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기백과 참고 : 太師 -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太師
태사。중국 고대관직이다. 또한 태재(太宰)라고 하며, 나라를 다스리며 육경의 수장이다.
( 太師, 中國古代官職. 又名太宰, 掌邦治, 爲六卿之首 )
歷史。
은나라 주왕 때는 기자 箕子를 태사로 하였고, 주무왕 때에는 태공을 태사로 삼았다.
(殷紂之時,箕子太師。周武王時,太公為太師)
<대재예기(大載禮記)> 에 말하되,
소공을 태보로 하고 주공을 태부, 태공을 태사로 하였다 했다.
주성왕 때에 주공단을 처음으로 태부를 역임했다.
주공과 소공이 섬(陝) 지역을 나누어서 '섬으로부터 서쪽은, 소공이 가지고, 섬으로부터 동쪽은 주공이 주인이 되었다.'
주공이 서세하자 필공이 대신했다.
또한 주조(周朝)에 태사와 태보, 태부를 합하여 "삼공(三公)"이라 불렀다.
한나라 서경(西京) 초에는 태사를 두지 않았으나, 평제(平帝) 때 처음으로 태사관을 처음으로 두었으니, 공광(孔光)이 역임하였다.
한나라 동경(東京) 때에 폐지하였다. 헌제(獻帝) 초기에 동탁(董卓)을 태사로 하였는데 동탁을 베고 또 폐지하였다.
--- 작성중 ---
《大戴禮記》說:「召公為太保,周公為太傅,太公為太師。」周成王時,周公旦始居之。周公與召公分陝而治「自陝以西,召公主之,自陝而東,周公主之。」周公薨,畢公代之。 又周朝,太師與太保、太傅合稱「三公」。漢西京初不置,平帝始復置太師官,而孔光居焉。
漢東京又廢。獻帝初,董卓為太師,卓誅又廢。
魏世不置。晉因為避景王司馬師之諱,將太師改置為太宰,晉武帝以安平王司馬孚為太宰。而據《唐六典》說法,太師等「師傅之官」在漢哀帝與漢平帝時列於「三公(大司馬、大司徒、大司空)」之上,稱為「上公」,之後在後魏(北魏、東魏、西魏)時,與太傅、太保合稱「三師」[1]。北周時又改稱回「三公」,至隋唐又稱為「三師」。
元史百官志曰「三公,太師、太傅、太保各一員,正一品,銀印,以道燮陰陽,經邦國。有元襲其名號,特示尊崇。太祖十二年,以國王置太師一員。太宗即位,建三公,其拜罷歲月,皆不可考。世祖之世,其職常缺,而僅置太保一員。至成宗、武宗而後,三公並建,而無虛位矣。」
明史、清史稿官職志載「太師、太傅、太保為三公,正一品。...掌佐天子,理陰陽,經邦弘化,其職至重。無定員,無專授。」 「太師、太傅、太保為三公。 正一品。...初沿明制,大臣有授公、孤者。嗣定為兼官、加官及贈官」。
朝鮮高麗時代亦設有太師,朝鮮王朝改稱大師。越南李朝、陳朝亦設有太師官職。
歷代太師
商
箕子
周
태공망 주공단 필공고