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문예회원 여덟 명이 <지금,잇다> 한국 현대 미술 대표작들을 감상하였다. 문예회 단골손님 일곱 명과 제가 문예회 총무업무를 맡은 후 처음 등장한 정길자(영문) 동기가 합세하여 총 여덟 명 동기들의 문예회 모임이었다. 참가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조용한 분위기에서 미술 전시회와 한국 전통공예 전시를 감상할 수 있었고 점심 오찬도 식당 분위기도 깔끔하고 음식도 맛있는 곳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함께 식사하였다.
정길자동기는 은행 중의 은행인 한국은행에 입행하여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서초구에서 구의원을 세 차례나 역임한 경력이 대단한 커리어 우먼이다. 한국은행은 수익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시중은행이 아닌 대한민국의 금융정책을 결정하고 금융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기관이 아닌가? 어제 처음으로 문예회에 등장하셨으니 앞으로 문예회 행사에 많이 참석하실 것을 부탁드린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여러 개 전시하는 것이 아니고, 유명 작가라고 해도 한 작품씩만 전시하여 많은 한국 예술원 회원들의 작품을 전시하였다. 한 예로 내가 좋아하는 천경자 화백도 작품 한 점만 전시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애창하는 배호의 “누가 울어(1969년 발표)”라는 제목으로 출품된 작품이다. 그림을 보면 전혀 슬픈 기색이 없는데 왜 제목을 그리 정했나 하고 의아해 했는데 그림을 자세히 보니 저 멀리 코끼리 위에서 한 여인이 얼굴을 파묻고 우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그림이나 사물이나 자세히 보아야만 제대로 보인다. 이 작품은 작가가 모친과 남편을 떠나보낸 후 슬픔을 잊기 위해 그린 자전적인 그림으로 1989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을 동기들에게 소개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백승목 동기와 유재은 동기도 사진을 올려 용기를 갖고 올렸다.
나는 시골 농촌에서 자라서 그런지 옛날 시골 풍경이 정겨워서 그런 작품에 우선 눈길이 간다. 제가 사진을 올린 장우성의 歸牧. 살이 통통히 찐 암소를 몰고 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 지게에 지고 귀가하는 어린 목동의 풍경은 옛날 어릴 적에 우리 동네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그림이다. 박상욱의 후방의 아해(아이)들이나 이영일의 시골 소녀도 옛날에는 많이 볼 수 있었던 모습이다.
또한 김태훈의 행주대첩도 아주 자랑스러운 그림이다.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도 우리 고향 동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발생했던 역사적 사실이기에 더욱 관심을 갖고 보았다. 행주산성에서 권율 장군의 지휘하에 조선군이 집결하여 있는데 왜군이 평야 쪽에서 공격을 해와 병사들은 사력을 다해 싸우고 행주에 사는 아낙네들도 행주치마에 돌을 담아 날러 와서 우리 병사들이 그 돌을 적에게 투석할 수 있게 하여서 많은 왜군들이 죽거나 부상 당하여 결국은 후퇴하여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 연유로 해서 앞치마의 이름이 나중에 행주치마로 불리었다고 한다.
김창락의 斜陽 남자 어른의 모습도 옛날 우리 아버지가 모시 옷과 흰 고무신을 신으시고 앉아 계시는 모습과 많이 흡사하여 여러 번 바라보았다.
박광진의 팔당호수 그림(1975년 작품)을 보니 고려말 충신인 야은 길재의 시조가 생각난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최근에 두물머리에 갔다 왔는데 그때 찍은 사진과 박광진의 그림과 비교해 보니 산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강이나 그 부근의 풍광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여 길재의 산천은 依舊하다는 말도 이제는 안통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번 <지금,잇다> 전시가 10월 13일(일)까지 전시가 되고 입장료도 없으니 아직 못보신 분들은 조만간 시간 내시어 한 번 감상하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