안에서’(11), ‘그리스도와 함께’(12), ‘그 안에서 함께’(12), ‘그와 함께’(13), 그리고 15절의 끝부분에서 ‘그 안에서’입니다. 특히 본문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그 안에서’(6, 15)는 ‘인쿨루시오(수미쌍관)’를 이루어 본문을 ‘그 안에서’, 즉 ‘그와 우리의 연합’의 관점에서 이해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있기에”(9), 오직 “그 안에서만 우리도 충만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10). 엡1:22-23절입니다. “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의 충만을 위하여 오직 복음, 즉 그리스도만으로 부족함이 없기에 그 외에 어떤 헛된 속임수인 철학에 포로가 되지 말라(8)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우리의 충만을 위한 그리스도의 충족함’, 즉 ‘그 안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우리가 충만하게 되었음’(10)을 구체적으로 계속 설명합니다(11-15).
첫째는 그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11-12).
11절입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여기서 ‘그 안에서’ 가장 앞에 나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할례’를 ‘그 안에서’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육의 몸을 벗는 것’은 자신의 죄악 된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 즉 신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빌3:2-3절입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이처럼 ‘그리스도의 할례’는 자신을 부인하고 그를 신뢰하는 자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할례’는 그리스도가 친히 경험하신 육적 할례, 즉 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와의 우리의 연합(결혼)을 상징하는 믿음의 세례를 사용하여 설명합니다(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여기의 동사들이 부정과거 신적 수동태로 우리의 옛사람이 우리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장사 되었고, 우리의 새 사람도 하나님에 의하여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가 ‘그와 함께’ 또는 ‘그 안에서 함께’라는 것을 계속 반복하여 복음을 통한 그와 우리의 연합을 강조합니다.
특히 이것이 ‘죽은 자들 가운데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을 통하여’는 세례 자체의 능력이 아니라 반드시 복음에 대한 믿음이 필수적임을 나타냅니다.
둘째는 그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모든 죄의 완전하고 영원한 사함을 받았기에 하나님은 주님과 함께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13-15).
13절입니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셨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여기서 먼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에서 ‘사하시고’의 원형 ‘카리조마이’는 ‘카리스(은혜)’에서 유래한 ‘용서하다, 빚을 면제하다’는 동사입니다. ‘사하시고(카리스메노스)’가 부정과거 분사형이기에, 이것은 하나님이 과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단번에 우리의 모든 죄(빚)를 사하셨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제 바울은 그의 십자가를 통한 우리의 모든 죄(빚)의 사함의 완전함과 영원함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14-15). 첫째로 14절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여기서 ‘법조문(율법)’이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율법을 범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는 율법에 따른 우리의 모든 죄의 고소장 또는 우리의 모든 빚 문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지우시고’와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는 부정과거 분사로서 그의 십자가 사건을 가리키며, 그리고 ‘제하여 버리사’는 완료 동사로서 그의 십자가를 통하여 지우셨고 십자가에 못 박아버려서 완전히 깨끗해진 율법의 그 증서가 이제 계속(영원히) 유효하게 하심을 의미합니다. 롬8:1-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피)가 율법 언약의 요구를 다 이루셨기에 세워진 새 언약, 즉 이제 하나님만이 이루실 의무가 있는 영원한 언약을 암시합니다.
둘째로 15절입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여기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앞서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의 증서’(14)를 가지고 우리를 고소하며 대적하는 악한 영적 세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에 ‘십자가로’ 번역된 ‘그 안에서’는 맨 끝에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무력화하셨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고, 그 안에서 그들을 이기셨습니다. 여기서 ‘무력화하셨고’와 ‘이기셨다’는 부정과거 분사로서 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기셨다(드리암뷰사스)’는 ‘승리하다’와 ‘승리를 경축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승리를 경축하다’입니다. 이는 로마의 승리 개선 행진의 이미지가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패배한 그들을 공개적으로 ‘그 안에서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15절의 끝에서 ‘십자가로’ 번역된 ‘그 안에서’는 십자가를 통한 그들에 그의 승리가 그의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모든 성도의 승리인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13절입니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셨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사하신 후에).” 이처럼 그의 십자가를 통한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하고 영원히 사하신 후(14-15)에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이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살리셨다’는 부정과거로서 이미 그 안에서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엡2:1).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하고 영원히 사함과 율법의 저주와 우리의 고소자들인 악한 영들에 대하여 우리의 완전하고 영원한 해방과 승리를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들에 대한 그의 십자가의 완전한 승리와 해방이 그 안에서 우리의 충만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서(갈4:28),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알아왔던 하나님의 복음,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그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우리는 만물의 주님과 연합되었고, ‘그 안에서 행하라(살아라)’(6)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종 또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를 위해서 살라는 것이며, 또한 ‘그 안에서 행하라’의 방법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를 믿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의 창조와 그의 구속을 통하여 만물의 주이기에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기에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모든 충만이 그 안에서 우리의 충만입니다.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와 우리를 하나(몸)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1:18, 엡1:22-23).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그의 복음, 즉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충족합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주 예수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매일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설교하시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